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왕무적을 봤다.
이 책의 특징은 뭐랄까? 거칠 것 없는 폭력이 주는 대리만족..?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똑같이 되갚아 주는 그 통쾌함..?
한마디로 박살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정치꾼과 범죄자들을 박살내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해야하는 우리네 답답한 현실과는 달리 권왕이라는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어 그것에 위배되는 악의 종자들은 모조리 쓸어버리는 속 시원한 무협활극이다.
이 권왕에겐 역지사지의 고통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기 때문에 하여튼 나쁜 놈이란 나쁜 놈들은 보이는 족족 피똥 쌀 때까지 타작을 해버리는 통에 읽는 사람들의 십년묵은 체증이 쑤욱~ 하고 내려가게 만들어 주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정의를 지향하고는 있고, 또 그 잣대 또한 크게 흔들리는 것 없이 고정적이긴 하지만, 가끔 가다 어거지를 부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폭력이 필요없거나 있어선 곤란한 부분에서 마저 폭력으로 해결을 볼려는 경향이 있어 그게 좀 거슬렸다.
마치 뭐랄까? 영화로 치면 폭주시민.. 아니 모범시민의 버틀러를 보는 듯한 느낌..?
예를 들면 이런 것들..
교연과 아운의 대화에서 다짜고짜 주먹으로 쳐버린 건 좀 어설펐다는 느낌이다.
이전에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때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명분이 이쪽에 있었었고, 또 처음부터 주먹질로 나간 탓에 원래 그러려니 라는 느낌이 강했었다.
하지만, 교연과의 대화에선 똑같이 말로 응수해놓고 중간에 주먹질을 해버렸기 때문에 마치 말솜씨로는 당할 수 없어 주먹을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놓고는 한다는 소리가 상대의 주먹에 이쪽은 주먹으로 답했다는 식의 어거지를 쓰고 있어서 마치 잘못해놓곤 폭력으로 해결하려 든다는 그런 느낌을 주었었다.
사실 교연쪽에서 잘못이란 아운에게 반 하대했다는 것 말고는 별 다른 게 없었으니, 다짜고짜 주먹으로 맞을 일도 아니었던 것이고, 평상시 아운의 말대로라면 다짜고짜 주먹질 한 아운의 이 행동은 과거 잘잘못을 떠나 힘으로 약자를 누르는 악당에게 매몰찼던 아운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어긋났었기에 '역시 너도 정의를 외치곤 있지만, 결국 힘 쎈 게 장땡이라는 놈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게 좀 아쉬웠다.
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절대 폭력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거나 혹은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다분한 상황에서도 폭력만 사용하면 뭐든지 좋은결과로 이어지는 등의 좀 납득하기 어려운 흐름들도 간간히 엿보였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금룡단에서 금룡단주의 권한으로 단원을 다 죽기 일보직전까지 박살을 내놓는 건 그게 단주의 권한으로 가능하기 때문인데, 그 권한이라는 게 사실 따지고 보면 무림맹에서 내려주는 게 아니겠나는 걸 생각해 볼 때 정도가 심하다 싶으면 규칙을 바꾸든지 인사이동을 시켜버리든지 했을 것이라는 거다.
한마디로 싫으면 나가라 이거지...
그런 식으로 조치해 버리면 권왕이 아니라 권왕 할애비가 와도 어쩔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권왕이 규칙의 맹점을 이용하여 박살내고 있으니,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과 장로원에서도 교칙을 손봐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러지 않고 벌벌 떨기만 하고 당하기만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행적이야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할 게 분명하지만, 그걸 아는 놈들이었다면 애초에 나쁜 짓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아운에게 당한 금룡단 하인 70명에 해당하는 가문과 문파, 그리고 아운을 적대시 하는 호연세가와 원의 잔당에 관련된 무수히 많은 집단들이 복수심으로 똘똘뭉쳐 작당을 하면 아운의 힘으로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악이라 규정지어진 자들에겐 너무도 무자비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박살을 내고 걸레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들며 차라리 죽는 게 행복할 정도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통에 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듯 했다.
쉽게 생각해서 물건 훔쳤다고 사형시키고, 사기쳤다고 사형 시켜버리면 그 죄에 비해 너무 강한 처벌인게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쪽에 정의가 있기 때문에 통쾌함이란 것도 느껴볼 수 있는 것이지, 만약 그런 정의나 개념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수단만을 따지고 보게 된다면 악당도 이런 악당이 없을 거라 생각될 만큼 자신의 기준에 안 맞는 인간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갈아마셔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동안 느껴왔던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악종 범죄자들을 위한 솜방망이 처벌이나 제 뱃살에 기름기를 더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골수를 쪽쪽 빨아먹었던 더러운 정치꾼들의 부정부패비리 행각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들을 했었나?
쳐죽이고 싶지 않았나?
때려죽이고 밟아죽이고 갈아마셔버리고 싶지 않았나 말이다.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그들을 쳐죽이고 싶다는 극도의 살의에 휩싸이곤 했었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권왕 아운의 무자비한 청소는 아주 적정선일 뿐 아니라 오히려 모자란 감도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권왕 아운에게 처참하게 맞아 뒤지는 것들이 전부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꾼과 범죄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손을 대지 못한 대신 권왕 아운이 대신 그렇게 박살을 내준다고 생각해 보면 그 동안 해소되지 못해 쌓여만 있었던 가슴 속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해소됨을 느낄 수도 있을 거란 소리다.
이렇듯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 후 시원함과 활극이 더 크게 남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네 가슴 속에 쌓여있었던 응어리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된다.
아무튼 정치판이든 뭐든 해서 악종자들 때문에 그 동안 속이 뒤집어졌던 사람들이라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할만한 가슴 시원한 무협활극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북경 하씨 문중에서 하영운이라는 소년이 어느 날 집을 뛰쳐나온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고대성이라는 소년의 콧뼈를 주저앉혀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아주 어처구니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책에서는 고집 때문에 그렇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이건 고집과는 상관없는 문제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만, 별달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또 저자가 그렇다고 하니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렇게 뛰쳐나가서 뒷골목을 휘업자고 다닌 지 몇년 후 모대건이라는 중년인이 찾아와 하영운(이하 아운)의 패거리들 목숨을 담보로 아운을 잡아간다.
도착한 곳에서 한 소녀의 실전 및 살인 타겟으로 쓰이다가 한방 먹이고 도망친 곳에서 3명의 죽은 시신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정체는 각각 칠초무적자와 불괴음자, 천각비응각..
이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남겨져 있던 무공을 습득한 아운은 6년 후 그 밀실을 빠져나와 낭인촌으로 향한다.
낭인촌으로 향한 이유는 스승들의 당부를 이행하기 위해서인데, 삼사부와 일사부의 당부는 당장엔 이루기 힘들었지만, 이사부의 당부이자 암혼살문의 의무인 살행은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었던 관계로 낭인촌에 가서 자신을 팔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 곳에서 아운은 소설을 만나게 되고, 그 소설에게서 주먹밥 3개로 청부를 들어주기로 약속을 하게 된다.
떠나가기 전 소설이 알려준 대로 소개꾼을 찾아가 살인청부를 맡았지만, 청부자와 대상자가 워낙에 개념이 없었던 탓에 둘다 죽여버리고 복귀하였는데, 둘 중 한명이 오대세가 출신이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소개꾼은 자신이 덤터기를 쓸까 두려워 언가에 아운을 고발하고, 그 아운을 잡기위해 나온 언가와 충돌하게 된다.
언가를 따돌린 다음, 소설의 바램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청부대상인 묵소정과 묵천악을 호위하여 사라신교까지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다.
가던 도중 삼귀와 부딪히고, 오절과 부딪히고, 혈랑단과 부딪히고, 광풍사와도 부딪힌다.
그렇게 사라신교까지 데려다 주는 걸로 약속을 지킨다음 개념 좀 없던 보슬아치 묵소정을 죽이고, 개차반 묵천악을 천마인혼대법의 괴물로 변신시킨 후 그를 쓰러뜨림으로써 사라신교의 뿌리와 실세들을 아예 괴멸시켜 놓은 후 새로운 실세로 자신의 의형제들인 황룡 패거리와 소설, 편일학을 올려놓는다.
그렇게 한가지 일을 끝마친 후, 자신의 여동생과 아버지가 있는 북경 하씨문중도 디다볼 겸, 또 자신과 태중혼약을 했었던 북궁연이 총사로 있는 무림맹에도 디다볼 겸, 겸사겸사해서 사라신교를 떠나 무림맹으로 향한다.
이하 생략..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권왕무적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무림출도와 묵씨남매를 사라신교까지 데려다 주는 보표행..
2.. 무림맹에 들어간 이후 금룡단주로 취임한 이후 무림맹 정화작업..
3.. 무림에 암약하고 있던 원의 후예..즉, 대전사와 광전사들과 사문의 원수인 호연세가 일망타진..
