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모두 지옥으로 보내겠습니다"
처음에 반항기 반, 아버지의 새 삶을 위한 의도가 반으로 집나갔던 아들이 10년 만에 돌아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버지는 이제껏 기다리다 1년 전 한 녹림산적에게 당한 후 시름시름 앓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본 후 자신이 몸담았었던 표국에서 일을 해줄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표국에서 일을 한다면 자신의 아들이 어딘가에서 굶어 죽거나 하지는 않을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유언을 받아들이고, 아버지는 마음을 놓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표국에서 표사의 일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의 친구인 대표두에게서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듣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알게되자, 주인공은 그 원수를 찾아가 한방에 베어버리는데,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놈림맹의 순찰사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대목이 있었다.
이 부분을 읽자마자 딱 감이 오더라..
아..이 놈 엄청난 무림영웅 내지는 살성으로 있다가 은퇴한 놈이구나.. 라는..
아니나 다를까, 팽지영으로 부터 대장님이라 불리고, 대환단을 뺏으려는 하가장으로 부터 일보경혼 일도단천 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광룡..
호오..왠지 내용은 다르지만, 예전에 읽었었던 '마창'이나 용노사의 '유성검' 과 같은 냄새를 맡았다..
이거 꽤 재밌겠구나 싶어서 계속 읽었는데, 젠장..ㅋㅋ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까깝한 느낌이었다.
잠룡전설같이 큼직큼직한 껀수나 뭔가 쭉쭉 진행되는 느낌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을 중언부언해가며 억지로 길게, 그리고 복잡하게 꼬고 늘린 것 같았다.
읽다 보면 참 재미없다, 몰입 안된다, 지겹다 라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진행이 더뎠다.
물론 그런 식으로 촘촘하게 엮인 소설이 다 재미없다는 건 아니다.
제대로 된 책이라면 그렇게 얽히고 섥힌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재미가 퐁퐁 솟아난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그리고, 이 저자도 그런 스타일로 책을 내는 저자가 아니다..
한마디로 여름에 겨울 옷을 입고, 겨울에 여름 옷을 입는 것 마냥 본인의 스타일에 안맞는 글을 써서 더 재미가 없어진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읽는 내내 인내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원래 작가가 심각하게 쓰는 것과는 안맞고, 편하게, 막나가게 쓰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좀 싼티가 많이 났다.
이게 잠룡전설처럼 가벼운 문체일 때는 별로 티가 안났는데, 정색을 하고 쓴 딱딱한 문체에서 막나가기 시작하니 티가 팍팍 나는게, 상당히 거슬리더란 말이지..
그것도 초반부터 그랬으면 '아..원래 그런 스타일이었지' 하겠는데, 처음에는 삭막하고, 음울하게 나가다가, 중반부에 두번째 표사 뽑아 표국을 확장하는 부분부터 막나가기 시작하니까 '아..이거 본색이 드러났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마치 뭐랄까..뭔가 멋진 말, 있어 보이는 말을 하는데,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되도않은 폼 잡는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는 느낌..?
그리고, 하수련, 팽지영 팽천광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짜증 그 자체..
'악인에게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혹은 '날 때부터 악인이란 없다' 라는 심오한 주제를 내포하려고 한건진 모르겠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는지 별로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그 에피소드가 있음으로 해서 짜증이 확 증폭되었다는 느낌이 드는게 그야말로 사족이었다..
덧붙여서 짜증나는 미진, 돌빡같은 석민, 가증스러운 지영 등은 읽는 내내 거슬리게 하는 주범이었다.
특히 후반부에 지영이 배신자들 모아놓고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주제도 모르고 몰아세우는 부분에선 아주 성질이..쩝
정의회도 그렇다.
허수아비 정의문을 세워놓고, 그 정의의 상징을 깨버리려는 악들을 한꺼번에 처단하겠다며, 이러쿵 저러쿵 음모는 많이 꾸미는데, 실제로 해놓은 걸 보면 고작 정의문을 세웠던 것과 북무림맹을 세운 것, 딸랑 두가지 밖에 없다.
무림을 위해 실제 악을 처단하려고 움직일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골방에 틀어박혀선 정의를 위한다는 말만 계속 늘어놓는다.
