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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9·3 내각의 ‘위장전입’과 ‘탈세’… 결격사유 불구 임명 감행하나
이처럼 우리의 인사청문회 제도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해 사회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어떤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9·3 개각에 대한 청문회를 보면서 도덕적 기준이 허물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위장전입’, ‘탈세’, ‘논문 표절’ 등으로 장관 후보자들이 도덕적·법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2000년 이후 만들어진 청문회의 기준이 어디로 갔느냐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늘 나오는 얘기이지만 ‘하나 마나한 청문회’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자기 식구 감싸기’도 도를 넘은 지 오래됐다. ‘위장전입’의혹 민일영 대법관 임명 9월14일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를 시작으로 9월18일 현재 김태영 국방부장관 후보자와 백희영 여성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어졌다. 9월14일 열린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위장전입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 후보자 가족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1988년을 전후해 자주 주소를 옮긴 것이 아파트 전매 제한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이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1988년 8월 민 후보자의 배우자가 사원아파트로 전입신고 했지만 실제 거주를 하지 않아 1990년 7월 무단전출로 직권말소됐고, 두 달 뒤 가족 모두가 살지도 않은 사원아파트로 재전입한 것은 또 다른 위장전입이다”고 주장했다. 민 후보자는 친박연대 노철래 의원이 청문회에서 “법 위반인 줄 알면서 사원주택이 욕심나서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 후보자는 9월17일 민주당의 반대 속에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돼 임기 6년의 대법관에 임명됐다. 9월15일 열린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탈세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 최철국 의원은 “최 후보자의 부인이 2005년에 매각한 대구의 부동산 실매매 가격을 지식경제부와 최철국의원실에 문의했더니 ‘계약서를 분실했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다가 나중에 17억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뒤 30여 억원, 나중에는 40여 억원이라고 했다”면서 재산신고 누락 의혹과 탈세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최 후보자는 “재산신고 기준이 공시지가에서 실거래로 바뀌어서 그랬다”며 “부부가 동거 목적으로 아파트를 산 것은 증여가 아니다”면서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아파트 다운계약서 및 부인과 자녀에 대한 재산 증여 의혹이 제기됐다.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은 “주 후보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34평형을 1억3500만원에 구입했다고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당시 시가는 6억5000만원이었다. 실제 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의 ‘다운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주 후보자의 배우자가 전업주부인 데도 재산이 11억원이나 된다는 점과 자녀들의 예금이 수천만원이나 되는 사실 때문에 증여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이에 주 후보자는 “중개사에 맡겼다”, “과표보다 높게 신고해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었다” 등의 해명을 했다. 배우자의 재산 11억원에 대해서는 “집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이렇게 많이 해 놓았는지 몰랐다”고 답변했다. 자녀의 예금은 “용돈과 아르바이트비를 모은 것”이라고 항변했다. 임태희 노동부장관 ‘장인특혜’ 의혹
9월16일 열릴 계획이었던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는 추미애 위원장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갈등으로 미뤄졌다. 그러나 임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계속 나오고 있다. 위장전입 의혹과 더불어 5공화국 당시 신군부의 실세였던 장인 덕택에 온갖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은 “임 내정자는 군복무 기간에 서울대 대학원 과정을 다닌 것으로 확인돼 복무 태만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그는 보안사령관으로부터 두 차례 공로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재무부 재직 시에는 행정사무관으로 실질근무시간이 2년에 불과한 데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는 임 후보자의 장인이자 신군부의 권력실세였던 권익현 전 의원의 비호에 따른 특혜”라고 주장했다. 9월17일에는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열렸다. 이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역시 ‘위장전입’과 ‘다운 계약서’, ‘차명 부동산 투기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의 부인이 ‘매매예약 가등기’를 이용한 것이 차명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장모가 장인이 하던 해운회사를 팔아 그 돈을 굴리며 살아왔다. 장모가 동생이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가등기를 원했다”면서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거듭 사과한다”고 몸을 낮추기도 했다. 9월18일에는 김태영 국방부장관 후보자와 백희영 여성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동시에 열렸다. 백 후보자 청문회장에는 여성단체 회원들이 후보자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손팻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성 관련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영양학자가 여성부장관에 임명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백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도 부동산 투기 의혹, 장남의 병역 관련 의혹 등이 불거졌다. 유일하게 의혹이 불거지지 않은 사람은 김태영 국방부장관 후보자다. 김 후보자가 신고한 재산은 7억원 정도. 청문회에서 나온 흔한 위장전입이나 탈세의혹이 전혀 불거지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와 국방개혁 등에 대한 추궁만 나왔다. 민주당 문희상 의원도 “잘된 인사”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학력 의혹과 배우자 수입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정 후보자가 과연 청문회에서 나올 각종 의혹에 어떤 해명을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9월14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는 공통적으로 ‘탈세’, ‘위장전입’ 등 불법적인 행동이 지적됐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더라도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거나 정부가 임명을 철회한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아도 꼼짝 못할 사실이 드러날 경우엔 “몰랐다”고 답변하면 그만인 청문회가 된 것이다. 한나라당 감싸주기 눈총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10여 년 동안 공직자 윤리와 자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이번 청문회를 통해 깨지고 있다는 답답함을 느꼈다”면서 “비록 명문화돼 있지는 않지만 위장전입과 탈세 등 국민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의무 등은 우리 사회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법질서를 책임져야 하는 수장과 사법부의 최고재판관이 실정법을 어긴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자진사퇴나 임명 철회를 하지 않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용납할 수 있나”면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결격 사유를 가지고 직무에 들어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도 “지난해 촛불집회 주동자들은 최고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위장전입은 징역 3년 이하로 큰 범죄에 속하는 것이다”면서 “아무리 땅과 아파트를 사랑한다고 해도 자신들이 만든 법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황당했을 것이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의 자기 식구 감싸기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최경환 후보자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은 “최 후보자와 17대 국회에서 같이 활동했는데 능력이나 자질 검증이 불필요한 자질과 인품을 갖춘 분”이라면서 “최근 일부 언론에서 묻지마식 허위폭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는데 청문회는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지 묻지마식 허위 인신 공격의 장이어선 안된다”고 최 후보자를 감쌌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은 최 후보자의 아파트 투기 의혹에 대해 “정부에서는 좀 부동산을 사라고 권장하던 시절이었다”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청문회 무용론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청문회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영 사무처장은 “청문회 무용론이 아니라 임명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을 하고 결격 사유가 있으면 임명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할 때다”면서 “차라리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나 탈세 비리가 밝혀진다면 임명 자체가 자동으로 철회되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9년 전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으로 총리직에서 낙마한 민주당 장상 최고위원은 9월18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나라당의 2중 잣대를 비판했다. 장 최고위원은 “청문회는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그 문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한나라당이 결자해지의 용기를 발휘해 사과하고 도덕성 기준에 대해 명백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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