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마다 패션 유행에서 ‘모피’는 빠지지 않고있다.
가격이 저렴해진 건지, 모피가 보편화, 대중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옷장과 신발장을 열어보라.
그리고 당신이 동물을 죽이는데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를 살펴보라.
토끼털 코트와 양가죽 백, 악어가죽 구두까지..
당신은 몇마리의 '죽여진 동물'을 구입했는가.
당신은,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죽은 동물'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옷과 백과 구두가 되기 위해 '죽여진' 동물을 구입한 것이다.
당신의 행동을 칭찬하고 싶은가?
모피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 100마리의 친칠라, - 11마리의 푸른 여우,
- 크기에 따라 45마리에서 200마리의 밍크가 필요하다....
밍크, 여우, 너구리, 족제비, 스컹크, 누트리아,친칠라 등
전 세계에서 ‘단지 아름다운 털을 가졌다’는 이유로 무참히 죽어 가는 야생동물들은
1년에 3천 5백만 마리에 이른다....
이렇게 모피코트 제작에 이용되는 동물들 중 700만 마리는 야생의 상태에서 덫과 올무 등으로 밀렵된 것입니다.
국내의 모피 수요는 곧 국내 및 국외의 자연생태계를 심각히 파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있습니다..
이글보고도 정신못차리는 사람들 있으시죠? 인정하면서 사고는 싶죠?
차라리 나머지까지 사시죠?
"Here’s the rest of your fur coat"
“당신이 가지고싶은 모피 코트의 나머지가 여기 있다”
2. 그래도 입고 싶으시다구요?
모피가 아름다운것이라 생각하는가? 그건 단지 원시시대때의 우두머리가 쓰는 동물의 모피에서 착상한 진화의 찌꺼기일뿐이다.
지난 해, 캐나다 정부가 33만 마리 이상의 하프 바다표범(harp seal)을 도살하는 것에 대해 허가를 하였을 때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냥 방법으로 아기 바다표범을 총으로 쏘거나 곤봉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때려대다가 하카픽스로 유빙을 가로질러
바다표범을 끌고 갑니다, 표범의 의식이 아직 살아 있는 채로 말이죠.
하프바다표범의 약 42%는 살아 있는 채 가죽을 벗깁니다.
바다표범 고기시장은 없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가죽을 벗겨낸 죽거나 죽어가는 바다표범들을 던져 쌓아 두고는 그 시쳬가 그대로 유빙 위에서 떠다니며 썩도록 내버리고 갑니다.
-이는 캐나다의 동물복지 규정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모피를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은 공포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여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이는 웅담을 위한 곰이 우리에서 반복행동을 하는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피를 위한 사육농장의 동물은 좁은 우리안에서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거나 자해하는 행동을 하거나
좁은 우리를 쉴새없이 좌우로 왔다갔다하거나 우리벽에 기대선체 나가려고 하는듯 계속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모피를 위한 도살은 대부분 우리안의 동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동물들이 자신도 동료와 같은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에 대한 죽음의 공포는 엄청날 것이다.
모피농장의 이러한 신체적, 육체적 학대속에서 동물들도 정상적일 리가 없다.
늑대는 야생에서 사람을 포함한 그어떤 생명체보다 모성본능이 강한 동물이다.
하지만 모피농장의 학대는 이런 늑대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게 만든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자신의 동족을 잡아먹진 않지만,
모피사육장의 학대는 같은 우리에있는 동족을 서로 잡아먹게 만든다.
3. 조작된 사진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한 영상
[주의! 임산부와 노약자는 보는것을 금합니다]
캐나다에서는 이렇게 잔인하게 바다표범을 죽입니다. 그들의 털가죽을 얻기 위해서...
산채로 벗겨지는 가죽들....가죽이 없지만 의식이 있는채로 살기위해 움직이는 너구리...
이걸 보셔도 진짜...모피코트가 입고싶습니까?
유독 아시아의 일본과 우리나라에선 모피 옷이 꾸준히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모피를 입지 않는 것만큼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반생태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것을 안다면 말입니다.
결코 채식만 하고 육식을 하지 말자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모피의 뒤에 가려진 너무나 충격적이고 잔인한 진실을 꼭 알려드리고싶습니다. 여러분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
-p.s-
모피 코트 따뜻하나요?
