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10913001875&ctg1=01&ctg2=&subctg1=01&subctg2=&cid=0101050100000
개그맨 김병만
대담=조용호 문화부장
  • 웃기는 능력을 타고난 건 아니었다. 키가 작아 늘 주눅이 들어 살았지만, 남들이 자신 때문에 웃는 걸 보면 마냥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즐거워한다면 맨손으로 배관을 타고 건물을 오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차가운 한강물에 뛰어들어 숨을 쉬기 어려워도, 양 발목에 금이 간 지 오래여도, 다른 이들이 좋아할 수 있다면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즐거워하는 일이라면 필경 불구덩이라도 알몸으로 훌쩍 뛰어들 천성을 타고난 것 같다.

    ‘달인’ 김병만(36)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그는 지금 개그맨 인생의 상승곡선을 그려가고 있다. 그가 살아온 삶을 담아낸 자서전 성격의 에세이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는 종합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김병만은 이제 최고 스타 대열에 우뚝 올라선 개그맨이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개그콘서트’의 ‘달인’코너를 4년 가까이 지켜낸 것은 물론 얼마 전 종영된 SBS의 ‘키스&크라이’에선 부상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은 노력으로 피겨퀸 김연아를 울리면서 시청자들에게 감동 스토리를 안겨주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뭘 해도 안 되는 인간’이었던 김병만은 자신을 휘감은 가난과 절망을 떨쳐내고 지금은 ‘뭘 해도 되는 개그맨’으로 통한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코미디를 좋아한다.

    “무대에서 단순히 웃기는 차원을 떠나 과정을 생각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면 저거를 위해 일주일 동안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거기에 박수를 보내는 거 같아요. 무대에서 이건 웃기지 않다고 생각하는데도 박수를 쳐주시는 걸 보면, 저 친구도 사람일 텐데 짧은 기간에 어떻게 저걸 해냈을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넘어질 때는 마치 만화처럼 넘어져야 해요. 보는 사람이 혹시라도 (제가)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게 해선 안 됩니다. 편한 마음으로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그래서 설령 다쳤다 하더라도 인터뷰 때 잘 밝히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을 웃기는 게 왜 좋은가.

    “이유가 없습니다. 웃기는 능력을 타고났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절 보고 즐거워하는 걸 제가 좋아하는 거, 그걸 타고난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내성적인 편이라서 많은 사람들 앞에는 가지 못했지만 주위 친한 친구들을 웃기려고 뭔가 행동을 했을 때, 그들이 웃어주면 그것만큼 만족스러운 게 없었습니다.”

    -자서전을 보니 눈물나는 사연이 많다.

    “아버지가 영농자금을 빌려 시작한 하우스 농사를 태풍이 망쳤어요. 온 식구가 빚에 짓눌렸죠. 어머니는 식당 허드렛일에 나서고 누나는 중학교조차 포기한 채 봉제공장에 다녀야 했어요. 두 여동생도 비슷한 생활을 했고… 저도 고교 졸업과 함께 ‘노가다’를 피할 수 없었죠. 어느날 4층 건물에서 떨어지고 말았는데, 퇴원하면서 어릴 적부터 품었던 연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왔어요. 19살 때였죠.”

    -상경 이후에도 고난의 시기는 계속 이어졌을 텐데.

    “라면 하나를 사골처럼 고아서 먹었어요. 당연히 집도 없었죠. 아는 형·동생들 신세를 지기도 하고, 체육관에서 자기도 했어요. 노숙은 기본이고요. 대학로에서 선배들과 연기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가 버스가 끊기면 마로니에공원에서 자곤 했는데, 어느 날 술김에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왜 이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게 했냐고 따졌지요. 제 주정을 다 들은 어머니는 뜻밖에도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술이 번쩍 깼어요. 차라리 욕이라도 했다면 제 가슴이 그리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자서전은 좀 이른 것 아닌가?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에세이 정도로 봐주세요.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았는데 개인적 이야기를 펼쳐 보인 게 부끄럽지만, 제 이야기를 읽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158.7㎝의 작은 키와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밖에 없던 저도 묵묵하게 거북이처럼 제 길을 걸어가고 있잖아요?”

