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십지신마록> 3부작
무협소설 <십전제> 전10권(완)
무협소설 <파멸왕> 전10권(완)
환영무인은 우각이라는 작가가 쓴 십지신마록 3부작 중 2부이며, 1부 십전제와 3부 파멸왕의 외전 격인 소설이다.
배경이 되는 시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적으로는 십전제보다 대략 700년정도 앞서는 걸로 되어있으며, 읽어보면 알겠지만 십전제의 후속편이 파멸왕이고 이 십전제와 파멸왕의 배경설명을 위한 대부분의 설정과 소재들에 대한 설명 및 해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바로 환영무인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서, 작가가 지정한 순서대로 십전제 - 환영무인 -파멸왕 순으로 읽어도 상관은 없겠으나, 내 개인적으로는 가급적 환영무인 - 십전제 - 파멸왕 순으로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이 환영무인이라는 소설은 탐욕에 찌든 중원무림인들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과 국가와 민족을 잃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중원무림에 나왔으나, 자신의 정의와 달라 함께했던 친구 및 동료들과도 헤어져 홀로 은둔하고 있던 환사영이라는 인물이 원래의 목적을 잊고 마인이 되어 온 세상을 피로 물들이려는 옛 친구 및 동료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어찌보면 상당히 감성적인 면이 두드러진 구무협에 가까운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천산에 '나란' 이라는 인구 5만정도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중원에서 습격해 온 무림인들에 의해 그 나란이라는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나란'에는 소운천과 환사영이라는 이름의 대장과 그 들을 따르는 약 200명 가량의 막강한 병사들이 존재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없는 틈을 타 습격해 와서는 나라와 가족들을 멸망시킨 무도한 중원인들에게 피의 복수를 할 것을 맹세하고 중원으로 나오자 마자 천상예가를 멸망시켜 버린다.
하지만, 죄 없는 이들을 멸망시켜 버린 것 때문에 회의를 느낀 환사영은 소운천 및 그를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걸을 것을 포기하고, 상유촌이라는 산골벽지에 은둔해 버린다.
상유촌은 그 옛날 나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 간의 정이 충만한 곳이었고, 그 곳에서 환사영은 한청이라는 의형과 백수경이라는 의제를 사귀며 그렇게 세상을 잊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유촌의 철광산에서 붉은서기를 발하는 금색의 신기한 광석이 나오게 되고, 금장혈괴라 이름 붙여진 이 금속으로 만든 단검이 무림에 풀리면서 상유촌엔 무림인들이 찾아오게 된다.
상유촌에 온 무림인은 신주오기의 일원으로 알려진 당천위(후에 독황)와 이름을 알 필요도 없는 엑스트라 노괴 하나, 그리고 과거 천상예가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현재 남황의 4번째 제자로 알려져 있는 천하제일미 예운향(후에 빙마후)이었다.
당천위의 선동질에 의해 무림인들은 마을사람들은 억압하기 시작하는데, 마을 사람들을 구할려다 한청은 쫓기게 되고, 그런 한청을 구하기 위해 결국 환사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궁지에 몰린 한청을 구하고 당천위를 쫓아내는 과정에서 예운향은 금장혈괴에 상처를 입게되고, 내공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큰 피해를 가져다 주는 금장혈괴만의 특이한 속성을 억제하기 위해 환사영은 예운향에게 우선조치로 빙정을 삼키게 한다. 환사영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멸망하게 된 천상예가의 마지막 생존자 예운향을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북해빙궁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빙정을 삼켰을 경우 얼음으로 화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100일, 그 시간 안에 예운향을 북해빙궁으로 데려가서 심공을 익히게 해야한다. 이를 위해 환사영은 한청과 함께 상유촌을 나서지만, 예운향을 위해 은둔까지 풀고 무림출도를 결심한 환사영의 행동은 소운천과 나란병사들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이후 그들과의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심화되기만 한다.
이후는 생략..
차후 십전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환영무인에서는 십전제에서 언급되었던 거의 대부분의 설정들이 언급되고 있다.
금장혈괴가 무엇인지.. 어떻게 천마는 죽지않을 수 있는 것이며, 도대체 누가 왜 그를 봉인시킬 수 있었던 건지..
또, 전설에서 말하는 십대초인과 십천지난이란 대관절 무엇이며, 구주천가는 누가 왜 그곳에다 세웠던 건지..
구주천가의 삼대 봉신가는 어떻게 생성된 관계이며, 구주천가의 핏줄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금지와 그 속의 탑과 무공의 연유는 어떻게 하여 탄생하게 된 건지.. 멸혼관 속에 일마와 일영이 싸우면서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했는데, 그 속엔 어떤 사연에 의한 것이고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건지..와 같은 궁금증들을 이 환영무인에서 대부분 해소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십대초인보다 우위에 있었다던 일마와 일영은 대관절 누구였으며, 어떤 관계에 있던 자들이었는지도 말이다.
일마와 일영..