사치에 쩔고쩔어서 쓰레기냄새폴폴나는것들아.
저런 걸 보면 세상엔 인면수심을 가진 인두껍 괴물들이 참으로 많다는 걸 느끼기 싫어도 느끼게 된다.
저 동물들도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
때리면 아파하고, 괴롭히면 비명을 지르며, 칼로 찌르면 피가 나온다.
머리가 부서지고, 배가 찢겨지고, 내장이 흘러나와서 온통 피범벅이 되는 건 우리와 똑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을 그렇게 때려죽이는 건 '잔인하게 어떻게 그래요?' 하고 반문하면서, 동물을 때려죽이는 건 아무렇지 않아 할 수 있는 건가? 혹시 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야?
인간이 약한 동물을 잡아 고통을 가하여 잔인하게 죽이는 건 괜찮고, 인간이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건 안되는 건 힘이 곧 법이기 때문인가?
또, 직접 손을 대서 죽이지 않고 간접적으로 죽이는 경우라도 그렇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십중팔구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유는 죽는 대상이 그 순간 뿜어내는 절망, 고통, 괴로움, 원망, 공포 같은 음적인 감정들이 한데 어울어져 지켜보는 사람의 심상에 충격을 주고, 죽는 당시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일시적으로 대입시켜 봄으로써 그 들이 받았을 공포의 일부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 이건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같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동물을 학대하는 일부 인간들은 이게 안된다.
어딘가 고장나 있는거다.
이들은 자신이 당하는 것만 아니면 다른 대상이 뭘 당하던 그 감정을 느끼질 못한다.
같은 인간일 경우에도 그런데, 우리와는 생김새가 다른 동물일 경우엔 오죽하겠는가?
그러면서,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고 말들을 한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납득이 되질 않는다.
나는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못느끼는 저 인조인간들이 과연 진짜 사람이라 할 수 있는지 부터가 의심스럽고, 또 솔직히 이 들의 눈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대상이 인간이라도 충격을 받긴 할지도 의심스럽다.
731 부대(731部隊)는일본제국 육군관동군소속의 비밀 생물학전 연구 및 개발 기관으로,1932년설립, 2차중일전쟁(1937~1945년)을 거쳐1945년까지 생물·화학 무기의 개발 및 치명적인 인체 실험을 행하였다. 일본 요원이 악명 높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공식적으로는 ‘헌병대 정치부 및 전염병 예방 연구소’로 알려졌다. 원래는 태평양전쟁 전 정치 및 이념 부서로 설립되어 적에 대한 사상, 정치적 선전과 일본군의 사상 무장이 임무였다. 첫 부임자였던의사이시이 시로(石井四郞)의 이름을 따라,이시이 부대(石井部隊)라고도 불린다. 영미권에서는Unit 731로 잘 알려져 있다. 731 부대는 또한히로히토 천황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이며, 천황의 막내 동생이 그 부대의 장교로 복무하였다.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에 있던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
설명
731부대 건물 잔해
이 부대는중국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하얼빈 핑팡(平房, 당시 만주국 괴뢰 정부의 영토)에 주둔해 관동군 관할 구역 내의 정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위장되었다. 이 부대는 일본의 정치적 선전, 일본 군대의 사상적 대표로서 업무를 수행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 정치 선동에 대항해 일했으나 나중에 그 영역이 확대되었고, 화학·세균전 준비를 위한 연구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731 부대는 크게 보면, 독일 나치의 SS같은 정치 선동 부서이다. 여기서는 일본인의 인종적 우월성, 인종주의 이론, 방첩 활동, 정보 활동, 정치적 사보타주, 적 전선 침투 등에 관한 활동을 하였다. 이 부대는 만주 헌병대, 만주 정보기관, 만주 정규 경찰, 만주 거류민 위원회, 지역 만주 민족주의 정당, 일본 비밀 정보기관과 긴밀히 연락했다. 이 부대의 만주에 있는 부문에서는 백러시아인, 중국인, 만주인, 몽골인과 기타 특수 부서, 비밀 부서 경력의 외국인을 활용했다.
