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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적게 낳으려는 풍조
어설픈 당근책으로는저출산 기조 못바꿔
혜택받은 계층이사회적 의무 방기할땐`불이익` 줘야

우리는 우리 이전의 시대를 그저 뭉뚱그려 `다산(多産)의 시대`로 기억한다. 넷 다섯은 기본이요 일곱 여덟 형제도 흔했던 시대, 보리밥 한 그릇을 놓고 다퉜던 기억이 그리 멀지도 않은 불과 20~30년 전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전쟁과 기아로부터 해방되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풍요의 시대에는 `자식을 적게 낳으려는 풍조`가 주기적으로 유행했다.

시저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즉위한 기원 전 1세기 말 로마에서도 독신풍조와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일 외에도 쾌적하고 즐겁게 인생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많았고 독신으로 지낸다 해도 집사와 노예들이 집안일을 돌봐 불편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향은 특히 부유하고 혜택받은 지배계층에서 더 뚜렷했다. 로마시민이 소수자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 아우구스투스는 바로 이 지배계층을 겨냥한 저출산 대책을 내놨다.

아우구스투스는 요즘 흔히 쓰는 `돈을 더 줄 테니 애를 낳아라` 식의 당근은 주지 않았다. 부유한 지배계층에 돈은 저출산의 원인도 이유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력한 채찍을 썼다.

대표적인 것이 `간통과 혼외정사에 관한 법`을 제정한 것이었다.

이 법 이전까지 로마에서 간통죄는 사적인 영역이고 국가가 간섭하지 않았으나 이 법을 계기로 정식 혼인관계 외의 혼외정사가 금지됐다. 간통과 혼외정사, 동성애가 극에 달했던 사회풍조에서 정식 시민권자의 탄생을 강제하기 위한 일종의 가두리였다.

`정식혼인법`도 이때 만들어졌다. 25~60세의 남자와 20~50세의 여자는 결혼하지 않으면 `독신의 불이익`을 받고 60세 이상의 남자와 젊은 여성간의 결혼처럼 규정연령을 벗어난 혼인의 경우 남편 사망 시 아내의 유산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독신의 불이익`은 주로 재산상의 불이익이었고 효과는 직접적이었다.

독신여성은 50세가 넘으면 어떤 상속권도 인정받지 못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보유할 수 없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가진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을 경우 수입의 1%를 독신세로 국가에 바쳐야 했는데 결혼해서 셋째를 낳아야 겨우 면제가 됐다.

공직 진출, 원로원 의석 취득 등 공직 선출에서 획득한 표가 같을 경우 독신자보다 기혼자, 기혼자 중에서도 자녀를 가진 사람, 자녀를 가진 사람 중에서도 더 많은 자녀를 가진 사람이 우선권을 가졌다. 자녀를 셋 이상 낳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경제적 지위를 획득했다.

오늘날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초강경 급진책을 쓰자고 했다가는 몰매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존립기반을 위협하고 있는 `저출산` 혹은 `노(NO)출산` 풍조는 어설픈 당근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와 있다.

지난 40년간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구조는 그대로인 채 가정과 육아, 일과 직장, 교육과 재테크까지 5~6중의 책임을 떠맡았다. 하나만 낳거나 아예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은 이 같은 불공평하고 부당한 사회에 대한 여성들 나름의 생존책이자 복수다.

그 억울함과 고단함이 오죽했으면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는 `이기적 유전자론`이 무색하게 스스로 `대(代)를 끊는` 장렬함으로 맞서겠는가.

이제 저출산 대책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과 더불어 먹고살 만한 계층, 혜택받은 계층, 부유한 계층, 사회지도층에 대해서는 재산상, 혹은 공직 선출 상의 불이익을 주는 `채찍`이 병행돼야 한다. 혜택받은 계층이 사회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책무마저 방기하고 있는 탓이다. 혜택받은 계층에 만연한, 모든 것을 다 갖고도 마지막 한 가지를 위해 원정출산을 감행하는 식의 극도의 개인주의를 봉쇄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 시민권자의 점진적 소멸은 막을 수 없는 파국이다.

[채경옥 뉴스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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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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