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자마자 딱 떠오르는 건 이언 플레밍의 '치티치티빵빵' 이었다.
요즘 어떤 그룹에서 이 노래를 부르나 보던데, tv를 안보니 잘 모르겠고.. 아무튼 클래식 차라는 점이나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점, 그리고, 운전자가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 등이 말이다.
소시민 운전자나 외형과는 다르게 최신식인 차량이나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머쉰이라는 점을 보면 트랜스포머와도 비슷한 것 같지만, 굳이 치티치티빵빵이 연상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클래식형 구형차에 외형 뿐만이 아니라 내부까지 에누리 없는 구형 주제에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차보다는 주인공의 성격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왠지 점퍼의 무개념 주인공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자신의 차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우연찮게 알아채는 것 까진 좋았지만, 그 이후로 벌건 대낮에 그것도 차도 한복판에서 길이 막힌다고 하늘을 날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나 그 차를 가지고 꽃배달한답시고 온 도시를 휘젖고 다닌다는 점..자동차를 선물해준 아버지에게 궤도를 따라 도는 인생이라고 비난한 주제에 그 자동차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데이트도 하고, 자신은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환호하는 등의 행동들이 참 점퍼의 능력을 가지고 제 꼴리는 대로 문제 일으키며 살아가는 데이빗과 비슷한 것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이걸 '계속 봐야하나' 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는데, 이런 생각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주인공의 성격이랄까 패턴이 바뀐 이후부터다..

원래는 소심하고, 좀 시니컬한 구석도 있으며, 본질적으론 선하지만 자신에게 큰 무리가 가지 않는 하에서만 선행이 행해지는 등.. 한마디로 그다지 행동하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이 것이 트라우마가 생기면서 광적으로 사람을 돕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즉,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슴에도 불구하고 평소답잖은 자신의 외면때문에 구하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은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고, 이 트라우마는 이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구하고 봐야한다는 강박증으로 이어졌다는 건데, 나는 여기서부터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왠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 생각지도 못한 축복이나 은혜를 받고 졸부인생을 사는 것처럼 막나가는 초반모습도 그렇고, 또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목격하고 강박증에 걸려버렸으며, 이 강박증 때문에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안하고는 못배기게 되었다는 것도 이유로 제법 그럴 듯하게 보였던 것이다.

스파이더 맨의 경우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라는 삼촌의 유훈을 쫓아 사람을 구하기 시작하지만, 솔직히 돌아가신 삼촌의 말씀이라고 해서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 말이 곧 자신의 욕구와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며, 그런 이유로 검은번개 쪽의 상황이 더 설득력 있게 보였다.. 아무래도 강박증과 말씀을 비교해보면 강제력부터가 차이 날테니까 말이다..

한번 그럴 듯 하게 보이기 시작하니 나머지도 다 괜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니즈니에 되돌아가게 될 학우들을 위해 포기한 건지, 아니면 사람들을 구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포기한건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험자체를 포기하고 나가는 주인공의 쿨한 행동이나 그런 주인공의 착한 마음에 호감을 느끼는 여주인공의 성향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검은번개로 착각하고 콩깍지가 씌인 여주인공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사람을 구하러 가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사랑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람을 구하러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하고 쓸쓸히 돌아서는 주인공 내면의 갈등이나 그런 주인공의 뒷모습과 물음에 자신의 두 눈에 씌인 콩깍지를 스스로 벗겨내고 검은번개의 휘광보다는 마음 착한 소시민- 정체가 밝혀지기 전 -인 주인공을 택하는 여주인공의 모습 등이 너무나 좋게 보였다.
스파이더 맨의 우유부단 '피터' 와 된장녀+히스테리녀 '메리' 따위보다 훨씬 더 말이다..

물론 다 실감나는 내용들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위에서 말한 초반의 주인공 행동은 제쳐두고서라도 40년전에 연구하던 엔진이 실패로 끝난 이유도 좀 틔미하고, 또 설사 한번 실패했다고 해도 계속 연구하지 않고, 그냥 중단되었다는 것도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다. 
차량 다 공개하고, 창문에 선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반에 그렇게 시내를 날아다녔는데도 악당들이 검은번개를 잡기는 커녕, 정체조차 파악해 내지 못했다는 점도 웃기거니와 가족을 비롯하여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검은 번개의 정체를 여주인공이 학교 내의 tv에 희미하게 찍혀나온 검은번개의 모습을 딱 한번보고 뭔가를 느꼈다는 것- 아니, 사실은 이게 정상이고, 그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비정상이지만..;; -도 좀 그렇고, 또, 스파이더맨이야 평상시엔 벽에 붙어다니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사진사의 일을 한다치더라도 검은번개야 남이 보든말든 대놓고 차를 타고 날라다니는 주제에 끝까지 꽃배달만 한다는 점도 웃기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악당과 대기권까지 붙어서 올라갔었는데, 어떻게 주인공은 악당과 따로 떨어져 다시 지구로 복귀할 수 있었던 건지..또, 악당은 악당대로 어떻게 우주로 날아갔는데도 멀쩡히 살아서 두리번거릴 수 있는건지가 웃겼다면 웃긴 부분이었다..
애초에 자동차를 날아다니게 할 수 있는 획기적인 100배 위력의 나노엔진을 가지고 고작 다이아몬드를 파낼 굴착기의 동력으로 쓰겠다는 악당들의 사정따위나 많은 영화의 요소요소를 짜집기 한 것 등은 차치해두고서라도 말이다..

사실 이 외에도 좀 허술해 보이는 부분이 군데군데 없잖아 있지만.. 아니 제법 많았었지만, 그런 부분까지 무시하고 기분좋게 넘길 수 있었을만큼 주인공의 성향이나 구조활동 이면의 절실함이 크게 와닿았던데다, 초반과 중반 이후의 주인공의 성향이 크게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던 것도 주인공이 연기를 잘해서인지, 시나리오 작가가 대본을 잘 써준 탓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캐릭터가 괜찮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검은번개..
점퍼, 스파이더맨, 트랜스포머와 같은 헐리우드 히어로 물에 비하면 매끈함이나 화려함은 좀 부족했지만, 상당히 거칠고 등성등성한 대신 담백한 맛이 느껴지는 그런 영화였다..

아래는 엔딩 전투씬이다..


날개 달린 자동차 더 이상 꿈이 아니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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