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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과 목도리 너무 자주 쓰지 마세요 
  
지난 대선 당시 선거 광고에 출연해 '욕쟁이 할머니'로 알려진 강종순씨 포장마차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이명박

공사다망하신 우리의 대통령님께.

 

날씨가 매우 추워졌습니다. 건강하신지요? 내복만 너무 믿지 마시고 청와대 온도를 약간 높여서 우리 대통령이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국민의 걱정을 대신 전합니다.

 

요즘 4대강이다, 세종시다 해서 고심이 크신 줄 압니다. 저간 KBS와 MBC 등의 방송 작업도 만만치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3국(國)을 통일한 신라의 김유신 장군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이에 견주어 대통령님은 3국(局)을 통일했다는 평가를 얻고 계십니다.

 

욕쟁이 할머니 찾아 백만원 매상 올리는 게 서민행보?

 

하지만 이 서신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그런 굵직하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대통령님의 '극진한 서민 사랑'에 대해 한 말씀 올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님은 지난 토요일 밤, 대선 때 국밥 광고에 공연(共演)한 강종순 할머니,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를 깜짝 방문하셨더군요. 대통령님께 "이 노움아, 밥 처먹었으닝께 경제를 살려라아!"하고 욕설을 퍼부었던 그 할머니 말입니다.

 

그때 화면에서 대통령님은 처연히, 조금은 허겁지겁 국밥만을 드셨는데 그것은 '서민 대통령'임을 알리고자 하는 선거 캠프의 전략을 십분 충족시켰습니다. 대통령님은 후보 시절에도 아이스케이크 통을 메기도 하고 환경 미화원과 함께 작업도 하시는 등 서민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이전 대선에서 같은 당의 이회창 후보가 귀족적 이미지 때문에 실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게 아닌가 합니다.

 

대통령님은 국밥 광고 기획·제작에 관여한 박형준 정무수석 등 20여 명과 함께 욕쟁이 할머니의 청담동 실내 포장마차에 1시간40분 정도 머물며, 계란말이와 오돌뼈볶음 등을 안주로 막걸리잔을 기울였다고 하더군요. 혹시 일행 중에 이것을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얼간이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님은 할머니에게 "요즘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위로했고, 대통령의 방문에 놀란 할머니는 "대선 당시에는 다른 것 말고 경제나 살리라고 했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잘 해주실 것으로 믿고 마음을 놓으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지요.

 

그런데 한 참석자의 말이 다소 희극적이었습니다. 그는 "매상을 많이 올려주기 위해 모두 열심히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더군요. 약간 더 희극적인 것은 "이번 방문은 연말을 맞아 대선 당시 민생현장에서 만난 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어려운 서민경제를 챙기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됐다"는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의 생뚱맞은 설명이었습니다.

 

한 참석자의 말대로 영세상인의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들 먹었는지 식대가 100만 원 정도나 나왔다고 하더군요. 포장마차치고는 망외의 매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참 좋은 일 하셨습니다. 게다가 부인 김윤옥씨는 목도리와 점퍼까지 선물하셨다니, 욕쟁이 할머니의 올겨울이 잠시 따뜻할 것 같기도 해 일면 흐뭇합니다.

 

하지만 저는 왠지 씁쓸하고 허전합니다. 하룻밤 우르르 몰려가서 매상을 올려 주는 일이, 그리고 대통령 부부가 영세상인과 번갈아가며 포옹하며 사진 찍고 목도리와 점퍼를 선물하는 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과연 '서민경제를 챙기는 차원'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의 서민행보는 양극화시대의 비극적 희극입니다


  
지난 12일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고 있다.
ⓒ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님은 이전 대통령 누구보다도 현장 탐방과 서민행보를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이 가 보신 시장만 해도 화양동시장, 이문동시장, 가락시장, 남대문시장, 서구시장 등등 경향 각지에 산재해 있어 이루 다 기억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은 재래시장에 가시면 으레 한두 개씩의 에피소드를 창출하셨지요. 저는 대통령님이 유달리 어묵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묵을 너무 많이 드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목도리 선물도 본 거 같군요. 할머니와 격하게 포옹하는 모습도 예전에 보이셨어요. 그러고는 "내가 그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라고 울먹이기도 하셨습니다. 이후 인터넷에는 '내가 00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시리즈가 떠돌아 다녔는데 혹시 보셨는지요? 

 

지난 6월 25일 방영된 YTN <돌발영상> '살기 좋은 세상'편이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이 프로그램은 대통령의 민생 행보를 편집한 4분짜리 동영상인데, 전반부는 대통령이 동네 슈퍼 등을 돌아다니시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상인들과의 회식 장면으로 되어 있었지요. 전반부에서 대통령님은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집고는 대뜸 "얘들아, 이거 사먹어라, 뻥튀기!"라고 하십니다(대통령님은 뻥튀기 노점을 한 전력도 있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탐탁지 않았습니다. 상인들은 대형마트로 인해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방학 때문에 손님이 없나?"라고 동문서답으로 되묻습니다. 대형마트에 대한 상인들의 불평이 이어지자, 대통령은 "값은 여기가 더 싸지 않나?"라고 또 되묻습니다. 상인들이 아니라고 하자, 대통령님은 "직거래를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상인들은 "물량을 다 소화할 수 없다"고 대답했지요.

