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조두순의 판결에 대한 기사 때문에 열받아 <나영엄마 이명박 대통령에 억울함 호소!> 이런 소릴 주절댄 적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왜 니들은 역지사지를 생각해 보지 않는거냐?> 라는 소릴 했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언제까지나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대로 돌려주자!!

이 진리가 모든 사회규범과 법질서의 기본이 되어야만 그 사회엔 억울한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나의 철썩같은 믿음이요, 정의이며, 내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좌우명이라는 건 이제 두번 말하기도 귀찮다.
아무튼 열받아 휘갈겨 쓰던 그 때 이런 사람들의 억울함을 판사가 제대로 풀어주지 못할 경우 분명 개인적으로 복수하고자 하는 이가 생길 것이라 주절댄 적이 있는데, 어제 본 <모범시민>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런 상황을 연출한 영화였다.


대충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 날 주인공 '클라이드'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바로 눈 앞에서 잃고 만다.
묶여서 옴짝달싹도 못한채 재미로 푹푹 찔러오는 칼침의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다.
바로 눈 앞에서 강간을 당하고, 급기야 죽임까지 당하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클라이드'는 살아남았고,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위해 가해자 둘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했다.
악보다는 선에 가까운 성향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정의도 좋지만, 일단은 내 승률부터~' 라는 개념과 '두마리 토끼를 놓칠바엔 최소한 한마리의 토끼라도~' 라는 지극히 계산적이면서 그 능력만큼은 출중한 검사 '닉' 은 최선을 다해 싸우기 보다는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데에 만족하며, 이러한 사실을 피해자 '클라이드' 에게 설득시키려 한다.
하지만, 실지 처참하게 짓밟힌 끝에 죽어간 아내와 딸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봐야했던 '클라이드'에겐 씨도 안먹힐 소리.. 때문에 이런 사무적이고, 계산적인 '닉' 의 개소리에 절망하며, 부디 내 일같이 열심히 싸워서 자신과 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것을 눈물로써 호소해 보지만, 이런 애통함도 직접 그 일을 겪어보지 않은 '닉'에겐 그다지 절실하게 와닿지 않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게 피해자의 의사완 상관없이 재판은 진행되고, 가장 쳐죽여야 할 놈이 당당하게 재판소를 걸어나와 '닉'과 악수하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클라이드'는 허탈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지나다니는 군중들 사이로 천천히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로부터 별 일 없이 10년이 시간이 지나간 후, '닉'과 형사를 제외하고 당시 재판에 관계됐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동안 잠잠했던 '클라이드'의 복수가 시작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왜 주인공 '클라이드'는 가해자 두명에게 복수를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당시 재판에 관계되었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작했는가? 이다.
만약 처음에 등장한 가해자 두명에게만 복수를 했다면 '법에서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직접 복수를 했다'고 이해할 수 있으련만, 주인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계속 죽여나갔기 때문에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모르게 되버렸다.
과연 이게 복수라 할 수 있을까? 그냥 목표를 상실해 버린 테러행위인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문제에 관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소감을 말하자면.. 
아마도 그는 '클라이드' 라는 한 개인의 억울함도 풀어주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법'이라는 구조자체에 대해 실망함과 동시에 명색이 법과 정의와 질서를 지킨다는 사법이 이익을 위해 범인과도 거래하는 썩어빠진 모습에서 느낀 배신감, 변호사의 말 몇마디에 실제 있었던 범죄가 희석되고 진짜 가해자가 공범자로 탈바꿈하는데도 이를 알아채지 못한건지 대충대충 넘겨버리는 소위 '법' 종사자들의 직무태만에 대한 분노가 하나로 어울어져 어느 한 순간 감성을 제어해 주는 '핀' 이 나가 버린 것같다..
한마디로 머리 잘 돌아가는 미친 놈이 되버린 것이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인간들 말이다.
범죄자들도 범죄자들이지만, 애초에 이 사회의 '사법 시스템' 자체가 허술하고 부패해 있기 때문에 자신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전부를 복수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폭주해 버린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에도 말했었지만, 세상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 백배, 천배로 돌려주고 싶은 것이 바로 사람이다.
뺨만 한대 맞았더라도 그 놈을 죽여버리고 싶은게 사람마음이고, 사기거래로 30만원을 날려먹었을 때에도 보이지 않는 '먹튀'를 어떻게 죽일까 궁리하는 것이 바로 사람마음이다.
이렇게 각 개인에게 맡겨두면 온 세상엔 등 뒤에서 칼로 쑤셔대는 사람들도 바글바글해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법이 있는 것이다.
법원에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있고, 그 판사의 판결을 도와주기 위해 검사와 변호사가 있는 것이며, 판사의 독주를 막기위해 배심원이 있는 이유가 다 따지고 보면 공정하게 죄의 경중을 가리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정확히 구분하여 괜시리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피해자 개개인의 폭주를 원천봉쇄하여 무법천지가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법'이 억울함을 풀어주기는 커녕 가해자와 거래하고,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니 눈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처참함을 직시했던 '클라이드'가 보기엔 이런 썩어빠진 '사법' 따윈 존속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이런 쓰레기를 박살내는 것은 자신의 정당한 복수이자 이 사회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정의로운 행동임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즉, 범죄자를 향한 미움이 그 범죄자를 변호했던 사법까지 한통속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난 주인공의 저 행동을 찬성하진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나 또한..아니 다른 어느 누구라도 일단 저런 상황에서 '핀'이 나가버린다면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핀이 나갔다는 자체가 이미 제어불능 및 통제불능이라는 뜻이니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르진 않을거라 생각된다.' 하고 말이다.
그렇게 이해할 순 있지만, 그래도 옳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무엇보다 독방으로 가야한다는 목적을 위해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던 깜빵동기를 조진 게 제일 잘못됐다.
범죄자라면 다 큰 코 다쳐봐야할 놈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적어도 '클라이드' 에게 쑤심을 당할 이유는 없었단 거지..
그리고, 6시 땡치고 나서 차가 폭발하여 죽은 '닉'의 동료들도 어떻게 보면 '모진 놈 옆에 있다 정 맞은 꼴'이기도 했고..