민간인과 군인 모두 1만 명의 중국인과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이 이 부대의 실험 대상이었다. 일부 미국인과 유럽인 등 연합군 전쟁 포로가 731부대의 손에 죽었다. 게다가 이 부대에서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에 의해 연구된 생물학 무기의 사용으로 수만 명의 중국인이 죽었다.
731부대는 일제가 세운 생물학전 연구기관 중 하나였으며, 516부대(치치하얼 시, 齊齊哈爾), 543부대(하이라얼 시, 海拉尔), 773부대(Songo), 100부대(창춘, 長春), 1644부대(난징, 南京), 1855부대(베이징, 北京), 8604부대(광조우, 廣州), 200부대(만주), 9420부대(싱가폴) 등동아시아각지에 세워진 기관도 731부대와 유사하거나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헌병대가 관리하였다.
731부대와 관련된 많은 과학자가 나중에 정치, 학계, 사업, 의학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는 소련군에 체포되어하바로프스크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다. 미국에 항복한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면받았다. 그들이 행한 잔인한 행위 때문에 731 부대의 활동은 국제연합에 의해전쟁범죄로 선포되었다.
형성
1932년이시이 시로 장군은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와 그 부하들은 종마 수용소를 건설했다. 이곳은 그 지역에는 종마 요새로 알려져 있다. 이 실험 수용소는 ‘베이인허’에 있는데, 하얼빈 시에서 남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이시이는 ‘토고 부대’를 조직했는데 화학, 생물학 작전을 하기 위한 비밀 연구 그룹이다. 1935년 탈옥과 폭발이 있었고, 이시이는 종마 요새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중에 핑팡(하얼빈 시에서 남쪽으로 24킬로미터)으로 가서 훨씬 더 큰 새로운 시설을 만들었다.
이 부대는 나중에 관동군으로 통합되어 ‘전염병 예방부’가 되었고, 같은 시기에 ‘이시이 부대’와 ‘와카마쓰 부대’로 나위어졌다. 창춘에 있었다. 1941년부터 이 부대들은 합쳐서 ‘관동군 방역 급수부’ 또는 731부대로 불린다. 이 부대는 제국청년군(Imperial Young Corps), 대학의 연구소, 헌병대의 지원을 받았다. 어떤 이는 731부대가 헤로인 생산을 위해 만주에서 양귀비를 경작하던 미쓰이 재벌과 연계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활동
암호명 ‘마루타’의 특별계획은 실험할 때 인간을 사용하였다. 실험 대상은 주위 인구 집단에서 수집되었고 이들은 완곡어법으로 ‘통나무’(마루타)라 불리었다. 마루타란 용어는 구성원 중 일부의 농담에서 유래했다. 이 시설을 지역 당국에는 제재소라고 했기에 그런 농담이 생겼다. 시험에는 영아, 노인, 임산부 모두 사용되었다. 많은 실험과 해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없이 이뤄졌고, 이는 실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생체 실험 (또는 생체 해부)
수용자는 마취없이 생체 실험을 당하였다.
다양한 질병에 걸린 수용자를 생체 해부하였다. 과학자들은 수용자에 대한 침습적 수술을 하였다.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장기를 제거하였다.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시행했다. 왜냐하면 부패 과정은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성인 남자, 성인 여자, 어린이, 영아 모두 대상이었다.
생체 실험은 임산부에게도 시행되었다. 어떤 때는 의사에 의해 수태되고 그 태아는 꺼내졌다.
출혈의 연구를 위해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였다.
절단된 팔이나 다리는 가끔 수용자의 반대편에 다시 붙여졌다.
몇몇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는 얼려져 절단되었다. 어떤 때는 얼렸다가 녹여서 치료받지 않은 괴저와 부패의 영향을 연구했다.
일부 수용자의 위는 외과적으로 절제되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일부 수용자에게서 뇌, 폐, 간의 일부가 제거되었다.
무기시험
수류탄을 시험하기 위해 인간 목표물을 다양한 거리의 다른 위치에 세웠다.
인간을 대상으로 화염방사기를 시험하였다.
인간을 말뚝에 묶어 세균방출폭탄, 화학무기, 폭발성 폭탄을 시험하였다.
세균전 공격
수용자에게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접종되어 그 효과를 연구했다. 예방접종이라고 위장하였다.
