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난영화는 안본다..
왜냐하면 너무 터무니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자연의 힘을 한낱 인간..그것도 몇몇의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는데에서 오는 어처구니 없슴에 실망 내지는 실소만이 남기 때문이다.

남들은 재난영화를 보는 이유가 그 재난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해결하는가와 그 사이사이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갈등이나 우정, 사랑, 분노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의 심리가 한층 더 절실히 와닿기 때문이라고들 하던데, 나에게 있어서 재난영화란 오히려 이러한 느낌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뭐랄까..이건 마치 '드래곤 볼'에서 손오공이 너무나도 강해진 나머지 프리저 이후에는 오히려 더 약해져 버린 경우라든지 혹은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의 츠나 일행이 미래편에서 백란을 퇴치하고 온 이후엔 오히려 더 약해져 버린 것과 같은 경우이다.
갈수록 강하게 그려야 하는데, 이미 표현할 수 있는 한계까지 강해져 버린 탓에 그 이상 더 강하게 그릴 수 없는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해져야만 하는 이상이 충돌하여 결국 수치상으로는 더 높아졌지만, 받아들여지는 느낌과 이미지는 적당히 타협한 것처럼 보이는 .. 간단하게 말하면 상상과 현실이 상충하면서 생기는 괴리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난영화가 바로 그러한 케이스이다.
이 매개체의 존재가 크면 클수록 이러한 골은 더욱더 깊어진다.
포세이돈 어드벤쳐나 타워링 같은 경우라면 몰라도 2012나 우주전쟁 같은 지구멸망에 관한 건이라면 그야말로 두손 두발 다 들 수 밖에 없다.

그런 내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진 모르겠지만, 재난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바로 '퀸텀 아포칼립소' 라는 영화이다.
영화 포스터도 그렇고, 줄거리도 그랬지만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이미지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파판 9에서 나오는 소환수 '아트모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본 그 영화는 한마디로 '실망' 이었다.
나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했던 포스터와 영상 이미지는 그게 다였다..아니 포스터보다 못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못생긴 배우와 낙후된 영상들이 나를 반겨주는 게 대충 딱 봐도 돈 적게 들인 B급 영화인게 바로 '속았다' 라는 생각부터 들더라.

내용과 설정으로 들어가도 그렇다..
도대체 왜 저런 블랙홀이 생기게 됐는지 부터도 모르겠고, 어떻게 그 블랙홀- 지구의 자연도 아니고, 우주의 신비인 -을 미사일을 날려 부술 수 있었는지도 납득이 안간다.
이건 마치 옆집 꼬맹이가 자기 집에 있던 가장 단단한 쇠파이프로 후려쳐 뒷동산을 날려버린 것과 같은 케이스가 아닌가?

하기사 뒷일 생각도 안하고 블랙홀과 같은 무시무시한 소재를 사용하여 영화를 만들긴 했는데, 다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을려니 이게 만만한 존재가 아닌 거거든..
세상에 블랙홀을 박살내 버릴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그래도 없애긴 없애야 겠으니 블랙홀의 근원을 파괴하여 스스로 자폭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일단 미사일을 날리고는 봤나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이런 터무니 없는 내용이라니..ㅋㅋㅋ
거대한 중력덩어리인 블랙홀의 핀포인트를 맞춘다는 것 부터가 택도 없는 소리라는 걸 모르는지..쯧쯧

게다가 대충 훑어보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중요한 사실을 다른 블로그에 올려진 내용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고나니 궁금한 점은 오히려 더 늘어버렸다.


672번째라는 소리는 지금까지 672번을 성공해왔다는 소리 아닌가..다시 말해서, 재난의 끝에 이르러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대한 결말이냐, 실패에 대한 결말이냐 라는 것이 궁금해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테리의 연구가 먹혔고, 그로써 산산히 흩어질 뻔했던 지구가 시간회귀를 통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멸망 이전으로 넘어갔으니 성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실패했으면 그냥 지구 종말로 그냥 깔끔하게 'The end' 였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처음의 672번과 마지막의 673번이라는 이야기가 거슬린다.
이 말은 곧 테리가 지금까지 672을 성공해왔으며, 영화의 내용처럼 또 한번의 성공을 추가해 총 673번의 성공을 이루었다..그리고, 이 후로도 계속 674번, 675번, 676번... 이런 식으로 멈추지 않고 영원히 성공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왜? 성공을 포기하는 순간이 바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날이니까..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이 무한루프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좀 터무니 없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영화의 내용과는 좀 다르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실패했을 경우 그 블랙홀의 특성 상- 어떤 원리에 의해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한루프가 일어나며, 성공할 경우 이 무한루프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테리는 672번의 실패와 그에 따른 무한루프를 경험해 왔고, 그 동안의 연구결과를 672번이나 수정하고 개선한 끝에 결국 673번째엔 성공하였으며, 그 성공과정이 바로 이 영화의 내용이다..그렇게 생각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블랙홀에 의해 빨려들어갔던 지구상의 구조물과 미사일로 명중시킨 이후 발생한 시간회귀 간의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설사 억지로 억지로 이해한다 쳐도 다 빨아땡겨져 산산히 흩어진 지구를 시간회귀 시킬 수 있는 블랙홀의 힘이란 것이 도대체 어떠한 원리에 의해 발휘되는 힘인지.. 또, 이유불문 넘어갔다 쳐도 시간회귀했을 것이 틀림없는 테리의 의식과 기억은 어떻게 고스란히 유지되어 그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는지 등등도 의심스럽다..

아니면 혹시 이런 걸까?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이라는 애니의 미래편에 백란과의 관계를 보면 패러렐 월드가 나오는데, 그 설정처럼 테리도 다른 평행우주에 있는 자신들과 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면..?
즉, 다른 평행우주에 있던 672명의 테리들은 다 실패해서 죽었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평행우주 속의 테리만은 공유하고 있던 또 다른 자신들의 의식과 기억을 바탕으로 연구에 성공하여 673번째를 끝으로 지구를 구한다..가 아닐까 싶은거다.
만약 이런 설정이라면 확실히 납득할 수 있겠다만, 정작 영화에선 이런 설정의 흔적은 어디 한군데 찾아볼 수가 없으니 이런 설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설사 맞다고 해도 패러렐 월드의 테리끼리 서로 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테리는 테리가 아니라 '테리'의 탈을 쓴 신적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성공으로 보기에도 애매하고, 실패라 보기에도 미묘한 것이 이쪽에 맞춰보면 저쪽 조건이 방해하고, 저쪽 가정에 맞춰보면 또 이쪽 조건들이 방해한다.
뭔가 오묘한 구석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냥 구멍숭숭 뚫린 치즈덩어리처럼 허술한 영화였을 뿐이라는 생각을 도통 지울 수가 없다..
도대체가 성공한 결말이 무한루프라니.. 이 무슨 안드로메다 판타지란 말인가? ㅋㅋㅋ
비쥬얼이 후달리면 내용이라도 좋아야 할 것 아니냐고요..

아무튼 간에.. 퀸텀 아포칼립스
있어 보이는 제목과 멋져 보이는 포스터로 무장한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서 '역시 재난영화 따위는 보는 게 아니야' 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다지게 해준 걸레같은 작품이었다..큭큭큭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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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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