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언제였더라..
내가 처음 견자단을 봤던 것은 '철마류' 라는 영화에서 였다.
그 영화에서 견자단은 어린 황비홍의 아버지 '황기영'으로 등장해 신기에 가까운 발차기를 선보였었다.
당시 태권도를 배우던 때라 한창 무술, 그 중에서도 발차기에 관심이 많았었던 나는 견자단의 현란한 발차기에 금새 매료되어 버렸고, 철마류의 실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었던 '철후자' 우영광의 멋진 '구절편'보다 더 깊은 감동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재밌다', '멋지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 사람이 누구냐', '뭐하는 놈이냐', '그 인간 이름이 뭐냐' 등등 프로필을 궁금해 하며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시간이 흘러 철마류의 기억이 어느 정도 잊혀졌던 어느 날, 우연찮게 케이블 TV 무협채널에서 '정무문'을 보게 되었다.
볼 생각이 있어 본 것은 아니고, 그냥 채널을 막 돌리다 보니 제법 낯익은 얼굴- 후에 찾아봐서 알게된 그의 이름은 고웅이었다. 낯익었던 이유는 '손자병법(손빈하산투방연)'에서 방연으로 분한 모습이 상당히 인상깊었었기 때문 -이 등장하길래 괜히 호기심이 발동하여 보게 된 것이었는데, 계속 보다보니.. 어라? 왠지 주인공의 얼굴이 상당히 낯이 익지 않은가?
가만있자..저게 누구더라..그러면서 곰곰히 생각해 봤더니..
아하, 예전에 봤던 그 발차기잖아..그때 그게..철마류였던가? 라는 생각이 번뜩 들더란 말이지..

흠..제법 만족스런 얼굴들도 나오겠다, 또 익숙하겠다, 왠지 재미도 있을 것 같고 해서 자리깔고 앉아 섭렵하게 된 장편 무협드라마 '정무문'의 느낌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따라쟁이처럼 이소룡 흉내를 내는 게 좀 오그라들긴 했지만, 그 정도의 거슬림은 단번에 쌈싸먹어 버릴 정도로 견자단이 뿜어내는 액션은 굉장히 호쾌하고 화려했었었다.
진짜 이소룡의 '정무문'과는 또 다른 맛을 보여주더란 말이지. 


아..역시 싸움 잘하잖아..이 사람 영화 한번 다 찾아봐야겠다.
그 전까지만 해도 무술영화 중에선 출연배우 이름만 보고 선택할 정도의 브랜드 명을 가진 사람은 이연걸- 조문탁은 '칼' 말고는 별로라서;; -말고는 없었었는데, 여기에 '견자단' 이라는 이름을 추가해서 따로 찾아볼 정도로 이 때 받은 충격과 감동은 제법 만만찮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번 '주성치' 의 경우도 그랬지만, 이 '견자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실은 배우 상관없이 그냥 중국영화라는 자체가 다 그런 것일테지만,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진짜 볼만한 건 몇 안되더란 말이지. 진짜 뽑기같다 해야할지 내기같다 해야할지, 열개가 있으면 그 중에 괜찮은 건 딸랑 하나나 둘..
워낙에 다작을 하는 나라다 보니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좀 지난 옛날 영화들은 영 볼만한 게 못 되더란 말이지.

게다가 어디선가 듣기로는 견자단의 외모가 그렇게 미끈한 편이 아니라서 인기도 별로 없었다고 그러고..
무명시절도 오래 겪었다고도 그러고..
그러던 것이 '견자단의 정무문'으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팔자 폈다는 소문이 있더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예전에 봤던 '철마류' 나 '황비홍 2 : 남아당자강' 등에 출연했던 그 때도 인기없을 때 출연했던 영화라는 건데, 와..내가 보기엔 그렇게 못난 얼굴도 아닌데, 왜 인기를 못 끌었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되더라.
그 정도의 무술실력에 저 정도의 외모면 충분한데 뭘 더 바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근데, 가만 보면 조관우하고 닮은 것 같은데, 조관우도 한동안 얼굴없는 가수를 했어야 할 만큼 외모면에선 별로였다잖아..
흠..내가 이상한 건가?;;

아무튼 그랬던 것이 '정무문'이라는 tv 드라마를 통해 일약 무림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오르게 되고, 뒤이어 '영웅', '용호문' 같은 스타일리쉬한 맛의 고전무협과 '살파랑', '도화선' 같은 리일리티 쩌는 현대영화 양면에서 고루 인정받으며 '실력파 배우'라는 인지도를 쌓아나가던 중, 드디어 2008년 '엽문' 이라는 영화 한방으로 아주 쐐기를 박아버리게 된다.