치료받지 않은 성병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일부러 매독, 임질을 강간에 의해 감염시키고 연구하였다.
질병 전파 벼룩을 대량으로 얻기 위하여 수용자에게 벼룩을 감염시키고 세균전의 유용성을 연구하였다.
전염성 벼룩, 감염된 의류와 물자가 폭탄 안에 포장되어 다양한 목표물에 투하되었다. 콜레라, 탄저병 등 전염병으로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 여러 실험
일부 수용자는 숨막혀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목매달렸다.
일부 수용자는 색전이 생기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동맥에 공기가 주입되었다.
일부 수용자는 신장에 말의 소변이 주입되었다.
일부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물과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다.
일부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고압의 방에 놓여졌다.
일부 수용자는 극저의 온도에 놓이어 동상이 걸리게 하였다. 그런 조건에서 얼마나 생존하는지, 인체 살의 부패와 괴저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일부 실험은 온도와 화상, 인간 생존의 관계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일부 수용자는 원심분리기에 넣어져 죽을 때까지 돌려졌다.
동물의 혈액이 일부 수용자에게 주입되어 그 효과가 연구되었다.
일부 수용자를 가스실에 넣어 다양한 종류의 화학 무기를 시험했다.
바닷물이 몇몇 수용자에게 주사되었다. 바닷물이 생리식염수를 대치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부서
731부대는 8개의 부서로 나뉜다.
제1부 :여시니아감염,콜레라,장티푸스,결핵에 대해 인간을 재료로 연구했다. 이를 위해 수용 시설 하나가 300~4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건설되었다.
제2부 : 생물학 무기를 연구했다. 특히 병균과 기생충을 퍼뜨리는 장치의 생산에 중점을 두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한국인 희생자는 6명으로 아래와 같다. 대부분항일운동또는반파시즘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인물로 파악되고 있다.
심득룡(沈得龍)
이청천(李淸泉)
이기수(李基洙·28·함북 신흥군 동흥면·1941년 7월20일 체포)
한성진(韓成鎭·30·함북 경성·43년 6월25일 체포)
김성서(金聖瑞·함북 길주·43년 7월31일 체포)
고창률(高昌律·42·강원도 회양군 난곡면·41년 7월25일 체포)
전후 처리
도쿄전범재판때 일본의 생체실험 문제가 언급되었으나, 관련자들은 실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제공하고러시아에 넘겨주지 않는 댓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하지만 그들의 잔인한 행위로 현재 전쟁범죄로 공표되어 있는 상태이다.
주요인물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년 6월 25일 ~ 1959년)는 일본의 장군으로731부대사령관에 임명되어중일전쟁중 일본 제국군대의 생물학전을 담당했다.
Shiro Ishii, commander of Unit 731
이시이는 치바현에서 태어났다.쿄토제국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비록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방해되는 사람으로 생각되지만 학업에 있어서는 뛰어났다. 1922년 육군병원과 토쿄의 육군의학교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그의 작업은 윗사람들의 눈에 들기에 충분했다. 2년 뒤에 대학원 후 과정으로 쿄토제국대학에 돌아왔다.
그는 67세 암으로 죽을 때까지 한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시노즈카 요시노(篠塚良雄)는 구 일본 제국군대의 군인으로서731부대에 근무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는데 관여했다.
생체실험을 당한 중국인의 가족 180명이 일본 정부에게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시즈오카는 이 재판에서 중국인 원고를 위해 증언했다. "나는 731부대 대원이었다. 나는 인간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였다."고 말했다.
출처 ☞ 일본 콘크리트살인사건 전문
죄없는 여고생을 하교길에 납치하여 수개월간 감금하며
여러명이서 온갖 고문과 성행위등 '인간으로써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들정도의 폭행,
고문들을 한뒤 무참히 살해하여 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버린뒤, 평상시와 똑같은 일상을 살던 소년들..
그들의 나이는 불과 15~18세, 그들은 모두 붙잡혔지만
한소년은 자신의 죄를 뉘우침없이 자신들이 했던 고문과 푹행, 성행위등을 모두 자백하였다.
