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알게 된 계기는 상당히 우연이다.
태종대에 놀러갈려고 검색을 해보던 중 우연찮게 이 영화의 제목이 걸려나왔었는데, 그 내용에 의하면 이 영화의 마지막 생사결의 배경이 바로 태종대였던 것이다.
왠지 내가 살고있는 인근지역이 몇십년 전의 외국영화에 등장한다고 하니 좀 신기한 느낌도 들고, 과연 30년 전의 태종대는 지금의 태종대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그래서, 찾아보게 된 영화였다.

그렇게 보게 된 생사결..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있었다.
일단 무술영화의 기본인 무술실력- 여기서는 칼싸움 실력이라고 해야겠지만 -이 아주 끝내준다.
속도도 빠르고, 동작도 화려하고, 박진감도 넘치고, 급박함, 긴장감, 참혹함 등의 느낌도 잘 살아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술영화로서의 볼거리는 최상급 수준이며, 이 정도의 볼거리는 요즘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니, 당연히 옛날 고전영화 중에선 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중국무술영화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릴 때 처음 비디오를 집에 들여왔던 날 같이 끼워져 있던 비디오 테이프 중에 하나가 바로 '조문삼로' 였고, 그 이후로 중국무술영화는 나의 어린시절을 좌지우지할 만큼 상당한 관심으로 자리잡았었다.
코난이나 반지의 제왕 같은 게 서양 판타지라면 이 무술영화는 바로 동양 판타지가 아니겠는가?
한창 감수성 예민하고 꿈에 젖어살던 때라 옛날 사람들은 실제로 저렇게 붕붕 날아다녔었는 줄 알고 마음 속 깊이 동경하기도 했었지만, 이제 머리털이 굵어져 사실이 어떻다는 걸 알아차린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무술영화를 좋아하는 걸 보면 어린시절 나에게 끼쳤던 영향이 상당히 컸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 당시에 봤던 무수히 많은 중국무술영화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대략 20가지 정도 될까말까인데,  그나마도 제목까지 기억하는 건 꼴랑 3,4개 밖에 안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문삼로'가 있고, '삼인의 명포교(삼대명포회경사)' 가 있으며, 태극원공과 모산비타- 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가슴에 동경이 달린 할아범이 악당두목으로 나오는 영화다 -와 손자병법이다..
이 밖에도 뜨문뜨문 기억에 남는 재밌다 싶은 것들이 몇가지 더 있지만, 이 정도의 정보로는 당최 찾을 도리가 없어 지금은 거의 포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뭐..각설하고, 아무튼 그런 내 기억에서도 이 생사결은 들어있지 않은 듯 했고, '왜 이런 재미있는 영화를 당시에 못봤었던 거지' 라며 상당히 신기해 했었다.



마지막 결전 장면까지 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이거다..
90분동안의 모든영상은 마지막 5분의 결전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는 거..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지막 2분이다.
마지막 2분의 처절함을 살리고, 그 처절함의 정당성을 만들어 주기 위해 90분이나 투자해 그 먼길을 걸어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만큼 마지막 2분의 결말은 그런 이유가 있지않고서는 납득할 수 없는 제목 그대로의 생사결이었던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미야모토(서소강 분)가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하고 뒤돌아 일본 쪽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수구초심의 마음을 느꼈고, 지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강한 승부욕 때문에 죽더라도 쓰러져 죽지않으려고 자신의 발을 칼로 고정시키는 모습에선 죽어도 꺾이지 않으려는 전사의 자존심이 엿보였다.
또, 그런 미야모토에게 이기긴 했으나, 오른쪽 팔과 왼쪽 손가락 전부를 잃고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몸이 되자 결과에 상관없이 천천히 뒤돌아서 물러나는 보청운(유송인 분)의 모습에서 승패의 허무함과 인생무상의 덧없음이, 곧이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아래쪽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마지막 정지된 장면은 이해타산으로 따지면 득이라곤 하나 없는 이 처절한 결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가며 죽는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던 두 사람의 숭고한 뜻을 마지막으로 우러러보며 기려보겠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었다.

아..진짜 뭣 때문인지, 또 뭐라 표현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만, 하여튼 뭔가 엄청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 모든 걸 마무리 짓고 각자 갈 길을 간다는 듯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헤어지는 이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처절한 생사결이 바로 남자의 승부이고, 승부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다. 또, 남자가 죽는 방법이자 죽을 때 지향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니, 이 장면이 남자라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마지막 모습인 것이다.' 라고..

아무튼 비록 30년이나 지난 오래된 무술영화에 불과하지만, 보고 나서 이렇게까지 여운이 남는 걸 보면 상당히 괜찮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암..남는 게 있으면 좋은 영화인 거지..ㅋ

 
 
 
p.s
그런데, 멋지긴 멋진데, 왜 저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어떻게 보면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두 사람이 당초의 목적대로 죽을 때까지 서로 상대를 베고 베고 또 베지 않으면 안된다니..
승패만 결정지은 다음 평생토록 호형호제하면서 친구처럼 지냈어도 됐을텐데, 왜 저렇게 까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상대를 이기려 한건지....
옛날 사람들에겐 요즘 우리와는 전혀 다른개념의 우정이 존재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영화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자신의 목숨이 다하거나 상대가 죽게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칼부림해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최상의 공경이라서 그런건가? 아니면 자신의 목숨을 걸만큼 더 소중한 뭔가가 있어서..?' 라는 의문이 들만큼 뒤도 안 돌아보고 죽음을 향해 달려나가는 게 아주 비장미가 철철 넘친다.

둘의 실력이 워낙에 호각이라 싸우면 반드시 양패구상할 거라는 걸 사전에 미리 짐작하고 있었을 텐데도, 저렇게 싸우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라를 대표하는 신분이라서..?
아니면, 자신의 명예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세상에 둘도 없는 호적수와는 반드시 생사결에 임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이기 때문에..?

사실 보청운이 살짝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미야모토를 구해주었을 뿐 아니라, 구해줄려다 그의 도에 오른쪽 가슴을 뚫리는 상처까지 입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보청운은 미야모토가 이걸 계기로 마음을 돌려먹어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미야모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미야모토는 그런 보청운의 바램을 애써 무시한다.
자신 때문에 입은 보청운의 상처와 똑같은 상처를 자신에게도 내버린 것이다..
마치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신과 나의 생사결은 멈출 수 없으니, 나 때문에 입은 그 상처는 이 것으로 대신하겠소' 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런 미야모토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읽은 보청운은 결국 기대를 접고 마지막 승부를 위해 검을 겨눈다.

휴우~ 진짜 뭣 때문에 저렇게 처절하게 싸웠어야 했던건진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대충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중압감에 짓눌려 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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