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하에 성관계" "피해자쪽서 돈 요구" 가해자측, 법정서 파렴치한 진술 쏟아내
"의도적인 모의 없었다" 일부 가해학생 부모 변호사 동원해 주장
가해자 부모 중 한명도 장례식장 찾아오지 않아 피해자 부모 "세상 무서워"
경기도 부천에 사는 A씨 부부에게 지난해 5월은 악몽이었다. 친구 만나러 나간 고1 딸(당시 16세)이 불탄 시신으로 돌아왔다. 남학생 8명에게 처참하게 성폭행당한 뒤였다. 식당 일 하던 부인은 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남편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고철 장사를 접었다. 부부는 "딸이 살아 돌아올 것 같아 처음 몇 달은 잘 때도 현관문을 못 잠갔다"고 울먹였다.
지난 6일은 살아있다면 17번째 딸의 생일이었다. 딸 친구들이 케이크를 만들어왔다. 파주 용미리 묘지를 다녀온 부부는 딸 대신 촛불을 끄며 소리 내 울고 또 울었다. "그 짓을 당하고 불에 타가며 얼마나 부모를 찾았겠느냐. 할 수만 있다면 그놈들을 갈기갈기 찢고 싶다"며 통곡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지난해 5월 2일, 딸 A양을 동네 오빠들인 쌍둥이 B(19)군 형제와 C(19)군이 불러냈다. 4명은 밤 11시쯤부터 전기료가 밀려 전기가 끊긴 3평(10㎡) 지하방에 촛불을 켠 채 소주 2병과 맥주 1L를 나눠마셨다. A양이 술에 취하자 짐승으로 변한 B군 등은 A양을 집단 성폭행했다. 그 뒤 집을 나가 친구들을 만난 B군 등은 "A양이 뻗었으니 (성폭행)할 사람은 가서 하라"며 친구 4명과 고모(당시 13세)군을 불러들였다. 이들도 순번을 정해 의식을 잃은 A양을 성폭행했다. 8명은 오전 3시쯤 실신한 A양을 놔두고 촛불을 켜둔 채 집을 나갔다. 오전 6시쯤 불이 났고 A양은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출동한 경찰은 단순 화재로 사망한 것으로 알았다가 "남학생이 사는 집"이라는 동네 사람 말을 듣고서야 다시 수사해 사건 전모를 파악했다.
▲ 지난해 5월 2일 성폭행당한 뒤 화재로 질식사한 A(16)양 아버지가 가족사진을 보며 딸을 잃은 슬픔을 달래고 있다./박국희 기자
가해자들은 부모가 행방불명됐거나 편부모 가정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개 성폭행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부모가 모두 치과의사인 B군 형제는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법정에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진술했다. A양 어머니(41)는 "쌍둥이 형제가 '여자가 먼저 배에 올라타 유도했다'는 입에 담지도 못할 이야기를 하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B군 부모는 "성년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술을 마시다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며 친구들과 담임교사까지 동원해 탄원서를 냈다. B군 부모는 로펌 변호사를 동원해 "의도적으로 성폭행을 모의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B군 부모는 또 법정에서 "피해자 쪽에서 수억원을 요구해 합의가 어려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A양 부모는 "딸이 죽었는데 무슨 돈을 요구했겠느냐"며 가슴을 쳤다. "배운 사람들이 더 그러니 세상이 무서웠다"고도 했다. A씨 부부는 "장례식장 찾아온 가해자 부모는 한 사람도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9일 서울고법은 형사 미성년자인 1명을 뺀 가해자 7명에게 특수강간과 과실치사죄로 대부분 실형을 선고했다. B군 형제는 장기 4년 단기 3년, C군은 징역 장기 5년 단기 4년을 선고받았다. 장·단기형은 미성년자 행형성적에 따라 교정당국이 형량을 조절한다. 나중에 부모와 함께 A양 부모를 찾아 사과를 거듭하고 합의를 한 D(18)군만 집행유예를 받았다.
A양 막내 동생(10)은 큰누나의 사고를 지금도 모른다. 둘째 딸(15)은 "밤만 되면 옆에 누워 잠들었던 언니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 A씨는 "딸을 생각하면 이번 형량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상고를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며 "부모된 마음으로 이런 피해자는 우리 딸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