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주장하는 사람도 있나?
그리고, 자신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있는가?

없다..
다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그 지식과 정보의 질과 양, 그리고 진위여부가 실제론 어떠한지에 대해선 차치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일단 말을 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저끼리 소위 논쟁(?)이라는 것이 붙곤 한다.
뭐 말이 좋아 논쟁이지 동네 개싸움에 지나지 않는 트집잡기, 말꼬리 잡기, 왜곡하기, 모르는 척 하기, 못 들은 척 하기, 중요한 건 빼고 말하기, 방해하기 등등의 수준낮은 드잡이질에 불과할 뿐인데..
아무튼 그런 논쟁같지도 않은 논쟁을 벌이면서 거의 수시로 올라오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모르면서 아는 척 한다' or '모르면 말하지 마라' 라는 말인 것이다.

어떤가? 참 웃긴 소리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은 그럼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꿰뚫고 있어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상대방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도 세상엔 수두룩 할 텐데, 그럼 그 땐 자신이 알아서 입을 닫을텐가?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가 진리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는가?
어차피 그 역시도 다른 사람의 주장과 근거를 책이나 영상같은 매체를 통해 습득한 간접정보물의 결과일 뿐이잖는가?
스스로 연구하고 탐구하고 진리를 궁구한 끝에 얻은 결과를 다시 검증하고 나서야 확신하게 된 결과물도 아닐터인데, 어떻게 자신의 말은 정확하고 상대방의 근거는 틀렸다고 매도할 수 있는가 이 말이다.
게다가 이 말은 자신 역시도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꿰뚫고 있는 '만사무불통지'가 아닌게 확실한 이상, '모르면 말을 하지 마라'는 말대로 자기 입까지 틀어막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정작 본인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 웃길 수 밖에...

자..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
모르든 알든 사람의 말은 막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모르면서 하는 말' 이라곤 생각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도 나름의 근거가 있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전제로 깔아놓고 그 다음에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나의 생각과 상충하는 것인지에 대해 따져볼려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른지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도 말이다. 

논쟁이란 것도 바로 그런 이유로 생기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바와 상대방이 옳다고 믿는 바가 서로 충돌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지식이 나의 정보와 지식의 질과 양보다 우수하여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이나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을 찝어내어 주면 나는 나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주장이 옳다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은 자신의 생각이 역시 옳았음을 자신할 수 있게되고, 나는 나대로 내 생각이 짧았지만, 대신 어떤 부분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파악하여 해당 오류를 수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세워진 주관적인 생각끼리 부딪히는 것이 논쟁이란 것이니만큼 많이 알든 적게 알든, 혹은 제대로 알든 틀리게 알든 상관없이 일단은 서로 말을 해야 하는 게 옳다.
그런데, 모르면 말을 하지 말라고 하니 어찌 비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왜 이같은 '모르면 말을 하지마라' 라는 말이 올라오는 것일까?
내 생각엔 세가지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상대방을 비하하고 무식한 사람으로 격하시키기 위함이고, 두번째는 이렇게 상대방을 격하시키고 자극함으로써 이에 발끈한 상대가 평정심과 냉철함을 잃고 비논리로 일관하다 스스로 자멸하게끔 하기위해 깔아놓는 포석일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는 상대방의 공격으로 인해 자신이 받아야할 충격이나 이 논쟁에 소모되는 자신의 심력이 부담스러워 아예 상대방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해 보고자 엄포를 놓으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치 겁먹은 개가 으르렁 거리듯이 말이다. 
그렇게 으르릉거려 상대방이 먼저 겁을 먹어 떠나가거나 알아서 자멸해주면 좋고, 부수적인 효과로 이 논쟁을 지켜보는 제 3자들에게 '무식한 것은 상대방이고, 옳은 것은 자신' 이라는 식의 분위기를 전해줄 수도 있으니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없으리라는 계산- 이런 생각들을 실제로 계산했다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감을 잡았다는 뜻 -때문이 아닐런지..

그런 점에서 볼 때 확실히 상대방을 비꼬고 매도하고 자극하여 이쪽의 페이스로 끌어오는 것은 효과적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파이터로서 필요한 전술이지, 토의나 토론에 필요한 수단은 아니라는 걸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모두들 알겠지만, 토의,토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서로의 생각을 모으려는 대화방법을 말한다.
때문에 여기서 사용되어지는 반론이나 반박은 모두 상대방의 오류를 수정해 줌으로써 상대방의 생각에 빈틈을 메꾸고 헛점을 없애며, 수정이 불가능할 시엔 그 생각 자체를 전면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비교하고 대조해 보는, 상대방이 보내주는 지식과 정보의 지원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봐야한다.
한마디로 발전적인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반박따윈 반론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고, 이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 라는 비웃음조의 비난도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모르면 말을 하지마라' 면서 으르렁거린다는 것은 도저히 토론하는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의 말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커뮤니티 사이트의 댓글을 달면서 무슨 토론운운이냐? 하고 말이다.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냥 짧은 자신의 감상 한줄 적어놓은 걸 가지고 토론 운운한 게 아니고, 무슨 거창하게 댓글싸움, 말사움하는 걸 가지고 토론의 개념을 가져다 붙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들을 한번 더듬어 보길 바란다. 언제 '모르면 말을 하지마라' 라는 표현들이 나왔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주장을 '논리'나 '논쟁'이라는 표현을 가져다 썼었는지를.. 
분명 A라는 유저의 감상에 B라는 유저가 태클을 걸었고, A라는 유저가 이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쳤을 때 저런 표현이 나오지 않았었는지를 떠올려 보라..

