자료저장
한국의 국기는 세계 유일한 것
크라바트
2011. 1. 3. 19:31
출처 ☞ http://gesomoon.com/Ver2/board/view.php?tableName=comm_discuss&bIdx=172208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게오르규는
<<25시에서 영원(永遠)의 시간으로>> 에서 우리의 태극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 점, 원, 붉은 색, 흰 색
그리고 파란 색으로 그려져 있다."
태극은 한국 고유의 것으로 중국보다 먼저 생겼났다.
1.경주 감포의 감은사지의 기단석에 새겨진 태극 문양은
신라의 국력이 왕성하던 7세기초 에 나타났다.
2. 중국에서의 태극은 그 용어만 [주역]에서 나타나고,
문양은 1070년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처음 나타난다.
3.이는 우리의 것보다 380년 뒤진 것 으로 보아 태극은 중국
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양임 을 입증하고
있다.
4. 태극 문양은 한국이 중국보다 적어도 300년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KBS TV 역사 스페셜 "그때 태극기가 있었다" 에서 발췌.....
GDB ♬그린발01.03 12:51
- 외국인이들이 얼핏보면 일장기 짝퉁이라고 생각할거 같던데...
DBJ 베르시체01.03 12:55
- 방글라데시 국기를 보고 옵니다.
DBJ 호박이거덩01.03 12:55
- ↑ 님이 그런게 느끼시는건 아니구여 ㅎㅎㅎ
GDB 녹슬래닳을래01.03 12:56
- 국기에 태극문양(비슷하거나 반대라도...)이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몽골.....티벳....
그거이 궁금하다...태극이 한국인의 것인지...한국꺼면 좋은데...그냥 동양에서 만들어졌다고 하길래..
DBJ 안녕하심01.03 12:58
- 일장기 랑 태극기랑 닮기는 개코가 닮음? 동그라미 하나 있어서? 까라마이신다
DBJ 유유2201.03 13:01
- 마건충과 김홍집의 필담을 담은,청국문답을 보면 태극기의 최초의 도안자는 마건충(중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애국가의 작사자로 확실시 되는 윤치호.
작곡가는 안익태.
한 놈은 외국인인데다가
두명은 친일행적이 의심스런...에휴
886 Cantona01.03 13:04
- 국사시간에 배운거 기억나는대로 보자면
박영효인가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이게 임오군란으로 맞아죽은 일본인 9명에 대한 사죄단으로 알고있는데 맞나 모르겠네) 도중 배에서 만들었고 태극과 팔괘였는데 4괘로 줄였다고 함
701 zzone01.03 13:04
- 경주 감포의 감은사지의 기단석에 새겨진 태극 문양은 신라의 국력이 왕성하던 7세기초 에 나타났다.
•중국에서의 태극은 그 용어만 [주역]에서 나타나고, 문양은 1070년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는 우리의 것보다 380년 뒤진 것 으로 보아 태극은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양임 을 입증하고 있다.
•태극 문양은 한국이 중국보다 적어도 300년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GDB 녹슬래닳을래01.03 13:04
- 태극삼색문양을 그래도 젤 많이 사용한건 한민족아닐까
GDB 녹슬래닳을래01.03 13:06
- 그러게...선덕여왕드라마보면 함부로 태극문양을 썼을리는 없고...글쿤...한반도가 맞네...
개솜이
- 축하합니다 ! 댓글 10개 돌파!
GDB 녹슬래닳을래01.03 13:07
- 그럼 몽골 티벳애들은 왜 쓰는거지..세로로된 태극있던데
DBJ 닥터놀01.03 13:10
- 내 기억으로 태극이 깃발에 사용이 된건 이미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행렬을 그려놓은 그림에 태극무늬로 만든 깃발을 들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DBJ 유유2201.03 13:12
- 박영효는 그 제안이 있은 후에,임오군란에 의한 제물포 조약,이후 일본에 사죄하러 가는 길에
영국인 선장의 조언에 따라 처음의 팔궤에서 4궤로 줄여 만들었고,
최초로 일본고베의 박영효 숙소에서 게양되었다.
박영효 이놈도 친일파임
그리고 태극의 문양은 주역에서 따온걸로 알고 있음.
701 zzone01.03 13:16
- ㄴ 주역이 아니래....
DBJ 유유2201.03 13:17
- 이 모든 걸 종합해보면
태극기는 중국인의 기본 도안에 ,일본에 사죄하러 가는 일본 국적의 배안에서
영국인 선장의 조언에 의해 태어나 조선 사람들에게 선보이기도 전에 일본땅에서
게양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라고 볼 수 밖엔.
DBJ 유유2201.03 13:18
- zzone//주역이 아니면?
GDB 마이클 지단01.03 13:21
- 태극이란 단어는 도교에서 가장 먼저 나왔는데...
성리학...즉 유교에서 유래를 찾는건 좀 아니다...
GDB 마이클 지단01.03 13:24
- 우리조상들은 3태극을 썼다는게 맞지...