아.. 그러고 보니 한가지, 무림맹을 세움과 동시에 명분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파 하나 때려잡긴 했었군..
아무튼 그렇게 정의는 말로 다 떼우면서 하는 짓을 보면 죄다 악행이다..
첩자를 만들어 뿌리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은 다음 다 죽어라고 지원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허수아비로 세운 인간부터가 악이다. 실제 악을 처단하기 위해 몇년 전부터 열심히 뛰어다닌 주인공을 '언젠가는 악이 될 지도 모른다'며, 끌어내서 죽이려고 든다.
그걸 보고 활검은 이렇게 생각한다. 'ㅅㅂ.. 폭호나 광룡이나..'
나중에는 광룡 끌어내겠다고 사람 납치하고, 반드시 죽이겠다면서 구라치고..
억지로 선을 악으로 도배하고, 억지로 악 속에 선을 쑤셔넣는게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너무 억지스러워 읽는 내내 거부감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악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어딘가에서 악을 거부하고 선을 행하는 행동을 보면 찬사를 보내고 응원을 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악을 행하는 이들은 선을 행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위선자라고 부르며 경멸하기 쉽상이며, 악을 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 중 자신보다 높은수준의 행동을 보면 오히려 배워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이 것은 작가의 말대로 '개 눈에는 똥만 보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가 현 세계에 살고 있는 이상 3차원 밖의 세계를 실감하지 못하듯이 선을 행하는 이들은 수단이 매서울 진 모르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개념은 그 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를 않으며, 악은 반대로 위선을 행할지언정 항상 그 개념은 악의 영역에서 벗어나지도, 그것을 벗어난 개념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아니, 천재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도 절대 실감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3차원과 4차원 만큼이나 다른 영역에 속한 개념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폭호는 그렇지가 않았다.
항상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수단은 매섭기 짝이 없다는 정도로 끝나질 않는다.
그렇게 악을 미워하면서, 그리고 악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본인은 악 그 자체라 할만한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그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요컨데,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겠는가' 라는 살신성인의 정신이 아니라, 본인이 악을 행한다는 자체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면서 태연히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리다..
후반부에 가면 책의 저자도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개봉부의 노인에게 광룡은 '자신은 정의를 행하고 있는데, 그런 자신을 북무림맹은 죽이려 한다.. 그렇다면 그 들은 정의인가 악인가?' 라고 묻고, 이에 대한 답으로 노인은 '그들은 정의이지만, 그 속에 악이 섞여 있는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폭호가 제대로 된 놈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다시 광룡은 '그렇다면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은 악일 수 있지 않은가? 라고 묻고, 이에 대한 답으로 노인은 '사실 여부는 따지지 마라. 니가 악이라 생각하면 배제하고 정의라 생각하면 그건 정의니까 그대로 행하라' 라고 답을 준다.
그런데, 이게 양날의 칼이다.
만약 폭호도 자신이 행하는 것이 진짜 정의이고, 광룡이 악이라고 믿어 그대로 행한거면 어떻게 되는건가?
그럼 정의끼리 싸움박질하는 게 된다.. 또, 그것 뿐이라면 서로의 신념이 부딪힌 거라 보고 간단히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 분위기 상 '정의 = 광룡, 악 = 폭호' 라고 암묵적으로 규정지어져 있다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은 불합리가 느껴지는 것이다.
또 주인공도 상당히 멍청하다.
하수련이 자신을 손에 넣고 조물락거리던 여자였슴을 깨닫고 떠났다면 인질이 되었든 어쨌든 신경을 쓰지 말든가,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못 견디겠다면 혼자 가지 말고 전룡대를 기다렸어야 했다.