이 중 스릴감이 느껴지는 건 1..이고, 가슴시원한 건 2..이며, 3..은 뭐..그저그런 수준이다. 좋게 보면 머리싸움이랄까 계획과 실행, 전략과 전술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진행상의 재미가 전부랄까..?
거기다 나중에 가면 너무 거칠 것 없이 막 행동하는 바람에 되려 거슬림이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 약간의 거슬림만 감수한다면 읽는 내내 활명수를 마신 듯한 시원함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터이니 가급적이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권왕무적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몇개의 글들을 올린다.
아래는 권왕무적이 이런 느낌의 글이구나를 알 수 있을만한 몇가지 예문이다.
“네 놈의 천성은 정말 버릴 수 없는 고질병이구나.”
“무, 무슨 말이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묵천악이 겁먹은 표정으로 말하며 아운을 보자, 아운의 표정은 더욱 매섭게 변했다.
“매는 맞아야 아픈 줄 아는 것이 아니다. 그냥 바보가 아니면 다 안다.
네 놈과 네 누이 년이 소설과 소산에게 한 행동거지는 내가 봐야만 아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묵천악과 묵소정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정운은 눈을 감고 말았다.
묵소정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일단 자신은 여자였다.
아무리 아운이 무자비한 성격이라도 그는 천성적으로 악인이 아니었다.
또한 그녀가 아는 아운은 정도를 아는 청년이었다.
여자인 자신에게 투박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어떤 남자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약하고 아름다운 자신을 어떻게 체벌하진 못할 것이다.
백 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한 몸에 받는 일은 결코 바보가 아니라면 못한다.
그녀는 일단 마음이 진정 되자 아운을 똑바로 보고 따지듯이 말했다.
“보지도 않고 추측만으로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당한 대장부라면 정당한 이유를 대고 그 증거를 가지고 사람을 핍박해야 할 것입니다.”
묵소정의 당당한 목소리에 아운의 입가로 고소가 떠올랐다.
“추측, 대장부, 그리고 증거라! 좋군.”
아운의 되물음에 묵소정의 무의식적으로 소설과 소산을 보았다가 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설과 소산이 절대 누설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심증만 가지고는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기회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자신이 절대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번 일로 두 남녀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아운은 소설, 소산과 이야기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것은 지켜 본 묵소정이 확실하게 아는 일이었다.
그리고 두 소녀는 이미 단단하게 입막음을 해 놓았다.
여기서 몰아붙이면 제 아무리 아운이라도 말문이 막히고 말리라.
확실히 그녀의 생각은 옳은 면이 있었다.
묵천악은 지은 죄 때문에 겁을 먹었다가 누이의 말이 먹힐 듯하자 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추측… 컥!”
하지만 비명과 함께 묵천악이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아운의 발이 곡선을 그리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그의 입에 틀어박히며 묵천악의 앞니 서너 개가 부러져 나갔다.
약속대로 주먹은 쓰지 않았다.
“네 놈이 어떻게 소설과 소산을 대하고 협박했는지는 묻지 않겠다. 그녀들의 표정과 감정만 봐도 충분하니까. 내가 그럴 것이라 추측하면 그런 것이다. 그냥 내가 상상한 만큼만 맞아라!”
아운은 자신의 옆, 땅바닥에 뒹굴고 있던 가짜 광풍사의 병사들이 지니고 있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 기세에 놀란 정운가 묵소정이 주춤했다.
아운은 도끼를 거꾸로 세운 다음 주먹으로 쳤다.
금강추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도끼날의 결을 친다.
단 일 격에 도끼날을 이루고 있던 쇠뭉치가 부수어졌다.
자루만 남고 그 단단해 보이던 쇠뭉치가 부서지는 것을 본 묵천악이나 묵소정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마침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오던 을목진 형제와 진경화 조손도 놀라서 아운을 본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이지 도끼 자루가 사람을 때리는데 얼마나 유용한 물건인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도끼로 장작을 쪼개듯이 내리친 자루가 묵천악의 머리와 정통으로 충돌하면서 텅! 하는 소리가 이삼십 장 밖까지 울려 퍼졌다.
텅! 이라니?
골통을 치면 그런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도 첨 안다.
얼마나 아픈가는 묻지를 말자.
정 궁금하면 맞아 보면 된다.
“내가 도끼날을 부순 것은 네 놈을 살려 놓고자 함이 아니다. 쉽게 죽이면 잘못을 반성할 시간도 없겠지. 왜 맞는지 기억이 안 나면 날 때까지 맞아라! 그러다 죽으면 네 놈의 멍청함을 원망해라.”
이유가 없었다.
변명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 무조건 네 놈은 그랬어. 그러니까 이유 불문하고 잘못을 빌어라!
이런 뜻이 다분했다.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굳이 따지고 할 필요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보통 아무리 경우가 없는 사람도 일단 잘잘못을 따져보고 행동을 한다.
그게 상식이었다.
이럴 때는 머리가 잰 인간들은 어떻게든 빠져 나갈 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운은 다르다.
이미 상대가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
당연히 상대에게 묻고 따지고 하지 않는다.
아운이 말싸움을 하려했다면 집에서 튀어 나오지도 않았다.
정운은 만약 지금의 상황에서 묵천악이 변명을 하려 한다면 아운이 정말 살인을 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묵천악이 오기라도 부리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럴 염려는 없었다.
이미 아운의 무식함은 능히 경험하고 눈으로 본 묵천악이었다.
그는 살려고 필사적이었다.
“사… 사…”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그것으로 오기를 부릴 용기가 묵천악에게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무조건 살려달라고 할 참이었지만, 아운은 그것마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을목진 형제가 놀라서 말리려고 할 때, 편일학이 가로 막았다.
“놔두게.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일세.”
을목진 형제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몸이 굳어졌던 묵소정은 다급하게 묵천악의 앞을 가로 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죠? 왜 내 동생을 때리는 것이죠? 이유가 뭐죠? 무식하게 주먹만 세면 다 인가요? 사람에겐 경우가 있는 법입니다.”
묵소정이 당당하게 따지고 들자, 정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운의 성격을 이젠 조금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묵소정은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도 몰랐던 것이 있다면 묵소정이 끼어들던 안 끼어들던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이 벌어질 뿐이란 사실이었다.
아직 아운을 알기엔 조금 더 있어야 할 듯 하다.
아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묵소정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묵소정은 지지 않고 아운을 노려보았다.
그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한다.
여리면서도 두렵지 않은 표정.
외유내강한 모습.
과연 매력적이었다.
아운이 도끼 자루로 사정없이 내려치기 전까지는.
아운은 역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빠악!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묵소정은 정신이 날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골이 웅하고 울리면서 지독한 고통이 그녀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멱살 쥔 손을 놓으며 수평으로 돌린 도끼 자루가 그녀의 볼을 가격하면서 세 대의 이빨이 뿌리째 뽑혀 날아갔다.
“이 개자시이… 무스… 짓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 자루가 이번엔 묵소정의 복부에 들어가 박혔다.
얼마 전 먹은 음식이 그대로 올라와 사막의 바닥을 더럽힌다.
을목진 형제와 진경화 조손은 그 자리에 몸이 굳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표두와 표사들은 물론이고 짐꾼들까지 멍한 표정으로 아운과 묵가 남매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와서 말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미 아운의 무식함은 모대건 때 충분히 보아 둔 다음이었다.
“이이… 컥!”
도끼 자루가 다시 묵소저의 이마를 후려쳤다.
마치 용수철처럼 고개가 뒤로 퉁겨졌다가 돌아온다.
이어서 한 발로는 쓰러져서 겨우 일어서는 묵천악의 복부를 걷어찼다.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도끼 자루에 실린 경력이 얼굴의 안면에 있는 뼈와 그 안의 골까지 흔들어 놓고 있었다.
묵천악은 새우등처럼 구부린 자세로 업어져서 버둥거렸다.
아운은 다시 한 손으로 묵소정의 멱살을 잡아들었다.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묵소정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말리려고 다가서던 정운은 아운의 시선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끼어들면 묵소정도 자신도 살아남지 못한다.
묵소정이 다시 무엇인가 반항하려 할 때, 도끼 자루가 찌르기 자세로 날아들어 다시 한 번 그녀의 복부를 강타했다.
번갈아 가면서 두 남녀를 구타하는 아운을 보면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 오한이 든 표정으로 굳어져 버렸다.
사람을 패도 저렇게 무식하게 패는 경우는 첨 본다.
더군다나 그 중에 하나는 여자였다.
드디어 묵소정의 눈에 공포심이 떠올랐다.
처음엔 아운이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래도 한두 번만 휘두르고 나면 멈추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란 것을 아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차별로 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치는 것인지 기절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골 안이 흔들리고 모든 뼈가 전부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묵소정은 빌고 싶었다.
