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hogabje.com/
한국의 운명이 다시 한번 頃刻(경각)에 달렸다. 李承晩 대통령은 이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 국군의 作戰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긴 상태에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 대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트루먼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李承晩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할 여지가 아주 좁았다.

6.25 직후보다 더 암담한
상황에서 열린 1950년 11월29일 국무회의에서 李 대통령은 이상한 이야기를 하였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쓴 日記(기파랑 출판 '6.25와 이승만'에서 인용)에 따르면 李 대통령은 "중공군이 지금 침략한 것은 하나님이 한국을 구하려는 방법인지 모른다"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만일 소련(주-李대통령은 북한군을 소련의 괴뢰라고 보았기에 이런 표현을 쓴 듯하다)이 한국 국경너머로 후퇴하고, 국제연합에서 이제는 특권이나 이권들을 흥정하게 되었더라면, 국제연합과
미국사람들은 소련 연방과의 협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무슨 일이라도 했을 것이며 군사상의 승리만이 아니라 외교상의 승리라고 만족하였을 것입니다. 국제연합군 부대와 장비들은 조만간 철수되었을 것이며, 한국군은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는 너무나 긴 국경선을 점령하도록 남겨놓았을 것입니다. 미국 국민의 분노가 가라앉고 공산당의 평화선전 공세로 국민들이 잠잠해진 가운데 중공군의 준비가 끝났다면, 이들의 압도적인 병력과 장비, 현대적인 항공지원, 그리고 한국의 全 해안선을 둘러싼 해군작전 등을 저지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현재 해안선을 봉쇄하고 있는 함선들을 철수시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한국 지배가 소련의 계획 안에 들어 있고, 북한군의 실패가 그들 계획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한국에 중공군을 끌어들인 것은, 국제연합군이 철수한 뒤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보다 우리에게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가 닥칠지 모르나 민주주의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무초 미국대사로부터 '세계정세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해한 사람'이란 평을 들은 李 대통령의 이 분석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고 北進통일이 되었더라면 곧 바로 평화가 찾아왔을 것인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유엔군의 主力이 철수하면 산악지방에 숨어 있던 공산게릴라들이 월남식으로 준동하였을 것이다. 만주로 쫓겨난 김일성 일당도 중공의 비호 아래 병력을 투입하였을 것이다. 이런 식의 간접침략에 대하여 미국이 또 다시 파병하는 것은 국민 여론상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월남처럼 赤化(적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李承晩 대통령의 예언대로 중공군 개입은 재앙으로 위장한 축복이었다. 중공군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한국군은 증강되었고, 韓美동맹의 필요성을 두 나라 지도부가 절감하게 되었다. 중공군 개입이 선물한 것이 韓美동맹이었다.

월남은 17도선으로 일단 分斷(분단)되었다가 북쪽의 월맹이 정규군을 내려 보내 남쪽의 게릴라를 돕는 월남전을 시작, 결국 공산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北進통일을 하였더라도 중공과 김일성 세력이 만주에서 공산게릴라를 들여보내고, 남한 내부의 공산세력을 조종하였더라면 한국의 힘만으로써는 대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중공군 개입이 없었다면 한국은 赤化되었다. 중공군 개입이 오늘의 한국 번영을 만들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공군 개입의 不法性과 침략성을 용서할 순 없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 작용과 反작용 사이에서 많은 기적과 逆轉(역전)의 드라마를 만들면서 흘러간다. 재앙으로 위장한 축복이 있지만, '축복으로 위장한 재앙'도 있다. G20 頂上회의 같은 것이 '축복으로 위장한 재앙'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사람들이 겸손해져야 한다. 특히 역사 앞에서.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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