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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위원장 임명에 짐싸고 싶었지만...
떠나온 인권위, 많은 우려와 걱정이 있다"
  
김칠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 권박효원
 김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 소식을 듣고, 사표 내고 인권진영에 뜻을 같이하려고 짐도 다 쌌다. 하지만 주변에서 '현 위원장이 연착륙하도록 최대한 역할해야 한다'고 설득해서 짐을 풀었다. 결과적으로 성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1일 자리에서 물러난 김칠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인권위에 대해 "걱정", "우려"라는 표현을 되풀이했다. 현병철 신임 인권위원장과 후임 사무총장이 인권 현안에 대해 대응하고 인권위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는 조직을 떠난 지금도 계속 마음이 무겁다.

 

김 전 사무총장은 그동안 매일 현 위원장과 독대하며 인권 현안에 대해 논의해왔다. '백지' 위원장을 보는 그의 심경은 희망이 반, 걱정이 반이다. 최근 보수진영의 비난 이후 현 위원장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안 생길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인권위의 최대 현안은 현병철호(號)의 향방을 좌우할 후임 사무총장. 아직 인권위 사무총장은 공석이고, 입길에 오르는 후보도 딱히 없다. 김 전 사무총장은 후임자에 대해서도 근심이 많다. "사무처 인적 청산을 하지 말고 인권위 3개년 행동계획에 따른 과제를 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임기 2년 7개월은 격동의 세월이었다. 정권이 바뀐 직후부터 인권위 독립성은 끊임없이 흔들렸고, 촛불집회에 대한 인권침해 결정 이후 조직 축소가 본격화됐다. 논란 당시 "정부 의도에 대해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던 김 전 사무총장은 "보수진영과 새 정부는 인권위를 축소하려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인권위 '인적 청산'을 위해 조직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다산에 돌아갈 계획이다. 오는 18일 이사회 참석을 시작으로 인권재단 활동도 재가동한다. 인권위 사무총장 이전에 '거리의 변호사'였던 그는 "다시 길에서 만나볼 수 있냐"는 질문에 "필요한 곳은 어디든 간다"고 답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이 인터뷰는 9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다산 사무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권위 바로 앞 촛불집회 인권침해... 초기 조사 다소 늦었다"

 

  
지난 7월 17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취임을 반대하는 인권단체 회원들에게 '자진사퇴 요구 서한'을 전달받은 김칠준 전 사무총장.
ⓒ 권우성
김칠준

- 그동안 뭘 하고 지냈나?

"혼자 여행 다녔다. 지난주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 다사다난한 2년 7개월을 보냈다. 그동안 활동을 자평한다면?

"평가는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주력했던 업무의 핵심은 네 가지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완결된 것 없이 끝났다. 후임 위원장과 사무총장의 숙제인데, 많은 우려와 걱정이 있다.

 

첫 번째는 사무처 조직 관리다. 그동안 위원회와 사무처의 소통은 잘됐다. 상임위 회의와 간담회를 통해 매주 월·목 인권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또 사무처 내에서 출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조화롭게 일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민간단체 출신과 일반 공무원 출신 직원들이 서로 장점을 배웠고, 다양한 동료들과 일할 수 있어서 저도 행복했다. 후임 사무총장도 편견 없이 다 소중한 동료로 바라봐야 한다. 새 지도부가 사무처 '인적 청산'하지 말라는 뜻이다.

 

두 번째가 인권 현안을 모니터링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때론 실기했던 사안도 있지만, 우리 조사관들이 수사기관보다도 빨리 예비조사를 해왔다. 세 번째는 비전과 전략 관리다. 2009년부터 새 3개년 행동계획이 만들어졌는데, 아쉬운 대로 제가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다음 사무총장에게 이 계획이 '굴레'가 되어 이에 따른 전략과제들을 늘 챙기길 바란다.

 

네 번째가 독립성 문제인데, 저도 최선을 다했다. 대선 끝난 직후부터 TF를 구성해 우리의 논거부터 미리 준비했다. 그러나 지도부가 바뀌면 얼마나 강한 의지로 독립성이 유지될지…. 새로운 과제다."