그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대단하였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변호사
" 그정도의 폭행을 가하면서, 그녀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소년 B,C
"........생각할수 없었다"
변호사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
소년 B,C 등은 죄를 뉘우친다고 하였으나,
소년 A
" 단지 운이 없어서 잡혔을 뿐이다. "
왼쪽부터 소년 A 宮野 裕史 소년 B 小倉 讓 소년 C 溱 伸治
-사건발생-
1988년 11월 25일
자전거로 귀가 도중의 소녀를 찾아낸 A가 공범이었던 소년 C에게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
소녀는 도로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 C 도주후 주범 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준다' 며 말을 걸어 납치한뒤 그들의 아지트(소년C의 2층집)로 끌고가
수 시간 폭행을 가했고, 신고를 한다거나 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시킬거라고 위협, 도망을 저지하려 했다.
이때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하고있었다.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때 현관으로부터 '오늘밤만'
이라며 소녀를 데리고 들어왓다. 모친은 '이제 늦었으니깐 돌아가세요' 라고 말했지만 대답을 하지않고
2층에 올라갔다 C의 부친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 라고 말했다.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젼을 보거나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걸로 알고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C와 C의 형이 대기하고있어 실패, 결국 부모님이 잠드는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올라 2층의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귀가한 C는 관계없는 일을 하지말라며
모친을 수 시간에 걸쳐 때린다.
그뒤 그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뒤, 무참히 폭행하는 등 그 여학생은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였다.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고문들을 당했고,
집에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면 그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63 / 12월 초
소년 A등 4명이 낮잠자고 잇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110번에 신고한다. 곧 A가 눈치채여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켰다..
12월 19일
그 여학생에게 가했던 것들은 실로 인간으로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손,발,정강이,무릎 등에 라이트 기름을 발라 불을지른다. 재차에 걸치는 화상에 의해 상처가 곪는
이상한 냄새를 낸다. 악취로 C의 부모님이 눈치채는것을 무서워해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시키지않고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이 행위로 인해 소녀는 이미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된다.
12월 20일
소년 A등 3인외에 여자 1명 과 '화장'이라며 피해자의 뺨에 매직으로 수염을 그린다.
소년C는 집에 '재밌는것이 있다'며 아는 사람에게 공연해 100명정도는 감금에 대해 알고있었다고
보여지며, 재판기록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직접 폭행, 강간에 관여하였다.
또한 술을 억지로 다량먹여 고통스러워하며 토해내는 모습을 즐기며 더럽다며 폭행, 항문과 성기등에 불꽃놀이를 안쪽으로 꼽아놓고
터뜨렸으며 (부검 당시 소녀의 대장에 심각한 화상이 있었다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녀의 안면을 구타해 코 높이까지 부어오른 볼과 눈부분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해놓고
성경험이 없던 소녀의 성기와 항문에 온각 이물질과 벌레등을 삽입하였으며, 심지어 페트병까지 넣었다.
감금 당초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키거나 C가 칫솔 등을 사주거나 하고있었지만
상처나 화상이 심해지는 것에 따라 식사.목욕에 대해 배려하지 않게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알 등 집에 있던것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컵 먹일 뿐이었다.
소녀의 부검당시 안면부도
형제를 알아볼수 없을만큼 손상되었었다.
성기와 항문부분은 더욱 심각했다고 한다.
12월 21일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줄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피해자가
말했기때문에 여학생은 그들의 요구에 '알몸으로 춤과 노래를 해라' '미친짓을 해보라' 는 등 엽기적인 것들을 시켰다.
12월 28일
피해자가 배를 누르고 넘어졌다. A의 얼굴을 보며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A는 물, 콘스프,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방에서
나오는것은 금지되어있었다. 우유를 먹였지만 토해버린다. 그후, 피해자가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A는 격노,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회 구타, 상반신을 알몸으로 해 혹한(12월)의 베란다에 서게해
여러개의 담배를 한꺼번에 피게 하지만 구토, 양 대퇴부, 무릎, 정강이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점화, 열이 이는 불을 끄려고 하자 손에도 점화, 불이 꺼지면 다시 점화했다.
1월 4일
마작을 해 10마엔을 진 A는 초조해한다. 가수 코이즈미 쿄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안에 '예-이!'에 맞추어 피해자의
옆구리에 마음껏 구타한다. 피해자는 소리를 내면 더 맞기때문에 고통을 참아 얼굴을 삐뚤어지게 했다.
