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삼일절과 함께 폭주족들에게 가장 대목이다. 폭주족들은 이날이면 서울 종로와 강남 일대를 한 바퀴 도는 대대적인 폭주(일명 대폭)에 나선다.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 현재 100일 작전을 진행중이다. 서울지방경찰청 폭주족수사팀은 기존의 도로 위 검거 방식에서 벗어나 인터넷 추적과 비디오 채증을 통한 상시 검거로 작전을 바꿨다. 덕분에 올해 6월까지 경찰에 검거된 폭주족은 473명으로 지난해 전체 검거 인원인 308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단속법규도 강화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뉴라이트 계열 의원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게끔 법을 바꾸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는 언론 최초로 여자 폭주족들을 만났다. 현재 수도권에서 오토바이 폭주에 나서는 여자는 4~5명에 불과하다. 희소성 때문에 이들은 폭주족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존재다. 리더급 남자 폭주족만큼이나 교류의 폭이 넓은데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사교성으로 남자아이들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한창인 아이들이 왜 폭주에 나서게 됐고 이들이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상은 어떤지 들어봤다.


왜 타니?

“스트레스 풀다보니 중독…사람들 놀래키는 재미”

붙잡힌 적은?

무면허 운전…바이크 훔쳐타다 보호관찰 중이죠”

불법 아니니?

“우리만 신호 안 지키나요…할리족은 왜 안 잡죠?”

폭주족 왜 생길까?

“가정문제 제일 커…매질·처벌보다 타일러줬으면”

» 폭주족이라고 보기엔 앳된 얼굴의 고교 1년생 이진주, 이연진(왼쪽부터)양이 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찻집에서 폭주족의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하지만 시간관념이 약한 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수차례 연락 끝에 4일 오후 가까스로 약속을 잡았다. 4명을 만나기로 했지만, 약속 장소에는 2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여학생은 이연진, 최은혜(17), 이진주(16·모두 가명)양이었다. 고1이라는 연진, 진주양은 솜털이 뽀송뽀송한 앳된 얼굴이었지만 성인 여성도 소화하기 힘들 법한 높은 굽의 ‘킬힐’과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왔다.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은혜양은 전화로 인터뷰했다. 고2인 은혜양은 막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은혜, 연진양은 대학 진학을 위해 입시를 준비중이었고 진주양은 고교 졸업 후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오토바이를 탔나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탔어요. 사귀던 오빠가 짜봉(지휘봉) 잡는 폭주 리더였어요. 멋있어서 저도 오토바이를 사서 탔죠.”

“고등학교 때부터요. 남자친구가 오토바이를 타서 같이 타게 됐어요.”

“집이 음식점을 해서 배달 오토바이가 있었고,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오토바이를 탔어요.”

-오토바이 타면 어떤 점이 좋아요?

“바람이 시원해서 정말 좋아요. 스트레스가 완전히 없어져요.”

“빠르고 편리하잖아요. 오토바이 타면 500미터도 안 걷게 돼요. 아무리 막혀도 요리조리 빠져나가잖아요.”

-직접 폭주 뛰어봤어요?

“그럼요. 한때는 매일 폭주에 나갔죠. 폭주 그거 중독성 있어요. 안 나가면 답답해요.”

“폭주를 몇 번 구경은 해봤지만 직접 뛰어본 건 딱 한번이에요.”

-오토바이는 잘 타요?

“그럼요. 각기(지그재그 운전)도 치는데요.”

“벌써 경력이 3년인데요. 빽차(경찰차)는 가뿐하게 제끼죠.”

이들은 오토바이가 꽉 막힌 현실을 돌파하는 탈출구라고 했다. 하지만 2명은 이미 오토바이를 아예 팔아버린 상태였다. 진주양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은 사람을 여러 명 봤다고 했다. 모두 전과도 있었다.

-경찰에 잡힌 적도 있어요?

“7월초에 무면허 운전하다 잡혔어요. 보호관찰 중인데 경찰에 잡혀서 기소유예가 취소돼 재판에 갈 것 같아 걱정이에요.”

“작년에 폭주 뛰다 넘어졌어요. 완전 망신이었죠. 경찰차 타고 집에까지 왔어요.”

-잡히면 전과가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거 걱정하면 못 타요. 그리고 안 잡히면 되잖아요. 그래서 애들이 가면 쓰고 나와요. 마스크나 완모(눈만 뚫려 있는 모자) 쓰는 사람도 있어요. 이번 8·15 때도 얼굴 가리고들 나올 거예요.”

-전과는 있어요?

“특수절도 있어요. 오토바이를 친구랑 훔쳤다가 잡혀서 보호관찰 중이었는데 이번에 무면허로 또 잡힌 거예요.”

“폭행 전과 있어요. 폭주 구경 나온 여자애들을 폭행했어요. 저도 보호관찰 중이에요.”

-걸려서 집에서 야단 안 맞았어요?

“아버지하고 오빠한테 장난 아니게 맞았어요.”

“어머니가 조용하고 차분하게 타일렀어요. 그래서 지금은 안 타요.”

“맨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진짜 야단 많이 맞았죠. 하지만 지금은 그냥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세요.”

이들은 자신들을 폭주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남자아이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학생들은 대부분 남자아이들이 폭주를 뛰는 순간 자유와 스릴을 느낀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자신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의 표정을 즐기는 비뚤어진 우월심리도 있다고 귀띔했다.

» 폭주족 단속 실적
-남자애들은 폭주에 나서는 이유가 뭐라고 하나요?