무조건 살려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아파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 살려 주세…. 다… 신…”
부러진 이빨 사이로 말이 새어 나왔다.
이미 항복한 줄 알면서도 아운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정운은 갑자기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운 공자는 정말 두 남매를 죽이려 한다. 한 번 손을 대면 끝장을 보는 성격으로 보아 나중에 귀찮을 것을 생각해서 지금 죽일 생각이다.’
감히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데 등등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안했다.
정운은 묵소정이나 묵천악의 성격을 잘 안다.
작은 손해에도 질긴 복수심을 가지고 절대로 그 원한을 잊지 않는 묵천악이나 독기로 똘똘 뭉친 묵소정이나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후환만 남는다.
자신도 아는데 아운이 두 사람의 성격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성질 하나만 놓고 보았을 때 천하에 당적 할 자가 없는 아운이었다.
묵천악이나 묵소정이 아무리 더러운 성격이라고 해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성격상 이미 손을 대기 시작했으면 끝을 보려 할 것이 분명했다.
보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상대는 아운이었다.
신경 쓸 사람이 아니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마음이 급했다.
‘방법은…’
정운은 을목진이나 을국진 형제, 그리고 진경화 조손을 보았다.
모두 황당함과 두려움이 겹친 얼굴로 아운을 보고 있짐나 감히 말릴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보다도 편일학이 그들을 막고 있었다.
아마도 아운에게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모두 칼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고, 특히나 표국과 상단은 그 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한 편인지라 지금 아운의 뜻을 대충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 함부로 건들지 않지만, 건들려면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라!
강호의 초보무사도 아는 말이었다.
단지 그렇게 하기가 힘이 들뿐.
하긴 그것이 아니라도 지금 아운의 기세를 보고 누가 끼어들어 말리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후다닥 달려간 정운은 소설에게 무릎을 꿇었다.
“소설, 살려다오! 무조건 잘못했다. 너만이 저 남매를 살릴 수 있다. 제발 살려다오!”
소설을 부들거리며 서서 아운을 보고 있다가 정운이 달려와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운이 다시 한 번 도끼 자루를 들어 올렸다.
섬뜩한 기운이 맺혀져 있다.
죽이려고 한다.
보던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묵소정은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것을 느꼈다.
묵천악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절하고 말았다.
“아저씨, 아저씨, 살려주세요.”
아운이 소설을 본다.
소설이 달려와 아운의 앞에 꿇어앉고 울기 시작했다.
“아가씨를 살려 주세요. 마님께서 마지막까지 아가씨를 부탁하며 돌아 가셨습니다. 제게 너무도 다정하게 대해주시던 분입니다. 제발 아가씨를 살려 주세요.”
아운은 잠시 소설을 보다가 도끼 자루를 내렸다.
그리고는 마치 짐짝처럼 묵소정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걸어가서 묵천악을 걷어찼다.
충격 때문에 정신을 차린 묵천악이 바들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오금이 저려 감히 아운을 보지도 못했다.
잘못했다는 말도, 살려 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아운의 시선이 다시 묵소정을 향했다.
그냥 단순히 보았을 뿐이지만, 그녀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네 녀이 내게 꼬리치려 하는 것도 역겨웠다. 그냥 참은 것은 개가 꼬리
친다고 그걸 일일이 신경 쓰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네 년
따위와 내 약혼녀가 비견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아운의 말에 묵소정은 쥐구멍이라도 파고 싶었다.
반발은 둘째다.
감히 대꾸할 생각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아운이 약혼녀가 있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것은 묵소정만이 아니었다.
소산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소설을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설은 침착했다.
조금 놀란 표정은 있었지만, 상당히 침착한 자세로 아운을 보고 있었다.
“네 년의 호위무사는 소설에게 무릎을 꿇은 것으로 그 죄를 묻지 않겠다.
그나마도 그게 아니었다면 너나 저 멍청한 네 동생이나 전부 죽었겠지만.”
정운은 자신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운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들었다.
두 사람이 소설과 소산에게 잘못할 때 말렸어야 했다.
정운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자신의 소설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으면, 두 남매는 오늘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냥은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두 남매가 그리 맞고도 살아 남았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일 격에 죽고 말았으리라.
최대한 고통을 주면서 기회를 주었고, 다행이도 정운이 그 기회를 잡아서 두 남매를 살릴 수 있었다.
정운은 완전히 백치처럼 무너진 두 남매를 보았다.
‘앞으로 어떤 힘을 지니게 된다 해도 운 공자의 그림자도 밟지 못할 것이다.’
정운은 다시 한 번 아운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소설과 소산의 일을 트집 잡아 사라신교에 도착하기 전 두 남매를 완전하게 정신 교육을 시킨 셈이고, 자신에게도 잘못을 빌게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실제 두 소녀에게 사과를 함으로 인해, 두 사람이 한 짓을 인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
무지막지하지만 치밀했다.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문사의 기품이 있다가도 이럴 땐 뒷골목의 누구보다도 거칠고 흉폭했다.
정운은 아운과는 조금이라도 원한을 져서 안 된다고 굳게 다짐했다.
어떻게 다루었는지, 두 남매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평생을 가도 아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아운의 ‘아’ 소리만 들어도 공포를 느끼고 숨을 죽일게 뻔했다.
‘두 남매가 사라신교의 소교주와 신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운 공자였다.
여차하면 정말 죽이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래도 안 죽인 것은 약속을 중히 여길 줄 알기 때문이가? 대체 군자인지 하오잡배인지 알 수가 없구나. 그래도 약속을 지키려 하는 것은 다행이다. 설마…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정운은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었지만, 설마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상에 아운보다 무서운 인간은 없을 것이라고.
아운은 묵소정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유를 묻지 않겠다. 소설과 소산의 기분이 약간이라도 상해 있으면, 무조건 너희 두 멍청한 것들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죽여 버리겠다. 알아서 처신해라!”
묵소정과 묵천악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앞으로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두 소녀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혹시 두 소녀가 기분이 상하기라도 하면 춤이라도 추고 노래라도 불러야 할 판이었다.
살려면….
이걸 인생역전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이나 소산은 그저 멍하니 아운을 보고만 있었다.
아운이 두 사람에게 아주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은 못 들어도 두 사람만은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너희들이 소설과 소산을 노리개로 생각했던 것처럼, 너라는 계집이나
저 멍청한 새끼는 내가 보기에, 내 맘 내키면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벌레로 보인다. 꼭 명심하도록.”
아운이 돌아섰다.
묵소정과 묵천악은 그저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새로운 금룡단의 단주님이 오셨습니다. 모두 여기, 대 아래로 모이시랍니다.
아울러 내가 열을 셀 때까지 다 모이랍니다. 하나…….”
단원들은 모두 시큰둥한 표정들이었다. 그들 둥 누군가가 말했다.
“저거 누구야? 외성의 문지기 하던 놈 아닌가?”
“아니 저런 놈이 금룡단이라니 금룡단도 다 됐군.”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육삼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이때 우칠의 뒤쪽에 있던 아운이 나서며 금룡단의 단월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한편 단원들 중에는 남궁세가의 남궁단과 쾌도문의 문형기, 그리고 새롭게 단원이 된 개방의 소걸개 이심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도 역시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타난 일행을 보면서 우칠과 흑칠랑을 어디선가 보았다고 생각하며 기억하려 하던 참이었다. 그동안 우칠의 덩치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아운을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우칠을 보고도 생각을 못한 자신의 머리를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명정이 한 주먹에 깨진 것은 당연했다.
이제 사태를 파악한 그들은 벌떡 일어섰다. 다른 단원들은 뭐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급했다. 조금이라도 잘못 보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너무도 잘 아는 그들이었다. 그 끔찍했던 과거가 생각나자 똥줄이 탄다. 다른 단원들이 불쌍해서 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 육삼이 일곱을 세고 있었다.
눈치라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소걸개 이심방은 아운의 모습을 보자마자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그는 급했다. 그래도 혼자 살 순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뭉기적거리고 있는 친한 친구들을 보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 날 믿나?”
동료들이 그를 바라본다.
“날 믿으면, 저 자가 열을 세기 전에 빨리 날 쫓아오게. 늦으면 평생 후회할 걸세.”
천하에 이심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건 아무리 잘 봐도 겁먹은 모습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이 세상에 이심방이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평소 염라대왕 앞에서도 이심방의 입은 살아 있을 것이라고 놀리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놀라기도 전에 이심방은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평소 그를 잘 알고 그와 친했던 친구들 세 사람은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최소 이심방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살렸다. 그런데 달리는 그들보다 더 빨리 달리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소림 십팔나한의 한 명인 몽진이었다.
그 역시 얼굴엔 다급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천하에 몽진이……. 그들이 서둘러 도착하는 순간 육삼의 입에서 ‘열’하는 숫자의 마지막이 떨어졌다.
