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쌍협은 강철같은 천재 설수범과 대나무같은 귀재 자운엽, 2인을 주인공으로 한 월인님의 무협소설이다.
제목에 나왔듯이 이 둘은 사파와 마도를 대변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협의를 행하는 정파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이 무늬만 사파인 정파와 마도의 탈을 쓴 정파 둘이 힘을 합쳐 중원 밖 외세(서장밀교)의 침입을 막아내고 평화를 되찾는다는 내용이 바로 사마쌍협의 큰 줄기이다.
그럼 여기서 정파는 뭘 하느냐? 그냥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들 나름대로는 태극삼성을 만들어 내는 등 꽤 준비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나름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워낙에 주인공들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백도인물들은 떨거지 수준으로 격하되어 보인다.
그것 뿐이면 괜찮을 텐데, 약간 치사하게 굴기까지 한다.. 물론 그렇게 구는 녀석은 한놈에 불과하지만, 그 한놈이 주인공을 걸고 넘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정파 자체가 찌질해 보이는 느낌은 어쩔 수 없더라..
어쩌면 이 것은 사마 속에도 협이 있고, 정의 속에도 악이 존재하니 절대적인 선도, 또 절대적인 악도 없더라 는 식의 주제의식을 심어놓기 위한 작가님의 계산된 의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인지, 적인 서장밀교 역시도 그렇게 나쁜 놈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한 두명 정도가 발악을 하고, 스승을 시해하는 등의 패륜 짓을 좀 저지르긴 하지만, 그런 상황을 제외하고 인물의 성격 정도만 보면 참으로 후덕하고, 똑똑하고, 근성도 있고, 야망도 있으며, 명령에도 충실한 그런 괜찮은 놈들로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두루두루 괜찮은 놈들이 많은 여러 캐릭터 중에서 내 개인적으로는 자운엽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날개달린 호랑이라고 해야하나, 구만리를 날으는 대붕이라고 해야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존재가 바로 자운엽이라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특히 뱃속엔 능구렁이가 들었고, 머릿속엔 여우가 든 것 마냥 성격은 능글능글, 베짱은 두둑, 머리 쓰는 것도 보통이 아닌데다, 말 한마디를 해도 사람 속을 살살 긁는 말을 그렇게 잘할 수가 없었다..
그게 마음에 안들어서 발끈하며 손가락질 하는 놈은 그 손가락을 잡아서 부러뜨려 버릴 정도로 거칠 것이 없는데다가 수 틀리면 아예 그 놈이 속한 집단 전체를 다 박살내버릴 정도로 강하기까지 하니, 그를 상대하는 적들은 도대체 뭔 수가 안보이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설수범은 완전 중전차다..
자운엽이 다짜고짜 칼부림하는 것보단 일단 머리를 굴려 안 싸우고도 이기는 걸 더 좋아하는데 반해 설수범은 자운엽 못지않게 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일 뿐, 괜히 머리 굴려 싸우는 것보다 직접 쳐들어 가서 다 초토화시켜 버리는 걸 더 좋아한다.
마치 그냥 쳐들어 가서 다 박살내 버리면 간단한데, 왜 골치 아프게 머리 쓴답시고 심력을 낭비할 거냐 라는 그런 식이다.
이런 점은 비천용문을 공략할 때 잘 나타나고 있으며, 이 둘의 성향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운엽은 참모형, 설수범은 지휘관 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둘 다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가졌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자운엽 쪽이 더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는 자운엽 파트가 나오면 더 집중해서 읽고, 설수범 파트가 나오면 설렁설렁 읽는 그런 불상사까지 생기게 되더라만..
아무튼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를 양쪽으로 포진하여 파트를 번갈아 가며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질릴 틈 없이 쭉쭉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그렇다고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한가지가 살짝 걸리는 게 있는데, 뭐 많이 심각한 것은 아니고..
갈미란이라는 설수범 쪽의 히로인과 설수연이라는 자운엽 쪽의 히로인이 있는데, 이 캐릭터들이 조금 거슬린다면 거슬린달까 좀 그랬다..
어떻게 거슬리냐면, 갈미란이라는 여자는 한마디로 말해 캐릭터가 너무 철딱서니가 없고, 설수연이라는 여자는 캐릭터는 괜찮은 대신 자운엽과의 러브러브 관계에 대한 이유가 너무 허술했다..
갈미란은 지 할아버지가 밀교의 간세를 막아내기 위해 머리가 한웅큼씩 빠질려고 하는데, 지 마음에 안든다고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다가 잘못해서 죽을 뻔하질 않나..설수범은 옆에서 괴로워 미칠려고 하는데, 애인도 아니면서 애인처럼 굴며, 툭툭 던지는 말마다 설수범의 괴로운 기억을 자극하곤 한다..그러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이 '아픔을 함께 나누자'고 하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하나도 같이 나눌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듯 보였다..ㅋㅋㅋ
또, 설수연은 거의 설수범과 자운엽 급의 최강 히로인이며 캐릭터성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지만, 왜 자운엽을 사랑하는 건지에 대한 원인이나 이유, 또는 과정의 설명이 부족했다.
그냥 어릴 때 주인아씨와 하인으로 있다가 7,8년 후에 다시 만났는데, 그 땐 이미 사랑하고 있는 중이었다 라는 상당히 이해안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혹여 헤어지기 전 어릴 때 당시에 이미 신분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설정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런 것에 대한 설명도 없고, 말로는 연정을 품은 자운엽이 쓴 일기를 읽고 읽고 또 읽음으로써 설수연의 마음 속에 자운엽이라는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성장했기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처럼 생각만 한다고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갈미란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만큼이나 어색하기 짝이 없는 관계가 바로 자운엽과 설수연의 관계였다..
아..그렇게 따지니 갈미란이 설수범을 쫓아다닌다고 해서 설수범도 갈미란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좀 좀 이상하긴 이상하네.. 흠
아무튼 이 두가지만 빼놓고는 다 좋았다.
이야기도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고, 사건진행방식도 흥미진진했고, 마무리도 좋았으며, 뭐니뭐니해도 캐릭터가 제일 좋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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