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십지신마록> 3부작
무협소설 <환영무인> 전12권(완)
무협소설 <십전제> 전10권(완)

우각이 지은 십지십마록 3부작의 마지막 '파멸왕' 초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천하제일인 관철악이 건네 준 삼원신패의 뜻에 따라 어린 철군패는 고생고생하면서 대막까지 가 일정기간 거주한 다음 15세의 나이로 천산에 도착한다.
원래 목적은 천산에 남겨져 있는 환사영의 유물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미 그 장소엔 새외무림의 하나인 혈뢰사원이 자리잡고 있는 상태였다. 혈뢰사원은 십이사조에게 복속당한 이후 천산 고산족에 존재하는 '멸제의 전설'을 파해치기 위해 고산족을 탄압하고 있었고, 이에 철군패는 환사영의 유적으로 들어갈 기회를 엿보기 위해 일부러 잡혀 설렁설렁 노역을 하다가 유적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뛰어든다.

그 곳은 환영 환사영과 파검 한청, 광도 연성휘, 빙후 예운향이 말년에 은거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었으며, 빙후의 천빙요결을 제외한 나머지 3인의 말년심득이 남겨져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철군패는 천마 소운천의 불사지체를 깨뜨리기 위해 환영 환사영이 새롭게 창안한 파멸력이라는 무공을 얻게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최소한의 성과를 얻어 무림에 출도하게 되지만 그 때는 벌써 그로부터 13년이나 지난 시점이었으며, 세상은 중원의 구주천가와 대립하는 반천련이라는 조직과 중원으로 들어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새외의 강자 12사조, 그리고, 아직 출도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부활하여 세상을 피로 물들이기 위해 열심히 스텝밟고 있는 천마 소운천과 마해가 존재하던 폭발 직전의 어지럽기 짝이 없는 혼돈의 시기였었다.

이런 시기에 무림에 출도한 철군패는 우선 고산족에 자리잡고 있던 혈뢰사원 분타와 본거지에 쳐들어가 파멸력을 운용해 놈들의 씨알을 말려버리고 의형 설유원을 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멸제의 전설'을 외치는 고산족에 의해 멸제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어서 의형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서천환희궁으로 갔다가 그 곳을 장악하고 있던 12사조 담천월까지 박살을 내버린 후 세상은 멸제 철군패 라는 광오한 이름에 주목하게 된다.

이 후는 생략..

 
그런데, 이 파멸왕을 다 읽고 난 다음의 느낌은 ..글쎄 뭐랄까..
그냥 잡탕찌개 같은 느낌..?
아니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소재들을 대충 허겁지겁 모아서 대~충 마무리 지은 듯한 느낌..?
분명 십전제에서 폭풍전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에 맞는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소재만 가지고 어거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다 보니 찰지게 쫀득쫀득하지 않고 막 부스러지는 푸석푸석한 스폰지 같은 느낌..?
그런 부실하기 짝이 없는 느낌을 마구 발산하는 소설이 바로 이 파멸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파멸력이라는 별 희한한 기의 설정도 그렇고, 그런 무지막지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위력은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점도 그렇다.
그렇다고 무공실력이 좋길 하나, 주인공이 전편 십전제 천우진처럼 캐릭터성이 강하길 하나, 결국 막판엔 턱없이 모자란 주인공을 위해 전편 주인공께서 몸소 행차하셔선 쩌리 하나 처리해 주신데다, 철군패의 성장까지 책임져 주실만큼 주인공이 너무 부실했다. 더욱이 전편 십전제에 이어서 나온 만큼 바로 비교가 되어서 그런지 더더욱 한심해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적들도 너무 중구난방이다. 뭔가 일체감도 없고, 집중되는 느낌도 없고, 전부 따로 놀더라.
한마디로 좋은 점은 별로 없고, 나쁜 점만 많아보이는 그런저런 수준의 책이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다 싶었던 건 천마 소운천의 마지막이었다.
진짜 뭐랄까.. 풍선을 불고 불고 막 불어 양껏 키워놓고 막판에 바늘로 콕 찔러 빵하고 터뜨린 느낌..?
그래서, 바람빠지고 쭈글탱으로 변해버린 고무껍데기를 보며 허탈해하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진짜 허무하기 짝이 없는 막판을 보여주었다.

천마 소운천의 진심을 밝힌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막판에 소운천이 보았냐고,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 부분은 괜찮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가 700년동안 느꼈던 슬픔의 정체, 마를 선택한 이유, 그리고, 불사지체가 된 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이며, 비인으로 들어선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자기희생과도 같은 것이었음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았던 건 바로 그 부분 뿐, 실제 싸움은 너무나도 허망했다.
십전제에서 보여줬던 마신과 마수의 싸움까진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래도, 철군패라는 이미지에 맞게 거인과 마신같은.. 어느 정도는 신화시대를 방불케할 만큼의 천지가 개벽하는 싸움이 묘사되길 바랬었다.
그런데, 실제 싸움은 콕 찌르면 빵하고 터져버리는 풍선거인과 바람불면 싹 씻겨날아가는 거품마신, 연기마신의 싸움같이 너무나도 허무하기 짝이 없는 전투였다는 게 제일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그 밖에도 거슬리는 것들 몇가지를 추가해 보자면..

