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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壽 맞은 원로신학자 유동식씨 전집 나와

"왜 동아시아 국가 중 한국만 기독교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파고든 것이 여기까지 왔네요."

한국 기독교신학의 토착화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원로신학자 소금(素琴) 유동식(柳東植·87) 전 연세대 교수의 미수(米壽)를 맞아 그의 저작을 집대성한 《소금 유동식 전집》(한들출판사)이 발간됐다. 전10권으로 된 전집에는 6·25전쟁 피란 중이던 1952년 전북 전주의 한 교회에서 청년들과 함께 성경공부하면서 썼던 소책자 〈택함 받은 나그네들에게〉부터 2002년 팔순을 맞아 펴낸 〈종교와 예술의 뒤안길에서〉까지 20여종의 저서가 들어 있다. 1950년대 성서신학에서 출발해 토착화, 무교(巫敎)연구, 풍류(風流)신학을 거쳐 예술신학으로 이어져온 노(老)학자의 50여년 연구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유 교수의 연세대 신과대학 제자 등으로 구성된 〈유동식전집 간행위원회〉(위원장 이계준 연세대 명예교수)가 3년에 걸쳐 자료수집과 입력·교정 작업을 거쳐 완성한 역작이다. 지난 7일 53년째 살고 있는 서울 대신동 자택에서 만난 유 교수는 흰 수염을 매만지며 "저도 그런 글을 썼는지 가물가물한 것까지 찾아내 전집으로 엮어준 제자와 후배분들이 고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동식 전 연세대 교수는“나이 여든을 넘으니 시간이 휙휙 지나간다”며“저도 잘 기 억 못하는 옛날 글까지 챙겨서 전집을 꾸며준 후학들이 고맙다”고 말했다./김한수 기자

유동식 교수가 기독교신학과 한국의 토착문화·영성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에게 당연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저는 3대째 감리교 신자여서 황해도 살던 어릴 때는 세상 사람이 모두 크리스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고교 때 춘천으로 이사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보니 한 반에 크리스천이 저 포함해 딱 두 명인 거예요."

기독교 신학연구로 삶의 방향을 잡은 그의 연구는 연희전문을 거쳐 감신대와 미국 보스턴대, 일본 도쿄대·국학원대 수학(修學)으로 이어졌다. 광복 후 젊은 신학자로서 한국적 신학을 모색하던 그는 어느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뒤지다 최치원이 말했던 풍류도(風流道)를 발견하곤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유불선(儒佛仙)을 포함하여 뭇 인생을 교화하는 현묘(玄妙)한 도"라고 말한 풍류도이다. 이를 시작으로 무속과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풍류신학을 구축했다.

우리 민족은 풍류도라는 고유의 영성(靈性)을 가지고 있었고, 그 토양 위에 기독교라는 씨앗이 떨어졌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기독교가 전파된 중국·일본보다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풍류도의 멋·한·삶 등 세 요소를 신인합일(神人合一)의 '한의 신학', 인간화를 위한 '삶의 신학', 종교적 심성을 예술로 표현해내는 '멋의 신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 토착화 논쟁을 일으켰던 그의 풍류신학은 〈도와 고로스〉〈민속종교와 한국문화〉〈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풍류신학으로의 여로〉〈풍류도와 한국신학〉 등에 담겨 있다. 대표작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 전시된 〈한국의 책 100선〉에 꼽혔다.

최근 한국 교회는 성장이 멈칫한 상태이다. 유 교수는 "생명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한 장(章)에서 일곱번이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아름다움을 형상화해 우주와 인생을 창조하신 것이지요. 아름다운 사회, 인생, 역사를 만드는 데 생명력을 공급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경계의 바다'에서 벌인 기독교·이슬람의 천년 대결


한국 기독교의 성행비밀은 '나라가 어려울수록 미신을 믿게된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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