천마 소운천을 가리키는 '일마'와 환영류 환사영을 지칭하는 '일영'의 관계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모르는 사람 100명을 더 아낄 것인가 아니면 모르는 사람 100명 보단 아는 사람 1명을 더 소중히 여길 것인가 와 같은 건 옛날부터 이어져 왔던 풀리지 않는 딜레마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사태를 바라보느냐 뜨거운 감성으로 사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들이 추구하는 정의의 개념도 달라지게 되며, 이 건 누가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가 상당히 난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처럼 단순히 적과 아를 나누는 차원이 아닌, 친구, 라이벌, 애증, 피해자와 가해자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있는 관계에서 누가 정의이고 누가 부정인가 모호한 관계가 바로 이들 둘의 관계인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선 어느 쪽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데엔 큰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공과격의 저울추가 확실하게 한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히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보건데, 무엇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둘은 어느 쪽도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 동류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환영무인의 주인공인 환사영은 외유내강한 인물이다.
천마 소운천이 전형적인 외강내유형인 것과는 반대다.
그래서, 소운천이 절망하고 분노한 나머지 정신줄을 놓고 폭주하기 시작했을 때도 환사영은 뜨거운 가슴을 냉철한 이성으로 억누르고, 자신의 정의와 신념에 따라 다른 길을 걸은 것이다.
그리고, 이후 천마가 마의 속성에 스스로를 물들이고 환사영을 죽임으로써 완전히 인간임을 거부하기 위해 노력할 때에도 환사영은 아픈마음을 추스리면서 까지 예전의 동료들을 베고 천마를 막기위해 한발한발 다가섰던 것이다.
이처럼 둘의 성향은 완전히 반대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환사영보다 강한 듯 보이면서도 사실은 유리조각처럼 약하고 깨지기 쉬운 소운천에게 더 신경이 쓰였었다. 소운천을 동정했고, 소운천의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원래 마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마를 택한 소운천..
스스로도 어쩌질 못하고 환사영이 막아주길 바랬던..폭주하고 만 천마 소운천과 그의 부하들..
그래서, 결국은 세상의 정화를 위해 갈아엎어버리겠다고 마음 먹은 불쌍한 소운천..
분명히 책 속의 환사영이 정의이고, 소운천은 불의.. 환사영은 선이고, 소운천은 마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운천의 그러한 선택조차 안타깝기 그지 없게 느껴졌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나중에 파멸왕에서 확실히 와닿게 된다.)
뭐..그렇다고 해서 상유촌을 쓸어버린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처럼 환영무인은 같은 친구였고, 같은 동료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립할 수 밖에 없게 된 환사영과 소운천 및 그를 위시한 구유마전단의 어떻게 보면 가슴아픈 사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십전제와 파멸왕이 주인공 1인의 독주체제와 캐릭터성에 따라 주변환경 및 흐름을 좌지우지 해버리는 식의 진행이라면 이 환영무인은 환사영과 소운천의 대립에 남황이라는 공통의 적을 끼워넣은 삼각구도 형식을 취하고 있어 훨씬 복잡하면서도 다이나믹한 내용상의 재미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최근에 읽어보게 된 책 중에선 거의 A급에 속하는 소설이라 생각되며, 중견작가가 아닌 탓에 군데군데 다른 소설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런 건 적당히 무시하고 읽어나갈 수 있을만큼 재밌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먼저 천마의 권능부터 보면 천마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북천빙궁의 조화신패에서 나온 심득으로 불사지체를 이뤘다고 해도 그게 천마의 권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책 속의 천마는 목소리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빼앗을 수 있고, 다른사람의 몸에 자신의 혼을 채울 수 있으며, 다른사람의 기억을 읽어 들일 수도 있다고 하니 그게 좀 너무 막연하달까 대충이랄까 납득할 만한 설명이 안 나와 있는 게 좀 그랬다.
또, 남황의 최후도 마찬가지다.
성격 좋은 환사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천마 소운천의 분노는 전 중원을 아주 나락으로 떨어뜨리겠다고 맹세하고 스스로가 천마로 화할 만큼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었는데, 막상 남황을 만나서는 그런 분노에 비해 너무 쉽게 처치한 게 아닌가 싶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서 천마가 되었고 남황을 만났다면 10년이고, 20년이고 30년이고 간에 목에다 개목걸이 채우고 질질 끌고 다니면서 중원을 갈아마시는 그 과정을 아주 영혼에 새기게 해줄텐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대체 내가 소운천이보다 더 마에 가까운 건지 아니면 소운천이의 분노가 약했던 건지..원
마지막으로 십천지난이같이 십전제를 읽을 당시 느꼈던 과거의 전설들의 실제 모습이 너무나도 미비하고 단순하며 허무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원래 전설이란 게 다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십천지난이나 마도천하, 십대초인 기타 등등을 언급할 때 엄청난 줄 알았었다. 특히 역천의 시대가 어쩌고 저쩌고 과거에는 천문이 지금과는 달리 열려있었기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당시엔 수준자체가 아예 등급을 달리했었다고 그렇게 감을 잡았었더랬다..
