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천신이라는 소설은 판타지 소설이다..
그런데, 김강현이라는 작가의 소설답게 이 판타지 소설 또한 뭔가 심상찮은 기미가 엿보인다. 아무래도 망상무협이란 장르를 개척했으니 이번에는 망상 판타지 영역도 개척해볼려는 시범작으로 보인다고나 할까..
초반만 해도 별로 그런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바가 없잖아 있었는데, 중반을 넘어가고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되면서 부터 주인공을 둘러싼 비밀과 그 뒷배경이랄까 설정들이 어느 한계선을 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뭐..신이 될 수 있는 자격을 판단하겠다는데, 고작 열번의 인생으로 땡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1천번의 생사를 반복하고 시련을 극복할 정도는 되어야 그럴 듯 하다 싶긴하다만, 정작 문제는 독자가 그걸 실감하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지 않겠냐는 거거든..그러니, 애초에 방향을 잡으려면 이쪽으로 잡지 말고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다른 방향으로 잡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 내 생각인 것이다.
하기사, 간혹 보면 책을 읽을 때 이미지화하거나 해서 실감을 얻기보단 활자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들에게라면야 별 상관 없긴 하겠다..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그런 연유로 해서 난 이 천신이라는 소설 역시 망상소설이라 명명하는데에 주저하지 않겠다.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에 대해서 언급해 보겠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수의 숲 길잡이인 레이엘은 어느 날 카라미스 공작가의 마법사 사라 로부터 영애인 제니아와 그녀의 기사단을 마수의 숲에 있는 유적까지 인도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된다.
의뢰를 받아들여 유적까지 데려다 주지만, 중간중간 발생한 반목과 마수의 숲이 주는 공포 때문에 기사단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기사단 대부분은 전멸, 제니아와 사라를 비롯한 병사 몇명만이 레이엘과 함께 무사히 빠져나오게 된다.
그것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난 듯 보였으나,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사라와 함께 도망친 제니아를 우연찮게 구해주게 되고 그녀들에게서 자신에겐 없는 빛을 발견하게 된 레이엘은 그 빛의 매력에 홀린 것인지 가지고 싶다는 욕구 때문인지 그녀들을 공작가 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다.
카라미스 공작가에 도착한 제니아는 이복오빠이자 현 카라미스 공작인 세이드에게 자신의 공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 보상으로 아무도 찾지않는 불모지이자 마수의 숲과 인접해 있는 영지, 발터스를 할양받아 내려오게 된다.
중간에 암살하려는 시도를 뿌리치고 영지에 도착한 레이엘 일행은 몇년째 자리잡아 발터스를 말아먹고 있던 흑마법사 크로우와 메디안, 그리고 자칭 영주대리 레킨을 처단한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데스나이트가 될 뻔한 병사 100명을 구해주고, 그 동안 레킨이 착복했던 수 많은 돈을 모조리 빼앗아 그 돈으로 영지민을 살리며, 다른 영지에게 털릴까봐 쉬쉬하고 있던 철광산을 개발하는 등 조금늦게 합류한 사라의 스승 바이런과 함께 영지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발터스 영지의 특징은 일단 개간이 불가능한 마수의 숲과 인접해 있다는 것도 있지만, 이 숲이 뺏어가는 지력 때문에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때문에 농작물과 곡식류는 수입해 먹을 수 밖에 없는데, 다른 영지에서 넘어오기 힘들게 중간엔 구름산맥이 경계를 치고 있고, 그 곳에는 블러디 울프라는 흉악한 마적단이 도사리고 있어 여지껏 빈곤한 영지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것인데, 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해 철광산을 개발하고, 레이엘의 능력으로 블러디 울프 마적단을 쓸어버려 방해물들을 제거해 버린 이후에는 많은 영지에서 노리는 금싸라기 영지로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이에 영지수호의 필요성을 인식한 레이엘에 의해 데스나이트가 될 뻔하여 약간 이지가 상실되었던 병사 100명은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 보통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는 고강도의 하드 트레이닝을 받게되고, 덕분에 짧은시간 내에 오라를 펼칠 수 있는 일당백의 무적병사로 키워지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인접해 있던 중소 영지들이 연합하여 금싸라기 땅을 먹을려고 쳐들어오게 되지만, 그 동안 훈련시켰던 100명의 병사들과 영지민의 협력으로 소영주 및 영주를 포획하게 되고, 그들로 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조금씩 넘겨받아 땅을 더 넓히게 되고, 이어서 신뢰의 용병 부르터, 정직한 상인 클레인, 치료사 아이린, 암살자 마크 등의 인재들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더욱 큰 영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던 중 과거 시도했던 유적탐사 덕분에 마수의 숲에 마나스톤 광산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카라미스 공작가에서는 은밀히 소문을 흘려 살린왕국과 하야스 왕국이 크롬왕국을 침입하도록 만들고, 발터스 영지의 레이엘과 무적병사 100명도 명에 따라 왕국군에 합류하여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카라미스 공작가의 버베인의 수작으로 패배할 뻔 했던 이 전쟁의 승패를 레이엘과 백명의 병사들이 뒤집어 버리는 혁혁한 공을 세움으로써 각기 준남작과 기사로 승급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발터스로 복귀하기 전, 수도의 거리를 걷던 레이엘은 이제까지 보지못했던 엄청난 빛을 보게 되고, 그 빛을 따라 들어간 빈민가에서 다 죽어가는 소녀 엘린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발터스 영지로 데려오게 된다.
