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8일 현대아산 직원 유씨의 장기 억류와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여기자들 석방을 비교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값은 ‘개 값’만도 못한 것인가"라며 전례없이 강도높은 질타를 가했다.
정진홍 "MB, 도대체 무슨 노력 다했다는 거냐"
정진홍 논설위원은 이날자 사설 <국민의 값>을 통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여기자 석방을 지적한 뒤 "반면에 서울에서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지척 거리의 개성에서 억류된 지 130일이 넘도록 석방 소식은커녕 이젠 어디 있는지조차 아리송할 만큼 ‘사실상 방치된’ 대한민국 국민도 있다"며 "정말 ‘국민의 값’이 다른 것일까"라고 물었다.
그는 "우리는 꼬박꼬박 세금을 낸다. 병역의 의무도 애써 치른다.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 법석할 때는 장롱 깊숙이 묻어 놨던 애들 돌 반지까지 꺼내서 바친다"며 "하지만 정작 유사시엔 보호받지 못한다. 130일이라면 100일하고도 한 달이 지난 것이다. 아무리 남북 관계가 유례없이 경색됐다 해도 이건 ‘방치’나 진배없다"며 정부의 무대책을 질타했다.
그는 더 나아가 "요즘은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잃어버려도 현상금 붙여서라도 어떡하든 되찾으려고 애쓴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값은 속된 말로 ‘개 값’만도 못한 것인가"라는 신랄한 질타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대통령을 정조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130일이 넘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 개성공단 근로자 유모씨와 최근 북한에 나포된 연안호 선원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며 전날 이 대통령 발언을 거론한 뒤, "하지만 도대체 무슨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말로 ‘석방 촉구’를 한 것이 다한 것인가"라고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그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을 향해서도 "한술 더 떠 이동관 대변인은 '수면 위에 무언가가 잘 안 보인다고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움직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그토록 수면 아래서 노력했다면 무슨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았겠나"라고 반문한 뒤, "이제 와 현대아산 사장을 등 떠밀다시피 다시 북으로 보내본들 무슨 뾰족한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한여름에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꼴’"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또 연안호 선장 박광선씨의 딸 박미령씨가 최근 인터넷상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연안호의 조기 귀환을 호소하는 글을 올린 대목을 지적하며 "그녀는 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제일의 의무로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오징어 잡이의 어려움’까지 호소하며 애원하는 것일까"라고 물은 뒤 "그녀가 보기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는 말로 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더 나아가 호소문 말미에 박미령씨가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님! 저희 연안호 선원 모두 조속한 귀향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눈에 보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주십사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라고 쓴 대목을 인용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시시콜콜, 구구절절하게 매달리며 토로하던 말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단 한 문장이었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노력’을 해달라는 서운함이 깔린 질책마저 담겨 있지 않은가"라며 거듭 이 대통령을 꾸짖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언제부턴가 ‘서민’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며 "하지만 정부 여당이 정말 챙겨야 하는 것은 ‘서민’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진짜 해야 할 것은 ‘친(親)서민’이 아니라 ‘친(親)국민’이어야 한다"는 꾸짖음으로 글을 끝맺었다.
<중앙일보> 사설 통해서도 "정부, 답답하고 참담"
<중앙일보>는 이날 정 논설위원의 칼럼 외에 별도 사설을 통해 북한에게 유씨와 연안호 조기귀환을 촉구하면서 정부에 대해서도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했지만 도무지 미덥지가 않다"며 "미국 정부는 한창 진행 중인 대북 제재 기조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정치적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빌 클린턴 전직 대통령을 파견해 문제를 풀어냈다.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만큼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결단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사설은 "남북 관계에 영향받지 않고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낼 방도와 능력이 우리 정부엔 없는 것인가"라고 물은 뒤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개탄했다.
클린턴 방북을 계기로 보수진영 내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경직된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모양새로,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 8.15 이전에 유씨 등의 석방을 장담했으니 좀더 지켜볼 일이나 어찌 됐든 이명박 대북정책은 중대 기로를 맞고 있는 양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