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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늦은 봄. 곱슬머리에 낡은 양복 차림을 한 스코틀랜드인이 김해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보였다. 정희영 당시 현대중공업 사장과 영업팀이 그를 맞았다. 그는 중동의 UASC(아랍해운)에서 기술 책임을 맡고 있는 윌리엄 존 덩컨(Duncan)이었다.

당시 한국 조선 산업은 걸음마 단계였다. 현대중공업은 도크도 없이 모래를 퍼내 놓고 그 속에서 배를 만드는 수준이었다. 이런 현대중공업에 UASC는 다목적선 15척을 발주하고, 기술책임자인 덩컨을 보냈다.

"덩컨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영어 억양에 유머가 넘치는 성격이었죠. 요정의 한옥을 좋아했고, 한국 음식과 술을 즐겼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이 노래를 할 때는 지휘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장단을 맞추기도 했는데, 한 회식 자리에서는 직원이 '아베 마리아'를 기가 막히게 부르자 수차례 앙코르를 외쳤고, 회식 참석자 모두에게 아베 마리아를 부르게 하는 엉뚱한 면도 있었습니다."

당시 영업담당 부장이었던 황성혁 황화상사 사장은 덩컨을 이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건조 현장에서는 사람이 180도 달라졌다. 워낙 고집스럽고 깐깐한 성격 탓에 현장 직원들에게 욕설은 일상이었고, 소리 높여 싸우는 일도 잦았다. 황 사장은 "그 앞에서 대충은 통하지 않았고, 1㎜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예찬론자이기도 했다. 황 사장은 "작업 현장에서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아귀 같았지만 밖에만 나오면 한국의 좋은 점만 찾으려는 한국 예찬자였다"고 말했다.

덩컨은 1978년 1월 현대중공업이 UASC 컨테이너선 4척을 수주하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당시 일감이 완전히 끊긴 현대중공업은 컨테이너선 수주에 사활을 걸었다. 일본의 IHI조선소와 마지막까지 수주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UASC 토드 사장은 일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토드 사장은 정희영 사장을 불러 일본에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끝까지 경쟁에 나섰다. 황 사장은 "피를 말리는 수주 경쟁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덩컨이 식당에서 종이 냅킨에 일본의 응찰 가격을 또박또박 적더니 냅킨을 슬쩍 떨어뜨리고는 가버리더라"고 했다. 그날 현대중공업은 최종 가격을 써 제출했고, 결국 수주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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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선박 명명식에 참석한 덩컨 - 1977년 6월 중동 해운회사 UASC의 기술책임자 윌리엄 존 덩컨(오른쪽)씨가 현대중공업에 발주한 선박의 명명식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덩컨은 1975년부터 5~6년간 울산과 쿠웨이트를 오가며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 선박 설계와 건조 과정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쳤다. 5~6년 동안 현대중공업이 30여척의 선박을 성공적으로 건조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80년 한국을 완전히 떠날 무렵에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저 친구(현대중공업)들 좀 봐. 영국에서 100년 걸려 할 일을 3~4년에 다 해치웠잖아. 이제 세계 조선은 저 친구들(현대중공업)에게 물어봐야 해"라고 종종 말했다고 한다. 덩컨의 예언이 실현되는 데는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에게 기술을 배운 현대중공업은 1983년 세계 1위 조선사로, 한국 조선은 1999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조선국가로 올라섰다.

정부는 올해 연간 무역 1조달러 돌파를 기념해 12일 한국 수출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 31명을 특별 포상한다. 그 중 덩컨에게 단 2명뿐인 최고 영예의 금탑산업훈장을 서훈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명은 백덕현 전
포스코 부사장이다.

정부가 덩컨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영국 경찰청과 접촉했지만 우리나라처럼 주민등록제도가 없고, 개인정보 보호가 엄격해 도움을 받지 못했다. 스코틀랜드인이 많이 사는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보기도 했다. 결국 2개월여 만에 영국에서 조선을 전공하는 한국인 교수를 통해 덩컨의 아내와 아들의 소재를 파악했다. 덩컨은 1981년 9월 위암으로 사망한 뒤였다. 훈장은 그의 아들 앤드루 덩컨이 방한해 대신 받는다.

"나는 너희에게 뭐지?" 1980년 10월 위암 투병 중이던 덩컨이 황 사장에게 물었다고 한다.
황 사장이 대답했다. "한국 조선공업 역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기억될 거야."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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