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20&fid=314&articleid=2010110708530958680

박정희가 1979년에 서거하지 않았다면, 1981년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장에서 핵무기를 내외에 공개하고 하야하려 했다. 후계자는 JP, 김종필이었다는 부분은 충격적이다. 또 최규하 시절 12·12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전말을 털어놓은 대목에서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몸서리치게 된다.

하순봉은 “30여 년 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취재를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 탑승 중에 심한 악천후를 만나 비행기 안이 아수라장이 됐을 때였다. 울부짖거나 기도하는 대다수 동서양인 승객들과 달리 중년의 일본인 승객이 당시 상황을 남기려는 듯 차분히 적고 있었다”고 특기한다.

회고록을 쓰며 그때 그 일본인을 떠올렸다. 악천후가 잦았고, 파도가 높았던 지나온 길을 아수라장 속에서도 차분히 정리하고 기록하는 그 일본인과 같은 마음으로 적었다. 그 길을 객관적으로 전하려고 애썼다.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대로, 반성은 반성대로, 언론인답게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술했다. 회고록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여느 인사들과 다른 접근방식이다.


※ 하순봉은 194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 중·고, 서울대 사대를 나왔다. 건국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차프만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했다. MBC에 기자로 입사해 TV앵커, 정치부장을 지냈다. 40세에 제11대 국회의원(민정당)으로 정치에 입문, 14~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원내 제1당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부총재, 최고위원을 거쳤다. 정치 현장을 떠난 뒤 경남대 석좌교수, 직업 전문TV 일자리방송 회장을 지냈다. 한나라당 상임고문, 경남일보 회장을 맡고 있다. 황조근정훈장을 받았고, 저서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 등 여럿이다. 부인 박옥자 여사와 사이에 1남1녀가 있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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