1.. 무영문을 마구 쥐고 흔들려는 구주천가를 보고 솔직히 철군패가 아주 혼쭐을 내주길 기대했다. 그래서, 고명희를 구해주길 기대했다. 그만큼 구주천가의 온유하와 그 일당들 하는 짓이 더럽더라..
물론 그게 힘을 가진 자의 속성이고, 십전제 천우진이 했던 짓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될 정도의 압박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파멸왕의 주인공은 철군패라서 그런지 고명희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더라..
그래서, 철군패가 고명희를 도와 구주천가와 온유하를 박살내고 이에 대항하던 천우경까지 아작을 낸 다음, 이걸 단죄하기 위해 또 다시 등장한 천우진과 결전을 하는 식의 진행도 재밌겠다 싶었다. 물론 막판에 가선 둘이 다른 이유로 싸우긴 하더라마는..

2.. 남봉황 해여령과 소운천의 로맨스는 솔직히 무리수랄까.. 아무튼 좀 별로였다.
천마 폭주의 원인으로 삼기위해 집어넣은 건지 어떤진 모르겠지만, 별로 공감이 안가더라..
기분은 한순간에 바뀔 수 있지만, 믿음은 그렇지 못하다.
믿음이란 절대 짧은 기간에 쌓아지는 게 아니란 거다.
때문에 만약 믿음이 한순간에 휙휙 바뀌어 버린다면 그건 애초에 믿질않았다는 증거겠지.
그런데, 해여령과 소운천의 사이엔 그런 믿음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게 좀 무리수같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아무튼 위와 같은 이런저런 요소들이 모이고 모여 파멸왕이라는 소설의 가치를 마구 떨어뜨리고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 이번엔 나름 괜찮은 부분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우선 북풍대..
실제론 배운 게 백병도 뿐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나란의 군대가 있었다면 저랬겠구나 라는 느낌의 소수정예 최강 군대가 탄생했다는 게 여전히 현실성은 없지만, 그래도 멋있게는 느껴졌다는 거..

그리고, 종제영이 기련산에서 천우진과 서노인을 찾은 순간의 그 상황묘사는 나에게 상당한 설레임과 묘한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는 거..

그리고..또...또.. 음..또
없군..;;;
없네..;;;;
없다.. 이 외에는 별로 마음에 드는 요소가 없다..
아..굳이 하나 더 찾으라면 천마 소운천이 마지막 사라지기 전에 '보여주고 싶었다' 며 약간 심금을 울렸던 것..?

아..실망스럽다.
뭐 좋은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네..
이래서, 이 파멸왕은 실망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캐릭터, 소재의 활용, 이야기의 흐름, 상황묘사, 재미의 집중과 이완 등 뭣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십전제는 캐릭터가 제일 좋은 소설이었고, 환영무인은 이야기가 제일 좋은 소설이었으며, 파멸왕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소설이었다는 게 다 읽고 난 후의 총평이다.
볼 사람은 안 말리겠지만, 가급적이면 파멸왕 보질말길 권하겠다..
보면 십전제와 환영무인에서 느꼈던 호감의 최소 절반이 날아가 버릴테니 말이다.

아.. 물론 이건 다른 쓰레기 양판소 무협소설과 같은수준의 쓰레기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 것.
어디까지나 이건 전편이었던 십전제나 외전이었던 환영문인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소리이니 말이다.
(그래도, 추천할거냐고 묻는다면 안한다 쪽이다.. 난)



p.s
솔직히 단월(고명희)가 쫓기다가 철군패에게 구원받고 뒤에서 보디가드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나는 그 동안 고명희를 괴롭혔던 온유하와 천유경을 박살내놓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천우진이 나오게 되고 그런 천우진과 싸워 무승부를 내거나 어느 한쪽- 물론 가능하다면 천우진보다는 철군패가 이겨야겠지 -이 이기거나 하는 식으로 진행될 것을 기대도 했었다.
아무래도 성격도 그렇고 개념도 그렇고 명분도 그렇고, 또 정사 간 중간의 성격을 띈 구주천가보다는 환사영의 뒤를 이은 철군패가 마해의 천마 진유명과 12사조 둘다 쓸어버리는 게 결자해지라는 면에서도 더 그럴 듯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불사지체까지 소멸시켜 버릴 수 있다는 파멸력이라 해도 워낙에 천우진의 십야마정갑이 쎄고 사기급이라서 솔직히 위력 말고는 좀 허술한 듯 보이는 철군패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승리를 안겨주기도 좀 그렇고.. 그냥 무승부가 나을려나 싶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책의 진행쪽이 더 낫긴 나은 듯..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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