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히트했던 범죄영화 '더티 해리'는 형사가 범인을 잡은 후 자기가 직접 방아쇠를 당긴다. 법의 파수꾼이 스스로 법을 깨는 것이다. 당시엔 깡패 나라 미국 영화답다고 비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훗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히피시대, 인권시대를 맞으며 모두들 범죄자의 인권에 대해 얘기했다. 멋진 말이지. 그렇다면 대체 피해자의 인권이란 건 누가 보호해줄 건가." 이 말은 우리가 '범죄자의 인권'이란 세련되고 허망한 주장에 사로잡혀 어떻게 '책임'을 망각해 왔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 추석 연휴 중 뜨겁고도 슬픈 화제는 단연 '나영이 사건'이 될 것이다. 1년 전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소녀는 영구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피의자인 50대 조모는 12년형을 받았다.
방송을 통해 이 사건이 알려지자 온 국민이 흥분했다. 네티즌들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었는데 술 먹었다는 이유로 감형해줬다"며 법원을 비난하고, 다시 극형에 처하라는 인터넷 청원을 올리고 있다. 1일부터는 조모의 가짜 사진과 주소, 그의 전과 기록을 입수해 인터넷에 공개했다. 왜 애꿎은 피해자 이름을 들먹이며 '나영이 사건'이라 부르느냐, 범인 이름 공개해 '조○○사건'으로 부르자며 분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범인의 형량을 더 높이는 일은 헌법의 불이익변경 금지의 원칙,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불가능하다. "'인간 아닌 인간'의 인권을 왜 보호해줘야 하는가"라고 분노하지만 법이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분노할 문제에 분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온 국민이 '더티 해리'가 된다고 달라진 것은 뭐가 있을까. 3시간에 한 번꼴로 일어난다는 미성년자 성폭력에 대한 분노와 충격은 이미 예슬이 사건 때도, 그리고 앞선 수많은 사건에서도 느꼈던 일이다. 그러나 아동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하는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분노는 미디어가 그 사건을 다룰 때만 불처럼 일어났다가 사그라져요. 정치인들도 '성폭력'이란 이슈 다루는 걸 부담스러워 해요."
정치권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이고 '영구 격리' 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아동 성폭력사범 5명 중 2명꼴로 불기소 처분된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 주성영 의원이 법무부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 1월~올해 7월간 아동 성폭력사범 5948명 중 42%인 2501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극심한 충격을 받은 어린이의 진술은 일관성이 떨어지는 데다 현장 증거 등도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동에게 2차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기소율을 높이고, 제대로 죗값을 받도록 법을 정비하는 일은 시급하다. 술 먹고 운전을 하면 가중 처벌되지만, 술 먹고 강간하면 감형이 되는 우스꽝스러운 법체계도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얼마나 보듬느냐도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 많은 이들이 나영이측에 '돕겠다'고 했으나 아이 어머니는 "관심을 끊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사건 직후 나영이네는 또 한 번 힘겨운 일을 당했다.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실과 떨어져 살던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이유로 저소득 지원금을 못 받는 사태가 잠시 벌어졌다. 시측은 "주변의 민원 제기 등으로 중단됐던 지원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끔찍한 주변 사람들, 기계적인 공무원의 일 처리, 외부의 관심 모두가 나영이 엄마에겐 다 소름끼치는 일이었을 것이다.
범인에게 돌을 던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줄지, 다시 상처를 나지 않게 하는 법은 무언지를 연구하는 덴 차분한 이성과 사랑,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진짜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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