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77869
한국 학생은 불행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얼마 전엔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서남표 총장이 물러나면 끝날 것처럼 여론은 그를 비판했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고 정책 또한 크게 바뀌지 않았다. 사회는 금세 잠잠해졌다. 그 정책과 논리가 기실 카이스트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충실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다름아니었다. 그저 보다 노골적이었을 뿐이다.
여론은 카이스트라서 더 이야기했지만, 카이스트였기에 '영재반의 특수한 상황'인 것처럼 문제를 묻어버렸다. 그러나 그 '문제', 즉 교육을 '개인이 구매하는 사적 서비스'로 전락시킨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경쟁력'이라는 미명 하에 점점 교육과정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젠 초등학생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문제를 초중고등학교 각 과정에서 학생들이 겪는 성적경쟁 시스템인 '시험'을 통해 제기하고자 한다. 학교의 경쟁시스템은 소수의 승자독식과 다수의 피착취를 가르치는 매우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 안에서 아이들이 불행과 차별을 배우기에 한층 위험하다. 여기엔 국가와 정책의 부재도, 교사와 학부모의 잘못도 있다. 원인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실마리는 근원에서 시작한다. 바로 우리가 황금률처럼 안고 있는 경쟁에 대해 다시금 뼈저리게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다.
2010년 여성가족재단의 서울시 아동청소년안전 및 건강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겪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학업문제다. 초등학생 45%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대입을 앞둔 고3 학생의 스트레스가 두드러졌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학년에 상관없이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이번 조사의 결과다. 한편 불안장애와 우울장애가 각각 23%, 7%에 달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서울시 소아·청소년 역학조사).
서울 성북구에 소재한 한 초등학교 6학년 한 학급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과 인터뷰를 재구성해 아이들이 겪는 경쟁교육의 실상을 가늠해보고자 했다. 물론 이 아이들이 모든 초등학생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딱히 '극성'도 '무관심'도 아닌 어느 정도의 교육열을 가진 부모 아래 '나쁘지 않은' 성적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작업은, 그 삶에 따르는 사회의 요구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하지 않다.
한 달에 두세 번꼴로 시험 보려니 벅차다
6학년 민국이는 아침 7시쯤 일어난다.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부모님이 말한다. "좀 있으면 수학경시대회네? 저번에 중간고사에선 수학 두 개 틀렸지? 실수도 실력이야."
중간고사 성적은 평균 90점을 맞았지만 부모님은 두 개의 '실수'가 못내 아쉬운가 보다. 한두 개 차이로 옆집 아이와 점수가 달라지니 그런가. 부모님의 마음을 못 채운 민국이의 마음도 아쉽다.
8시 반, 교실로 들어선다. 오늘쯤이면 국어 3단원 막바지까지 진도가 나갈 것 같다. 곧 단원평가를 볼 거다. 서울지역 초등학생들은 올해부터 중간·기말고사 대신 국어·수학·사회·과학·영어 과목별로 1~3개 단원을 마칠 때마다 시험을 치르는 수시평가를 본다.
학교마다, 또 반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다. 민국이의 학교는 기말고사를 수시평가로 대체했다. 시험을 언제 볼지는 모른다. 4, 5학년 때까진 기말고사 직전에 공부를 많이 하면 됐는데, 한 달에 두세 번꼴로 시험을 보려니 벅차다.
단원평가가 끝나면 일제고사다. 전국 석차가 나온다니 무섭다. 자신보다 학원을 적게 다니는 옆집 아이가 점수를 잘 받으면, 이웃집 아이들이 다들 백 점을 맞고 자신만 하나 틀리면 큰일이다. 엄마들은 왜 동네 아이들의 성적에까지 민감할까.
수업이 끝나면 오후 2시다. 집에는 국어·한자·영어·수학 학습지가 기다리고 있다. 학습지는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레벨테스트를 한다. 6시엔 학원에 간다. 월·수·금은 영어고 화·목은 수학이다. 학원에선 일주일에 두세 번 레벨 테스트를 한다. 결과는 엄마의 휴대폰에 문자로 보내진다.
