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할 때 몇마디면 될 것을 중언부언 괜히 말이 길어지는 것을 말솜씨가 없다고 한다.
글을 쓸 때 한문장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을 괜히 주절주절 적어나가 양만 많아지는 것을 글솜씨가 없다고 한다.

이 글솜씨란 필력이다.
필력이 있는 사람의 글은 한 구절, 한 단어도 버릴 게 없다.
뽈락이라는 생선이 뼈다귀 하나하나까지 초장에 버무려서 다 먹어치울 수 있을만큼 버릴 게 없는 것처럼 필력이 강한 사람의 글은 어디 한군데, 조사 하나까지도 버릴 게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어떤 상황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 운용과 응용면에서도 참고를 하고 배워야 할 만큼 수준이 높으니, 이런 사람의 글은 반드시 천천히 음미해가면서 읽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읽을 때마다 그 느낌도 달라지고 의미하는 바도 달라지며, 독자의 깨닫는 바도 달라지게 하니 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되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필력이 좋은 사람의 글이란 바로 이런 글을 말한다.

그런데, 용노사의 글이 바로 이러하다.
한창 즐겨 읽을 때에는 단순히 재밌다는 생각 외에는 크게 느끼질 못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무협을 표방한 허접땡이 소설을 몇권 읽고 났더니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슴이 확연히 느껴지더라.
가히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허접땡이 책을 읽을 땐 몇장을 읽어나가든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던 건 그만큼의 줄거리 밖에 없었는데, 용노사의 책을 읽다보니 한 페이지를 읽는데도 몇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나도 모르게 되새기면서 보게 되더라..
단 한페이지에 해당하는 짧은 글만으로 그 상황을 눈에 그려질 듯 묘사하고, 그 속의 감동이 실감나게 하다니..
그냥 한번만 읽고 치울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게 만들만큼 깊은 맛이 있더란 거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도 모르게 과연..과연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였음은 물론, 이제까지 단어하나 문장 한구절을 적더라도 생각없이 대충 휘갈겼던 내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상당히 격식없게 적더라도 내용만 좋으면 될 것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는 소리다.
이제껏 나는 형식에 관계없이 느낌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글이라 그렇게 믿어왔었는데, 용노사의 글을 보고 꼭 그렇지 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격조있고, 은은하며, 뭔가 절제된 듯한 느낌...
마치 카톨릭 교의 성당에 가면 느낄 수 있었던 그 장엄함과 흡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 느낌에 비하면 이제껏 가져왔던 내 생각이나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허접탱이 글들 따윈 기독교 행사에서 기타치고 탬버린 치면서 노래부르는 딴따라 수준만큼 초라하고 가볍게 느껴질 뿐이었다.

결국 느낌이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글이나 말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이다.
자기자신만 제대로 이해하고 만족해서 끝난다면 말이나 글이 필요없다.
하지만, 자신이 가졌던 느낌, 자신이 느꼈던 기분, 자신이 상상했던 이미지..이런 막연한 것들을 최대한 상대방에게도 똑같은 느낌과 이미지로 전달하고 싶을 때 그것이 가능해야만 비로소 말과 글로써의 효용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말과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중언부언하여 오히려 받아들이는 사람이 10에 3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면 그따위 말과 글이 과연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렇지 않은가?

물론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그 느낌을 말로 다 표현하기란 솔직히 너무 어렵다.
제 아무리 시시콜콜 말을 많이 한다해도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아무리 말을 많이 늘어놔도 완벽하게 표현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단어의 선별이 필요하다.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수많은 표현들 중 가장 합당한 몇가지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최대한 짧은 말 속에 최대한 정확한 느낌을 담기 위해서는 그렇게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와 표현들을 순차적으로 풀어내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 이제껏 사용되어졌던 수많은 표현법 중 나름 효과가 좋고 우수한 것들이 바로 '형식', 즉 '글의 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틀 속에 상황에 맞는 가장 적합한 단어를 집어넣어 완성하면 그게 바로 가장 잘 쓰여진 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뭔가 미진한 감이 있어 다른 표현을 더 집어넣고 싶더라도 이미 그 틀이 꽉 채워져 있다면 더 사용해선 안된다.
이를 무시하고 더 사용하면 그게 바로 중언부언이고, 쓸데없이 길어지는 말이 된다는 것을 이제서야 비로소 실감했던 것이다.

