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재밌다.
아니.. 재밌는 소설이었다..
지금은 좀 시들시들.. 해졌다고 해야할지, 감히 장담하기 힘들다고 해야할 지 좀 그렇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두서없이 써내려가 보자면..
우선 주인공은 엄청나게 운빨이 좋다.
항상 말로는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하면서 운이 없다고 징징짜는데, 내가 보기엔 이 주인공만큼 운빨 좋은 놈도 없는 것 같다.
초반에 부모님 두분이 돌아가셨다거나 악덕 봉제공장에서 생고생했다는 점이나 30억이나 되는 돈을 털렸다는 점 때문에 항상 운이 없다는 소리를 달고 사는 것 같은데, 확실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한다면야 운이 나쁜 건 맞겠지.
하지만, 악덕봉제공장이나 부모님의 빚 때문에 30억이 털린 문제 같은 건 운이 나빠서 라기보다는 처신의 문제이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에 어릴 때 부모님 두분이 돌아가신 것을 제외하면 딱히 '내 팔자' 운운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자신의 캐릭터를 팔려고 내놨는데,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하필이면 아다리가 딱 맞아서 30억에 낼름 사주는 구매자가 나타나질 않나, 게임을 할 때마다 폭랩, 폭템, 승리는 항상 달고 살고, 주위에 인덕이라 해야 할지, 운이라 해야할지 이상하게 편협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인공의 성격에 매력을 느껴 항상 주위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운이 좋아도 보통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전신이라는 유명세 때문인지 언제나 그의 주위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흔히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나 앞으로 넘어져도 접시물에 코박아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재수없는 사람이라 부르고, 반대로 똑같이 넘어져도 희한하게 동전이 있는 곳에 넘어지는 사람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하는데, 이 주인공이 바로 그 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노력이 10일 때 그 결과가 10은 커녕 1도 못챙겨 먹을 경우 운이 없다 라고 표현한다는 걸 감안하면 주인공처럼 10을 넘어 50, 100까지도 챙겨먹을 수 있는 사람을 운이 없다라고 표현한다는 건 세상에 산재해 있는 진짜 운 없는 사람들은 억울해서 도저히 못 살것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그런 대단한 운빨의 주인공치곤 성격이 좀.. 이상한 편에 속한다.. 간단히 말해 정상이 아니다.
여동생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학대하고, 부려먹고, 이익이 된다면 죽여서라도 뺏고 싶어한다. 물론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지, 항상 가슴 속의 최후의 브레이크가 작동을 해줘서 그런지 그 상태까진 가지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작가의 문체랄까 글쓰는 스타일도 좀 그런 감이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뭔가 툭툭 던지는 듯한 느낌..? 좀 막대하는 느낌..? 그런게 주인공에겐 존재한다.
뭐..어쨋든 그다지 좋은 성격은 아닌 것이다.
과거 이런 유형의 캐릭터가 흔하지 않았고, 또 이 소설의 흐름이 워낙에 재미있어 대박쳤던 초반에는 이런 성격적 결함이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어쩌면 이런 성격이기 때문에 그런 대박신화를 이어갈 수 있지 않았겠냐는 생각도 들만큼 나름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슬슬 재미가 없어져 그 동안 눈에 씌워졌었던 콩깍지는 막 벗겨질려는 이 때에 저런 주인공의 나쁜 성향은 책을 읽어나가는 데 상당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어쩌면, 그 정도까진 아닐 수도 있겠다.
워낙에 개그를 여기저기에 뿌려놓는 스타일이라 그러한 성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좀 멍청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개그라는 게 썰렁개그와 말장난 수준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전체 줄거리 면에서 보면 드래곤 볼이 후리자까지가 딱 좋았던 것처럼 이 달빛 조각사도 모라타 백작이 되는 것까지가 딱 좋았던 것 같다.
그 때까진 솔직히 이 달빛조각사만큼 재미있는 책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고 감히 단정지을 수 있을만큼 재미가 있었었고, 다음 권은 언제 나오냐며 오매불망 기다리곤 했던 게 한두번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 절정을 넘어서고 부턴 특유의 문체는 한계를 넘어버려 성의없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지루함을 경계하고자 시도한 듯한 여기기웃 저기기웃하는 식의 진행방식은 더욱 산만해져 아예 몰입을 방해할 정도가 되었으며, 그 동안 점층식으로 전개되어 왔던 이야기 보따리는 다 풀어지고 뿔뿔이 흩어져 버려 더 이상 왕건더기같이 큰 재미를 선사해 주진 못하게 되었다.