DBJ 유유2201.03 13:24
- 위에 설명해 놓은 걸 봤는데 그게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청의 간섭을 받고 있던 조선이
이 국기에 대해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고,
청의 속국임을 강조하며, 청의 용기를 쓰라고 강요했다는 것은
기록으로도 나온다,그에 비추해보면 중국의 문양을 따라했다고
볼 수밖엔 없지 않을까,생각되는데,,,?
613 꿈꾸는세상01.03 13:25
- 문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양에 담긴 뜻이 중요한거지....그 뜻이 바로 태극기의 상징성이고....
613 꿈꾸는세상01.03 13:28
- 청의 간섭이라면,,,조선이라는 나라의 근간도 중국의 간섭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그 역시 정통성을 부정해야 옳은건가? 우리가 일제의 잔재를 없애려고 노력하는것과 우리의 의식속에서 가꾸고 지켜온 그 정신 마저 진부하고 속된것인양 뜯어고치자는 생각은 다른것이지....
701 zzone01.03 13:28
- 유유22 // KBS 홈피가믄 재방송 볼 수 있슴....나 지금 보고 있는 중..
DBJ 유유2201.03 13:33
- zzone//보고나서 설명 좀 해줘봐,봐
꿈꾸는 세상// 정통성을 부정할 마음은 없음..아니 이런 변명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게
태극기가 그런 역사의 고난 속에서 탄생했다는 게 열불이 나는데,뭔.
GDB 마이클 지단01.03 13:33
- 사마천의 사기에 주역을 만든 태호복희가 동이족이라고 나온다고 함...
아직 원문을 못봐서 정확한건지는 모르겠지만...
089 러키01.03 13:34
- "태극기 창안자는 박영효 아닌 이응준""1882년 5월 朝美통상조약때 첫 게양" ●독립기념관 '국기 원형 보고회'서 결론 美, 조인식 앞두고 조선에 국기 사용 요구 역관 이응준이 함정 '스와타라' 안에서 만들어 박영효는 1882년 9월 일본 수신사로 가던 중 '이응준 태극기' 중 4괘 左·右 바꿔 공식 제정
최근 우리나라 국기(國旗)인 태극기(太極旗)에 대해 학계와 연구기관들의 관심이 뜨겁다. 그 덕분에 이번 주 '최초 태극기'의 제정과 관련된 여러 의문들이 해결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처음으로 태극기를 창안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1882년 9월 일본 에 수신사로 파견됐던 박영효(朴泳孝·1861 ~1939)가 아니라, 이보다 4개월 앞선 1882년 5월 조미(朝美) 조약 체결 당시 역관이었던 이응준(李應浚)이었음이 새로 밝혀졌다.
089 러키01.03 13:34
- 지난 27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한시준) 주최로 서울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린 '국기 원형 자료 분석 보고회'에서는 한철호 동국대 교수가 논문을 발표했고,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토론문을 보냈다. 국내 태극기 연구의 권위자인 이들은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4시간 넘게 격론을 이어 간 끝에 태극기의 창안과 제정 과정에 대해 사실상의 결론을 내렸다. 태극기의 창안자는 이응준이었으며, 박영효는 '이응준 태극기' 중 4괘(卦)의 좌·우를 바꾼 뒤 국기로 공식 제정했다는 것이다.
DBJ 유유2201.03 13:39
- 러키// 확실한 거임...?
089 러키01.03 13:42
- 확실함! 천안 목천에 있는 독립기념관에서 태극기 관련 설명을 올려놓아야하기때문에 독립기념관의 핵심중 하나인 태극기에 대한 창안자에 대해 최고 권위자들이 내린 결론임
089 러키01.03 13:44
- ◆조미조약 당시 첫 태극기 게양
1882년 5월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선은 국기가 없었다. 5월 14일(이하 양력),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Schufeldt) 제독은 만약 조선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깃발을 게양한다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는 자신의 정책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생각해 조선 대표인 신헌(申櫶)과 김홍집(金弘集)에게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 때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제정할 것을 명했고, 이응준은 5월 14일에서 22일 사이에 미국 함정인 스와타라(Swatara)호 안에서 국기를 만들었다. 이 '국기'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인식에서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 하지만 이 국기의 형태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괘가 없는 태극기'(김원모)나 '팔괘 태극기'(이태진)로 추정해 왔다.
089 러키01.03 13:44
- 그러나 최근 새로운 자료가 발굴됨으로써 '이응준 태극기'는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됐다. 조미조약 체결 2개월 뒤인 7월 19일 미국 해군부(Navy Department) 항해국이 제작한 문서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 태극과 4괘를 갖춘 태극기가 실렸음이 밝혀진 것이다〈본지 2004년 1월 27일자 A11·22면 보도〉. 지금의 태극기와 4괘의 좌·우가 바뀌었고 태극 모양이 약간 다를 뿐 전체적으로 매우 흡사했다.김원모·이태진·한철호 교수 모두 이것이 조미조약 체결 당시 걸렸던 '이응준 태극기'라는 데 동의했다. 이 태극기에 대해 김원모 교수는 "최초의 국기이자 태극기"라고 평가했다. 한철호 교수는 "임진왜란 때도 이미 태극 모양의 깃발이 존재했고 조미조약 당시는 아직 공식 국기를 제정하기 전이었으므로, 최초의 태극기가 아니라 '국기의 원형'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극기'를 통념대로 '태극과 4괘를 갖춘 깃발'로 규정하는 한, 이 깃발은 사실상의 국기로 쓰인 현존 최고(最古)의 태극기임이 분명하다.