흠..뭐 어쨌든 간에 그렇게 대충대충 넘길려다 큰 코 다친 '닉'과 처음에 그 '닉' 때문에 돌아버린 '클라이드' 가 마지막으로 조우한 장면에서 '클라이드'의 핀을 나가게 해버렸던 결정적 사건인 '범죄자와의 거래' 에 대해 "더 이상 범죄자와의 거래는 없다"고 못을 박음으로써 시작부터 잘못되었던 첫 단추를 뒤늦게나마 바로 잡는다.

나는 이 영화와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핵심 두번째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범죄와 타협하지 마라.. 결과를 위한답시고 범죄와 타협하는 건 이처럼 더 큰 범죄와 또 다른 피해자를 낳게될 뿐이다.>
이 말.. 이 결론을 내고 싶어 감독은 '클라이드' 에게 엄청난 능력을 주어 과정을 짜맞추고 그 먼길을 삐잉~돌아온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모범시민'.. 아니, '폭주시민' 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이 영화는 그렇게 관객들에게 교훈을 내려주고 난 후 자신의 임무를 다한 '클라이드' 를- 이유야 어쨋든 범죄자는 범죄자니까 -범죄자 종말답게 폐기처분시켜 사라지게 하고, 살해된 가족들의 복수를 위해 남은 일생을 바쳤던 억울했던 피해자를 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낀 '닉'이 딸의 연주회에 참석하여 모처럼 아버지로써, 한 아내의 남편으로써 자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반전이 어설프다 라는 의견을 말하던데, 앞서 말한 것처럼 '클라이드'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가 바로 '범죄자는 지옥으로..' 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로선 저 결말이 그다지 나쁘다곤 생각지 않는다.

그 것보단 오히려 관객들에게 그런 교훈을 내려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지만, 가장 강력한 원인제공자 인 '닉' 을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끝까지 가만 내버려두었다는 점이 나로선 더 마음에 안들었다고나 할까?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하나 둘 씩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슬픔과 고통도 그리 약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가족의 소중함까지 덩달아 알게 해주겠다는 이중 교훈을 위해 '닉' 만은 한번도 건들지 않고 내버려 둔 설정자체도 내가 보기엔 왠지 '범죄와의 거래'와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즉, "원인 제공자인 '닉'이지만, 교훈을 내려줘야 하는 임무를 위해서 방면한다".. 라는 그런 느낌..
이게 마지막까지 보고 난 후 내가 느낀 유일한 찝찝함의 정체였다.   

아무튼 뒷끝 찜찜한 '모범시민' 잘~ 봤다..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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