그리고 자리에 선 자들은 모두 열 명에 불과했으니, 그들은 다음과 같았다.
개방의 소걸개 이심방, 소림 십팔나한 중의 한 명인 몽진, 절환검 남궁단, 비호섬 문형기, 그리고 이심방의 친한 친구인 종남의 은형분광 정명호, 절강성 추가장의 세우검 추운, 무당의 운현검 우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머저 세 명은 강소성 운룡표국의 십단검 한명옥, 호남성 철가장의 소장주인 금강대도 철담, 하복성 무진상단의 소장주인 칠보금검 소광이었다.
한명옥이나 철담 그리고 소광은 아운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들은 금룡단에서도 가장 특이한 존재들이었다. 원래 그들이 금룡단이 된 것은 순전히 가문에서 사활을 걸고 돈으로 밀었기 때문이었다.
강소성의 운룡표국이나 철가장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곳이었다. 그들의 가문에서는 자신의 아들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무림맹에 출세시켜보고자 집안의 전 재산을 장로들에게 바쳐 겨우 금룡단의 일원이 되게 만들었다.
이는 무진상단의 소장주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삼류 상단에 불과한 무진상단은 소광을 무림맹 금룡단에 넣고는 휘청했었다. 세 명은 금룡단에 들어오긴 했지만 모든 대원들로부터 심하게 차별을 받았고,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서 궂은 일은 모두 도 맡아서 해야만 했다. 자칫하면 다른 단원들에게 놀림을 받고 대련을 빙자해서 구타당하기 일쑤였다. 그들 중에선 노골적으로 이들을 무시하고 구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럴 적마다 숨어서 울며 서로를 의지해 왔었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금룡단과 무림맹을 나가고 싶어 했지만 가문을 위해서 꿋꿋하게 버티는 중이었다. 보통 그런 식으로 들어왔던 자들 중, 중소문파의 자제들일 경우 십일을 버티는 자가 없었는데 세 사람만 유일하게 일 년 이상을 버티고 있었다. 금룡단에서는 그들을 일컬어 삼충 즉 세 마리의 벌레라고 부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진 역경 속에서도 그들은 금룡단을 나갈 수 없었다. 자신들이 금룡단을 벗어나는 순간 가문은 몰락하고 말 것이란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가장 먼저 자리를 지키고 섰었다. 육삼은 열을 다 세고 아운을 바라보았다.
“육삼, 내려와라!”
육삼은 좌중을 둘러보고 자리에서 내려갔다. 아운이 단에 올라오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고 선 열 명 이외의 인물들은 모두 비웃는 눈초리였다. 아운은 그들을 돌아본 후 북궁명을 돌아보고 말했다.
“처남, 단주의 말을 무시한 자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하는가?”
북궁명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형만 아니면, 단주님 마음입니다.”
“그래? 그거 하난 좋군.”
아운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이심방이나 몽진, 그리고 문형기와 남궁단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가 얼마나 유식하고 폭력적인지 잘 아는 그들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종남의 은형분광 정명호가 전음으로 물었다.
“자네 왜 그러나?”
이심방은 기겁을 해서 전음으로 대답했다.
“살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있게. 잠시 후면 알게 될 걸세.”
그 말 한 마디를 하곤 대꾸도 하지 않는다. 정명호는 더욱 궁금해진다.
아운은 흩어져 있는 금룡단원들을 보고 웃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뭐 그럼 내 명령을 무시한 자들에게 벌칙을 주지. 오늘부터 여기 앞에 선 열 명과 내가 선정한 자들을 빼곤 전부 금룡단의 하인으로 강등한다.
그리고 네 놈들이 정신교육을 지금부터 시작한다.”
마치 장난처럼 말하는 아운의 말에 모든 금룡단원들은 하품이 날 정도였다.
별로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고, 겁도 나지 않았다. 지금 금룡단에 포함된 인물들은 모두 명문의 자제들이다. 이들을 하인으로 쓴다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그들의 가문으로부터 난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정신교육이라니……. 누가 당하고 그대로 있겠는가? 그들은 모두 무공이라면 나름대로 자신 있는 자들이었다. 인원만 해도 몇 명인데…….
물론 그들의 무공은 광풍사와 비교한다면 조족지혈에 불과하겠지만…….
아운은 서 있는 자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흰 모두 이쪽으로 물러서라.”
“충.”
이심방과 몽진, 그리고 문형기와 남궁단은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르고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묻어서 한 쪽으로 물러선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금룡단원들은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금룡단에서도 괴짜로 소문난 이심방과 가장 진중한 몽진, 그리고 오만하기가 둘째라면 서러운 문형기와 남궁단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었다.
아운은 천천히 걸었다. 그 뒤를 흑칠랑과 야한이 뒤쫓는다. 야한의 손은 이미 품안에 들어가 있었다. 먼저 십여 명의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한 아운이 그들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모두 일어서라.”
그 말을 들은 십여 명은 모두 피식 웃었다. 그들은 모두 태연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안 일어서면 너 어쩔래? 하는 표정들이었다.
“말 안 듣는군.”
아운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뭐, 우린 자격 없는 자는 인정하지 않으니까…….”
아운이 그를 향해 물었다.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난 화산의 매화고검 운몽이라고 하지. 들어보았나?”
“매화고검이라 앞으로 매화곡검이라고 부르게.”
운몽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단주라도 말을 함부로 하면 혼날 수도 있을 텐데…….”
아운이 웃는다. 운몽도 지지 않고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운의 신형이 바람처럼 날아가면서 발로 운몽의 입을 걷어찼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운몽의 이빨 다섯 개가 하늘로 날아갔다. 운몽이 검을 뽑아들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었다. 아운은 뒤로 두 바퀴나 구르고 나서 바둥거리는 운몽에게 다가가 발로 그의 머리를 밟아 뭉개기 시작했다. 순간 그와 함께 있던 십여
명의 청년들이 무기를 빼어 들었다. 그의 모습을 본 아운이 웃었다.
“단주에게 무기를 뽑아 덤비다니, 죽어도 할 말이 없겠지. 지금 기회를 주겠다. 누구든지 나에게 불만이 있는 자들은 나에게 덤벼라! 버러지들이니 한꺼번에 덤비는 것이 좋겠군.”
아운의 말을 들은 추운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심방에게 말했다.
“미친 것 아닌가? 저건 중과부적일세.”
그 말을 들은 이심방은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중과부적이지. 저들은 아마도 지옥이 무엇인지 곧 알게 될 걸세.”
추운과 주변에 있던 몇몇 인물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심방을 보았다.
“자네는 설마…….”
“그냥 지켜보게.”
이심방의 단호한 말에 모든 시선은 다시 아운에게 모아졌다. 아운은 두 손을 번쩍 들어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씨익 웃는다. 그것을 본 금룡단의 인물들은 기분이 아주 나빴다. 그리고 그 기분은 아주 신기하게 잘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아운의 신형이 바람처럼 그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칠보둔형의 묘에 이은 아운의 주먹과 발은 사정이 없었다. 십여 명은 무기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금룡단이 놀라서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심방과 몽진, 문형기와 남궁단을 뺀 열 명 중 나머지 여섯과 육삼, 북궁명, 그리고 소혼명은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건 완전히 일방적인 구타였다. 아운의 손과 발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마구 짓밟고 치기 시작하는데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았다. 금룡단의 인원은 현재 팔십이 명이었다. 그중 열 명을 배면 칠십이 명이다. 그들은 모두 명문의 제자들이다. 무공이 약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무공은 지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제대로 공격할 기회도 없었고, 공격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운의 신형은 보이지도 않는다. 몇몇 겁을 집어 먹은 인물이 도망가려 했으나 그것도 소용없었다. 아운의 신법은 과히 천하제일이 아니던가.
일권, 일퇴에 어김없이 한 명씩 쓰러진다.
뒤이어 야한의 도끼 자루가 사정없이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이미 쓰러진 금룡단의 젊은 고수들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긴다. 야한의 도끼 자루는 얼굴이고 다리고 가리지 않았다. 물론 신분도 가리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광경이었다. 이미 아운에게 한 방 맞고 땅바닥에서 파닥거리는 싱싱한 먹잇감을 야한은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보고 있던 흑칠랑은 손을 꼼지락 거리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쭈욱 폈다.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 쓰러진 자들의 코구멍을 돌아가며 한 번씩 찔러대기 시작했다. 모조리 코피가 터지는데, 그 중에서 얄미운 놈은 한 번 더 찌르고 있었다. 특히 운몽은 모두 합해서 다섯 번이나 찔리고 기절한다. 그것도 해보니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오금이 저리고 식은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이심방과 몽진 등의 행동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무당의 운현검 우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저 사람, 아니 저 분이 누구시기에…….”
이심방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권왕일세.”
