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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통하면 정말로 세계에서 통하는 걸까요.
이 말은 진실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상술에 불과할까요. 물론 대답은 뻔하겠지요. 진실일 수도 있고, 상술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 들어 언론이 지나치게 이런 부분을 과장하고 있어 답답한 마음에 한번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와인도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

조선일보 8월 22일자 기사입니다.
“와인도 한국서 통해야 세계서도 통하는 시대”라고 주말판 제목을 뽑았습니다. 칠레의 유명한 와인 제조사인 카르멘사의 수석 와인 메이커의 인터뷰 기사 제목입니다. 막걸리도 아니고, 소주도 아니고, 맥주도 아닙니다. 와인입니다. 이 말을 믿을 수가 있을까요. 맵고 짜고 자극적인 한국인의 입맛이 서양 사람들의 와인 입맛을 선도해 나갈 수 있을까요.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까요. 전형적인 상술이겠지요. 칠레 와인이 한국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잘 아시지요.



화장품도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

2006년 1월 여러 언론에 실린 기사입니다. 화장품도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하는 세상’이 됐다며 자랑스럽게 제목을 뽑았습니다. 한국 여성이 세계 뷰티 시장에서 안목 높은 소비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기사에 인용된 프랑스 랑콤 과학연구소 베로니크 델뷔느 소장의 말을 요약해볼까요. “유럽 여성들이 매일 평균 클렌징+크림 정도의 2단계를 거치고, 중국이 3단계, 일본이 5단계 정도임에 비해 한국인은 세안만 해도 메이크업 리무버-폼클렌징(거품세안) 2단계에 걸쳐 하고, 거기에 각질제거-토너(스킨)-에센스-아이크림-밀키로션-자외선차단제(낮)-영양크림(밤)-마스크팩까지 총 6~9단계를 거친다.”

이 정도라면 가장 큰 시장 아닌가요. 물론 가장 예민한 시장이기도 하지요. 한국은 세계 뷰티 업계에서 7위의 큰 시장입니다. 색조 화장품 사용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색조 화장은 두께가 가장 두텁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미백 화장품에 대한 수요는 역시 세계 최선두이지요.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이 강한 나라입니다. 자외선차단제도 수요가 높은 편입니다. 자외선차단지수도 대단히 강한 수치를 선호하는 나라입니다.

과연 랑콤은 한국 시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삼았을까요. 정말로 한국 여성에게 통하면 세계 여성에게 통하는 시장이 성립됐을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랑콤은 한국이 글로벌 테스트 마켓으로 적합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한국 여성은 건성 피부이고, 영양크림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며, 하얀 피부를 원하는 특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프랑스나 홍콩 등 세계적 뷰티 시장에 비해 다른 특성이 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서양 여성들은 바로 흡수되는 제품을 선호하지만, 한국 여성은 피부에 막이 느껴질 정도의 유분감과 풍부한 질감을 선호하는 큰 차이를 발견한 것이지요. 초기에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한국 시장을 글로벌 테스트 마켓으로 설정하고 신제품을 테스트했지만,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특유의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대한상공회의소, 글로벌 테스트베드로서 한국 시장의 강점과 활용전략, 2006년 11월 참조)

바나나도, 콜라도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

바나나를 구입하면 붙어 있는 상표 기억하시죠. 돌(Dole)입니다. 세계적 청과업체입니다. 돌 코리아의 사장이 한 말입니다. “한국 소비자 입맛은 세련되고 예민하다.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으면 다른 나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을 두고 언론들은 식품에서도 한국인 입맛을 맞추면 세계에서도 통한다고 제목을 뽑았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과일 당도와 산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래서 우리 식음료 시장도 그렇게 발달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단맛을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바나나의 테스트마켓이 될 수 있을까요. 역시나 과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코가콜라도 언젠가 코카콜라 칼로리 제로를 미국과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에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코카콜라 측은 “한국을 테스드베드로 삼아 다른 아시아 국가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이를 두고도 언론은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과연 코카콜라의 한국에서의 테스트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코카콜라는 단순히 한국을 테스트마켓으로만 사용하고, 보다 근본적인 니즈 캐치용 테스트마켓은 스웨덴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는 스웨덴 소비자들은 매우 꼼꼼하고 까다로우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소비니즈는 구체적 언어로 표현하는 니즈, 행동으로 표현하는 니즈,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니즈가 있는데, 한국은 행동에는 강하지만, 언어 표현이나 잠재의식 속의 근본적인 니즈를 발견하기에는 애로가 있었다는 겁니다.(대한상공회의소, 글로벌 테스트베드로서 한국시장의 강점과 활용전략, 2006년 11월 보고서 참조)

