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숙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닌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올해 3월부터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박아무개(70)씨는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렵다고 했다. 지난 6월부터 한시적으로 받고 있는 생계지원이 11월이면 끊기기 때문이다. 현재 박씨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받고 있는 돈은 기초노령연금 8만8000원, 장애수당 3만원에 한시적 생계지원 12만원 등 한 달에 23만8000원이 전부다. 쪽방 월세로 15만원을 내고 나면 8만8000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나는 안 된다고 합니다.” 박씨는 소득과 재산이 없지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아들 하나에 딸이 다섯인데, 아들은 간판가게에 불이 나 돌볼 처지가 안 되고, 딸들은 오래전에 시집을 가서 연락조차 하지 않아요.” 박씨는 “오죽하면 노숙을 했겠냐”며 긴 한숨을 쉬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 7일로 꼭 10년이 됐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빈곤층은 꾸준히 늘고 있다. 사회 양극화로 빈곤층은 계속 증가하는데, 까다로운 조건과 예산 부족 등으로 혜택을 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보건복지가족부가 집계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 자료를 보면, 제도가 시행된 2000년 155만명이던 수급자 수가 2001년 142만명, 2006년 153만명, 2007년 155만명, 지난해 153만명으로 10년 동안 130만~150만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소득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지만 재산·부양의무자 기준이 맞지 않아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은 2006년 329만5000명, 2007년 368만3000명, 2008년 401만1000명으로 급속히 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은 2000년 10.5%에서 지난해 14.3%로 8년 동안 3.8%포인트나 높아졌다. 상대빈곤율이란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수준별로 나란히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의 50%를 밑도는 가구 비율을 뜻한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은 “빈곤층은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수급자 선정 조건은 여전히 까다로운데다 정부가 수급자 수와 예산을 적게 잡아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지난해 ‘성과관리 시행계획’ 보고서에서 “상대빈곤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나 기초생활 수급률은 약 3.2%에 불과해 사회안전망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실과 동떨어진 낮은 생계비 지원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혼자서 7살·4살·3살 아이와 태어난 지 100일 된 갓난아기 등 넷을 키우고 있는 수급자 유아무개(36)씨는 구청에서 한 달에 130만원가량을 받는다. 유씨는 “월세 50만원을 내고 아이 기저귀와 분유, 쌀을 사고 나면 돈이 너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최저생계비가 지난 10년 동안 평균 4.5%로 더디게 오르면서 기초생활 수급자들과 비수급자들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1999년 도시노동자 4인가구 평균소득의 38.2% 수준이던 최저생계비는 2007년 30.6%까지 떨어졌다.
이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데도 정부가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자, 시민단체들과 정치권이 나섰다. 참여연대는 “사각지대 빈곤층 가운데 200만명을 기초생활보장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며 “수급자 선정 조건에서 부양의무자 규정을 빼고 최저생계비를 도시노동자 가구 중위소득의 40% 이상으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청원안을 국회에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실과 빈곤사회연대 등 9개 단체가 꾸린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 공동행동’도 이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의 권리찾기 선언대회를 연 데 이어, 곧 수급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제도 개선에 나설 예정이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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