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foreign/japan/view.html?cateid=100022&newsid=20111002112720279&p=jpnews
 

"안뇽하세요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한 사람의 한국어 발음이 어째 이상하다. 이 발음 이상한 사람은 바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각 테이블마다 배정된 한국인, 일본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눈다. 모두들 서로 초면이라 처음에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는 차츰 무르익는다.

단체 맞선장의 모습?

아니다. 바로 '한일 교류회'다. 워낙 일본인은 여성들이, 한국인은 남성들이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기 십상이지만, 이곳은 한국인과 이야기하고픈 일본인, 일본인과 이야기하고픈 한국인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곳이다. 1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희망자에 한해 단체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 한일교류회 - 신오쿠보 한국어 공부회 JPNews/이지호

기자가 간 곳은 '신오쿠보 한국어 공부회'.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한일 교류회다. 대지진 전에는 이곳에 한국, 일본인들이 총 100여 명 넘게 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진 이후 그 수가 격감해 지금은 3,40여 명가량의 한국인, 일본인이 참가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일본인들이 모인다. 동방신기 팬, 호주 유학갔다 한국인과 친해진 이후로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방석 디자이너, 한국을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블로거 등등 한국에 대한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다. 한국인들은 주로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어 학교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온다.

이 같은 한일 교류회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최근 그 수가 크게 늘었다. 한류붐이 확대되면서 한국인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이들이 직접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리다.

비록 최근 교류회 수가 늘면서, 가게 매상을 위해 교류회를 개최하는 등의 악용사례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 같은 교류회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를 알아가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사실, 한류붐이 불어 서로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다고 해도 정작 이들에게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한류붐 훨씬 이전인 무려 10년전부터 한일 교류회를 운영해온 사람이 있다. 최초의 한일 교류회인 '신오쿠보 한국어 공부회'를 만들고, 자의든 타의든 옛부터 한일 교류에 이바지해온 사람. 바로 일본인 남성 고지마 겐지 씨, 나이 만 40세.

놀라웠던 것은, 그가 인터뷰에서 자기 스스로를 '우익'이라 밝혔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약 3만여 명의 한국인, 일본인의 교류를 주선해왔던 그였다. 한일 교류에 이바지하면서도 '우익'을 자청하는 이 아이러니함. '우익'에 대한 편견을 깨는 그에게 어떠한 사연이 숨겨져 있었을까. 교류회 1차 모임이 끝난 뒤 저녁식사를 겸하는 술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인들과 잘 어울렸다"

검은 올백 머리를 하고 하얀 와이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고지마 씨는, 묵직한 풍채를 지녀 딱 봐도 남자답다. 말도 시원시원하다. 자신도 스스로를 남자다운 성격이라고 밝혔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매우 남자다운 성격이었다. 대학을 도쿄로 갔는데, 대학 친구들과는 성격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군대갔다온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게 됐고, 이들과는 성격적으로 굉장히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다"

어울리는 친구들이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인이 모이는 자리나 이벤트에도 곧잘 가고 그랬다고 한다. 다만, 이들 친구들과는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그래서 한국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날 기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벌써 20년 전. 이 '친교회'가 후에 한일 교류회의 발판이 됐다. 그는 당시 '친교회'를 통해 한국인 친구들과 한국어 공부를 하곤 했었다고 한다.

▲ '신오쿠보 한국어 공부회'를 주최하는 고지마 씨 JPNews/이지호

"그렇게 정기적으로 모이다보니 다른 한국인들도 모이곤 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 온 한국인들은 비교적 젊어서, 여러 일본인들과 만나고 싶어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 한국인들은 대부분 20세 초반. 어리고 호기심 많은 탓에 일본인을 만나고 싶어했고, 그런 그들이 처음 선택한 곳은 교회였다. 고지마 씨 본인도 그곳에 함께 갔었다고 한다. 그들이 간 곳은 요즘도 한인사회 내에서 크게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 교회.

"그 교회가 평판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때 가서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를 실망시켰던 것은 그들의 선교 태도와 종교문제와 관계없는 역사적, 정치적인 인식을 무리하게 강요한 점이었다. 한국인 교회에 들어온 일본인은 매우 드물었는데, 한국인 교회에 들어온 그에게 사람들은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교회에 몇 없던 일본인인 내게 정치적, 역사적인 인식을 강요하려 들었고, 설교도 수없이 들었다. 그걸 참을 수 없었다."