“도로의 왕이 되는 거죠. 앞에서 차의 진행을 끊어주는 ‘칼받이’, 경찰 추적을 막는 ‘뒤카바’가 있죠. 우리가 뜨면 다른 차들은 못 가요. 그런 걸 즐기는 거죠.”

“전 반대인데요, 재미없었어요. 폭주에 딱 한 번 참가해봤는데 그날 한 명이 죽었어요. 역주행을 하다가 강남역 4거리에서 나오는 차와 정면충돌했죠. 그다음부터는 폭주에 안 나가요.”

-또 뭐가 즐겁다고 하던가요?

“또다른 재미는 사람들 놀리는 거래요. 버스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 앞에 꽥꽥이(폭주족들이 오토바이 앞에 별도로 붙인 경음기)를 울리면 깜짝 놀라는 그 표정이 웃긴다는 거죠. 저도 꽥꽥이 달고 다니면서 그런 표정을 즐기기도 했어요.”

-남자애들은 왜 중독이 된다고 하나요?

“폭주를 뛰면 애들도 알게 되고 스릴이 있어 스트레스가 풀리죠.”

“주말에 집에서 뭐 할 게 없잖아요. 공부를 하겠어요? 일단 오토바이를 타면 애들하고 금세 친해져요.”

“폭주 뛰면 인맥을 쌓을 수 있어요. 밖에서 만나서 술도 마시고 오토바이 얘기도 많이 해요. 대부분 학교 그만두고 배달을 하는 애들이 많죠.”

남자 폭주족들은 잘 이해하지만 그들의 여성관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남자애들보다 더 문제는 그들을 따라다니는 여자애들이라고 지적했다.

-남자 폭주족을 만나보니까 여자 때문에 나온다고 하더군요.

“냄비(폭주족들이 여자를 일컫는 비어) 업으려고(뒷좌석에 태우기) 많이 나오죠. 모텔도 아니라 화장실에서 했다고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남자애들도 많아요.”

“너무 쉽게 여자랑 자니까 여자애들을 그냥 쉽게 봐요. 그건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여자를 냄비라고 부르는 게 싫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여자들이 문제죠. 계속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나와요. 그리고 냄비라는 얘기를 듣기 싫으면 저처럼 오토바이를 타면 되잖아요. 저는 냄비가 아니라 같은 폭주족으로 불려요.”

-여자애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나요?

“주말 밤 여의나루역에 가보세요. 뒤쪽으로 가면 더 많아요. 남자애들이 맘에 드는 여자애들 손목을 잡고 막 끌고 가요. 여자애들이 튕기다가 결국 올라타죠. 무슨 나이트클럽 같아요.”

그러나 이들은 폭주의 불법성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얌전하게 대답하던 여학생들은 이 대목에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경찰은 물론 정치권, 학교 등 기존 질서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오토바이 절도도 키박스를 허술하게 만든 기업들에 책임을 떠넘겼다.

-폭주족들은 도로교통법뿐 아니라 폭행이나 절도 같은 전과가 많던데요.

“절도를 막으려면 오토바이 잠금장치를 잘 만들어야죠. 열쇠를 넣어 좌우로 툭 돌리면 그냥 시동이 걸려요.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책임이 없나요?”

“대포차가 많아서 싸고 쉽게 구입할 수 있어요. 우리보다 대포차부터 없애야죠.”

-경찰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조건 잡으려고만 하면 오히려 애들은 더 거칠어져요. 달래야죠. 얼마 전 서울시경 폭주족수사팀에서 새벽 폭주 뛰러 온 애들한테 초코파이랑 요구르트 나눠준 적이 있어요. 근데 그거 받고 감동 먹어 바로 돌아간 애들 몇 명 있었어요. 애들 대부분 착해요. 대화를 해야지 무조건 때려잡는다 이러면 오기 같은 게 생겨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이 뭐라고 하면 웃기죠. 확실하게 알고 이건 잘못됐다고 설득하면 우리도 수긍할 수 있죠.”

-폭주족들이 신호 같은 기본적인 규범을 안 지키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신호만 지키면 뭐해요. 폭주족의 정의가 오토바이가 2대 이상 무리지어 다니는 거예요. 이게 도로교통법상 공동위험행위죠. 그런데 할리(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나 알차(고급 경주용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은 왜 안 잡아요? 그리고 신호는 우리만 안 지켜요? 오토바이들이 신호 지키는 거 봤어요?”

이런 불만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정책 입안자라면 폭주족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봤다.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폭주족 근절을 위해서는 누가 나서야 된다고 생각해요? 경찰? 아니면 학교?

“아뇨. 가정 문제가 제일 커요. 대부분 폭주 뛰는 애들 가정불화나 부모가 이혼한 애들이 많아요. 남자애들 술 마시면 엄마, 아빠한테 맞은 이야기 많이 해요.”

“우리집은 말보다 손이 먼저 올라가는 집이에요. 한번은 쇠파이프로 맞았어요. 그래서 가출했어요. 한달 친구 집에 있다가 돌아갔어요.”

“아이가 비뚤어져 나가면 무작정 뭐라고 할 게 아니라, 부모부터 자식을 보호하고 타일러야죠. 그래야 자식이 감동을 먹죠. 폭주도 한때고 우리도 사춘긴데요.”

-그러면 나중에 엄마가 됐는데 아이가 오토바이를 탄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죽어도 못 타게 할 거 같은데요. 굳이 타겠다면 나는 니가 잡혀가도 경찰서 안 간다, 다쳐도 입원비 니가 벌어서 내라, 그렇게 말할 거예요. 저도 병원비 제가 냈어요.”

“전 냅둘 거예요. 지도 지 인생 사는 건데. 인생은 어차피 혼자잖아요.”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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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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