결국 필력이 강한 이의 글이란 것은 뭔가 있어보이는 구절이나 멋지고 화려한 표현을 사용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구절은 굳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어록이나 명언집 등을 뒤져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또, 남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희한한 전문용어 따위를 남발하며, 소위 지식인입네 하고 자랑질하는 것도 잘 쓰여진 글이라 할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먹지 못할 말따윈 낙서에 불과한 개소리만큼의 가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평범한 서술, 묘사를 하더라도 어떻게 적어야 내가 느낀 이 감동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까? 또 내가 보고 있고, 상상하고 있는 이 이미지 전체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빠짐없이 짧은 글 속에 압축해서 담을 수 있을까? 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이 바로 필력의 요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 다시한번 다짐해 본다.

유소응이 고른 검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검은 그가 보기에도 세 개의 검들 중 가장 무게중심이 잘 잡혀있고 담금질이 잘되어 있는 검이었다. 비록 다른 두 개의 검보다 날카롭지는 않았으나, 처음 검을 배우는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것이었다.
검의 대금을 지불한 진산월은 검의 손잡이에 붉은색의 작은수실을 매달았다. 그 수실에는 <견>이라는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진산월은 검을 든 채로 엄숙한 눈으로 유소응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너는 나에게 무공을 배울 수만 있다면 어떠한 고통도 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억하느냐?"
"예."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물러서지 않겠으며,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도 기억하고 있느냐?"
"예."
"또한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느냐?"
유소응은 작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 사부님."
"이 '견'이란 글자는 너의 그러한 결심이 굳게 지속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엇이건 초지일관한다면 장부가 될 수 있지. 고수가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나는 네가 단순히 무공만 뛰어난 고수가 아닌 진정한 장부가 되기를 바란다."
유소응의 작은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명심하겠습니다."
진산월이 검을 내밀자 유소응은 그 자리에서 세 번 절을 한 후 두 손으로 공손하게 검을 받았다.
"검명을 내려주십시오."
"견정이다."
"견정검........"
유소응은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검을 가슴에 안은 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절세의 보검도 아니고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명검도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세상의 어떤 신검보다도 더욱 소중한 검이었다. 하늘같은 사부가 초심을 잃지말라며 직접 검명까지 하사한 최초의 검인 것이다.
견정검은 어른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크기여서 그가 허리춤에 매달기에는 너무 길었다. 그래서 유소응은 그 검을 품에 안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검동(검객의 검을 대신 들고 다니는 시동)을 연상케 했으나 유소응은 조금도 거리껴 하지 않았다.
뇌일봉은 바닥에 대면 자신의 목 근처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장검을 소중하게 안고 다부진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유소응을 한참 동안이나 지켜보고 있다가 진산월을 향해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저 아이는 반드시 강호를 뒤흔드는 절정검객이 될 것이다."
- 군림천하 21권 중 발췌 -

어떤가? 겨우 한 페이지에 불과한 저 적은 글로도 저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하지 않은가?

용대운님의 <군림천하>
진산월.. 그리고, 군림천하




p.s
간혹 엄청난 장문임에도 불구하고 짧게 느껴지는 글이 있다.
스크롤의 압박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는 글이 있다.

이게 바로 흐름을 잘 탄 글들이다.
A 다음에 B가, B 다음에 C가 나와주어 끊어지지 않고 강물이 흐르듯 면면이 흐르는 글..
실타래에 실이 풀려나가듯이 술술 풀려나가는 글..

이런 글이 제대로 된 글이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글재주- 원래 뜻과는 무관하게 내가 사용하는 '글솜씨'와 '글재주' 의 정의는 전술과 전략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가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제대로 된 글이 아닌 경우는..?
반대로 생각하면 되겠지..별로 길지도 않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지 않거나 좀 읽다보면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이해도 안되고, 몰입을 방해하는 그런 글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작가가 실제 자신이 보고 있는 심상을 묘사한 게 아니라 어거지로 말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다 전달하기 힘든데, 자신이 보고 있지 않은 것을 무슨 수로 보게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자신에겐 반드시 일정공간을 채워넣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고하니, 별수없이 있는 말 없는 말을 여기저기서 긁어모으고 한껏 부풀려 자신에게 할당된 그 공간을 채우려 안간힘을 쓰게된다.

쓰고 싶지 않은데, 써야 되는 글..
떠오르는 느낌도 없는데 억지로 쥐어짜듯이 만들어 내야하는 글..

이런 심상의 심자와도 관련없는 찌끄기 같은 글들이 그런 저급한 목적에 의해 채워졌기에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쉽고 재밌게 전달될래야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괴로움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니 그 글을 읽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리 만무하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쓰고 싶을 때 써야한다.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감정들을 쏟아내듯이 일시에 써나가야 한다. 
그럴 때가 아니라면 차라리 쓰지 않는게 좋다.
그게 예전에 느꼈고, 이번에 다시한번 실감하게 된 '좋은 글 쓰기' 의 핵심인 것이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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