그 말을 들은 추운과 우영은 물론이고 삼충의 얼굴마저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들은 그저 놀란 시선으로 아운을 본다. 설마 권왕이라니……? 약 이각이 지났을까? 금룡단의 연무장엔 시체 아닌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어김없이 도끼 자루에 맞은 상처가 있었으며, 코 구멍 한 곳이나 두 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흑칠랑은 자신의 중지 손가락을 보면서 아주 만족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개발한 구타 방법은 아주 획기적이고 기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운은 쓰러져 있는 자들을 둘러보고 천천히 돌아온 다음 서 있는 십여 명을 보았다. 순간 십여 명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한 차려 자세를 취한다. 그 뿐이 아니라 북궁명을 비롯한 육자명이나 육삼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불만 있는 자식은 앞으로 나오시게.”
흑칠랑이 뒤에서 중지를 들어 보인다. 열 명의 안색은 노랗게 굳어졌다.
불만……. 절대 있을 수 없었다.
“그럼, 가서 물을 떠다 저 쓰레기들에게 끼얹고 깨우도록…….”
아운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열 명의 신형이 섬광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아운은 북궁명과 육자명 그리고 육삼을 보면서 말했다.
“너흰 금룡단이 아닌가?”
세 명의 신형도 날아갔다. 그들은 그들 생애에 지금처럼 전력으로 신법을 펼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던 금룡단의 인원들이 한 곳에 던져졌다. 그리고 물을 끼얹자 그들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어나는 족족, 다시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떻게 차고 때리는지 기절하지도 않았다. 아운이 차고 때리고, 야한이 도끼자루로 패는데 그렇게 맞고도 기절하지 않은 게 신기하기만 했다.
“살려…….”
“부처님, 흑흑…….”
“제발…….”
그들은 이제 감히 아운에게 달려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특히 그래도 눈을 뜨고 자신의 가문 어쩌고 하던 자들은 흑칠랑의 가공할 손가락에 이어, 아운의 발길질에 이빨이 몽창 날아가는 비운을 감수해야만 했다. 찔린 코 구멍 다시 한 번 찔려봐라! 맞은 곳 골라서 다시 맞아 봐라! 당한 사람은 거의 미치게 마련이었고, 뇌가 근육으로 변하게 마련이었다. 다시는 대들 엄두도 나지 않게 마련이었다. 바닥에서 거의 기절한 시체 비슷한 인간들이 꿈틀거린다.
아운이 다시 단상에 섰다.
“셋이다. 셋을 셀 때까지 모두 도열하도록, 하나…….”
필사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그들을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온전한 상태가 아닌 자들이 제대로 모이겠는가? 셋을 세었지만, 아직도 도열하지 못한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한 번 참혹한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제대로 섰던 자들은 원망의 시선으로 아운을 본다. 자신들은 왜?
“너만 살자고 동료들을 무시한 놈은 그냥 둘 수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도열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불만 있는 놈은 말해.”
흑칠랑이 중지만 쭉 핀 주먹을 들어 올린다. 야한이 도끼 자루를 어깨에 둘러매고 묘한 표정으로 웃는다. 불만.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아운은 다시 연단에 섰다.
“다시 셋을 세겠다.”
셀 필요도 없었다. 거의 죽어가던 자들이 숫자를 세기도 전에 이미 도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열해 있는 금룡대의 모습을 보면서 아운은 조금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면 지금부터 기마자세를 취한 후, 나에게 대든 것을 반성하도록……. 시간은 두 시진이다. 물론 내공은 사용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다. 혹여 견디지 못하는 자는 그냥 쓰러져도 된다. 결과는 겪어보면 알 것이다. 그리고 책임은 너희들 공동이 진다.”
아운의 말에 칠십이 명의 금룡대는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감히 대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모두 기마자세 시작! 한 명만 견디지 못해도 모든 동료들까지 조금 전 고통을 다시 맛보게 될 것이다.”
아운의 고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이미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금룡대가 생기고 지금처럼 빠르고 일사분란하게 대주의 명령을 이행한 적은 처음이었다. 흑칠랑과 야한은 돌아다니면서 금룡대 대원들의 무릎과 허리 부근의 혈을 눌러 다리 쪽으로 내공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때부터 칠십이 명의 금룡대원들은 기마자세와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 모두 한쪽 코구멍이나 두 코 구멍에서 코피를 질질 흘리며, 팅팅 부은 얼굴로 기마자세를 취한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 난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은 그들보다 훨씬 더 불쌍해 보인다. 코피가 흐른다고 감히 그 코피를 닦으려는 간 부은 인간도 없었다. 오히려 코피가 나며 얼얼한 코구멍은 조금 전의 지옥을 떠올리게 만들어 그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박탈해 갔다.
아운은 그들을 한 번 훑어보고 뻣뻣하게 서 있는 나머지 금룡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아운이 사라지자, 그 자리를 야한과 흑칠랑이 대신한다. 야한이 도끼자루를 꺼내 휘두르며 아주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좀 못 견뎌 다오.”
칠십이 명의 금룡대 대원들의 얼굴이 노랗게 변한다. 이때 야한의 뒤에 서 있던 흑칠랑이 유난히 긴 가운데 손가락을 쫙 펴고 들어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렇지 않아도 얼얼한 코 구멍이 뻥 뚫리는 뼈아픈 기억이 새로워지면서 그들의 안색은 거의 죽은 시체처럼 변해갔다. 만약, 혹여, 여기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기마자세를 푸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나머지 금룡대 전원에게 평생 동안 원한을 지는 일이 될 것이다.
이심방과 북궁명을 비롯한 열세 명의 인물들은 한쪽에 뻣뻣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보았던 참혹한 광경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명호와 추운 그리고 우영은 이심방이 너무나 고마웠다. 생명을 구해준 것보다도 열 배 이상은 고마웠다. 그들은 추후에 은혜는 반드시 갚으리라고 다짐을 하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아운을 두려움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약관을 넘은 나이에 강호 무림의 최고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인물. 그의 한 주먹에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사막의 지배자라는 사라신교와 몽고의 전설, 혹은 사막의 신이라고 칭송을 받는 광풍사를 몰살시킨 전설의 고수. 그들 역시 가슴속으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아운이었다.
그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심방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생각했다.
‘아직 장로들은 권왕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자칫하면 무림맹 장로들을 최강의 적을 만들 수 있다.’
이심방은 단 한시라도 개방에 이 사실을 알리고 절대로 아운이나 북궁세가와 적대시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바로 단절이 되었다. 아운은 서 있는 열세 명의 인물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긴 나를 아는 인물들이 좀 있군. 만약 내 정체가 혹여라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여기 있는 누군가의 입에서 나간 정보라면 최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는 일곱 개 이상의 문파가 나와 적이 될 것이다.”
이심방을 비롯하여 십여 명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변하고 말았다. 그들은 감히 아운의 말을 어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너희들이 어느 문파, 어디 소속이건 묻지 않겠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는 너희는 금룡대의 유일한 대원이다. 그것이 끝이다. 그 외엔 모두 잊도록…….
그러면 나중에 그만한 보상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기면 나 아운과 적이 될 것이다. 난 적이 된 자와 그가 소속된 문파를 그냥 둔 적이 없다.
알겠나?”
아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즉각으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금룡대가 완전히 부활되었음을 선언하겠다. 그리고 금룡대의 정대원은 여기 열세명과 앞으로 몇 명을 더해서 총 이십여 명으로 구성한다.”
아운은 흑칠랑과 야한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기 두 명은 우리 금룡대의 교관으로 임명한다. 아울러 북궁명은 부대주의 역할을 하고, 여기 우칠은 나의 친위대로 내 호법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너…….”
아운이 왕구를 바라보며 부르자, 왕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젠 천하제일고수 같은 것 다 필요 없었다. 감히 이런 지옥에 끼어든 것부터가 저주스런 일이었다. 입과 혀가 굳어서 말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흑칠랑과 야한이 가장 강하고 무자비한 인간인 줄 알았다. 최소한 고금제일인에게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달랬다. 아주 오래 전 우칠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아운을 보고 나선, 아니 조금 전 지옥을 보고 나서는 모든 사고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흑칠랑이나 야한이 아운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넌 부호법이다.”
아운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즉 그는 이제부터 정 호법인 우칠의 수하로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우칠은 드디어 자신에게도 수하가 생겼다는 사실에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이제 제대로 교육을 시켜서 고금제일충복인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소 천하제일충복 정도로…….
왕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맞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뭔지 몰라도 일단 우칠은 보기에도 대단해 보이는 덩치였다. 그런 우칠과 함께 고금제일인이 분명한 아운의 수하가 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왕 자신이 못 될 것 같으면 그런 사람의 수하가 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 같았다. 왕구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충, 앞으로 고금제…….”
말을 하던 왕구는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는 우칠의 시선을 보고 무엇인가 잘못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 사이에 는 것은 눈치뿐인지라 재빨리 말을 바꾼다.