표정을 보며 소년들이 재미있어했다.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혈흔까지 받아먹어야했고, 소년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위해 손과 발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뒤돌려차기 등의 폭행을 가했다.
폭행을 가하다가 넘어진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딧혀 경련을 일으키자 이를 꾀병이라며
6kg의 철아령을 복부에 던지는 등 소녀가 반응을 않자 몸에 기름을 발라불을 붙여 반응을 보이자
불을 끝뒤 2시간 가까이 폭행을 가했다..
1989년 1월 5일
피해자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공장에가 모르타르, 드럼통 등을 조달.
사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때, 공장의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A가 빌려온 웨건을 운전해 도쿄의 매립지에 갔지만 적당한 장소가없어
도로틈의 풀숲에 버렸다.
소년 C의 부모들도 여학생이 2층에 있는것은 알았지만,
소년 C가 두려워 이를 묵살,
이정도일줄은 몰랐다고 진술하였다.
소년 A 의 부모는 이 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받고 집과 전재산을 팔아 5000만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냈다.
하지만 피해자의 모친은 사건내용에 충격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소년 A의 자백-
사건이 들춰진것은 사건발생 4개월뒤인
평정원년 1989년 3월 29일에 발견되었다.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강간, 절도 등에 의해
소년 감별소로 보내진 소년 A를 조사했을때,
담당형사가 무심고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 라는 질문에
다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내용을 자백,
담당형사는 당초의 목적인 강간, 절도의 조사를 받는일 없이, 반신반의한 채 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 한개만 널려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있어 경찰은 305kg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메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있었으며,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바퀴벌레와 다량의 정액, 소변등을 먹였으며 시체발견 전 손발이 묶인 채로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성기는 안면보다 더한 상태였다고 한다. 온갖 이물질을 성기에 집어넣고
불을 붙혔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또한, 전신에 구타에의한 부종 (림프랙이 다량으로 모여 부어오른 상태)
이 시신의 상태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시신의 상태는 안면이 심하게 함몰 및 변형되어 있었고
부폐진행중 이였기때문에 외관으로부터의 확인이 곤란했지만,
지문이나 이빨들의 조합으로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위의 자료를 보니 어떤가?
같은 인간이 당한 걸 보니 이번엔 감정에 동요가 오나?
동요가 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만, 아무런 느낌도 못받았다면 내일 오전에라도 정신병원에 상담 한번 받으러 가보길 권하겠다.
자..그렇다면 물어보겠다.
당시 일본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죽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으니, 죽이는 것은 물론 껍질을 벗기는 것도, 몸속을 헤집는 등의 온갖 잔인한 마루타 실험도 정당한 거라 할 수 있는건가?
또, 41일간 감금당한 상태에서 단 한순간도 쉬지않고, 죽을 때까지 처참하게 맞고 쑤셔지고 터지고 혹사당한 끝에 결국 영양실조로 죽은 건지 맞아서 죽은 건지 아니면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숨을 거둔건지 도대체가 분간이 안갈정도로 고통받은 저 여학생도 한낱 약자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어떻게 당하던 가해자의 마음대로인게 당연한 거라 보는가?
안된다면 왜 안되는 건가?
하프물범은 껍질을 벗겨도 되는데, 마루타는 안되는 이유는 뭔가?
하프물범은 가시 박힌 곤봉으로 죽을 때까지 내려쳐도 되는데, 왜 저 여고생은 맞아 죽어선 안되는 건가?
이쪽에서 때리는 것과 저쪽에서 때리는 것...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고 한쪽은 되는데 한쪽은 안된다는 것인가?
게다가 맞아 죽는 대상이 인간이고 동물이고는 일단 제쳐두고 생각해 보라..
때리면 아파하는 살아있는 대상을 그렇게 눈 시퍼렇게 뜨고 죽을 때까지 내려칠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부탁인데,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라는 말은 하지 말길 바란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똑같이 통각을 가지고 있어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가지고 있어 괴로워할도 줄 안다.
마루타가 죽는 순간까지 괴로워하다 죽는 것처럼 동물들도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는 건 마찬가지다.
