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전설..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뭐가 재미있냐 하면 연신 굵직굵직한 껀수를 팡팡 터뜨려 주는 게 스펙타클해서 재밌다.
그걸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북해빙궁, 남만독곡,남해검문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 하나하나가 주 이야기로 활용할 수 있을정도로 스케일이 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런 굵직굵직한 껀수 사이사이의 빈틈을 중간급들 사건들이 빽빽하게 메워주고 있다.
무림맹 물건납입부터 시작해서 무림대회 8등 노리기, 빈민구제 노새성자, 검마의 무덤, 오련협, 청성감찰 등등..
세력구도가 사황성, 마교, 무림맹이라는 삼파전으로 되어 있다보니 이와 관련된 사건사고들을 쉴새없이 마구 터뜨려 준다.

거기다 금상첨화로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방식, 서술방식이나 등장인물들 간에 대화, 그리고 상황묘사 등이 개그라 할 수 있을정도로 재미있게 표현되고 있어 도대체가 재미가 없을만한 요소들은 찾아볼 수가 없을정도이니 과연 인기있는 소설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그게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고전 무협지나 정통 무협지를 읽을 때 느낄 수 있었던 딱딱한 의식, 예식은 어디서 쌈싸먹었는지 온데간데 없고, 어디 동네 양아치가 아는 동생들 데리고 소주한잔 찌끄리면서 이야기 해주는 듯이 막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제식, 형식, 의례, 격식이 갖춰져야만 하는 군대와 그런 거 다 필요없이 편한게 좋은 거라는 식의 예비군만큼 차이난다고나 할까?
그만큼 무협지라면 이래야 한다는 경직된 형식이 없어 참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가 양날의 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재미있지만,한편으로는 너무 무게가 없어 허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소리다.
캐릭터가 무게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전체 분위기가 너무 붕 떠있다는 느낌이라는 뜻이다.
심각할 땐 심각하고, 무게 잡을 땐 무게 잡고, 유쾌할 땐 유쾌하고.. 그렇게 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바로 이 잠룡전설이라는 소설을 읽다보면 너무 가벼워 한편의 아동연극을 보는 듯한 그러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붕 떠서 내려오질 않는다는 희한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게 그만큼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가벼운 느낌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자칫 싸게 보일 수도 있는 가벼운 느낌들이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다는 느낌이다.

이야기의 대략적인 줄기랄까 뼈대는 주인공이 무림맹에 갔다가 낚여선 300년전의 검마가 분탕질 쳐놓은 세외삼대 세력권의 난제들을 해결해 주고 돌아와서는 마교와 싸우고, 사황성과 싸우고, 내부의 적과도 싸우다 음모에 걸려 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를 극복하고 무림의 구성이 된다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큰 줄기에 붙어 있는 주요 가지가지 마다 열매가 아주 탐스럽게 열려 있어 그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재미를 보장해 줌은 물론, 전체줄거리를 전혀 방해하지 않고, 하나로 귀결되는 이야기 진행은 끝까지 읽을동안 다른 곳에 눈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몰입하게 만들고 있어 상당히 흥미진진하기 까지 했다.

또, 앞서 말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글을 참 재밌게 적는다..
등장인물 간에 대화도 재미있다..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다 말이다.
좋게 말하면 딱딱함이나 고리타분함이 없다. 그냥 막 지른다..
그래서, 심각한 상황에서도 심각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대화, 서술, 묘사.. 다 편하게 적어내려간다.
세세하게 따져보면 참으로 허술한 점이 많고, 대충대충 엮어가는 부분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워낙에 소설 전체의 느낌이 헐러헐렁 가볍다 보니 허술한 부분도 허술한 부분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없으면 이상, 있으면 당연하다 싶을 만큼 허술한 부분들도 전혀 거슬리지가 않더라..
이걸 장점이라 해야될 지 단점이라 해야될 지 모를 그런 아리송한 특징이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라면 하나일 것이다.

주인공의 성격도 참 마음에 든다.
주인공인 주유성은 게으르지만, 멋진 캐릭터다.
어릴 때 부터 보고 배운 바가 적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밖에는 나가지 않고 책을 통해 개념을 쌓은 탓에 그가 판단하고 선택하는 개념은 항상 책 속의 올바른 개념이다.
사람이 죽을까봐 아낌없이 돈을 풀고, 사람이 죽을까봐 무림맹주의 수작에 낚였으며, 사람이 죽을까봐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간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탐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미워하며, 나쁜 짓은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이 얼마나 개념찬 주인공인가..

아..그리고, 무림맹주라고 하니까 말하는 건데, 이 인간에 대한 느낌은 주유성과는 완전 반대다..
아주 대놓고 사람을 이용해 먹고, 어떻게 하면 더 이용해 먹을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참으로 엿같은 놈이다.
앞으로 더 쪽쪽 빨아먹어주겠다며 웃어대는 장면에선 솔직히 불쾌할 정도로 짜증이 나더라.
막말로 제놈이 주인공의 할아버지이거나 부모님인 것도 아니고, 어떤 은혜를 베풀어 보답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엄밀히 따지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 놈인데, 가긴 어딜가냐며 이용해 먹기 편하다고, 효과도 좋다고 아주 마음껏 갖고 놀려는 것이 무슨 놈의 정파의 거두라는 놈의 개념이 저따군가 싶더란 말이지..
진짜 주인공의 표현방식을 빌려 말하자면 '이 새끼들 혹시 사판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만약 주인공이 무림을 위해 일하고 싶어했고, 보스의 입장에서 그 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엮이기 싫어했었다.. 그 싫다는 사람을 감언이설과 측은지심을 자극해서 편할 대로 부려먹으려고 개수작을 부렸던 것이고, 주인공은 사람이 좋아서인지 돈이 좋아서인지 계속 낚여 파닥였던 것이다.
그런 꾸리꾸리한 느낌이 계속 커지다가 나중에 주인공이 죽기 일보직전에 몰려 기억까지 상실하게 되는 걸 보곤 아주 욕이 저절로 나오더라..
착한마음을 이용해 먹는 저 경우도 없는 개새끼 한놈 때문에 괜히 이용만 당하다 죽었다고 말이다.

하기사 무림맹주 입장에서는 쓰기 좋은 칼이 있는데, 굳이 안드는 칼을 쓰겠다고 나설 필요가 없었으니 그랬을 것이고- 비록 그 칼이 자신의 칼이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기사 애초에 그런 걸 감안할 정도의 개념이 있었으면 그렇게 이용해 먹지도 않았겠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위해선 주유성을 마음껏 휘돌리는 사람이 있어야 그 좋은 머리를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을 테니, 그렇게 이용당하는 게끔 적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만, 그래도...
한마디로 '이해는 가지만, 마음에는 안든다'.. 뭐 이런 말이다.

책 읽으면서 그렇게까지 짜증낼 필요는 없는건데도 짜증이 났다는 것은 감정이입이 되었다는 뜻이고, 그만큼 '주유성' 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니, 이 정도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라면 재미있는 책이라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잠룡전설'은 추천할 만한 재밌는 책이었다는 것..
Posted by 크라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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