 

-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혹시 '실기'했던 인권 현안에는 무엇이 있나.

"(잠시 생각한 뒤) '실기'까진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국가기구이기 때문에 신속하게만 반응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촛불집회에 대한 결정 역시 인권침해 진정이 100여 건씩 들어오는데 초기 조사가 다소 늦었다. 다른 곳도 아닌 위원회 바로 앞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인데, 좀 더 일찍 인권지킴이단을 파견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 당시 인권위 결정 내용이 미흡하다는 인권단체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

"인권위 결정이 크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현 정권과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직접 맞닥뜨린 사안이었다. 정치적 해석을 피하기 위해 논란의 소지가 있거나 입증이 어려운 것은 뒤로 미루고 명확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만 결정 내렸다.

 

인권단체 비판은 이해가 되지만, 보수진영의 비판은 그런 점에서 말이 안 된다. '시위대에 의한 인권침해는 조사 왜 안 하냐'고 하는데, 인권위는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만 다룬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무조건 '인권위는 편향됐다'고 낙인찍었다. 그 뒤 위원회가 조직축소의 험난한 길을 걸었다."

 

- 당시 결정을 안 내렸으면 조직축소가 없었을 거라고 후회한 적은 없나.

"(바로 고개를 저으며) 아니죠, 아니죠. 보수진영은 인권위를 축소하려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고, 새 정부도 그랬다. 촛불집회 결정은 울고싶은 사람 뺨 때려준 것이다. 오히려 '다른 국가기구를 감시하기 위해서 인권위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다. 이런 실천 없이 정부 눈치만 봤다면, 축소에 반대할 때 '조직이기주의'로 매도됐을 것이다."

 

"조직 축소시킨 정부 의도, 너무 분명하다"

 

-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사람으로서, 현병철 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함께 일한 기간이 짧아서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게 맞다. 희망을 가진 대목도 있고, 걱정한 대목도 있다. 아주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가 아닌, 말 그대로 '백지'인 분이다. 그것만으로는 칭찬할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인권의 가치를 지키려는 신념이 부족하면 결국 진보와 보수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인권위가 왜소해질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떨 때 희망과 걱정을 느꼈나.

"희망이라면, 취임식 당시 인권단체들의 강한 반대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계속 소통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 겪으셔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또 인권위 조직축소에 대한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청구도 취하하지 않고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 뒤 쌍용차 사태에 대한 성명이나 긴급구제를 할 때도 이것이 인권위의 역할이라고 수긍하더라.

 

반면, 이런 일련의 과정 끝에 보수진영과 언론이 강력히 비판할 때 현 위원장이 위축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걱정이 안 생길 수 없었다."

 

- 알고 지내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취임식을 막아설 때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다.

"활동가들에게 개인적 감정은 없다. 같은 인권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렇게 대치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분노했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회원들이지난 7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사퇴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에 대한 정치적 탄압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 유성호
국가인권위원회

- 후임 사무총장이 큰 현안이다. 현 위원장은 '인권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서도, 좌우로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 인물'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기준 자체는 뭐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걱정은 그런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겠냐. 마땅한 인물이 없을 때 어떤 것을 포기할 것인가. '좌우 중립'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사무처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문제다. 인권 현안을 지뢰밭처럼 피해간다면 위원장과 지도부 전체에 대한 불신을 부를 것이다. 그러면 인권위도 망하지만 위원장과 사무총장도 함께 망한다."

 

- 현 위원장 취임 당시 '실세 사무총장설'도 나왔다.

"글세, 현 위원장이 쉽사리 청와대 주문대로 사무총장을 임명하리라고 보진 않는다."

 

- 조직개편 당시나 현병철 위원장 취임 직후 사퇴를 고민한 것으로 안다.