또한, 그와 함께간 한국친구들은 그곳에서 일본인을 사귈 수 없었다.

"종교 관계 단체의 경우, 일본인이 경계하기 때문에 오지 않는다. 일본인과 교류하기 위한 장소로 교회는 적절하지 않았다. 교회에 가고 나서부터, 이럴 바에는 내가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10년 전 바로 지금의 한일 교류회를 만들었다"

그는 원래 이런 단체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친구들이 그런 만남의 장을 원했고, 그래서 10년 전인 2001년 한일 교류회를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한류붐의 조짐은 겨울연가 이전에도 있었다

교류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한국인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는 한국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이 적었을 때였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데려오곤 해서 일본인이 14명 정도 적었다"

언제부터 한국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이 늘기 시작했는지,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좀 늘었었는지 물었다.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은 있었지만, 교류회나 한류에 영향은 없었다. 결국 한류붐의 시작은 누구나 알다시피 드라마였다. 배용준이 나온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의 영향은 컸다"

"하지만, '겨울연가'가 한류의 시작은 아니었다. 한류붐은 이전부터 있었다. 1999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한국 콘텐츠 자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매우 적었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에 간단히 접속할 수 있게 됐고, 김대중 대통령이 98년에 일본문화를 개방하자 서로간의 관심이 확대됐다. 보기 어려웠던 서로의 콘텐츠를 접하기 쉬워졌고, 문화교류도 활발해져서 이 이후부터 한국 문화도 일본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일본 내에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름의 한류가 존재했던 것."

이후 겨울연가 등 한류 드라마로 한류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최근 1,2년 사이에는 한류 아이돌 열풍도 가세하면서 한류붐이 크게 증폭됐다.

이를 계기로 3.11 대지진 전까지 많은 한국인, 일본인들이 교류회에 찾아왔고, 한때는 규모가 100여 명 이상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지진 이후 수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갔고, 현재는 3,40여 명 규모에 일본인, 한국인 비율이 2대1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될 경우, 대화할 때 2명의 일본인과 1명의 한국인이 마주보는 형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 한일교류회 - 신오쿠보 한국어 공부회 JPNews/이지호

▶"한류붐 오래 못간다. 곧 한일 관계에 겨울 찾아올 것"

한창 교류회와 한류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그가 "나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의 한류 흐름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요새 교류회나, 한일교류가 너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최근의 한류붐이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류붐이 최근 불어닥쳤다. 한인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교류회에도 일본 여자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한류를 통해 한일관계가 우호적이 되고, 증진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일본인은 드라마와, 그속에서 나오는 배우에 흥미를 가질 뿐이다. 한국배우 '배용준'에 흥미를 갖는 것이지 한국 자체에 흥미를 갖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최근 보면, 드라마와 케이팝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안티 코리아는 늘어나고 있다. 후지TV 앞에서 대규모 데모도 벌어졌다. 그런데 매스컴은 전혀 보도를 안한다. 나도 데모현장을 가봤다. 사람 정말 많더라. 내가 알기론 2만 5천명(일본에서는 3천~6천명으로 보도됐다)이 모였다고 한다. 데모를 지켜보는 사람들조차도 이들을 응원했다. 요즘 이 같은 반한류 움직임이 크게 두드러지고 있다."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드라마, 케이팝 등 표면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피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케이팝, 드라마가 유명해져도 일반 한국인은 아무 변화가 없다. 먼저 어려운 면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해해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한일관계가 이뤄져야지 케이팝, 한국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한일교류는 절대 리바운드 현상을 낳을 것이다."

한일간에는 풀리지 않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아직도 많다. 그런데도 한류붐이 일어나면서 일본인들이 피상적으로 한류, 한국, 한국인을 보려하는 것에 그는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또한, 한국이 드라마나 케이팝 을 위주로 한류붐을 키우려 하는 데에도 큰 반감을 나타냈다.

그는 맥주를 들이킨 후, 강하게 단언했다.