그 때 사람들은 너도나도 만나면 '야..엽문 봤냐? 쩔지않냐?' 라고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솔직히 난 '엽문'이 그렇게 쩐다고는 생각 못해봤기에 당시의 붐이 좀 의아하게 느껴졌었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철마류'나 '정무문', '도화선' 이 더 쩌는 것 처럼 보이고, 되려 '엽문'의 경우는 뭐..그냥 무난하게 볼만하네 라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다들 그렇게나 너도나도 엽문을 외쳐대니 솔직히 내가 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고나 할까.. 혹시 내가 못 보고 지나친게 있나 싶어서 말이다. 그만큼 내가 봤을 때 엽문의 견자단은 임팩트가 적어보였었다.

어쨌거나 '엽문' 이후 견자단은 엽문 2나 정무문 100대 1의 전설 같은 영화에 계속 출연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며, 이 것이 바로 내가 추억하는 견자단인 것이다.
아래는 '견자단의 정무문 1 대 100의 전설' 중 한 장면으로 정무문에서 죽음을 위장한 진진이 상해로 돌아온 이후 천산흑협으로 활동하는 내용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견자단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다.

'실감나는 무술'

황비홍으로 유명한 이연걸도 무술실력이 좋다지만, 그의 무술은 견자단에 비해 약간 추상적이라 할 수 있다.
픽션이 많이 가미된 가식적인 무술이란 소리다.
물론 실제 실력이 거짓이란 뜻은 아니지만, 견자단과 비교했을 때 너무 외적인 부분과 화려함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내가 이연걸에서 견자단으로 관심의 방향을 바꾸게 된 직접적인 이유였다.
즉, 나는 실감나는 걸 추구하고 있었는데, 견자단과 비교해 봤더니 이연걸의 그러한 점이 오히려 실감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단 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에 의한 것일 뿐, 객관적으로 누가 더 잘나고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연걸과 견자단은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 것 없이 중국 무술영화계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한마디로 '갑'과 '을'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정점을 찍은 인물들인 것이다.

비교를 하자면 대충 이런 식이다.
이연걸의 무술영화는 멋진만큼 허구성도 짙은 것이 특징인데 반해, 견자단의 무술은 단조롭고 사실적인 대신 빠르고 경쾌하다.
또, 이연걸이 크게 원을 그리는 식으로 홰를 치듯 크게 움직이는 타입이라면 견자단은 작게 직선으로 바로 질러버리는 타입이다.
게다가 이 것도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인데, 이연걸의 주특기는 무기술인데 반해 견자단의 주특기는 맨손박투라고 하더라. 그리고, 이연걸이 외모의 우월함으로 어릴 때부터 상승가도를 달렸던 것에 비하면 견자단은 반대로 외모 때문에 오랫동안 죽을 쒔다고도 하고..아, 이건 아닌가? ㅋㅋㅋ

아무튼 둘의 기풍에는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구무협의 마지막 계보를 잇는 이가 이연걸이라면 신무협의 시대를 연 이가 바로 견자단이다.. 뭐 이런 식으로 이해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말인데, 과거의 위상과 너무도 달라진 현 둘의 관계는 어쩌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7,8,90년대 무술영화계의 계보를 이은 황비홍 이연걸이 21세기로 넘어와 곽원갑으로 참패하고 헐리우드 영화에서 조연이나 하다가 쓸쓸하게 퇴장한 점과는 반대로 이연걸이 승승장구할 당시에는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으로 밖에 활약하지 못한 견자단이 21세기에 들어서서는 가식보단 리얼리티를 추구하게 된 세인들의 추세에 발맞춰 자신의 강점을 한껏 발휘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정무문과 엽문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점들이 어쩌면 구무협의 시대가 가고 신무협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필연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다. 
그만큼 견자단의 실감나는 무술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으며, 이미 '견자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라 봐도 될만큼 나름의 경지를 구축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견자단의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무술동작들이 간결하면서도 멋있다.
실력있는 무술인으로 영화배우를 겸했던 과거의 영웅 '이소룡'과 오버랩되는 것이 꼭 정무문의 '진진'을 연기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며, 내가 견자단 영화에 환장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런 점에 기인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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