089 러키01.03 13:45
- ◆박영효, 4괘 위치 바꿔 공식 제정그렇다면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메이지마루(明治丸) 선상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어떻게 된 것인가? 박영효의 일기인 《사화기략(使和記略)》에는 그가 준비해 간 '태극팔괘도'를 본 영국인 선장 제임스(James)가 '너무 복잡해서 식별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 '팔괘도'에서 괘 네 개를 뺀 '사괘도'로 고쳤다고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한철호 교수는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조미조약 당시 청나라 특사 마건충(馬建忠)은 '이응준의 깃발(태극사괘도)이 일본 국기와 혼동된다'며 태극 주변에 팔괘를 그린 그림을 새 국기로 제안했다. 청나라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기 어려웠던 박영효는 제임스의 의견을 구실로 자연스럽게 '마건충 안'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태진 교수도 "제임스 선장의 역할은 '사괘도'와 '팔괘도' 중에서 '사괘도'를 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089 러키01.03 13:46
- 박영효가 이 국기를 만든 것은 9월 25일이었고, 일본을 떠나 귀국길에 오른 것은 12월 27일이었다. 이 국기의 모습 역시 수많은 설이 있었지만, 한철호 교수는 최근 발굴된 문서에서 그 형태가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 태극기는 11월 1일 일본 외무성 외무대보 요시다 기요나리(吉田淸成)가 주일 영국공사 해리 파크스(Parkes)에게 보낸 문서에 수록된 것으로, 박영효가 국기 제정 직후 일본에 체류할 당시의 태극기라는 것이다.
089 러키01.03 13:47
- 이 태극기에 대해 한철호 교수는 "박영효 태극기가 분명하다"고 했고 이태진 교수도 동의했지만 김원모 교수는 "방증자료일 뿐 박영효 태극기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태극기가 1883년 3월 6일 조선 정부가 국기 제정을 공식 반포한 직후인 3월 18일 청나라 문서 《통상장정성안휘편》 에 실린 '대청국속 고려국기(大淸國屬高麗國旗)'와 비슷한 형태인 것은 분명하다. '요시다 문서'의 태극기가 '박영효 태극기'가 맞다면, 박영효의 역할은 ▲ '이응준 태극기'를 모본으로 삼아 국기를 제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괘(卦)의 좌·우를 바꾼 것이 된다. 그러나 '태극기를 만든 사람'으로서 역사에 이름이 남은 것은 중인 신분의 역관 이응준이 아니라 철종 임금의 부마인 금릉위(錦陵尉) 박영효였다.
089 러키01.03 13:47
- ◆다른 태극기들은…지난 1997년 일본 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 1882년 10월 2일자에 실린 '조선국기' 그림이 발굴된 뒤, 한때 이 태극기가 '박영효 태극기'란 설이 불거졌었다. 이 태극기의 4괘는 지금의 태극기와 3괘가 달라 논란이 일었다. 당시 김원모 교수가 "일본측이 날조한 그림"이라고 주장한 반면 이태진 교수는 신빙성이 있다고 보았지만, 이 교수는 이번 토론문에서 자신의 기존 해석을 수정한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잘못 그린 태극기'라는 것이다.
089 러키01.03 13:48
- 또 《통상장정성안휘편》의 태극기에 대해서 김원모 교수는 "반포 당시의 태극기 원형이 맞다"고 한 반면, 이태진·한철호 교수는 "바탕이 황색이고 태극 안에 작은 원이 있는 등 청나라측이 일부 왜곡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기의 명칭 앞에 멋대로 '대청국속'이란 말을 붙이는 등의 조작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의도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DBJ 유유2201.03 13:49
- 음,내가 역사를 잘못 배웠나...뭐가 이래.
죽은 지식은 이래서 쓸모가 없다는 거군,쩝.
701 zzone01.03 13:57
- ㄴ 윗글이 맞아요..
550 개소문다껌01.03 14:27
- 출처는 기억 안나는데 내가 읽은 글에선 고종이 지시 했다던데? 그런데 청의 압력 때문에 대놓고 국기를 못들고 가니깐 미리 원안 짜서 플랜 짜놓고 선상위에서 급조 한것 처럼 꾸몄다는거지.
GDB 양앵치기01.03 15:48
- 문양에 담깃뜻이 중요한거지. 니뽄같이 지들이 쵝오라서 일장기 쳐만든게 아니라 거기에 여려 철학 우주의 질서 의 뜻이 담겨있어서 높이 평가받는거.
904 열폭자제01.03 16:52
- 네발,부탄,리비아 국기가 갑이제
DBJ 카이트01.03 16:56
-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태극은 지금의 중국의 쌍태극이 아닌 삼태극이다
태극기 문양은 좀 바꾸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전통 문양이 들어가는걸로
삼태극이나 삼족오 뭔 이런 문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