    -웃기는 것보다 감동을 주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데, 감동적인 개그는 어떻게 나오는가.

    “채플린과 저우싱츠(주성치)의 영화를 보면 웃기는 배경에 럭셔리한 건 하나도 안 나옵니다. 공장이 문을 닫아 구두를 삶아 먹으면서도 남들을 웃깁니다. 제가 살아온 내력이 윤택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 힘들었던 배경을 떠올리고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저의 코미디를 봐 주시니까 저놈 대단하구나, 하시면서 감동적인 개그맨으로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남으려면 계속 땀을 흘려야 합니다. 이 정도 했으면 즐겨야지? 이건 저답지 않죠. 장기적으로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나 ‘미스터 빈’ 같은 코미디 시리즈를 현대판 무성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제 돈을 모아서라도 꼭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달인 코너에는 보통 인간이라면 참을 수 없는 과정을 초인적으로 견디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평소에 많이 참는 스타일인가.

    “진정 하고 싶은 거는 뿌리를 뽑는 스타일입니다. 누군가 황당한 상황에서 책임감을 가지라고 말을 하면, 내가 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소리치기 위해서라도 일단 그 상황을 해결해 놓고 보는 쪽입니다.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아르바이트할 때도 가장 일찍 나가서 청소부터 해놓고, 열심히 했는데도 무어라 말을 하면 그때 가서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사람들 앞에서 운 적도 많아요. 겉보기와는 달리 여리고 기복이 심한 편이지요.”

    -일본에 가서도 ‘달인’을 정기 공연하는 걸로 알고 있다. 반응이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선배들은 시무라 켄(志村康德)을 응용해서 코미디를 했는데 너는 가서 그런 켄을 웃기고 왔으니 형으로서 뿌듯하다고 말해요.”

    -요즘 건국대 대학원 건축공학과에 재학중이라고 들었다. 벌써 3학기를 마쳤다던데, 전공이 좀 생뚱맞다.

    “건물 철거, 폐기물 수거, 공사장 잡역부터 인테리어까지, 20대의 고생 덕분에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게다가 제 꿈이 개그 전용관을 짓는 일이거든요. 배우 입장에서 무대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둔 게 있는데… 배우에게 제일 좋은 무대를 만들 겁니다. 건축가들에게 의뢰하면 그냥 의뢰한 대로만 나올 테니까요.”

    -김병만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구한 논문도 나왔다는데 기분이 어떤가.

    “제가 추구하는 코미디를 정리해 주고, 어디에선가 저를 지켜보며 진지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연예계 생활이 꽃이라고 하는데, 관리를 제대로 안 하면 피어보기 전에 시들고 말 겁니다. 꾸준히 가꾸고 물을 줘야죠. 누구보다 뒤처져서 더 이상 뒤처질 게 없던 출발지점보다 지금이 더욱 노력할 때라는 것을 잘 압니다.”

    김병만은 조만간 아프리카로 건너가 낫 한 자루로 모든 걸 해결하며 생존하는 모습을 SBS의 새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다. KBS ‘1박 2일’의 야생편쯤으로 기대하면 적당할 듯한데, 그는 직접 현지 상황을 겪어보고 그때마다 짜낸 아이디어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새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각오다. 10월 중순경 귀국할 예정이지만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머물다 오겠다’고 못을 박은 탓이다. 이 때문에 혹시라도 있을 방송 펑크를 방지하기 위해 녹화 편수를 최대한 늘려 찍는 중이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채 2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고 재촉하는 매니저에게 등을 떼밀리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울한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포기만 안 하면 됩니다. 진정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전속력으로 가든, 기어서라도 가든,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결국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저 자신을 스스로 먼저 알고 거북이가 되기로 작정한 인생입니다.”

    정리=김신성 기자, 사진=이종덕 기자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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