그랬었는데, 실제로 알고보니 철천지 원수였다던 권패와 독황의 관계는 아주 짧디짧은 한두번의 대치에 불과했을 뿐이고, 불영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불영 명등은 찌질이에 불과했으며, 빙마후가 감정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마지막까지 쓰길 꺼려했다는 고금제일의 빙공이라는 천빙요결도 사실 알고보면 북해에서 옛다하고 건네 줄 정도의 고금제일이 아니라 북해제일에 불과한 정도인데다 그걸 익혀서 감정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막판에 원정까지 소모할 정도로 폭주하는 바람에 마녀가 되었을 뿐, 익히기만 하면 정상적인 사람까지 무조건 빙마녀로 만들만큼 무공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 건 아니라는 점 등이 '에이..알고보니 좀 시시하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 밖에도 십천지난이라고 하길래 뭔 십대초인들이 편을 나눠 치고받는 모습이 마치 스파 vs 캡콤 같은 식으로 초인들끼리 천지가 번복할 정도의 투쟁을 겨루고 그 여파로 절벽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갈라지며 용권풍이 불어닥치고 하늘에선 폭풍우와 벼락이 쉴새 없이 떨어지는 그런 장면을 연상했었었는데, 알고보니 그냥 적의 일개대를 막아 싸운 것에 불과했다.. 라는 거나, 혹은 천하육주의 시대가 가고 십대초인들이 마구 등장할 줄 알았더니만 알고보니 천하육주(남황/만악, 살왕, 풍객, 불영, 목마, 천병 ) + 신진 4명(뇌검, 독황, 권패, 빙마후)이며, 그 들 중 서로 싸운 건 권패와 독황, 빙마후와 살왕, 불영과 독황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게 십전제에서 언급했던 전설과는 좀 괴리감이 있었었다.
게다가 불영이 친우의 등에 배신의 칼날을 꽂았다느니 십대초인들이 동시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후인들 중에 십대초인과 십천지난을 기억하는 이가 없게 된 것이라느니 하는데, 그건 당최 어디서 나온 말인지도 모를 지경인 상태고..
마지막으로 십전제의 끝에 천마가 진유명으로 부활하길 기다렸던 무해주 금씨의 시조가 금시현이라는 부분을 언급하기 위해 환영무인에 금시현의 내용을 언급한 것은 괜찮았으나, 안타깝게 너무 마지막에 잠깐 나왔기에 그렇게나 천마에게 충성했다는 느낌은 전혀 안났다는 게 아쉬웠다.
차라리 백영의 실제 이름이 금시현이었다거나 또는 천마와 백팔마장들이 만든 마해에 가입한 외부인사 중 금시현이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으며, 백영과 함께 왼팔과도 같은 존재였다는 식으로 설정했다면 더 그럴 듯 했을텐데, 금시현도 애초에 나란인이었다고 하니 어째서 같은 나란인에 충성스럽기 까지 한 금시현의 존재와 이름이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고 막판에 가서야 살짝 나오다 마는가 라는 의문이 저절로 들더란 거지..
이처럼 천마의 권능이나 남황의 최후 또는 전편 십전제에서 나왔던 십천지난의 실제모습 등등의 몇가지 설정들이 다소 기대에 못미칠 정도로 부실했다는 것..
이는 아마도 전편 십전제를 탈고한 후, 십전제에서 언급했던 매력적인 소재나 배경들을 빠짐없이 다루긴 다뤄야 겠는데, 이미 가닥이 잡혀있는 것들을 토대로 이야기의 뼈를 잇고 그 위에 살을 붙일려다 보니 생각만큼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았던 거겠지..
가령 독황과 권패를 철천지 원수로 설정해 뒀다면 그 들의 어린시절부터 연신 치고받는 등의 투쟁을 크고 장황하게 다뤄야 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환사영과 소운천 사이의 접점이 없는 관계로 매끄러운 진행이 어려웠을 테고 말이다.
독황 vs 권패 이야기 뿐만 아니라, 십천지난이나 예운향의 천빙요결에 대한 것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 정도는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 생각하고 무시해도 좋겠다.
단지, 저런 것들까지 더해졌다면 더욱 좋았겠다 라는 아주 하찮은 투정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사실 저게 없어도 이미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불만은 솔직히 사치에 불과할테지..ㅋ
그리고, 십전제와 파멸왕에서 확실하게 불평불만을 터뜨려 줄 생각이기 때문에 환영무인은 그냥 패스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환영무인'..
읽을만한 책이라는 거다.
p.s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소설에는 여타 무협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천마라는 존재가 어떻게 하여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그 천마와 이 천마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지만, 원래 천마라는 이름과 개념 자체가 만국(?)공통의 개념이기 때문에 이 책 속의 설정을 기존의 다른 천마에 대입시켜 보는 재미도 제법 쏠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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