“고금제이충복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일에서 이로. 왕구의 거창한 말에 열세 명의 금룡대원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세상에 저런 맹세도 있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고금제이충복이라니, 그럼 제일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칠을 본다. 우칠은 아주 만족한 표정이었다. 허탈한 기분이 들 정도로……. 반대로 흑칠랑이나 야한은 별로 새롭지도 않았고, 아운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아운은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는 금룡대를 바라보다가 다시 열세 명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약속대로 저 자식들은 금룡대의 하인들이다.”
아운의 마지막 말은 단호했다. 누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일다 선언을 한 아운은 이심방을 보면서 말했다.
“야! 거지.”
이심방의 얼굴이 변했다. 아무리 그래도 거지라니……. 그렇지만 얼굴에 추호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는 이미 사막에서 아운의 무자비한 교육을 몸으로 깨우쳤던 자였다.
“부르셨습니까?”
“금룡대는 모두 백이십 명으로 구성된다고 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디 있는가?”
차가운 아운의 말에 이심방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그들은 부대주와 함께 비월령주님의 밀명을 받고 그 명령을 수행하러 갔습니다.”
아운의 얼굴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비월령주라면 상아도후 호연란 그 계집에 말인가? 그리고 언제 금룡대에 부대주가 있었나? 내가 듣기로 연 누이는 아직 부대주를 임명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
이심방은 가슴이 철렁했다. 단언하건데 무림맹 안에서 상아도후 호연란을 계집이라고 큰소리로 말한 것은 아운이 처음이었다. 누가 들었다가 호연란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누구라도 온전하게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운이 아무나 일순 없는 것이다. 아무리 호연란이라고 해도 상대가 권왕이라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심방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총사님께서 부대주를 선출하지 않자, 장로원에서 임으로 부대주를 뽑아 임명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검각의 소각주인 태을금검 사자명입니다.”
태을금검 사자명은 젊은 고수들 중에서 능히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삼룡사봉을 배고 가장 고강한 무공을 지닌 젊은 고수들 몇 명을 말하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사자명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아운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이심방의 말을 듣고 난 아운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월권도 모자라 감히 남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단 말이지. 그건 그렇고, 부대주란 자식이 감히 대주인 총사와 의논도 없이 다른 사람의 명령을 이행해. 그것도 자신의 직속상관과 적대적인 계집의 명령을 말이지. 아주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겠군.”
아운의 표정을 본 이심방은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 아운처럼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솔직히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수하가 다른 여자의 명령을 듣는다고 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 할 것이다. 그런데 아운은 아주 적나라하게 다 펼쳐 놓았다. 더 이상 감출 것도 없이…….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그의 각오가 대단하다는 것이리라. 이심방은 태을금검 사자명을 생각해 보았다. 검각은 사실상 호연세가의 가신이 되다시피 한 곳이었다. 그런 만큼 사자명은 호연란의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또한 사자명이 호연란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룡대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친 호연세가인만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아주 노골적으로 차별 대우를 하며 으스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불만이 많았던 이심방이었다.
‘너 아주 죽었다고 복창을 해라.’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괜히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심방은 아주 작성을 하고 나서기로 했다. 이 기회에 아운을 이용해서 확실하게 사자명을 혼내주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 동안 당한 것의 몇 백배에 달하는 복수였다. 더군다나 자신은 손도 안 대고 코 푸는 격 아닌가. 이심방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부대주인 사자명은 호연란의 사람입니다.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켁…….”
이심방의 말을 다 들은 아운의 주먹이 이심방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심방은 얼굴이 깨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뒤로 삼장이나 날아가 엎어졌다. 이심방이 놀라서 고개를 드는 순간 벌써 눈앞에 나타나 아운의 발이 그의 턱을 올려 찬다. 이유조차 모른 채 구타를 당한 이심방은 금방이라도 맞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잔머리로 유명한 그의 머리가 굳어졌고, 혀가 굳어져서 말도 하지 못한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이심방을 보면서 아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네 복수심에 이용하려 한 대가다. 앞으로 나를 시험하거나 나를 이용하려 하지 말라. 그렇다간 너도 저 놈들처럼 될 것이다.”
아운의 말을 듣고서야 이심방은 자신이 왜 맞았는지 알았다. 아울러 아운이 얼마나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주먹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운의 지혜와 감각을 본 이심방은 더욱 아운이 두려워졌다. 감히 헛생각을 한 자신의 머리가 미워진다.
“그들은 언제 오기로 되어 있는가?”
아운의 물음에 이심방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가 듣기로 오늘 안에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주님이 취임했다는 것을 전서구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일찍 왔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쯤 호연란의 밀명을 이행하고 보고하러 갔을지도 모릅니다.”
“가서 데려와라!”
“옛?”
“거지의 걸음이 빠르다고 들었다. 지금 튀어가서 찾아오란 말이다.
만약 사자명이란 쥐새끼가 호연란에게 먼저 가게 된다면 네 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달려!”
“옛!”
이심방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금룡대 사십여 명이 비밀리에 밀명을 받고 해야 하는 일이라?’
아운은 그 일도 궁금했다.
무림맹의 내성을 달리던 이심방은 얼마 가지 않아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이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자명을 비롯한 나머지 금룡대가 마침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향한 방향은 지금 금룡대 본부가 아니라 호연란이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호연란에게 일의 보고를 하러 가는 것 같았다.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이심방은 다급하게 사자명에게 달려갔다. 사자명은 자신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는 이심방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부대주께 아룁니다.”
“뭔 일이냐?”
사자명의 냉랭한 하대에 이심방은 울컥하는 기분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말했다.
“새로 온 대주께서 빨리 금룡대로 오시랍니다.”
“무슨 개 같은 소리냐? 난 지금 밀명을 수행하고 보고하러 가는 중이다.
좀 이따 갈 테니 기다리라고 전해라!”
이심방은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여기서 물러섰다가 사자명이 호연란에게 먼저 가게 된다면 그 다음이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아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사자명을 데려 가야만 했다. 그러나 사자명의 기색으로 보아 먼저 호연란에게 보고를 하기 전엔 절대로 금룡대로 갈 것 같지가 않았다. 이심방은 급했지만 침착했다. 잔머리라면 금룡대 제일의 인재가 이심방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사자명 이 개새끼! 금룡대의 일원이면서 총사의 명도 없이 호연란의 사주를 받고 행동을 해. 당장 오지 않으면 네 놈과 네 수하 놈들을 몽땅 껍데기를 벗겨 나무에 매달아 놓겠다는 대주님의 전갈이다. 그러니 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이 후레자식아.”
이심방의 말을 들은 사자명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 얼굴이 벌개졌다.
이심방은 그 말을 하고 금룡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드득…….”
이를 같아 붙인 사자명이 그대로 이심방의 뒤를 쫓았고 나머지 금룡대의 인원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표정엔 살기가 등등했다.
“이놈, 어떤 새끼가 대주인지 몰라도 머리통을 부셔 놓고 보고를 해도 하겠다. 그리고 저 거지 새끼도 사지를 잘라 버리고 말겠다.”
이를 갈며 이심방의 뒤를 쫓는 사자명의 고함 소리였다. 그러나 달리는 이심방의 얼굴에 가득한 회심의 미소를 그는 보지 못했다.
‘너 이 개자식 좀 있으면 지옥이다. 흐흐…….’
이심방이 사자명을 데리러 가자, 아운이 북궁명을 보고 물었다.
“누가 사자명과 그 무리에 대해서 잘 아는가?”
“저도 조금은 잘 압니다. 하지만 완전하진 않습니다. 사실 사자명이 금룡대의 부대주인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운은 북궁명의 말을 듣고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선 누나의 처지를 생각했을 때 금룡대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것이다.
“너!”
아운이 몽진 일행을 돌아보다가 칠보금검 소광을 지목했다.
“넷. 대주님.”
“자네는 사자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 같군.”
소광이 놀라서 아운을 다시 본다.
“아까 사자명의 이름이 나왔을 때, 네 표정 변화가 가장 극심하게 변하더군.
자넨 사자명과 원한 관계가 있지?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도 가장 많이 알고 있겠군. 그 원한 관계가 무엇인진 묻지 않겠다. 대신 그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 보아라.”
“그…그건…….”
소광은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아운의 말을 인정한 셈이었다. 모두 놀란 시선으로 아운을 보았다. 설마 아운의 눈치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언제 다른 사람들의 표정 변화까지 살폈는지, 그들 중에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광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윽고 결심을 한듯 말문을 열었다. 소광의 얼굴은 울분으로 인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사자명, 그 개자식은 나의 약혼녀를 강간하고 죽였습니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아운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소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육 개월 전, 사자명과 그의 수하들이 비월령주인 호연란의 명령으로 안휘성 위씨세가를 멸문시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위씨세가의 장녀였던 위지연 낭자는 나와 태중 혼약한 사이였습니다. 난 상황도 모르고 사자명의 명령으로 함께 동행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공격하는 문파가 위씨세가인 것을 알고 전 위지연 낭자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그 개자식은 오히려 나를 비웃으며 그랬다가 우리 가문마저 화를 입을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위지연 낭자를 사로잡아 내 앞에서…….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려들었지만 단 삼초 만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점혈을 당한 채 쓰러져 있는 내 앞에서 지연 낭자는 강간당한 채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위씨세가도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그들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난 언제고 내 손으로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여기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위씨세가는 무슨 이로 공격을 당한 것인가?”