 

이후 회식 자리에서 대통령님은 "대형마트 규제법은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받을 것이므로 법적 규제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은 진실이었습니까?

 

이런 다채로운 에피소드에도 아랑곳 않고 대통령님의 서민행보는 오히려 더욱 잦아졌습니다. 참고로 최근 두 달 동안만 보겠습니다.

 

중소기업 동두천 세코닉스 방문(10월2일), KBS 사랑나눔콘서트 출연(10월3일), 청와대 인근주민 초청 작은음악회(10월12일), 신종플루 거점병원 국립의료원 방문(10월28일), 경기도 여성일하기센터 방문(11월6일), 어린이기자단 감 따기 행사 참가(11월8일), 순직 소방관 유가족 초청 오찬(11월9일), 상지초등학교 신종플루백신접종현장 방문(11월11일)….

 

12월 들어 지난 11일에는 '나눔과 봉사' 실천자 가족 130명과 오찬을 하셨고 다음 날인 12일 밤 욕쟁이 할머니를 방문하신 것이지요. 외국 방문과 두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 기간을 빼면 대통령님의 현장탐방과 서민행보는 거른 날이 손꼽힐 정도입니다. 이대로 나가시면 지금까지 이 방면에서 부동의 1위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추월하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대통령의 '서민사랑'은 정책과 예산으로 나타나는 것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 청와대
이명박

저는 대통령님의 '극진한 서민 사랑'을 진정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점은 해소되어야 그것을 확신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질문하는 것이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대통령님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인 감세와 기업규제완화와 민영화는 서민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부자를 위한 것입니까? 이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듣는다면 그토록 열성인 대통령의 서민행보에도 불구하고 왜 서민들의 삶은 날로 어려워져가고 있는지 의문이 풀릴 것도 같습니다.

 

다음으로 새 정부 들어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각종 통계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지난해 0.31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요?

 

세계경제위기를 탓하시렵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6·25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했던 IMF 환란 직후인 1998년(0.314)보다 악화되었는데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요? 아시겠지만 지니계수는 통상 0.35 이상이면 소득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정도로서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수준입니다.

 

양극화 판단의 주요 지표인 중간 계층도 크게 준 이유는 또 무엇인지요? 1990년 74.2%에 이르던 중산층은 외환위기 뒤인 2000년 68.5%로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63.3%까지 추락했습니다. 결국 대통령님의 서민 경제 성적은 IMF를 맞이한 김영삼 전 대통령만도 못하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내년도 복지 예산을 올해 74조6천억원에 견줘 8.6% 늘어난 81조원으로 책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통령님도 복지예산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대통령과의 대화' 시간에 말했습니다. 이것 역시 진실입니까?

 

먼저 이명박 정부의 복지 예산 증가율 8.6%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의 증가율에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복지 예산을 2003년 41조7천억원에서 2008년 67조5천억원으로 늘려 재임 5년 동안 연평균 10.1%씩 증가시켰습니다.

 

그나마 내년 증액 분 6조4천억원도 순수한 증가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국민연금, 실업급여,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가입자 사업 등에서 대상자 확대나 급여 수준 증가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지예산에다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위한 2조1천억원을 포함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순수 복지예산 증가분은 고작 8천억밖에는 되지 않는 셈입니다. 그러기에 정부가 생색내는 복지예산은 기만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말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대통령님이 잘 아시잖습니까? 그것은 감세와 4대강 사업 때문이지요. 부자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가 13조원인데다 4대강 사업에 6조7천억원을 또 쏟아 붓습니다. 결국 20조원의 결손이 초래되는 판에 복지 예산이 역대 최고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용산과 철거 아파트로 가십시오

 

저는 대통령님의 서민행보가 부도덕한 위장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으렵니다. 다만 그것은 온화하게 말해서'센티멘털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센티멘털리즘은 현실적이든 잠재적이든 행동을 차단하는 위선적인 감정입니다.

 

그것은 본질을 애써 외면하면서 자기중심적으로 꾸미는 사고방식이지요. 운전기사는 바깥에서 덜덜 떨고 있는데 무대 위 주인공의 슬픈 처지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있다면 그는 센티멘털리스트의 한 전형입니다. 대통령님의 서민행보는 영락없이 바로 이 여자를 닮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님의 서민행보가 진정성을 보이기에 적합한 현장을 소개합니다. 한 곳은 용산참사 현장이고 다음으로는 동절기 철거가 진행 중인 옥인·용강아파트입니다. 두 곳 모두 서민의 생존권을 법 집행이 압살하는 장소로 대한민국 서민 문제의 본질이 도사리고 있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하지만 대통령님은 쉽사리 이 두 곳을 방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님의 '서민 사랑'은 본질을 애써 외면하면서 자기중심적으로 꾸미는 지극히 센티멘털한 수준밖에는 되지 않을 테니까요.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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