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귀환'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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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한국판 '식코'를 찍는다
진짜 이렇게 지 꼴리는 대로 하는 놈은 보다보다 처음 봤다..하하하
'부자감세 유보'에 제동 걸듯, 경제정책 '암장군' 우려도
'8.31 청와대 개편'의 핵은 '강만수 컴백'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64)을 경제특별보좌관에 임명했다. 경제특보란 자리는 이번에 신설된 청와대 상근직이다.
강 전 장관은 현재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국경위원장과 경제특보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권력의 척도인 대통령 접촉 빈도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특보는 수시로 대통령에게 경제사안에 대해 직보를 할 수 있고, 앞으로 주요회의에도 참석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왕(王)경제특보'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강 전 장관의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력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전망이다. 강 전 장관은 퇴임 후에도 막후에서 경제정책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쳐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 예로 그는 기획재정부와 한나라당 일각에서 검토중인 법인세-소득세 2차 인하 유보에 대해 격렬히 반대해 이를 막아온 것으로 알려진다. '자신의 작품'이 훼손 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는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장 임명에도 영향을 미쳐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불쾌해 하며, 해당기관장으로부터 한동안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관가에 나돌 정도다.
이에 한때 정가 일각에서는 그의 '대통령실장 기용설'까지 나돌다가 "소망교회 출신 대통령실장이라면 국민들이 가만 있겠나"는 등의 힐난에 직면하면서, 결국 대통령경제특보로 결론난 양상이다. 경제특보는 대통령실장과는 비교가 안되는 자리이나,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에 변함이 없음은 뚜렷이 입증된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자신이 기획재정부장관 재임시절 취한 정책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그는 지난 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물가가 치솟던) 작년 5월에 고환율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고들 했다. 하지만 경상수지 관리는 국가경영의 기본이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3~4년 사이에 우리 환율이 45% 절상이 됐는데, 일본이 14% 절상이 됐다"라며 "작년에도 이런 사정이 더 갔더라면 정말로 2600억불 보유액을 가지고도 외환위기를 맞을 뻔한 그런 상황이었다. 그걸 정상화시킨 거다"라며 자신이 제2 외환위기를 막은 '구원투수'였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객관적 당시 상황은 그의 원-달러 환율 절하 주장으로 환율이 폭등하고 그 결과 물가가 동반폭등하면서 비난이 빗발치자, 그는 정책을 180도 바꿔 환율 폭등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쏟아붓다가 그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나라경제를 제2 외환위기 직전까지 몰아간 것이었다. 당시 위기는 한국은행이 미 연준으로부터 300억달러 통화스왑을 체결하면서 간신히 진화될 수 있었다.
'강만수 컴백'이 단순히 1등공신에 대한 대통령의 의례적 예우 차원이라면 별 문제가 안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컴백이 한나라당에서조차 유보를 주장하기 시작한 부자감세나 4대강 사업 축소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 표시이며, 이를 강행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관가 일각에서 강 전 장관이 막후에서 경제정책을 쥐락펴락할 '암장군(暗將軍)'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8.31 청와대 개편'의 핵은 '강만수 컴백'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64)을 경제특별보좌관에 임명했다. 경제특보란 자리는 이번에 신설된 청와대 상근직이다.
강 전 장관은 현재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국경위원장과 경제특보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권력의 척도인 대통령 접촉 빈도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특보는 수시로 대통령에게 경제사안에 대해 직보를 할 수 있고, 앞으로 주요회의에도 참석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왕(王)경제특보'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강 전 장관의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력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전망이다. 강 전 장관은 퇴임 후에도 막후에서 경제정책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쳐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 예로 그는 기획재정부와 한나라당 일각에서 검토중인 법인세-소득세 2차 인하 유보에 대해 격렬히 반대해 이를 막아온 것으로 알려진다. '자신의 작품'이 훼손 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는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장 임명에도 영향을 미쳐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불쾌해 하며, 해당기관장으로부터 한동안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관가에 나돌 정도다.
이에 한때 정가 일각에서는 그의 '대통령실장 기용설'까지 나돌다가 "소망교회 출신 대통령실장이라면 국민들이 가만 있겠나"는 등의 힐난에 직면하면서, 결국 대통령경제특보로 결론난 양상이다. 경제특보는 대통령실장과는 비교가 안되는 자리이나,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에 변함이 없음은 뚜렷이 입증된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자신이 기획재정부장관 재임시절 취한 정책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그는 지난 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물가가 치솟던) 작년 5월에 고환율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고들 했다. 하지만 경상수지 관리는 국가경영의 기본이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3~4년 사이에 우리 환율이 45% 절상이 됐는데, 일본이 14% 절상이 됐다"라며 "작년에도 이런 사정이 더 갔더라면 정말로 2600억불 보유액을 가지고도 외환위기를 맞을 뻔한 그런 상황이었다. 그걸 정상화시킨 거다"라며 자신이 제2 외환위기를 막은 '구원투수'였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객관적 당시 상황은 그의 원-달러 환율 절하 주장으로 환율이 폭등하고 그 결과 물가가 동반폭등하면서 비난이 빗발치자, 그는 정책을 180도 바꿔 환율 폭등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쏟아붓다가 그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나라경제를 제2 외환위기 직전까지 몰아간 것이었다. 당시 위기는 한국은행이 미 연준으로부터 300억달러 통화스왑을 체결하면서 간신히 진화될 수 있었다.
'강만수 컴백'이 단순히 1등공신에 대한 대통령의 의례적 예우 차원이라면 별 문제가 안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컴백이 한나라당에서조차 유보를 주장하기 시작한 부자감세나 4대강 사업 축소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 표시이며, 이를 강행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관가 일각에서 강 전 장관이 막후에서 경제정책을 쥐락펴락할 '암장군(暗將軍)'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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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한국판 '식코'를 찍는다
진짜 이렇게 지 꼴리는 대로 하는 놈은 보다보다 처음 봤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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