어차피 2인 이상의 절대고수가 와 있슴을 예측한 상태였고,혼자가면 자신은 죽는다는 것을 감지했기에 석민을 시켜 전룡대에게 전하게 한거라면 그 납치범들이 자신을 만나보기도 전엔 늦게 왔다고 인질로 잡은 하수련을 단칼에 죽이고 철수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쯤은 당연히 예상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인질이 하수련이 아니라 개봉부의 은인인 옥지기 노인이거나 칠성표국의 강대영, 또는 전룡단원 중 아무나 한명이었다면 납득할 수도 있었겠지만, 죽일려다 옛정에 못이겨 살려놓은 하수련을 구하겠다고 그 좋다는 머리는 굴릴 생각도 안하고 냉큼 혼자 달려가서 죽을 똥 살 똥 했다는 자체가 참으로 찌질하고도 찌질하다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인질로 잡힌 것을 그냥 넘기기 힘들 정도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상태였다면, 차라리 멀리 놔두지를 말고 보호를 하든가, 잊지는 못하지만 찾지도 않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자신을 노리는 적으로 부터 인질이 될 확률이 높은만큼 호구책을 마련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전장을 지배하고 교토삼굴을 충실히 이행하는 머리좋은 광룡이란 소릴 들을 수 있을텐데 그러질 않고 혼자 설렁설렁 기어들어 가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몰렸다는 게 참 찌질해 보이더란 거다.
물론 이런 사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밌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그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하고, 그 사건을 접한 사람의 행동도 그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타당해야 보는 사람도 흥미진진하게 몰입해서 볼 수 있는거다.
근데, 딱 보니 '저게 저기서 왜 일어나는 건데..?' 라는 의문이 들거나 '저 놈은 또 저기서 왜 저따구로 행동하는 건데..?' 라는 생각이 자꾸 들게 만들면 그건 이미 볼장 다 본 이야기라는 거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연스럽지가 못하다는 뜻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건 그만큼 인공적인 손길이 많이 가미되어 어색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납득이 안되고 열불만 터지는 거지..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부분이 꽤 많이 널려있었고, 이렇게 어긋난 부분들이 자꾸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나중에는 뭔가 콕 찝어 말할 순 없지만, 괜히 답답하고 짜증나고 속에서 열이 슬슬 오르는 것 같은 그런 불쾌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아..말 나온 김에 다 해보자..
폭호가 광룡을 놓친다음, 그 대책마련으로 광룡의 정체가 칠성표국의 표사임을 다 까발려버리자고 회원들에게 제안하고, 남무림맹의 세가주들 역시 같은 생각에서 다 까발려버리자며 모의한 후, 칠성표국으로 가서 강대영에게 다 실토해 버린다.
근데.. 이 까발림이 도대체 무슨 효과를 노리고 행하는 작전인지 난 도무지 이해 안되더란 말이지...
그 들이 내세우는 이유만 보면 칠성표국에서 정체를 알게 해줌으로써 비밀이 없게 만들겠다고..또 오대세가에서는 칠성표국에 까발림으로써 행여 칠성표국으로 복귀하더라도 더 이상 표사로 정체를 숨기고 있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걸 이유로 들던데, 그렇게 해서 정의회와 오대세가에 얻어지는 효과는 과연 무엇인지, 또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가 과연 그들이 광룡을 찾거나 죽이려는 목적에 부합되는 좋은 수냐는 게 관건이고, 이게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정도로 맞아떨어져야 흐름에 방해가 안되는 거다.
어쨋든 간에 그런 연유로 해서 광룡이 칠성표국의 표사임이 다 까발려졌는데, 그 이후의 내용을 보면 정작 남북무림맹에 얻어지는 건 좆도 없고, 칠성표국만 대박이 나는 걸로 끝난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가 붙은 이유가 후자를 위해서 억지로 전자의 이유를 끌어다 붙인건지, 전자의 이유에 합당한 이야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죄다 허술하게만 느껴져서 이 소설의 가치를 마구 떨어뜨리는 주요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아무튼 글의 분위기도 그렇고, 이런 점도 그렇고, 진짜 얼마 전에 읽었던 '잠룡전설'의 황규영 작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재미없었다.
평소 정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정의'를 소재로 한 이 책을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몇번이고 던져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읽어나갔지만, 결국 포기..
이 건 재미가 없어서 패스다..
듣기로는 '금룡진천하'는 잠룡전설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하니 일단 맨 뒤로 넘기고 다음 번엔 '소환전기'를 읽어볼 생각이다..
p.s
알고보니 이 황규영 작가의 데뷔작이 바로 이 '표사' 라고 하더라..
그래서, 이 처럼 다듬어 지지 않았었구나 하고 이해해 버렸고, 이 작가는 잠룡전설 스타일로 나가는 게 딱이라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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