"조직개편 직후 안경환 전 위원장이 사직한다고 할 때 '저도 같이 사직합니다, 지금은 그래선 안 됩니다'면서 제가 극구 만류했다. 조직을 축소시킨 정부의 의도가 너무 분명한데, 누구 좋으라고 후속작업을 내팽개치고 나오나. 모욕도 참고 견디셔야 한다고 했다.

 

제가 가장 크게 고민했던 것은 현 위원장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다. 사표를 내서 인권진영에 뜻을 같이하려고 짐도 다 쌌다. 그러나 주변에서 같은 이유로 날 말렸다. 현 위원장이 연착륙하도록 최대한 역할해야 한다고 설득해서 짐을 풀었다. 이 때문에 남아서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성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 9월 4일 사퇴할 예정이었는데, 연가 도중에 사표가 수리됐다.

"8월 24일 전원위원회에서 후임자가 의결되면 (인수인계에) 최소한 2주가 걸리니까 9월 4일에 사퇴하겠다고 생각했고, 현 위원장에게도 오자마자 말씀드렸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8월 28일자로 사표가 처리됐다. 현 위원장도 몰랐다. 우리 실무자가 알아보니 청와대 지시로 행안부에서 처리했다고 하더라. 절 모욕하고자 안달 난 모습이다."

 

"쌍용차 사태, 경찰이 긴급구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 안했다"

 

- 조직개편 당시 언론 인터뷰 등에서 "정부 의도에 대해선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지금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겠다.

"정부의 기본 입장은 '인권위가 다신 촛불집회 같은 데서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다 구성원의 편향성 때문이다'는 것이다. 인권위원은 임기가 있고, 사무처는 조직축소를 통해 기운을 빼자는 것이다. 그러나 (축소결정 이후) 정부 의도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인사를 해서 민간 출신과 일반 공무원 출신의 균형을 맞췄다."

 

- 인권위 권고 수용률이 떨어지고 있다. 쌍용차 사태 당시 긴급구제도 수용되지 않았다.

"특히 촛불집회 권고 이후 경찰이나 검찰·법무부가 인권위를 무시한다. 조사관들이 현장에서 경찰 간부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들 기관이 현 정부 눈치를 본다기보다는 지난 정부 시절 내키지 않지만 참으면서 인권위에 협조했다고 보는 게 맞다. 쌍용차 사태도 경찰이 구제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은 안 했다. 그래도 경찰을 압박해서 평화적 해결에 보탬이 되길 바랐다."

 

- 인권위뿐 아니라 인권운동 진영이 많이 힘들다. 현재 상황을 평가한다면?

"절망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친인권적이고 민주적인 정부 들어서 (운동의) 맥이 빠진 것이 오히려 문제 아니겠나. 정권 교체 이후 인권이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롭게 성찰할 계기가 될 것이다. 긴 호흡으로 내공을 튼튼히 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역량과 토대를 만들고 국민들을 강하게 조직하는 작업이 부족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칠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 권박효원
김칠준

- 이후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변호사로 돌아왔다.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면 서민들과 중소기업을 위한 법률서비스를 하고, 경기도 지역에서의 인권변호사 역할도 다시 충실히 할 생각이다. 또 몸담고 있던 인권재단에 복귀해서 활성화시키는 일도 해야 한다."

 

- 그동안 변론을 담당하고 싶었던 사건은 없었나?

"그보다는 '아마도 맡았겠구나' 싶은 사건들이 있다. 용산참사 같은 경우 제가 철거싸움 많이 다루던 변호사니까 했을 것 같다. 또 제가 10년 동안 쌍용차 노동조합의 고문변호사를 했다. 이번에 긴급구제 과정에서 평택공장 앞에 갔더니 조합원들이 날 알아보더라. 공장 안에 있던 조합원이나 바깥에서 (사측 직원으로) 있던 조합원이나 다 아는 사람들이다."

 

- 그러면 혹시 앞으로 인권위 앞 서울광장 같은 현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나.

"예전에 제가 거리의 변호사였다. 거리냐 법정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필요한 곳은 어디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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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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