전자제품은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


한국이 디지털기기, 인터넷 등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테스트 마켓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정보기술 강국이기 때문이지요. 온라인 게임이 대표적이지요. 최근에는 카메라도 한국 시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하고 있지요. 올림푸스사도 그랬고, 소니도 그랬습니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말을 인용하자면 충분히 이유가 있답니다. “신제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얼리 어답터)가 많고, 소비자들이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발달해 있으며, 신제품에 대한 사용 소감 등을 빨리 인터넷에 올리고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문화가 있고, 개방적이며, 소득이 뒷받침되는 시장이 있다는 점”때문이랍니다. 동의할 수 있겠죠. 이 부분만큼은 크게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근저에는 한국이 가장 빠른 시장이고, 가장 큰 시장일수도 있다는 점이 기본으로 깔려 있겠지요.

‘한국에서 통해야 중국에서 통한다?’

물론 한국 시장이 예민하고 선도적 시장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면 기분 나쁠 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불필요하게 언론의 과장에 장단 맞출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또 한가지 기업의 상술에 불필요하게 헛 춤을 출 이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의 2007년 4월 한국경제 인터뷰를 인용합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갖고 있는 엄청난 장점은 똑똑하고, 식별력 있고, 세분화된 시장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외국 기업이 한국을 테스트마켓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한국에서 성공하면 중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중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속내가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시장에 대한 테스트 마켓의 의도, 한국 소비자에 대한 존중의 의도 속에는 가장 큰 시장인 중국 시장에 대한 테스트로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물론 불편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의도에 대해서도 한번쯤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수준입니다.

모든 제품이 다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영화를 홍보하거나 할리우드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고 과장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한국영화를 홍보하고 세계화를 재촉하는 차원의 카피일 수는 있습니다. 과연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에서 통하고 있나요. 할리우드영화가 미국과 동시에 개봉되는 것을 두고 또 불필요하게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고 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한국시장이 국제화되고 글로벌화되고 세계시장과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결코 기분 나쁜 일은 아닙니다. 때로는 이런 목적으로 R&D 투자가 강화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연구자들에 따르면 여러 단점도 있는 모양입니다. 지나친 경쟁과 까다로운 고객의 입맛 때문에 도리어 단기적 양상을 빗거나 일찍 늙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제품의 경우 지나친 얼리 어답터 성향이 주력 소비자들의 기호와는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제품을 한국 시장에서 테스트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전자제품은 일본 아키하바라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캠벨 수프는 인스턴트 수프에 대한 테스트 시장으로 싱가포르를 선택했습니다. BMW는 사업다각화와 자동차 사업의 이미지 강화를 위해 테스트 마켓으로 호주를 선정했고, 맥도날드는 하이테크 판촉용 장난감을 시도하기 위해 호주와 뉴질랜드를 선택했습니다. 월마트는 금융서비스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영국을 선택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글로벌 테스트베드로서 한국시장의 강점과 활용전략, 2006년 11월 보고서 참조)

한국 시장이 강한 부분이 있고,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장점을 보유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 결론은 간단합니다.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불필요하게 그런 상술에 견인되거나 언론의 과장에 속아 넘어갈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계적 대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보수주류 언론에 광고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나라 보수언론들의 기사 제목 중에 특별히 이런 부분이 많다는 걸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연결이라고까지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만, 그 과장에 일정 부분 상업적 목적이 있지는 않을까 나름대로의 의심을 갖게 했습니다. 자부심과 과장은 구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맹목적 상업주의도 늘 경계해야할 대상입니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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