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다시 보고파 했던 '3인의 명포교'를 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왜 그 동안 이 영화를, 그것도 몇십년 전의 구닥닥다리 영화를 못봐서 그토록 안절부절 못했던 것인가 하면 이 3인의 명포교(이하 3인)는 어린시절 보고 난 이후 지금에 이르기 까지 '중국무술영화라면 이래야 한다' 라는 나름의 기준을 세워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렸을 땐 단순히 재밌다고만 생각하고 또 멋있다고만 생각했지 왜 재밌다고 생각했던건지 왜 멋있다고 생각했었는지.. 그리고, 왜 지금까지 다른 건 다 잊어버렸는데 이것만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수 있었던 건지에 대해선 자세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만, 이제 다시 보고나니 '아..역시 이런저런 점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까지 잊지 못했던 것이구나' 라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대한 내용과 느낌을 여기에 몇자 추려 보자면..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액션이겠지? 무술영화에서 액션이 후달린다면 그거야 말로 앙코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이 3인 역시 액션이 훌륭하다.
검술.. 막말로 말해서 칼싸움을 비롯하여 뛰고 나는 등의 움직이는 모든 동작들이 빠르고 경쾌하며, 화끈하고, 과감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액션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맛이 있다. 한마디로 멋있는 거다.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각종 드라마틱한 설정이나 그것을 표현해 낸 여러 연출도 멋지다.
일단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약간 호러틱하다고 해야 하나 황량한듯하면서도 메마른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해야 하나.. 하여튼 그런 신비주의적 색채로 가득 메워져 있다.
가령 일본의 밤거리하면 귀신,원혼, 저주 혹은 백귀야행 같이 심령적이고 오컬트적인 공포가 떠오르는 것처럼..
또, 중국하면 기암괴석과 안개로 휘감기는 기기묘묘한 자연경관, 인세엔 없을 것 같은 신선들과 요괴가 살아 숨쉬는 곳..
그리고, 그 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부대끼며 살아가는 악착같은 인간군상들..
즉, 환상과 실재가 혼재해 있을 것 같은 그런 묘한 느낌의 동양식 판타지를 연상케 하는 곳이 고전중국에 대한 느낌일텐데 이 영화 속 배경은 그러한 우리의 상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게다가 주로 밤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흘러가는 분위기가 금세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고 당장이라도 뭔일이 생길 것 같은 긴장만땅의 인간세상같지 않은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게 꼭 우리가 막연히 상상했던 중국의 고전무협, 중국의 신비, 중국강호무술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놓은 듯 했으며, 그런 이질적이면서도 거칠고, 비정하면서도 몽환적일 것 같은.. 마치 딴 세상을 엿보는 듯한 그런 동양식 판타지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과연 중국무술영화라면 저래야 제 맛이지'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할 정도로 합일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고전무술영화를 좋아하는 이 치고 이 영화에 빠져들 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내용도 내용이지만, 연출과 분위기가 죽여주는 영화다 이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영화 속 등장인물이나 특수효과 등도 아주 볼만하다.
제 아무리 무공고수라 해도 이슬만 먹으면서 살거나 일도 안하고 놀면서 살 리 없으며, 명색이 공무원이니 만큼 열심히 상관의 명을 받들어 범인 잡으러 다니거나 아니면 책상에 앉아 날밤 까면서 서류와 씨름질 해도 모자랄 남북신포가 심산유곡의 경치좋은 곳에 시녀 한명 대동하고 앉아 기분좋게 금을 타고 논다거나 바닥에 안개가 쫙 깔리고 붉은 단풍잎이 멋드러진 비밀스런 공간에 틀어박혀선 한가롭게 술이나 마시고 있질 않나..흑랑이란 놈은 임무수행한답시고 살수집단에 잠입해선 진짜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않고 다 죽여대는 이런 상식적으론 도저히 말이 안되는 인물설정과 배경도 희한하게 영화를 보다보면 전혀 생각나지 않고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화면 속의 그들은 멋지고 화려하며 매력적이더란 말이지.
적도 마찬가지다.
이 3인에 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충 단혼오호, 강호오절, 살수 포씨, 쌍살, 청부살인조직 마두의 보스와 중보스 4명, 신비의 미녀 기타 등등이 있었는데,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바로 '강호오절'이었다.
난 몇십년이 지난 후에도 3인하면 항상 기억에 남았던 게 포교들에 대한 기억과 함께 장기알과 책장날리기였을만큼 낚시꾼, 쌍검사, 비표, 문사, 악사로 이루어진 이 오인조는 참으로 개성만점의 파티라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싸우기 직전 흑랑이 걸어가자 갑자기 난데없이 '황천길로 향하는 귀문관' 이라 적힌 현수막을 바닥에 깔고 양 사이드로 백등이 마치 비행기 활주로처럼 일시에 켜는 거라든지.. 안에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강호오절이 모두 책상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고, 그 주위로는 뿌연 연기가 마구 휘날려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처럼 꾸며놓은 점 등은 이 강호오절이라는 캐릭터들이 절대 쩌리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비록 흑랑한테는 그냥 깨졌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기에 당시 내가 넋을 잃고 봤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아래는 3인의 참고영상이다.
p.s
1.. 막판에 흑랑이 중저음으로 '아니오' 하면서 살짝쿵 미소를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다 싶었다.
아..저런 남자가 되어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정도로 말이다.
2..노래가 상당히 괜찮다.
3..이건 별 상관없는 객쩍은 소리인데, 왜 우리나라는 저런 캐릭터가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중국은 극강한 무공고수, 일본은 사무라이와 닌자로 대변되는 이미지란게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런게 없을까?
4..어양청 목소리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흑랑과 같은 중저음이지만, 뭐랄까 감미로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끈적끈적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랬다.
5..그러고 보니 쌍살이라는 두명 중 한명이 아무래도 오맹달처럼 보이던데, 착각인가? ㅋㅋ
6..보다보면 몇군데, 용노사의 독보건곤에서 볼 수 있었던 설정이 보이더라.
예를 들어 홍짚신은 독보건곤의 무영기사와, 생명패는 금우두부의 금우등 같은 식으로 말이다.
또, 막판에 흑랑과 보스가 싸울 때 보스가 찌른 칼을 흑랑이 칼집으로 받아채는 장면은 킬빌에서 우마서먼이 빌의 칼을 칼집으로 받아 잡아채는 장면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7..역시 무술영화는 중국이 최고인 것 같다.
암만 움치고 뛴다해도, 암만 신기술을 도입하고 CG로 도배를 한다해도 중국무술영화를 당할 순 없을 것 같다.
막말로 검우강호나 워리어스 웨이와 이 7,80년대 3인을 가져다 붙여봐도 백이면 백 3인이 낫다 싶으니..
‘제 살 깎아먹기’ 검법은 쓰지 말라
'영화보기 > 영화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무문 精武門 Fist of Fury (0) | 2011.07.16 |
---|---|
견자단 Donnie Yen 甄子丹 (0) | 2011.07.12 |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 2010년작 (0) | 2011.03.07 |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 A Space Odyssey 1968년작 (0) | 2011.02.08 |
아이덴티티 Identity 2003년작 (0) | 2011.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