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간만에 눈물을 흘렸다.
이상하게 난 사람끼리의 감동을 유발하는 영화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영화보다 이처럼 동물을 등장시킨 영화나 애니에 더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것 같다.
과거 처음으로 보고 눈물을 흘렸던 애니가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편에 교회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같이 죽는 장면-이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하도 오래된 애니라서 기억이 사실 잘 안난다..이젠 벌써 몇십년 전에 봤던 애니라서 장면보다는 그걸 보고 울었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이었고, 영화를 보면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바이센티니얼 맨'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난 이상하게 사람보다는 동물이나 기타 인조생명체 쪽으로 감정이입이 잘된다고 느낀다.
단순히 오타쿠라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사람이 출연하는 영화에선 이미 '저 사람은 분명 나와는 다른 사람' 이라는 명확한 선을 긋고 보기 때문에 어느 한계선 이상의 접근을 내쪽에서 불허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애니메나 만화에도 눈물을 흘리고, 동물영화에 쉽게 감동하는 이유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개념을 훨씬 넘어서 상상 속의 존재..즉 내 생각 여하에 따라서 나도 될 수 있는 가공의 존재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망상이나 공상에 젖어들게 되고 굳이 나와 차별을 두지 않게 됨으로써 쉽게 나와 동일 시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뭐..아니면 말고..
난 심리학자나 그런 쪽에 대해선 모르니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본 '에이트 빌로우'는 감동적이었다.
사실 개의 연기만을 따진다면 늑대개를 당할 영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굳이 늑대개를 까면서 까지 이 영화의 감동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동은 개들의 연기력도 있지만, 여러마리의 개들 속의 질서라고 해야하나 사랑이라 해야 하나.. 하여튼 그런 끈끈한 관계에서 오는 뭔가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혼자 잘하면 되는 늑대개와는 단순비교 하기에 조금 무리가 있으니 이걸 감안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이유가 인간이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혹한의 남극에서 180일 넘게 끈질기게 생을 이어왔다는 놀라움과 굶어주기 직전까지 주인을 기다리다가 결국 개인플레이는 곧 죽음을 부른다는 걸 인식하고 살아남기 위해 리더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점 그리고, 다친 동료를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돌봐주고, 또 다친 녀석도 남은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삶을 포기할 정도로 서로를 생각한다는 모습에 개로 보이기 보단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마리는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과 그 속에 던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 불쌍함과 안도감이 마구 버무려져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엔 리더가 죽기 직전 주인에게 구해지게 되었을 땐 나도 모르게 '오! 신이시여!' 를 외칠 뻔 했을 정도로 환희를 느꼈고, 그전까지 슬픔에 잠식했던 내 감성이 환희에 의해 역으로 치고 오르면서 이게 바로 눈물로 분출이 되었던 것이었다.
즉, 중간의 여정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이전에 말한 것과 같이 오랜만에 내 얼어붙은 심장이 말랑말랑 따끈따끈 해지는 걸 느끼게 해준 좋은 영화였다.
이상하게 난 사람끼리의 감동을 유발하는 영화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영화보다 이처럼 동물을 등장시킨 영화나 애니에 더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것 같다.
과거 처음으로 보고 눈물을 흘렸던 애니가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편에 교회에서 네로와 파트라슈가 같이 죽는 장면-이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하도 오래된 애니라서 기억이 사실 잘 안난다..이젠 벌써 몇십년 전에 봤던 애니라서 장면보다는 그걸 보고 울었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이었고, 영화를 보면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바이센티니얼 맨'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난 이상하게 사람보다는 동물이나 기타 인조생명체 쪽으로 감정이입이 잘된다고 느낀다.
단순히 오타쿠라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사람이 출연하는 영화에선 이미 '저 사람은 분명 나와는 다른 사람' 이라는 명확한 선을 긋고 보기 때문에 어느 한계선 이상의 접근을 내쪽에서 불허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애니메나 만화에도 눈물을 흘리고, 동물영화에 쉽게 감동하는 이유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개념을 훨씬 넘어서 상상 속의 존재..즉 내 생각 여하에 따라서 나도 될 수 있는 가공의 존재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망상이나 공상에 젖어들게 되고 굳이 나와 차별을 두지 않게 됨으로써 쉽게 나와 동일 시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뭐..아니면 말고..
난 심리학자나 그런 쪽에 대해선 모르니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본 '에이트 빌로우'는 감동적이었다.
사실 개의 연기만을 따진다면 늑대개를 당할 영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굳이 늑대개를 까면서 까지 이 영화의 감동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동은 개들의 연기력도 있지만, 여러마리의 개들 속의 질서라고 해야하나 사랑이라 해야 하나.. 하여튼 그런 끈끈한 관계에서 오는 뭔가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혼자 잘하면 되는 늑대개와는 단순비교 하기에 조금 무리가 있으니 이걸 감안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이유가 인간이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혹한의 남극에서 180일 넘게 끈질기게 생을 이어왔다는 놀라움과 굶어주기 직전까지 주인을 기다리다가 결국 개인플레이는 곧 죽음을 부른다는 걸 인식하고 살아남기 위해 리더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점 그리고, 다친 동료를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돌봐주고, 또 다친 녀석도 남은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삶을 포기할 정도로 서로를 생각한다는 모습에 개로 보이기 보단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마리는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과 그 속에 던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 불쌍함과 안도감이 마구 버무려져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지막엔 리더가 죽기 직전 주인에게 구해지게 되었을 땐 나도 모르게 '오! 신이시여!' 를 외칠 뻔 했을 정도로 환희를 느꼈고, 그전까지 슬픔에 잠식했던 내 감성이 환희에 의해 역으로 치고 오르면서 이게 바로 눈물로 분출이 되었던 것이었다.
즉, 중간의 여정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이전에 말한 것과 같이 오랜만에 내 얼어붙은 심장이 말랑말랑 따끈따끈 해지는 걸 느끼게 해준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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