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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 질문 외 취업·연애상담…로또번호 추천부터 수학문제 해결 요청도
ㆍ“모든 질문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


한마디도 허투루 대답하는 법이 없다. 황당한 질문에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혹자는 모 포털사이트의 ‘지식인’이나 모 방송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보다 알차다고 평가한다. 웃고 싶을 때도 좋다. 뭔가 궁금해서 견디기 힘들 때나 누구에겐가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도 좋다. 사람들은 해충방제 기업 ‘세스코’의 게시판(http://www.cesco.co.kr/Qna/List.aspx)을 찾는다.

세스코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 중 하나.

처음부터 화려한 말발을 자랑했던 것은 아니다. 세스코의 게시판 역사는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홈페이지에 남아있는 Q&A 첫 질문에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라는 빤한 답변이 달려있다. 이후 해충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곁들였지만 특이한 답변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를 잡았는데 어머니가 풍뎅이라고 했다”는 질문에 “어머님께 말씀하십시오. 바퀴를 무시하지 말라고. 바퀴는 날수도 있고 풍뎅이보다 클 수도 있다고” 답하는 식이다.

세스코 게시판의 매력은 답변의 성실함이다. 아무리 질문이 엉뚱해도 일일이 답을 단다.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리는 게 아니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웃음도 있고 정보도 있다.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 쿵짝을 맞춰주는 것도 기본이다.

질문 - 나는 바퀴벌레를 먹는다. 아주 아주 맛있다. 그 씹히는 맛이 달콤하고 쓴 바퀴벌레!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답변 - 바퀴, 모기 등의 해충은 고단백질로 영양가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고 있는 병원균은 수십 종으로서 사전처리를 잘 하시고 드셔야 될 것입니다.


질문 - 세스코 난 바퀴벌레 대왕이다. 당신이 우리 부하들을 거의 다 죽이고 있다던데 나와 한판 붙자! 이 대답을 듣는즉시 우리 바퀴벌레 행성인 딴따라 행성으로 와라!

답변 - 바퀴벌레 대왕님 저희 세스코맨이 아침에 출동했었는데, 금방 연락이 왔는데요. 니나노 행성으로 잘못 찾아 갔다가 지금 울랄라 행성을 지나 딴따라 행성으로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이런 식이다. 자칫 장난스러워 보이는 질문에도 위트있게 한방 날린다. 질문에 오탈자가 있어도 문제없다. ‘불가사의’를 ‘불가사리’로 잘못 썼다면 있는 그대로 답을 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웃음이 터진다.

질문 - 세계 7대 아니면 8대 불가사리는 뭘 말하는 거죠?

답변 - 불가사리는 별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영어로는 starfish라고 불립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700종. 한국에는 약 200종이 알려져 있는데, 제가 곤충 쪽 전공이다 보니 불가사리에 대한 정보가 없어 세계에서 제일 큰 불가사리 1위부터 7~8위까지 알 수 없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100% 성실답변’으로 유명세를 타다보니, 세스코 게시판에는 ‘수학문제를 풀어 달라’ ‘세상에서 제일 긴 영단어는 뭔가요’라는 요청부터 ‘우표 차액으로 인한 불편함’ ‘컴퓨터 고장’ 등을 호소하는 하소연까지 별의별 문의가 쏟아진다. 심지어 로또 당첨번호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제가 아는 번호는 이것뿐”이라며 “한번 조합을 해보세요. 1588-1119(세스코 대표번호)”라고 맞받아친다.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학업과 취업,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 게시판이 꾸준히 사랑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질문 - 저희 집에 벌레가 한 마리 사는데 ‘삼수벌레’라고. 대학 한번 가보겠다고 삼수째인데 이번에도 만족할만한 결과는 못 나올 것 같네요. 이것도 잡아주나요.

답변 - 저장식품해충 중 화랑곡나방이 있습니다. 요 녀석은 환경조건(먹이, 온도 등)에 따라 유충기간을 2주에서 300일까지 조절이 가능합니다.(중략) 지금은 남들보다 조금 늦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동일하거나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9일 현재 세스코 게시판에 쌓인 게시물은 무려 1만6430여건. 재미있는 Q&A는 한데 묶여 각종 커뮤니티의 유머게시판을 장식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답변에 ‘상식도 풍부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개그계로 진출하라’ ‘중독성이 있다’ 등 찬사를 내놓고 있다. 온라인에는 팬클럽까지 개설돼있다. 다른 업계에서도 세스코의 게시판를 벤치마킹한다. ‘유머경영’의 사례로 자주 소개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스코의 게시판은 어떻게 운영될까. 현재는 각 부서별 담당자들이 답변을 하고 있다. 다만 해충의 특성과 서비스 견적에 대한 내용이 많다보니 주로 기술연구소 연구원들과 고객센터에서 담당하고 있다. 세스코 측은 “마케팅 차원에서 일부러 관리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며 “다만 모든 질문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하자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기술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고객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Q&A가 유머보다는 세스코의 친절과 성실함을 보여드릴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답하겠다”고 말했다.

<경향닷컴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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