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한참 일본만화에 심취해 있었었다.
학교만 마치면 바로 만화방으로 달려가서 라면 한그릇 주문하고 만화책을 10권정도 뽑는다.
왼손으론 만화책을 들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면서 그렇게 만화 보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pc방도 없고, 게임방도 없고, 오로지 방과 후에 즐길 껀수는 만화 뿐인 당시엔 한 골목 안에 만화방만 4-5군데가 서로 각축전을 벌일 정도였고, 만화책의 보유수나 만화방의 규모가 서로 비슷비슷하니까 나중에는 서비스와 라면 맛있게 끓이는 걸로 단골이 결정되곤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만화를 보던 때였다.
나 또한 엄청나게 많은 만화를 봤고, 또 그 곳 주위가 책 도매상들과 수입서적들이나 복사 애니 비디오를 취급하는 곳이 널리고 널린 관계로 구하지 못하는 만화책도 없었으니 당시에 나왔던 만화 중에선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만화엔 박사였던 때였다.

미츠루 아다치의 작품들을 접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화려하고 멋진 그림체의 작가들도 많았고, 또 천공전기 슈라도의 그림체가 열혈 캐릭터의 대표격이고, 도시의 사냥꾼(시티헌터)의 멋지고 섹시한 그림체에 크라잉 프리맨이나 생츄어리처럼 사실적인 이미지에 눈이 익숙해져 있던  당시에 뭔가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뭔가 부족한...귀여운 그림체로 한창 인기좋은 '드래곤 볼' 과 비교하면 훨씬 수준이 떨어져 보이는 두리뭉실하고 대충대충 간단간단에 여백도 많아 왠지 허전하다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만화책 한권-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터치'였었던 것 같다-을 발견하곤 '이건 진짜 만화같은 만화네' 하며 그 성의없음에 감탄한 후 다시 꽂아 놓곤 다른 책만 뒤적거렸더랬다.

그 이후로도 손을 대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만화방의 볼만한 만화책은 다 보고 더 이상 볼게 없어 새로 나온 만화책과 그 동안 관심이 가질 않아 손을 안댔던 만화책의 각 1권씩을 쌓아놓고 보기 시작했었는데.. 이 때 처음으로 미츠루 아다치의 'H2' 를 보게 된거였다.

그런데..재미가 있었다..
그 동안 어떻게 이런 책을 못 봤었는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말 재미가 있었었다.
이전에는 재미가 없었는데, 취향이 바껴서 재미가 생긴 건지 아니면 원래 재밌던 건데 단지 찾지를 못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날부터 미츠루 아다치의 작품들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미츠루 아다치의 작품을 보면 딱히 멋진 그림이라든가 하는 건 안나온다.
또 감동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는 아니다.
스토리도 마구 꼬인 얽히고 섥힌 반전 등은 솔직히 기대하기 힘든..즉 평범한 수준인 듯하다.
하다못해 치밀함이나 여러가지 잡다한 정보 등을 얻을 수도 없으니 적으면서 내가 생각해 봐도 '이렇게 적으면서 보니 참 별게 없군' 이라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츠루 아디치의 작품들이 재밌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 것은 이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데.. 뭐랄까? '여백의 미' 라고나 할까?
아니면 분위기로 말하는 '상황묘사' 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대사가 없어도 그림만으로 그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묘사가 백마디의 말보다 더 재밌고 그 상황에 더할 나위 없이 딱 맞게 느껴지는 것이다.
말 없이 행동만 하는 이 상황이 꽤나 웃겨서 오히려 말을 하게 되면 이 재미가 반감되어 망쳐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라는 거다.
게다가 간간히 주고 받는 대화들은 기본적으로 구수하고 담백하지만, 이따금 간간히 터져나오는 유머와 위트있는 대화나 따라쟁이 마냥 반복되는 대화들은 한번 더 곱씹어 보게 할만큼 중독성이 있었다.

아..그렇네..이건 중독이라고 표현해야 옳은 듯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데도 나중엔 헤어날 수 없는 늪같은 요소를 이 만화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다치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재미와 분위기..
이 때문에 장장 기십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미츠루 아다치의 만화만큼은 꼭꼭 챙겨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더 있지만, 귀차니즘의 압박이...
나중에 다시 생각나면 그 때 추가하도록 하고 오늘은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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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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