다만, 초반부터 벌려왔던 사건들과 이어진 수많은 포석과 퀘스트의 조각들이 아직까진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고, 또 작가도 이를 잊지않고 적절히 찾아 이용해 주고 있는 관계로 호기심과 흥미의 기대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비뢰도나 묵향처럼 슬슬 벌어놓은 돈을 깎아먹고 있는 것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는 건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나름 짐작해 보건데, 아마 작가도 미칠 지경일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박수칠 때 떠나라란 말도 있듯이 아크처럼 이제 슬슬 끝내야 할 것 같은데, 워낙에 벌려놓은 일이 많다보니 그것들을 어떻게 다 수면 위로 드러내어 마무리를 지을까 라는 고민 안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엠비뉴 교주가 12명- 이제 2명 정도 나온 것 같으니 아직 10명이나 남아 있는 상태 -이니 그 것들 다 내보내야 할 것이고, 10대금역 중 아직 절반이상이 안 나와있는 상태인데도 벌써 권수로는 25권이니 앞으로 몇권이나 더 진도가 나아가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벌려놓기는 했으니 분명 그것들을 기억하고 기대하고 있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니 이를 모른체 무시하고 마무리를 지을 경우 이 소설은 흐지부지 끝내버린 불완전한 소설로 낙인 찍혀버리게 될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해결을 보려고 했다간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적어도 10권은 더 진도가 나가야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나가기엔 이미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의욕이나 필력, 심력 등이 많이 후달리는 상태고,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요즘 글의 상태를 보면 말이다.
뭐..이렇게 말하는 나도 신간이 나왔다고 하면 일단은 찾아보는 소위 달빛덕후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투덜거리며 쓴소리를 했다고 해서 이 달빛조각사가 절대 허접한 소설인건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죽이는 질적으로 우수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 수 많은 퀘스트들.. 그 수 많은 게임설정들.. 그에 따라 파생되는 수많은 효과와 연출들..
솔직히 요즘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게임소설들이 이 달빛조각사에서 힌트를 얻었을 만큼 그의 아이디어 광맥은 무궁무진했었다.. 정말 요즘이라면 몰라도 당시에는 달빛조각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저런 류의 게임을 꼭 좀 해보고 싶구나' 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을 정도로 상상해 보는 재미가 탁월했다.
뿐만 아니라, 이후의 게임소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전에 어나더 월드나 레이센이 게임 플레이 중의 재미와 묘사, 그리고 성장과정에 더 비중을 두었던 식이라면 달빛 조각사 이후 쏟아져 나온 수 많은 게임소설들의 대부분이 퀘스트 위주와 앵벌이 그 자체를 묘사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그만큼 이 달빛조각사는 게임소설의 기념비와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가수란 노래만 잘부른다고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노래 잘 불러야 하는 건 뭐 기본이고, 그 전에 노래부를 때의 목소리가 특색있고, 듣기 좋아야 한다고.. 그래야 진짜 가수라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노래 잘 부르는 거야 연습하면 되는 거지만,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좋은 것은 타고 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 가수요' 하고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될려면 노력만으론 범접치 못하는 그 이상의 영역을 넘볼 수 있을만한 사람들 정도는 되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 달빛조각사는 가수로 놓고 본다면 개성있는 목소리의 가수라 할 수 있다.
목소리 좋은 가수는 이 외에도 몇 더 있다.
예를 들어 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이 있으며, 어나더 월드가 있고, TGP, 레이센 이 있다..
그 외에도 더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읽어본 것 중에선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진짜 게임소설을 대표할 수 있다고 할만한 독특한 색채를 가진 소설은 이 것들 뿐이었다.
아무나 다 따라할 수 있는 건 필요없다.
그 사람만의 냄새가 묻어나는 글, 그 사람의 특징을 나타내는 문체, 글을 전개해 나가는 스타일..
이런 개성이 잘 우러나야 좋은 글인 것이고, 달빛 조각사는 바로 이런 개성이 두드러지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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