오늘 영단어 테스트도 그럴 거다. 스물다섯 개 중에서 세 개만 틀려도 바로 '귀하의 자녀님은 재시험을 봐야 합니다'는 문자가 간다. 학원에 가기 무섭기도 하다. 부모님 몰래 문자를 스팸처리하고 싶다. 한 친구는 시험 볼 때마다 부모님과 자기 휴대폰을 바꿔 가져간단다. 그래도 엄마들은 족집게처럼 다 안다. "요번에 시험 봤지? 요번엔 이 정도 했겠네?" 시험 횟수와 엄마의 채근은 비례한다.
차가운 엄마의 시선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 돈이 얼만데"
민국이는 7살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녔다. 주위 친구들도 대부분 영어·수학은 1, 2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3학년 쯤 되면 논술이나 한자·국어를 시작한다. 반 친구들 35명 중 34명이 학원이나 과외·학습지를 한다. 영·수는 필수다. 좀 많이 하면 전 과목 보습학원을 다니거나 한국사·세계사·중국어 과외까지 한다. 처음엔 영어 학원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점점 지겹다. 올해부터는 중학 교과도 공부해야 한다. 안 하면 뒤처진단다. 그래도 중학 수학은 너무 어렵다. 툭하면 시험지에 '소나기'가 온다.
요즘은 6학년 진도보다 중학 수학 공부를 따라가기 바쁘다. 놓치면 큰일이다. 과학 문제집은 한 번 쉬었다가 시기를 놓쳐 지금까지도 손을 못 대고 있다. 부모님 말처럼 돈을 썩히는 것 같아 죄책감도 들지만, 그렇다고 1백 페이지가 넘는 문제집을 당장 다 풀 수도 없다. 마음이 불편하다. 아주 가끔은 많이 틀린 시험지를 엄마 몰래 책상에 숨겨둔다. 그런 날은 잠이 잘 안 온다.
중학교 2학년인 누나는 "너 그렇게 공부 안 하면 나처럼 중학교 때 와서 후회한다. 미리 공부 안 하면 절대 못 따라가"라고 엄포를 놓는다. 짓궂은 형은 "그냥 같이 공장이나 가자"고 한단다. 탈락은 그렇게 두려움이 된다.
그만 하고 싶기도 하다. 어쨌든 시험 대비 문제를 푸니까 뒤처지진 않을 거라는 안전장치라는 생각에 마음을 돌린다. 사실은 엄마의 차가운 시선이 무섭다.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 돈이 얼만데…", "난 정말 네게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네가 그렇게 제대로 안 하니까…." 부모님의 한숨에 주눅이 든다.
공부가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피곤한 민국이
짝꿍 의정이는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꼼짝 않고 고모랑 전 과목 과외를 한다. 효자손으로 맞기도 한단다. 그래도 학원에서 눈치껏 딴 짓도 하고 끝나면 친구들이랑 간식도 사먹고 노는 자신이 낫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는 학교에서 0교시에 야간자율학습까지 시켜주고 있다고, 충북에 사는 큰고모가 말했다.
"학원이 없으니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시켜줘야지. 일제고사 보면 전국 성적 다 나오잖아. 얼마 전 작은고모가 고려대에 입학한 거 알지?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가고 취직 잘 하는 거야."
학원 끝나니 벌써 9시다.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잠깐 놀다 들어오니 10시다. 작년엔 그나마 체육학원에 다녀서 친구들과 축구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부모님이 올해 끊었다. "우리 엄마가 예비중학생 대비 학습 책을 읽고 와서는 6학년 쯤되면 고독도 필요하다고, 친구들 만나는 거 자제하래"라고 원우가 말했다. 친구들이랑 1시간 이상 노는 때도 한 주에 두 번 꼴로 줄었다. 그럴 땐 부모님이 서운하다.
앞자리의 송현이는 벌써 대학 걱정을 한다. 엄마가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라, 그 대학에 입학하면 학비를 감면받을 수 있단다.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 원이 넘는대. 학비 감면 받으면 좋잖아." 그러는 송현이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선우는 되고 싶은 게 없단다. "흥미 가는 분야는 있는데, 너무 잘 잘린대. 말 안 해." 사실 되고 싶은 건 많다. 거기에 '경쟁력'이라는 잣대가 꿈을 걸러낼 뿐이다.