"한일 관계엔 절대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무조건 찾아온다. 한국은 좋은 면만 보여주려 하고 있고, 일본은 피상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아까 말했듯이, 그들은 한국, 한국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배우, 한국 드라마가 좋은 것이다. 붐이 꺼지면, 서로의 관심도 덩달아 꺼질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반감만 얻고 있는 모습이다"

고지마 씨는 지금 이대로의 한류붐이라면, 크게 반감만 사고 시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한일관계만 악화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한일 관계의 '겨울'이 온다는 것.

"지금의 한류붐은 분명히 한일관계를 나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있다면 언젠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만, 지금의 한류 드라마와 케이팝은 피상적이고 작위적이다. 절대 리바운드를 낳는다. 렌츠의 법칙이다."

※렌츠의 법칙: 전자 유도작용에 의하여 회로에 발생하는 유도 전류는 언제나 유도작용을 일으키려는 원인을 저지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법칙.

▶나는 우익이다

"나는 우익이다. 확실히 난 우익이다. 이 말 써도 된다"

갑작스러운 선언이었다. 교류회를 10년간 운영해오며, 총 3만여 명의 한국인, 일본인의 교류에 이바지해온 그가 난데없이 우익선언을 했던 것.

인터뷰를 하면서 어렴풋이 느끼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말할 줄이야. 다만, 그는 한국인들 앞이라고 해서 우익이라는 사실을 감추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 듯했다. 한일간 교류에 이바지해왔고, 한국사람들과도 실제로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당당한 듯했다. 특히 그는 우익이라 했을 뿐 어떤 역사적, 정치적 견해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의 우익을 경험해봤다. 한국의 보수적 생각이 어떤지도 들었고. 나도 우익이고, 한국인 우익 친구도 있었다. 물론 그들과 역사적 인식이나 영토 문제를 논하면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순수한 사람이 많다. 개인으로서는 너무도 잘 맞는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 30대 이후로 친구를 잘 안 사귀었지만, 한국인들과는 아이처럼 친하게 지냈다. 이게 너무 좋다"

그는 역시 한국이 역사 인식을 강요하려 한다며 그 점이 너무 싫다고 밝혔다.

"한류 열풍이다 뭐다 하지만, 사실 서로에 대한 흥미는 적다. 일본과 한국은 서로 가까운 나라인데도 그렇다. 왜일까? 한국은 일본을 나쁘게 보는 교육을 한다. 반일 정책이 바로 그 예다. 그런 교육을 한국사람들은 받고 자란다. 교회에 일본인이 찾아 갔더니 한국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정치적 생각을 강요한다. 그게 옳다고 보는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그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잖느냐."

"한 사람으로서의 생각과 인생이다. 한국, 일본의 국민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친구가 늘었으면 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교류회를 하는 것이다. 난 한국인 친구가 많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의 한국은 찬성하지 않는다. (반일적 인식을 부여하는)나쁜 정책이 있다고 본다"

▶일본은 철저히 노인들을 위한 사회다

"난 싫다. 강요하는 거. 왜 강요하나. 한국은 우리 윗세대들이 잘못한 것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윗세대에 대한 불만과 울분으로 넘어갔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이 노인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 덕분에 젊은이들만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비정규직은 늘었고, 늘어난 연금, 복지비는 몽땅 젊은이들 책임이 됐다."

그는 현재 일본사회가 '노인' 위주의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의 '시스템 사회'가 철저히 이들을 위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위해 희생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의 생각이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앞으로 세대를 거쳐갈 수록 연금 납부액은 많아지고, 연금 수급액은 적어진다. 또한, 4명 중 1명이 노인인 나라에서 젊은이들의 부담은 더욱 커져만 간다. 고지마 씨의 말은 그 속에서 아무런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울분을 대변한다고 기자는 해석했다.

덧붙여 고지마 씨는, 이 같은 노인 위주의 사회가 일본 젊은이들을 약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하고 모든 것에 지침을 내리는 메뉴얼적 문화가 젊은이들의 열정과 자율성을 죽인다는 것. 그는 일본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망쳤다고 한탄했다.

"여기 교류회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지만, 한국 여자들은 일본 남자들에게 이성적 호감을 그리 느끼지 않는다. 약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나는 이를 노인 위주의 일본사회가 낳은 폐해라고 본다. 봐라, 일본 젊은이들은 눈빛은 전혀 빛나지 않는다."