한편 카라미스 공작가에서는 생각했던 대로 일이 안풀리자, 살린왕국과 하야스 왕국의 투자를 전쟁보상금으로 받게하여 삼국이 힘을 합쳐 마수의 숲을 개간하는 걸로 계획을 바꾸고, 그 계획을 역이용하면서 한창 성장 중이던 발터스 영지는 급속도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후는 생략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보니 뭐랄까 좀 지겹다.
뭔가 넓은 강줄기처럼 막힘없이 쭉쭉 흐르는 게 아니라 물이 흐르다 고이거나 돌에 부딪혀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재밌게 읽어나가기가 상대적으로 힘들었다는 느낌이었다.
초반에만 해도 그정도는 아니었는데, 전쟁 발발부터 막 지겨워지기 시작하더니 마수의 숲 개간에 돌입하면서 부터는 지겨움 + 망상 + 불가해의 내용까지 더해져 도대체가 이해하면서 읽어나가기 쉽지가 않더라..
뭔가 책을 읽으면 그 활자들이 만들어 낸 영상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라야 하는데, 이건 도대체 꿈처럼 경계가 불분명해서 흩날리는 연기마냥 명확하게 와닿지가 않더란 말이지..
이해도 안되고, 그림도 그려지지 않고, 그렇다고 느낌이 명확하게 와닿는 것도 아니고.. 꼭 잠잘 때 꾸는 꿈처럼 검은안개에 휩싸인 듯한 그런 느낌만 계속 남았다.
한마디로 지지부진하는게 딱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답답하더란 거다..
게다가 엘린이라는 캐릭터 말하는 것도 당최 정이 안가고..
특히 케르테르의 왕과 싸운 후 나누는 대화를 보면 마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를 보는 것처럼 상당히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더라..
아마도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대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그렇게 잃어간 기억만큼 이야기 속의 세상은 풍요로워지며, 그렇게 기억을 기억을 잃은 자는 버리고 또 다시 기억을 제공해 줄 사람을 찾아 불러들인다는 끝없는 이야기 속 내용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문제는 이게 좀.. 뭐랄까? 작가가 상상하고 있고,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바가 최대한 온전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느껴졌다는 문제라면 문제랄까..
어떻게 보면 이 것도 필력이라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실체는 호접몽이었는데, 그 내용을 읽고 받은 독자의 느낌은 '에트레유와 팔콘'이라면 당최 계산이 안맞는 것이다.
물론 세세한 것은 다르지만, 받은 느낌이 그러했다..
또, 지난 번에 읽었던 '퍼스트맨'에 보면 제니아 여신이 세상을 관장할 만큼 강력한 여신인 이유가 바로 마왕을 봉인했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마왕을 봉인했기 때문에 그 여신을 믿는 신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그 늘어난 신도만큼 제니아 여신의 힘도 강력해졌다는 것이 이 직가가 생각하는 신의 설정인 것이다..
즉, 자신을 향한 믿음의 수와 질이 그 신의 힘과 지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이비 교주를 믿는 광신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이비 교주의 뱃대지는 더욱 불러지는 것과 같은 양상일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생각이 이 '천신' 에서도 나온다.
레이엘은 사람들에게서 빛을 본다..
그 빛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그 빛을 갖고 싶은 욕망에 몸부림 치기도 했지만, 결국 그 빛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그리고 왜 그 빛을 계속 원했었는지 레이엘은 깨닫게 된다.
그 빛의 정체는 신뢰와 믿음이었다.
자신을 향한 믿음.. 그 믿음과 신뢰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빛이 되고, 신성력이 되어 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7권의 전직 치료사이자 현직 레이엘 교 성녀인 아이린과 전직 살린왕국 가사이자 현직 레이엘 교 성기사인 딕 덕분에 밝혀지게 된다. 신성력이 앵꼬나도 '오! 레이엘이시여' 하고 외치면 다시 만땅 찬다는 대목에선 '진짜 신 맞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그리고, 더욱 많은 이들이 레이엘을 믿으면서 그 빛은 더욱더 찬란해지고, 더욱 큰 힘을 발하게 된다.
결국 이 책의 제목이 '천신'인 이유는 한 선택받은 인간이 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이며, 전편의 마신이나 뇌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급의 인간'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 '신'이 된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레이엘이라는 '신의 파편'을 가진 인간이 시련을 극복하고 인간이 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며, 그 시련이란 1천번의 호접몽이고, 그 꿈이 주는 인생무상의 허무, 죽음에 대한 공포, 끝없이 사는 듯한 피곤함 등등의 마이너스적인 감정들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들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이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지만, 만약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동쪽으로'- 도대체 누가 이 말을 속삭여 주는 건진 모르겠지만..- 라는 소리에 이끌려 마수의 숲으로 들어가게 된 이들은 마수가 되는 걸로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설정으로 자리잡고 있는 뼈대이다.
이렇게 현재 내가 읽은 것은 8권까지인데, 안타깝게도 이 이상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좀 지겨워서 그냥 '이대로 멈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게 이유이다..
남은 2권을 마저 읽어야 할지 그냥 여기서 쫑내고 개운함을 맛봐야 할지 상당히 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권수인지라 지금 갈등을 때리고 있긴 한데...흠
어쨋든 일단 여기까지 진행한 결과로만 봤을 땐 50점 정도의 소설처럼 보인다.
그것도 소재의 참신함과 초반부의 재미를 높이 산 점수덕분이다만..
남은 권수에서도 만약 재미가 없다면 40점..아니 30점정도 쳐줄 생각이다.. 물론 재미가 없다면 말이다..ㅋ
p.s
일단은 여기서 멈추고 다음에 내킬 때 마저 읽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후 추가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그 때 마저 다 읽고 추가토록 하고, 오늘은 이걸로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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