공부가 딱히 싫은 건 아니다. 다만 피곤하다. 종종 시험을 아예 없앨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본다. 다들 시험 닥칠 때만 급하게 공부하는데, 시험을 많이 본다고 실력 향상이 되는 것 같진 않다. 예습을 좀 하고 나니 금세 11시다. 침대에 눕는다.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 적어도 늦잠을 자서 피로를 씻어낼 수는 있는 날이다 |
부모가 자식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게 내 잘되자고 이러는 거냐?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다"
그렇게 '자식을 위해서' 라고 말하며 애들에게 공부하기를 닥달하던데..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
진짜 자식을 위한다면 닥달하고 몰아세우고, 강요해서는 안되는 게 아닌가..?
간단하게 생각해서 애들에게 하기 싫다는 짓을 억지로 강요하고 닥달하는 것은 오히려 괴롭히는 것 밖에 더 되겠냐 싶은거다.
물론 왜 저런 상황이 발생하는지는 이제 나도 알고 너도 안다.
말로는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는 걸..
친척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이웃 간에 자랑하고 싶기 때문에 그런 자랑할 수 있는 자식으로 만들려고 하는 짓이라는 걸..
어릴 땐 공부하는 걸로, 나이 먹으면 좋은대학 들여보낸 걸로, 장성해서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걸로..결혼해서는 훌륭한 며느리나 사위를 본 걸로, 그리고 그들이 챙겨주는 대접으로..
그런 걸로 남들에게 연신 자랑할 수 있고, 우쭐대는 마음, 과시욕을 충족시켜줄 수 있으며, 정신적 물질적으로도 덕 볼 수 있는 그런 자식으로 키우기 위해 그렇게 돈을 투자해 가며 애들을 찌지고 볶아대는 것이라는 걸..
그런 참혹하기 짝이없는 진실을 이제 우리는 다 알고있는 것이다.
뭐..원한다면 그것도 좋겠지.. 나쁠 건 없다.
애들이 훌륭하게 자라 그 모든 것을 자연스레 얻을 수 있고, 애써 키워놓은 자식 덕을 톡톡히 보고 누리며 살 수 있다면, 그런 것도 나름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도 있을테니..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레 이루어져야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구 하나가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방법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애들에게 밥 먹일 때의 상황을 한번 떠올려 보자.
예를 들어 피망을 못 먹거나, 당근을 못 먹거나, 혹은 가지, 우엉을 못 먹는 또는 먹기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럼 그걸 안 먹는다고 야단치고 강제로 먹이는 것도 먹일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방법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나..
이럴 때 현명한 부모라면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로 둔갑시켜 같이 먹이거나 혹은 다른 조리법을 연구하여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맛을 아이에게 맛보게 하고 좋아하게끔 바꿔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면 굳이 안먹으면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투닥거리고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애들이 원해서 스스로 찾아먹게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현명한 부모라면..그리고, 자신이 진정 자신의 말처럼 '자식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기 싫다는 짓을 억지로 강요를 하거나 닥달하지 않고도 머리를 굴려 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거나, 분위기나 환경을 조율해 자율적으로 원해서 하게끔 만들어 주고 그것이 서서히 습관처럼 굳어지도록 하는 식으로.. 그렇게 서로 윈윈하는 방식을 채택하려 할 거란 말이다.
그렇게 서로서로 좋고, 어느 한쪽의 불행과 희생을 담보하지 않을 수 있을 때만이 그 자신의 말처럼 '너를 위해서~' 라는 말이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말로는 '너를 위해서' 라고 씨부리면서 정작 하는 행동은 '애들이 원하지 않는' 짓만 골라서 하는 건 진짜 '애를 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하는 것일 뿐이며, 그딴 식으로 무식하게 애들을 키워봐야 절대 반타작도 못할 거라는 걸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가서 눈물 콧물 질질짜면서 후회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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