▶고지마 씨의 말은 우익 아닌 일반 일본인을 대변하는 말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한탄하듯 했던 이야기를 재차 꺼내곤 했다.

"한국은 우리에게 정치적, 역사적 인식을 강요하려고 한다. 그게 싫다. 우리가 했는가. 나는 내가 태어나지도 못했을 때의 일로 여러 한국사람에게 다른 생각을 강요당했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왔던 그였던 만큼, 역사문제, 정치문제에 대한 지적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을 만나면서 좋은 친구들을 얻었지만, 염증을 느끼는 부분도 적지 않았던 듯했다.

그는 교류회를 하며 많은 좋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반대로, 질이 나쁜 한국인들도 만났다. 일본여성에게 추태를 부리는 한국인을 제지하고, 약을 타서 성범죄행위를 시도하려던 한국인을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수많은 한국인들을 만나오면서, 그는 한국인의 좋은 단면, 나쁜 단면 모든 것을 경험했다. 그랬던 그이니만큼, 한국인과 마주하며 온갖 감정들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귀결은, 한국인을 좋아하지만 한국이란 국가에 반감을 갖게 됐고, 소위 말하는 '우익'이 된 것이었다.

역사관과 정치관을 무리하게 주입시키려는 한국인들, 반일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한국인들을 통해서 반감을 갖게 됐고 그 반감은, 그가 '반일교육'을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으로 투영됐다.

이는 일반 일본인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한국과 조금 더 깊이 있는 관계를 갖게 되면, 일부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정치적, 역사적 인식을 주입하려 한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과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 기자의 대학 시절에도 한국인 남학생들이 일본 여학생 한 명을 둘러싸고 "독도는 어느나라 땅이냐"고 묻는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 그 여학생은 위협감을 느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이 같은 사례는 의외로 많다. 과거사 문제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러나 역사문제를 강요하는 행위는 진정한 의미에서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물론 일본인 스스로 반성한다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자신을 우익이라 밝힌 고지마 씨와의 인터뷰는, 우익이 아닌 일반 일본인의 생각을 듣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 일반 일본인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생각들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한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도 많았다.

사실 한류붐이 일고 있지만, 과연 한일관계가 진전됐는지, 서로에 대한 관심이 늘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분명 늘었지만, 모두 드라마나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파생된 관심들이다. 한국은 열심히 포장하고, 일본은 포장된 겉모습을 보고 한류를 즐긴다. 이 때문에 진정한 한류, 한일관계 발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고지마 씨의 지론인 것이다. 한일 교류회를 오랜 기간 주최해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 한국민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류 팬들은 한류붐이 꺼지면 사라진다. 그러나 반감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한류붐이 꺼지면 오히려 한일관계에 '겨울'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모든 것을 나라와 국민의 위대함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보도를 보면, 한류 열풍을 대서특필하며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라고 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은연중에 '한류 문화의 성공 = 한국, 한국민의 우월함, 뛰어남'이라는 공식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다.

물론,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를 벗어난 지나친 애국심은 자칫 다른 나라에 대한 멸시와 경시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우월함'을 느낀다는 것은 비교되는 대상을 한 수 아래로 본다는 것이기 때문. 이 같은 사고는 다른 국가, 국민들의 반감을 얻기 쉽다.

개인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행동과 한류와 같은 문화적 현상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행동이 그 국가들로 하여금 얼마나 반감을 가지게 할지 깊이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다른 국가에 존중 받는, 진정한 한류를 위해서는 이 같은 문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고, 어떻게 하면 더 늦추느냐 덜 늦추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런데,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과 연예계는 너무나 공격적으로만 움직이려 든다.
공격은 필연적으로 방어와 경계를 부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듯 일단은 들여놓고 볼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부작용이 심각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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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카오카 소스케 라는 일본놈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p.s 한편 일본에서는..

누군가의 주도하에 혐중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왜 한국이 그토록 중국을 혐오하는가 알아보니 그 이유가 각종 모함과, 역사침탈, 왜곡, 공정 때문이더라 는 것을 저들 스스로가 깨닫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p.s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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