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바로 사람 마음이다..
그리고, 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이것저것 갖은 이유도 만들어 붙여 정당화시킬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때문에 하고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뒀다간 십중팔구는 게으름 뱅이에 버릇없는 놈으로 전락하기 쉽상이니 생각있는 부모라면 이렇게까지 방치하진 않는다..

이는 선생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학교 선생들이 지식을 전수하는 것 외에 애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의욕도 함께 있었었다.
선생마다 가치판단이 조금씩 다르긴 했고 또 썩어빠진 선생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좋은 선생이든 나쁜 선생이든 대부분의 선생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란 '학생을 지도하는 건 선생으로써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 이라는 것이었고, 집에선 부모가 자식에게 혼을 내듯 학교에선 선생이 학생에게 혼을 내며 지도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었다..
즉,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채찍을 드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방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기를 죽이지 않겠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자식과 관계가 나빠지는 게 두려워 비위를 맞춰주다보니 방치하게 되었다.
즉, 잘못을 해도 혼을 내지 않고, 삐뚤게 자라도 바로 잡아줄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집에서 부모들이 부모로써의 역활에 충실하지 않게되니 학교에서도 선생들이 선생들의 역활에 충실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선생들은 충실하고 싶어했지만, 집에서 오냐오냐 커온 학생들이 그걸 참지 못했다.
'부모한테도 한번도 맞은 적 없었는데, 선생 니가 뭔데 날 때려..?' 라고 대드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간혹 이 참담한 사태를 납득하지 못하고 교육자의 입장에서 매를 들겠다고 일어섰던 소수의 선생들은 죄다 시범케이스로 고소당하거나 학부모와 학생들의 집중공격으로 나가떨어졌고, 이에 놀란 다른 선생들은 이제 시대가 변했슴을 인식하며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훈육과 지도와 인도자의 역활을 담당했던 선생님이 지식전수와 문제풀이만을 위한 강사로 전락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걸 바로 잡지 못했고, 또 바로 잡을려고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선생님의 권위가 시궁창에 쳐박힌 것이다.

하기사 누가 누굴 원망할 수 있겠는가? 이게 다 학생을 감정해소의 대상으로 보고, 돈벌이로만 이용해 왔었던 썩어빠진 선생들때문에 시작됐던 문제인데..
애초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던 만큼 썩어빠진 선생들도 많았던 것이 이 모든사태의 시발점이었다.
이 썩어빠진 선생들이 득세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 탓에 썩은 귤이 다른 과일을 죄다 썩게 하듯 좋은 선생님들은 점점 줄고, 나쁜 선생들은 점점 늘어갔었던 것이다.
옆 선생이 돈봉투를 받는데 자신만 안받으면 왠지 손해보는 것 같이 느껴지고, 옆에 선생이 학생들을 폭력과 공포로 찍소리 못하도록 다스리는데, 자신은 따뜻한 말과 교육으로 지도를 하니 왠지 자신의 학생들이 선생을 만만히 보는 것 같이 느껴졌겠지..
옆에 선생은 썩어빠진 개념과 행동으로 일관하는데도 천벌이 내리긴 커녕 점점 더 쉽게 선생질을 하는데, 열과 성의를 다하며 학생들을 지도했던 자신은 해가 가면 갈수록 더 힘들고, 어렵고,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게 너무 비교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되긴 어려워도 썩은 선생이 되긴 너무나도 쉬우니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한 많은 선생님들이 서서히 타락해 갔던 것이 최근 한해두해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선 썩어빠진 선생이 점점 늘고, 집에선 썩어빠진 부모와 아이들이 점점 늘었으니, 이게 언젠가는 학교 교실에서 한번 제대로 맞붙게 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정된 사태나 다름없었다.
결과는 썩어빠진 선생의 패배였고, 덩달아 이런 사태와는 무관하게 이전부터 계속 아이들에게 열과 성의를 다하던 좋은 선생님들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힘들었던 선생질이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안그래도 통제하기 힘들었던 애들은 더 날뛰기 시작했다..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데 말은 할 수가 없고, 그래도 참다참다 못참고 함부로 날뛰는 아이에게 훈육을 시도했던 용기있는 선생 몇몇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영상이다 기사다 뭐다 해서 곧바로 축출되고 사회에서 매장당했다..
이젠 진짜 학생들 눈치만 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일이 이쯤되자 선생들의 인식도 슬슬 변하기 시작했다.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인도하던 선생님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교과부에서 내려주는 커리큘럼만 소화하면 일이 끝나는 회사원같은 개념으로 바꼈다..
어느 누구도 그 이상의 책임도 의무도 부담도 지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상 져봤자 돌아오는 건 상처뿐인 영광도 아닌 그냥 상처뿐이었을테니까..

이처럼 집에선 부모들이 방치하고, 학교에선 선생들이 방치하니 애들은 갈수록 미쳐돌아가기 시작했다.
근육은 단련할수록 강해지고, 쇠도 때릴수록 강해지듯이 인내력, 참을성, 자제력 또한 외부의 충격을 받고 막아낼수록 길러지는 것들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방치하니 외부의 충격이라곤 받을 데가 없다. 참을 일도 없고, 인내할 일도 없으며, 자신을 자제할 필요도 없다.
겉은 그럴 듯한데, 속은 그야말로 유리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온실 속의 화초인 것이다.
약간의 충격에도 깨어지고, 약간의 비바람에도 감당못하는 너무나도 연약한 면역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주 조금의 시련이나 악의에도 이를 참지 않(못하)고 곧바로 터져나오는 폭력성의 원인은 바로 너무 민감한 피부에 생기는 피부 트러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며, 폭력성의 정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연약해져 버린 자신의 보호막때문에 겁먹은 개의 으르릉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또, 이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참을 일도 없고, 참을 필요도 없다..
학교는 대학입시공부를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하며, 대학입시 준비야 어차피 책이 있으니 선생따윈 없어도 상관없다.
하다하다 정 안되면 주위에 널린 학원에 가서 보충하는 게 더 빠르며, 효과도 좋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차피 그 돈은 내가 내는 게 아니라 부모가 대신 내어주는 거니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다, 학교와 다르게 학원은 딱히 강제하는 것이 없고, 분위기까지 좋으니 더더욱 학교에 가서 통제 받으며, 꾹꾹 참아야 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여기에 확 불을 붙여 버린 것이 '여선생' 이다..
도대체가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안 그래도 만만한 선생들이었는데, 아주 쐐기를 박아버렸다..

도대체 어쩌다가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와버렸을까?
우리나라와 민족의 무엇보다 소중한 보배이자 잠재역량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후손, 후대라고 일컫는 아이들이란 존재인데, 이 아이들을 이렇게나 방치하여 썩게 만드는 주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부모의 잘못일까? 아니면, 학교 선생들..? 그것도 아니면 이유야 어쨋든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개념없는 학생들..?

나는 이 모든 것의 근본원인은 다름아닌 '부모' 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선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일란다...

日 주부 92.8% "모르는 사람이 아이 야단쳐도 된다"
갈취·왕따 나무라는 선생님에 "왜 간섭하냐" 주먹질까지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7/h2010071302322221950.htm
학부모가 교사 뺨 때리고 ‘매값’으로 수표 던져



p.s
아..참고로 이 내용은 중,고등학교에 관한 이야기다..
힘이 약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초등학교나 유치원 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이니 고려치 말 것..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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