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8090.html
한 대학원생이 70여 일 동안 서울역 노숙 생활을 하며 지리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노숙인들…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들의 생활을 몸으로 기록한 이야기

낮잠이 생명인 노숙


거리 노숙인에게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요소인 의식주(衣食住)가 골고루 결여돼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욕구보다 의식주가 먼저 해결돼야 하는데, 그중 ‘주’(住)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수면의 공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왜냐하면 ‘의’(依), ‘식’(食)과 달리 ‘주’는 이동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즉,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거리 노숙인에게 ‘의’와 ‘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찾아’오지만, ‘주’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리 노숙인에게 ‘주’에 해당하는 ‘수면의 공간’은 다양한 ‘거리 노숙 지도’를 그리는 데 가장 기본이 된다. 요컨대 뒤에 언급할 ‘취식의 공간’이나 ‘구걸의 공간’, 그리고 ‘부유의 공간’ 등은 ‘수면의 공간’이 먼저 확보된 이후에 형성되는 것으로, 그 순서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음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선생님’의 말이다.

이 선생님
: 우리가 백날 외쳐봐야 정부에서 집 안 나와. 그런데 밥! 이건 안 줄 수가 없어. 니가 생각을 해봐. 여기가 무슨 아프리카도 아니고, (거리 노숙인 중 누군가가) 배고파 죽었다고 한번 뜨면 나라님한테도 참~ 안 좋거든? 그니까 내 말이 뭐냐 하면 (필자를 가리키며) 목숨 걸고 잘 데 만들라는 거지.


 

꼬지와 짤짤이, 구걸의 ‘감’

서울역 거리 노숙인들이 ‘구걸의 공간’으로 생산하는 장소는 유동인구가 많으면서 ‘감시와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 요컨대 ①서울역 광장과 ②육교다. 이 밖에도 ③‘짤짤이’(거리 노숙인의 은어로, 휴일 등을 이용해 주변 교회나 성당, 예식장, 각 자선단체 등을 돌며 구걸하는 행동) 공간이 ‘구걸의 공간’으로 존재하지만, 이는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종류 또한 다양하다.

서울역 광장에서 10대로 추정되는 남성 무리에게 구걸을 시도했다 실패한 필자에게 ‘최형’과 ‘에이스형’은 이렇게 말했다.

최형: 인마야! 너 형이 뭐랬냐? 남자 학생놈들한테는 달려들지 말라고 내가 안 그랬냐?! 아, 이래서 꼬지도 짬밥대로 가라고 하는 거야. 뭣하러 뺀찌 먹고 기분 드~러워지냐? 그 ××들이 뭐 보태준 거 있다고.

에이스형: 너가 정 꼬지해야겠다 싶으면 그냥 아가씨한테 가 인마. 저기 좍~ 봐라! 널린 게 가시나들이구만. 왜 애먼 놈한테 갔다가 뺀찌나 먹냐 인마.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한편 ‘구걸의 공간’은 단순히 구걸의 장소일 뿐 아니라 ‘정체성 확립 및 자존감 고취의 공간’으로도 작동하는데, 이는 ‘시민’과의 만남, 그리고 ‘거지’와의 차별화를 통해 발현된다.

이 선생님: (필자를 가리키며) 너, 꼬지가 쪽팔려? 그렇지? 쪽팔리지? 이거 안 한다고 굶어죽는 것도 아닌데 왜 해야 되나 싶지 않아? 간단해. 너 꼬지 말고 사람들이랑 자연스럽게 말 섞을 기회 있어? 없을걸? 넌 젊은 놈이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밖으로 나가야지 인마. 그러려면 꼬지라도 부지런히 해봐. 한푼두푼 벌어오라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랑 계속 만나야 되니까 그런 거야. 불쌍하게 돈 달라고 비는 게 아니야. 잠깐 빌리는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게 맞는 거야.

에이스형: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뭔지 알아? ‘그지××’야 ‘그지××’! 너 내가 그지로 보여? 너나 나나 우리가 그지야? 아니잖아! 돈 없으면 다 그지야? 너 내가 저기 한복판에 엎드려서 돈 달라고 비는 거 봤어? 못 봤지? 바로 그게 내가 그지××들이랑 다른 점이야! 난 필요 없어, 돈! ××게 쪽팔리게 엎드려서 돈 달라고 그 ×× 같은 거 난 안 해! 그러는 ××들이 진짜 그지야, 그지. 요런 에서 산다고 다 그지가 아니라고. 우린 당당하게 허리 쫙 펴고 어깨 쫙 펴고 면상 똑바로 들고 그렇게 말하잖아! 안 준다는 놈 붙잡아놓고 사정해 우리가? 아니잖아 인마! 그리고 쟤네들(시민들을 가리킴)은 서로 담배도 안 빌려 펴? 다 하잖아! 우리도 똑같단 말이야! 가다가 담배도 좀 얻어 피고 그러는 거지. 있으면 좀 없는 사람 줄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렇다고 진짜 그지처럼 우리가 ‘담배 한 개만…’ 이러는 것도 아니고 ××. 너도 인마 어디 가서 쪽팔리게 굴지 마. 그지×× 취급받기 싫으면.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간 개념

그들의 시간 개념이 이처럼 조정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며, 또 다른 하나는 ‘노마드(nomad)적 삶 자체를 즐기게 됐기 때문’이다. 아래의 진술은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이유를 각각 잘 보여준다.

