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85

사교육 업계에 새로운 내부 고발자가 나타났다. 오늘날 교육평론가로 활동 중인 이범씨가 사교육계의 스타 강사 출신이라면 이 사람은 학원 경영자 출신이다. 2001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입성한 이래 10여 년간 송파·분당 등지에서 고급 영어학원을 운영해온 이준엽씨(39, 파워스터디 대표)가 ‘제2의 이범’을 자처한 주인공이다.

그는 ‘이범씨도 모르는 절반의 진실’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절반이란 다름아닌 영어 사교육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 1년 사교육비 30조원 중 영어 사교육비는 2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사교육비의 3분의 2 이상을 영어에 쏟아붓는 셈이다. 그뿐 아니다. 영어 사교육비는 매년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2007~2008년 사교육비 과목별 증가율 통계에서 영어는 11.8%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그런데도 영어 실력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전 세계 토플 응시국 148개 나라 중 한국 성적은 134위다. 아시아 주요 12개 나라 중 일본과 더불어 최하위 수준이다. 그나마 일본은 영어 사교육비로 우리의 3분의 1 수준인 7조원을 쓴다.

   
이준엽 파워스터디 대표(위)는 영어학원 수강료의 70% 가까이가 임차료·인테리어비·홍보비 따위로 쓰인다고 비판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준엽씨는 “영어 사교육 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가 사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 행해지는 영어 수업이 지금처럼 부실한 상황에서는 미래에 살아남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영어 사교육이 필수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도 심하게 왜곡된 시장이라는 것이다. 

체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의 경우 학원 3곳을 운영하는 데 들인 임차료만 10억원이었다. 그뿐인가. 권리금, 인테리어비, 셔틀버스 운영비, 각종 홍보비 따위를 감안하면 660㎡(200평)짜리 학원 하나 차리는 데 10억~15억원은 기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나마 그가 운영한 학원은 프랜차이즈가 아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일급 프랜차이즈 학원들의 경우 브랜드 가맹비로만 3억~6억원을 내는 것이 관행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들인 비용을 회수하려면 수강료에 거품이 낄 수밖에 없다. “수강료의 70%가량은 교육비가 아닌 이런 부대 비용에 쓰인다고 보면 된다”라고 이준엽씨는 주장했다. 수강료가 월 30만~40만원인 영어 학원의 경우 실제 교육을 위해 쓰는 비용은 불과 10만원 안팎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학부모가 비싼 학원비에 현혹되는 게 안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로써 발생하는 교육 격차이다. 어느 날 그가 운영하던 대치동 학원 앞을 지나던 한 초등학생이 내뱉은 한마디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누군 좋겠다. 부모 잘 만나서….”

그는 이를 ‘대오각성의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남들이 보기에 이씨는 전형적인 ‘개룡남’(개천에서 용난 남자)이다. 시각장애 안마사인 아버지, 계모인 어머니와 단칸방에 살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자수성가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이 순간 자신이 그간 해온 것이 ‘소수 부자를 위한 교육 사업’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다른 꿈을 키웠다. 하던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쌓아온 교육 사업 노하우를 활용해 우리 사회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지자체와 교회였다. 지자체가 설립한 교육 시설이나 평일에 놀고 있는 교회 교육관을 활용하면 임차료를 아끼면서 싼 값에 양질의 영어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경기도 군포시 국제교육센터 운영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그는 마침내 꿈을 이뤘다(관련 기사 참조). 그는 공적 기관이 앞장서 교육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일 때 사교육 광풍도 잦아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교육 시장의 농간에 판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포시 국제교육센터를 개소할 때도 그는 사소한 것들을 물고 늘어지는 몇몇 시의원에게 골탕을 먹었다고 한다. 그 뒤에 학원업자들의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후원금으로 이어진 학원업자들과 정치권의 공생 사슬이 끊이지 않는 한 ‘영어 사교육 거품 빼기’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가 내부 고발자를 자처하며 우리 사회의 각성을 끌어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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