다른 게 있다면 그건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인간성과 지성'에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상의 최강자된 입장으로써 그 외의 종에 대해선 필요에 의해 살상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래야 할 경우라 쳐도 우리가 인간본연의 '인간성'이 살아있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이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한, 괴로워 하는 대상의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상처를 헤집는 등의 악마와도 같은 잔혹한 행위를 해서는 안되지 않겠나?
필요에 의해서 죽여야 한다면 고통없이 보내주고, 이미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대상이라면 최소한 그 고통에 가슴아파할 줄 아는 존재가 바로 진짜 인간이라 할 수 있지 않냐 이말이다.
이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 즉, 측은지심의 발로야 말로 인간성의 모태이며, 동물들도 일부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 감정은 오로지 뜨거운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살아 숨쉬는 동물과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지, 악마, 마귀, 사탄, 귀신을 포함한 인간같지 않은 새끼들한테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살아있다는 증표이자 영혼과도 같은 것으로써,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다른대상과 유대관계를 맺고 무리를 지어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몇놈에게 말해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이렇게 말해도 이미 감정이 죽어버린 녀석들은 이런 감정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이놈들..즉, 사이코패스(이하 미친 것들) 라는 것들은 이해하기 싫어서 라기 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인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개념을 떠올리는 건 상상조차 안되는 것이다.
이건 마치 산꼭대기에 한번도 올라보지 못한 놈에게 '산 꼭대기에서 보니 온 세상이 다 보이더라' 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런 미친 것들에게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 주고 설득을 하고 인간성이 뭔지 감정이 뭔지 말해줘도 씨알이 안먹힐 수 밖에..
이런 미친 것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좆나게 패면 된다.
죽을 때까지 팰 필요도 없다.
이런 놈들은 타인의 고통에는 둔감하지만, 자신의 고통에는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한 두대만 쥐어박아도 '나 죽는다' 하면서 금방 앓는 소릴 낸다.
그러니, 입 아프게 여러 말 할 필요없이 그냥 이해 못할 때마다 두들기는 것이 최고다..
혹시 주위에 동물학대하고 공감능력 떨어지는 인조인간 같은 사이코패스가 보이면 여러소리 하지 말고 일단 패고 시작하도록 하자..
그렇게 석달 열흘을 피똥싸게 쳐맞다보면 그 말종은 맞는 것..고통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게 되고, 그 때 '니가 지금 받는 고통은 이제까지 니가 학대하던 동물들도 똑같이 느껴왔던 것..그 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이제 짐작이 가냐?' 하고 말해주면 된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꼴랑 처음 몇대 맞았다고 이제까지 해왔던 동물학대를 그만두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에는 장사없다고 그럴 때마다 계속 패면 된다.
어떨 때 마다..?
동물학대할 때마다..
그럼..'파블로프의 개'처럼 '동물학대 = 자신의 고통' 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히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비로소 동물학대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강제적인 '역지사지 프로젝트' 이다.
게다가 이건 근거없는 망상이나 불합리한 어거지가 아닌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명시되어 있는 절대진리- 인간들에게 통용되는 법규의 가치를 넘어서서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에 통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진리 인 것이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까지 충실히 재현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실패할래야 실패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통해 이 것들이 '동물의 고통'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해도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갖게 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이놈들은 '절대진리' 도 어쩔 수 없는 영원한 구제불능이기 때문이다.
이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공감능력의 '공'자도 없는 족속들이기 때문이며, 측은지심이 뭔지 개념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고장난 인조인간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동물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면 동물학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뭐..그래도, 대화를 통한 '인간다운 인간으로의 개조'는 불가능해도 차선책인 '파블로프의 개'를 통한 강제적인 교육은 가능하니까...
그래서 말인데..어떤가?
위에서 말한대로 좆나게 맞으면서 역지사지의 공포를 몸으로 깨우치는 것보단 그냥 좋게 말할 때 측은지심에 대해 배우고 이해할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냐? 이 사이코들아..
이 후 행여나 또 동물을 괴롭히게 될 경우가 생기면 '만약 내가 저 동물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어떤 기분일까?' 라는 역지사지를 항상 먼저 떠올리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라..알겠냐? 이 말종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