“잘은 모르지만 무림맹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위씨세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그곳은 그럴만한 베짱도 능력도 없는 곳입니다.”
소광은 울고 있었다. 아운은 하늘을 보았다. 청명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그의 답답한 가슴을 더듬고 지나간다.
‘위씨세가처럼 보잘 것 없는 곳을 왜 공격했을까? 그 정도의 세가가 멸문까지 당할 정도로 잘못을 할 만한 일이 없을 텐데……. 그렇다면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뭐 알 기회가 있겠지. 그건 그렇고 호연란이 여우같은 계집의 머리가 제법이구나.’
아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다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허허, 그런 거군. 위씨세가가 무엇 때문에 멸문 당했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금룡대가 한 짓이니 욕은 북궁세가가 먹겠군.”
아운의 말을 들은 사람들 표정은 다시 변했다.
“도사!”
갑자기 아운이 운현검 우영을 부른다. 우영은 도사란 말이 자신을 부르는 것인 줄 몰랐다가 곧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곤 기겁을 해서 대답했다.
“옛.”
“사자명과 함께 하는 무리들이 대체적인 심성이 어떤가? 거의 모든 족속들이 잔인하고 여자를 탐하는 하오배 같은 자들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말해보게.”
아운의 말을 들은 우영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워낙 소문이 무성했던 참이었다.
“무량수불.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소문이 아주 안 좋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들 중엔 무공 좀 높고 소문 안 좋고 그저 그런 가문의 인간인데 장로원의 추천으로 들어온 인간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겠지?”
“그걸 어떻게?”
우영이 놀라서 아운을 보고 반문하자 아운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잔머리 굴리는 인간들을 아주 싫어하지. 호연란 그 계집 아주 기가 막히게 금룡대를 이용해 왔군. 자신의 일은 일대로 금룡대가 처리했고 거기에 따른 원성이나 욕은 북궁세가가 다 듣고……. 하하하, 멋지다. 멋져.”
그 말을 하곤 웃는다. 우영은 아운이 하는 말을 듣고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볼수록 놀라운 사람이다.’
우영이 아운에게 다시 한 번 감탄할 때, 아운은 차가운 표정으로 소광을 바라보며 말했다.
“복수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강해져라. 내가 그 기회를 줄 것이다.”
소광이 놀라서 아운을 바라본다. 아운은 냉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소광은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더 이상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심방이 숨차게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수십 명의 무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아운은 달려오는 이심방과 그 뒤를 쫓아오는 사자명을 보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잔머리 잘 돌아가는 이심방을 보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심방은 아운을 보자 느긋해졌다.
“대주님, 명대로 사자명과 그의 수하들을 데려 왔습니다.”
“수고했다. 한 쪽에 가서 서 있도록…….”
이심방은 후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가 선 다음 사자명을 바라본다. 아운은 사자명을 바라보았다. 당당한 체격에 약간 각이 진 얼굴. 날카롭게 갈라진 눈은 누가 봐도 만만해 보이지 않은 인상이었다.
‘제법이군.’
아운은 사자명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먹을 맛이 나는 것처럼, 사람도 칠 맛이 나야 치는 재미가 있기 마련이었다. 수많은 금룡대의 수하들이 전부 기마자세를 하고 도열해 있었고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몽진이나 이심방, 그리고 무당의 우영이 반듯하게 서 있었지만 지금 사자명의 눈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심방이 보고를 하는 것을 보고 아우이 바로 새로운 대주란 것을 알게 되자 일단은 허탈했다. 비리비리해서 별로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일검도 견딜 것 같지 않은 자였다.
‘이제 막다른 곳에 왔다고 총사가 발악을 하는구나.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사자명은 북궁연의 처지를 동정하며 혀를 찬다. 사람은 가끔 하나에 집착하면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는 지금 기마자세로 도열해 있는 금룡대 전원의 처참한 몰골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것을 보았다면 최소한 경계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지금 그의 머리는 아운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고민 하나만으로도 꽉 차고 넘쳤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시선은 아운 외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은 보았어도 그것이 아운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자명은 실실 웃으면서 아운엑 다가와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인사를 한다.
“사자명이오. 당신이 새로 온 대주외까?”
아운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대주다. 그럼 네가 사자명이란 호연란의 강아지 새끼가 맞나?”
사자명의 안색에 살기가 감돌았다.
“대주라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군. 그러다 맞아 죽지.”
사자명의 말을 들은 이심방과 추운, 우영은 물론이고 한명옥, 철담 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사자명에게 원한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표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랬다.
‘네 놈 이제 죽었다.’
아운은 사자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호, 네 놈은 대주에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이냐?”
“난 네 놈을 대주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그 말을 들은 아운이 이심방을 부른다.
“야! 거지.”
“옛. 말씀하십시오.”
“이거 하극상 맞지?”
“분명히 맞습니다.”
“금룡대에서 하극상은?”
“최고 사형입니다. 아니 대주님 맘 대로입니다.”
이심방은 신이 나서 말했다. 아운이 웃으면서 사자명을 보고 말했다.
“그렇다는 군.”
사자명은 코웃음을 쳤다. 언제 금룡대가 규칙을 따졌던가? 그리고 별 힘도 없는 대주가 어쩌겠단 말인가? 하극상에서 대주가 처리 못하면 장로회로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장로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장로원에서 북궁세가의 힘은 아주 미미했다. 반면에 자신에겐 아주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오히려 대주를 혼내주면 경쟁자인 호연란의 호감만 더 살 뿐이었다. 사자명은 마음껏 아운을 비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쩌겠단 말인데?”
“그래서 말이지…….”
아운은 터덜거리며 걸어가서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말했다.
“우선 네 놈의 입을 틀어막고…….”
“그게 네 놈……. 크억!”
아운의 신형이 움직였나 했을 대 이미 사자명의 코앞에 나타났고, 이어서 돌멩이를 사자명의 입안에 박아 넣었다. 앞니가 전부 부러져 나가면서 돌멩이가 그의 입속으로 들어가 박혔다. 보던 사람들이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라서 아운과 사자명을 바라보았다. 저런 무식한 방법으로 사람을 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그들이었다.
“야한!”
아운이 부르자 이미 준비 중이던 야한이 바람처럼 날아와서 도끼 자루를 건네주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것은 조금 전 금룡대 칠십여 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 힘써 볼 상황도 아니었다. 아운의 도끼 자루는 추호도 용서가 없이 얼굴만 가격했다. 부대주인 사자명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은 덤빌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칠보둔형의 절기를 등에 업은 아운의 도끼 자루는 천하무쌍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흑칠랑이 달려왔다.
그리고 흑칠랑은 가운데 손가락을 쫙 편 다음, 쓰러진 놈들이 코 구멍을 꼭 두 번씩 찔러댔다. 그리고 야한이 흉내를 내며 쫓아가는데, 야한은 가운데 손가락이 아니라 엄지 손가락을 쓴다. 길이가 안 되니까 굵기로 도전한 것이다.
인정사정도 없었다. 특히 사장명은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아운에게 거의 떡이 된 사자명의 코 구멍은 흑칠랑과 야한에 의해서 완전히 돼지 코가 되어 있었다. 뿐인가. 앞 이빨은 돌멩이가 전부 부수어 놓았고, 제법 영준했던 그의 얼굴은 완전히 파면이 되어 있었다. 다시는 제 얼굴로 돌아오긴 힘들 것이다.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보던 추운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나라면 죽는 것이 행복하겠다.”
이심방은 후둘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런 소리 말게. 저 놈들, 앞으로 숨 쉬기 편하겠다. 코 구멍이 뻥 뚫릴
테니…….”
그들의 말을 들은 무당의 운현검 우영이 나직하게 불호를 외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무량수불, 너무 잔인한 짓일세. 하……하지만 사자명은 좀 당해도 되긴 하지.”
우영의 말에 이심방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기도 하지만, 저런 식으로 확실하게 해 놓으면 앞으로 다시는 덤빌 생각을 못할 걸세. 오히려 저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은가? 몽진화상.”
몽진은 숨소리를 죽여 가며 말했다.