일단 쌍방간에 감정의 충돌이 아닌, 나름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충돌했다는 것은 논쟁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본인들도 이 동네 개싸움 같은 말싸움을 나름 격을 높여 '논쟁'이라 표현했다면, 그건 이미 크든 작든 토론, 토의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고 봐야한다.
그 사이트가 토론에 적합하지 않는 사이트라느니 어쩌니, 자신들의 말싸움이 토론처럼 발전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출발했느냐 아니냐 따위는 상관없다. 자신들의 말싸움이 '논쟁' 이라 불린 이상, 그 최종목적지는 절대로 토론장이 아니면 안된다.
그래서, 좋든 나쁘든 그럴 듯 하든 안하든 아무리 작은 결과라도 도출해 내기위해 노력할 때만이 비로소 그 자신들이 거창하게 '논쟁'이라고 까지 불렀던 동네 개싸움에도 그에 맞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이미 자신들의 개싸움은 '논쟁' 이라 격상시켰으면서 막상 토론인가 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말하거나, 아무 목적성도 없이 그냥 논쟁은 논쟁으로만 끝내겠고 말하고 있다면, 그거야 말로 앞서 말한대로 '반대를 위한 반대'처럼 밥만 먹고 똥만 싸는 식의 비생산적이고 쓸데없이 에너지만 소모할 뿐인 낭비적인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그런 합리와 필요에서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논쟁'이라는 것 자체가 토론을 무대로 하지 않는 이상엔 나올 수 없는 표현이며, '논쟁'이라 불리길 원했다 함은 이미 암묵적으로 그들 스스로가 토론장을 그네들의 전장으로 선택한 것이었음을 그들은 인정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토론의 목적을 담보로 하지 않고, 토론장을 무대로 하지 않는 '논쟁'은 이미 '논쟁'이 아니라 '말싸움'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모르면 말을 하지마라'와 같은 얼빠진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면, 과연 그들은 주둥아리 파이터일까 아닐까? 


말이 조금 길어졌으니 이만 슬슬 끝을 맺겠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솔직히 논리문제로 말싸움은 일어날 게 없다.
자신이 생각 못한 것, 자신이 틀린 것을 정확히 짚어준다면 그걸 고맙게 받아들이고 수정하면 그 뿐이다.
그렇게 수정한 자신의 논리는 더욱 더 공고해지고 완벽에 가까워 질 것이니 오히려 자신에게 있어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나쁠 게 없는 것이다.

말싸움은 항상 감정 때문에 일어난다. 논리가 아닌 감정 때문에 말이다.
논리의 옳고 그름 따윈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이 상해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란 말이다.
모든 트러블의 원인은 감정싸움이다.

자신의 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이 충돌하여 트러블이 일어나고, 그 트러블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신들을 정당화,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이유와 명분인 것이며, 이를 말로써 설명하고 설득하고 해명하려다 보니 논리가 필요해 지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요컨데, 당사자 둘만 있다면 논리따윈 필요없다는 말이다. 그냥 기분 나쁘고 수 틀리면 기분 풀릴 때까지 싸우면 끝날 문제다. 그리고, 그 승패여부는 당연히 힘쎈 쪽에서 결정짓게 되겠지..
역설적으로 말하면, 트러블이 생겼을 때 감정대로만 처리하게 되면 무법천지가 펼쳐진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만..

하지만, 다행히도 이 세상은 그런 무법천지도 아니거니와 둘만 사는 세상인 것도 아니다.
무슨 싸움에서든지 항상 제 3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적과 나를 제외하고도 중도를 지키는 이나 관계자 외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인 것이다. 때문에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자신의 감정대로만 일을 처리할 수도 없다.
즉, 괜히 혼자 길길이 날뛰다가 전혀 관계없던 사람까지 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힘이 엄청나게 강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가능한 절대자라면야 논리 따윈 상관없이 반항하는 이들 전부를 배제시켜 버리거나 힘으로 눌러버려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상부상조해가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이상엔 제 3자들까지 지켜보는 상황에선 그들이 자신의 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기위해서라도 반드시 명분은 필요한 것이기에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정당한 이유를 마련해 줄 필요가 생기는 것이고, 이 것이 바로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이치적으로 따질 수 있는 '논리'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결국 '논리'가 필요한 이유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자신이 옳았음을 주장하기 위함이 목적이지, 상대방을 까고 비난하기 위함이 목적인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상대의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것이 논쟁의 한 방법이기는 하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할 뿐 목적은 될 수 없다는 걸 명심하여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는 감정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점만 항시 염두에 두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나라 커뮤니티 사이트는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고,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이견들을 서로 적극적으로 나누는 모습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우리나라의 앞날은 더욱 더 찬란해 질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짓겠다.




p.s

'반대를 위한 반대'..단순히 상대방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하고 본다...혹은 상대방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 또는 발전적인 방향의 최선안이냐 아니냐 따윈 상관없이 헛점을 찾아 일단 배제하고 본다는 식의 목적성 없는 반대는 한마디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며, 이러한 쓰레기는 앞서 말한 것처럼 토론의 목적을 담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상대를 누르고, 무시하고, 비하하고, 까면 깔수록 거꾸로 자신의 말이 옳게되는 줄 아는 주둥아리 파이터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이렇게 발전도, 도움도 안되는 쓰레기 같은 댓글싸움들만 생기는 것이고,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명(?)파이터들이 각자 논리가 어쩌고 오류가 어쩌고 하고 떠들어대지만, 막상 몇몇 전문가들에게 도전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피똥싸면서 죄다 처발리고 나가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토론의 목적과 논쟁의 이유엔 아랑 곳 없이 수박 겉 핥듯이 말싸움에 필요한 '반대를 위한 반대하기' 기술만 닦아왔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랴?




p.s

그래서, 나는 진중권같은 스타일을 싫어한다.
진중권 트위터에서 일어나는 난상토론 정리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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