난형: 난 여기 있는 다른 애들처럼 몇 년씩 이 바닥에서 굴러본 것도 아니고 딱 1년 됐어, 딱 1년. 처음에? 너랑 똑같았지 ××야. 나도 악착같이 모아서 여기 빨리 뜨려 했고 실제로 일도 ×나게 열심히 했고. 근데 지금 왜 이래 내가? 여기가 다 그래. 쎄가 빠~지게 노력해도 앞이 안 보여 앞이. 그게 처음엔 모질게 이 악물고 버텨도 점점 희망이 없어져. 그럼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너 그거 알지? 사형수랑 무기징역수랑 누가 더 미쳐버릴 거 같은지? 당연히 무기징역수란 말이지! 사형수는 죽으면 땡이야. 근데 무기징역수는? 걔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야. 왜냐? 희망이 있거든! 혹시나 하는 그런 거! 그게 사람 피 말리는 거야. 여기도 똑같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언젠간… 언젠간… 계속 이러는 거야. 그런데 현실은? ×도 없다 이거지~. 그럼 어떡해? 별수 있나. 희망을 버리는 거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담주 걱정은 담주에! 그래서 내가 이렇게 이 ××로 사는 거야. 내 필에 충~실하게! 오케이?

최형: 난 여기가 좋아. 솔직히 니가 믿을랑가 모르겠는데, 내가 길바닥 1년차 때까지 모은 돈에서 좀만 더했으면 난 여기 진~작에 떴어. 근데 그때쯤이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여기 나가면… 그래… 나가면 뭐? 나가서 그래도 대학 물 좀 먹은 놈이라고 뻐기면서 ×라게 일하고, 가족이랑 같이 아등바등 살고. 뭐 뻔한 거 있잖아.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내가 도대체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지? 아 니가 생각을 해봐. 군대 빼고 이렇게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가 어딨어? 안 그래? 너도 이제 슬슬 여기 생활 적응되지 않아?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여기만큼 편한 데가 없어.



자신을 드러내고 싶으면서 은폐하는 사람들

‘부유의 공간’은 ‘존재를 드러내는 공간’(혹은 은폐의 공간)으로도 작동한다. 서울역에는 노숙인 관련 단체나 언론인이 종종 방문하는데, 다음은 거리 노숙인에 대한 르포 기사를 쓰기 위해 한 기자가 찾아온 날 ‘이 선생님’이 한 말이다.

이 선생님: 난 항상 기자들을 보면 반갑게 맞아줘. 그래야 기사를 잘 써주거든. 근데 보면 내가 뭐라 씨부리든 지넨 지네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겠다 이거야. 그래도 기자들 오면 나 또 잘해줘. 내가 세상과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리고 난 우리들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으니까. 좀 제대로 말이야. 그래야 마냥 불쌍한 놈 적선해주듯 우리를 안 볼 거 아니냐.




p.s

노숙자들 내보내는 건 찬성한다.
서울역은 역으로 존재하는 곳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항상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곳이지.
따라서, 그 곳에 노숙자와 거지들이 버틸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는 건 누가 봐도 무책임한 짓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와 다른 관점에서 또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노숙자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냐 아니냐, 즉 자국민이냐 아니냐의 측면에서도 바라봐야 한다는 뜻..
다시 말해서, 그 들이 우리나라 국민이 분명하다면 설사 상황이 어려워 노숙의 길을 택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살 길을 마련하고 열우주는 것은 국가와 정부의 당연한 책임이라는 소리다.

나라는 불체자를 챙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자국민들을 챙겨야 하는 게 맞는거지.
이 외에도 노숙의 길을 택한 이유가 불가항력 때문이었냐, 아니면 지가 게을러서냐, 그것도 아니면 저 위의 본문처럼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결과인가 등등에 맞춰 보는 관점과 대응방향도 달라져야 하겠지만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앞서 말한 2가지이며, 저 2가지만큼은 어느 것이 선이고 후인 게 없이 똑같이 중시하고 처리해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노숙자들을 서울역에서 다 내보내라. 단, 내보낸 후 최소한의 살 방도는 마련해 주고 보내라.'라는 것..
 만약 그런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마련될 때까진 내쫓지 말고 일단 대기시키든가, 아니면 또 다른 수를 강구하든 하는 게 정부에서 취해야 할 자세이다..라는 게 바로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인 것이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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