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5/2010110500033.html
"박정희 대통령이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베트남전 파병 대가로 종합연구소 설립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아파트까지 사주며 해외에서 학자들을 모셔 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홍릉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방문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주네이디 사도 과학기술부 장관에게 KIST 현황을 브리핑하던 신경호 국제교육협력본부장은 깜짝 놀랐다. 주네이디 장관이 KIST의 역사를 너무 소상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KIST 제공 주네이디 장관은 "44년 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5달러로 지금 우리의 390달러에 절반도 못 미쳤다"며 "그랬던 한국이 KIST를 세워 과학과 산업 발전에 기초를 닦고 오늘날처럼 선진국으로 발전한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1966년 미국의 대외원조기금 900만달러로 세워진 KIST가 이제 저개발국에 대한 과학기술 원조의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과학기술로 뒷받침한 비결을 알려달라"는 개도국의 요청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성공 경험을 세계 각지에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지난 2일 코스타리카의 클로틸드 폰세카 과학기술장관이 KIST를 다녀갔고, 9월엔 에콰도르의 라파엘 델가도 대통령과 코스타리카 카스트로 살라자르 외무장관이 방문했다. 5월에는 짐바브웨 과학기술개발 장관이 KIST를 찾아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하면 KIST 같은 연구소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들이 선진국 연구기관을 제쳐두고 KIST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선진국 모델을 따라가려면 수백년이 걸릴 일을 한국 모델을 따라 하면 수십년 만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베트남 정부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 어떻게 과학기술 발전을 이뤄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부탁했다. 이에 대한 하버드의 대답은 '한국을 배워라'였다.

금동화 KIST 전 원장은 "그것을 성공시킨 것은 최고 집권자의 의지와 관심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서울대 교수의 3배 봉급을 주고 해외 과학자들을 데려왔다. KIST 봉급표를 본 박 대통령이 "나보다 많이 받는 사람이 수두룩하네"라며 웃었다는 일화는 아직도 KIST에서 회자된다.

이렇게 과학자들을 모은 KIST는 포항제철의 기술적인 설계와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자동차·반도체·조선 등 오늘날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기반 기술의 요람이 됐다. 덕분에 KIST는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베트남 기획투자부 산하 개발전략연구소 부테탕 부소장 등 26명의 전문가들이 KIST에서 연수를 받으며 집중적으로 배운 것도 이런 내용이었다. 베트남 개발전략연구소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비슷한 곳. 이들은 '베트남의 KIST 만들기'라는 목표를 위해 KIST 관계자들을 상대로 KIST 설립과 운영과 관련된 무수한 질문을 쏟아붓고, 그 해답을 받아적었다. 이들이 만든 전략 보고서는 베트남 총리에게 곧 보고될 예정이다.

KIST는 또 지난 6월부터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청으로 수도 자카르타에서 1시간 거리에 '천연물연구센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한 기술지도와 인력 교육도 공동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01년 19명으로 시작한 KIST 국제R&D아카데미 수강생도 현재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 22개국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개도국 석·박사과정생들을 무료로 공부시켜 각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이끌 인재를 키우는 작업이다. 인도네시아 천연물연구센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인도네시아 쪽 핵심 인재 역시 KIST 국제R&D아카데미 수강생 출신이다.

박원훈 전 원장(현 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은 "어렵게 과학기술의 씨를 뿌렸는데 이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으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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