“아미타불. 아운 시주에게 잘못 보이느니 난 그냥 지옥으로 가겠네.”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는 몽진의 얼굴을 본 이심방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자신이나 운현검 우영이나 앞으로 감히 아운에게 도정하거나 대항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엔 이미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아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은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대 정파 무림의 한 복판에서 보여준 아운의 모습은 강하면서도 화가 났을 땐, 뒷골목의 파락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정파 무인들이 적을 상대함에
단검에 죽이거나, 싸워서 패하면 보통은 그것으로 끝인 것이 이쪽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한데 아운은 다르다. 저렇게 무식하고 잔인하게 사람을 다루어 놓으면 아무리 강골인 사람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다시는 아운에게 대항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운은 상대의 신분과 체면을 고려해 주지 않았다.
‘앞으로 무림맹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니 그건 오로지 아운 하기 나름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아운에게 선택된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심방이었다. 물론 아운이 좀 두렵긴 하지만 그거야 아운의 말을 잘 듣고 잘못을 안 하면 된다.
아운의 무자비한 폭력에 사자명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입안엔 주먹만 한 돌멩이가 들어가 박혀 있고 머리엔 도끼 자루가 날아다니는데 제 정신이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처음 도끼 자루가 머리통을 내리 쳤을 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진 아운의 구타 앞에서 사자명의 자존심을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무공.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던 사자명이었지만, 단 두세 번 대항하려 해본 다음,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상대는 자신이 어쩔 수 있는 고수가 아니란 것을 처절하게 깨우쳤을 뿐이었다. 공포와 아픔 때문에 사자명의 정신은 혼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 아픔은 정말 끔찍했다. 대항할 생각, 그것은 꿈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최소한 지금 상황에선 그렇다.
‘살려주세요.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흑흑…….’
그러나 그것도 속으로만 들린다. 입안에 돌멩이가 말문을 막은 것이다.
거의 걸레가 되도록 매를 맞은 사자명을 아운은 미련 없이 바닥에 쳐 박아 버렸다.
“네 놈들은 이쪽으로 모여라!”
별로 큰 소리도 아니었지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자명의 수하들이 덜덜거리며 일어서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피가 줄줄 흐르고 콧구멍이 돼지 코처럼 벌어지고 팅팅 부운 그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불쌍하기에 앞서 우습기조차 했다. 그것을 본 아운의 눈썹이 다시 곤두섰다.
“셋을 세겠다. 그때가지 다 모이지 못하면 오늘 네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겠다. 하나…….”
번개보다 빠르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디든지 죽을지 살지 모르고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골통들이 있게 마련이다.
유범석은 점창파 장문의 셋째 제자였다. 그는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런 구타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뼈를 아리는 아픔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유범석,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의 끈질긴 독기는 금룡대 뿐이 아니라 무림맹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점창파에서 그의 사부조차 두 손을 들 정도겠는가? 또한 금룡대에서 부대주인 사자명조차도 꺼리는 인간 말종이 바로 유범석이었다.
사람을 죽여도 가장 지저분하게 죽이고, 여자를 간음해도 가장 변태적인 인간이 유범석이다. 그리고 지독하게 끈질겨 한 번 그에게 잘못 보인 사람은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백이십의 금룡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용맹한 다섯 명의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고, 누군가와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팔다리가 부러지고, 바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인간이 바로 유대석이다. 그의 이 질긴 성격과 무대포적인 기질은 다른 사람이 쉽게 따를 수 없는 재능이기도 했다.
점창의 장문인인 유운무적검 사운한은 만약 유범석이 폭력적이고 작은 일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남모르게 여자들을 납치 강간하는 성격만 고칠 수 있다면 점창의 대들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했었다. 유범석이 강호에서 저지른 추악한 죄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점창파의 힘 때문에 몇 번이나 그 위기를 벗어났다. 지금도 사운한은 유범석이 무공에만 전념한다면 대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유범석인 만큼 다른 사람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오히려 이를 갈고 원한을 키웠다. 대 점창파의 제자를 이렇게 패는 놈이 있다니 생각할수록 분했다. 능력이 모자라서 맞았지만, 그것은 두 번째였다.
반드시 스승에게 말해서 점창의 힘으로 버릇을 고쳐 놓고 말리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시 셋을 셀 때까지 모이라고 윽박지르는 아운을 보자 그의 기질이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이 개자식아. 차라리 여기서 날 죽여라. 흐흐, 난 절대 네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 이제 어쩔 테냐? 네가 정말 날 죽이기라도 하겠느냐? 그렇게 되면 점창파에서 네 놈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흐흐, 나는 점차의 유범석이란 말이다.”
유범석은 그 자리에서 옷을 벗더니 아예 바지와 속옷까지 전부 벗어던지고 주저앉아서 고함을 질러 댔다. 모든 시선이 유범석에게 모아졌다. 점차의 제자. 구대문파 중의 한 곳이다. 그런 인물이 죽일 테면 죽이라고 덤빈다.
누구라도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유범석이 그렇게 나서자, 금룡대에서도 골통으로 유명했던 세 명의 인물들이 더 일어섰다. 그들은 유범석과 가장 친한 자들이었고 가장 악종들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아래 위로 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유범석 근처로 모여 들었다.
“흐흐, 범석이 멋져. 나도 합류한다. 난 절강성 오가장의 오승이라고 한다.
나 역시 죽어도 네 놈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
오가장은 절강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무가였다.
“난 모산의 손장순이다. 네 놈은 어쩔 테냐? 흐흐, 나를 죽일 테면 죽여라.”
모산파는 비록 구파일방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절대로 뒤지지 않는 세력을 가진 대문파였다. 그들에 이어 합류한 또 한 명의 청년은 입고 있던 천을 다 벗어 던지고 스스로 자신의 몽에 지닌 검으로 핏줄을 그어대며 고함을 쳤다.
“칠 테면 쳐라. 이놈, 난 겁 안 난다. 내가 죽으면 네 놈은 나의 사문인 황룡표국과도 원한을 져야 한다.”
황룡표국은 복건성의 패자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모두 쟁쟁한 가문이나 문파의 제자들이거나 후예들이었다. 이렇게 되자, 금룡대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모였다. 그들은 모두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만큼 나선 인간들이 얼마나 독종들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는데 언제나 앞장서서 싸우는 자들이었고 언젠가는 합이 열세 대의
화살을 맞고서도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던 자들이었다. 사자명조차도 그들에겐 절대 함부로 하지 못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은 잘만 다스리면 보석이 될 거라고 칭찬하던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문파에서는 누구도 그들의 자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고 알려진 자들. 강화 무림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무림맹의 독종 사공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무림에서는 따로 무림맹의 사흉이라고도 부르는데 아운 역시 이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칫하면 금룡대 전부가 가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기마자세를 하고 있던 금룡대원들마저도 긴장한다. 여차하면 반기를 들 기세다. 북궁명을 비롯한 열세 명이 금룡대원들의 얼굴에도 긴장한 빛이 떠오른다. 그러나 흑칠랑이나 야한은 오히려 히죽거리고 웃고 있었다. 아운이 유범석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유범석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알몸의 가슴을 활짝 펴며 고함을 질렀다.
“흐흐, 그래 요 개자식아. 어서 와서 나를 죽여라! 죽여!”
다른 세 명은 그 자리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운의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표현이었다. 그들 주우 오승이 유범석과 보조를 맞추어 고함을 쳤다.
“이 씨발 놈아! 얼마든지 패라. 하지만 우린 절대 네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
우리를 때릴 순 있어도 명령을 따르게 하진 못할 것이다. 으하하…….”
코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악을 쓰는 유범석과 오승 일행을 바라본 아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법이군. 좋아. 인정은 하지.”
아운의 말을 들은 유범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적당하게 타협을 하려 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운은 그런 유범석을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난 우서 네 놈부터 죽이기로 결정했다.”
“뭐……. 뭐…….”
유범석이 놀라서 아운을 본다. 설마 자신이 잘못 들었겠지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똑똑하게 들었다. 처음엔 놀랐던 유범석이 노골적으로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멍청한 새끼, 네가 나를 죽이겠다고 죽여봐라. 그럼 그 다음엔 점창이 가만히…….”
그 다음 말이야 뻔한 거지만, 아쉽게도 유범석은 그 다음 말을 다 이어가지 못했다.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아운의 주먹이 그의 어깨를 쳤고, 어깨뼈가 모조리 부서져 버렸다.
“크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유범석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운은 그 자리에서 사정없이 유범석의 왼쪽 정강이를 걷어찼다. ‘빠각’하는 소리가 다시 한 번 시원하게 들린다. 그 소리를 들은 이심방이 질린 얼굴로 우영을 보며 말했다.
“저 소리는…….”
우영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뼈가 완전히 부서졌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지. 무량수불. 다시는 고치기 불가능할 것 같은데…….”
“끄으윽…….”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비명이 유범석의 입을 타고 넘어왔다. 그런 유범석을 보면서 아운이 느긋하게 말을 했다.
“네 놈이 여기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네 놈의 명성은 아주 잘 듣고 있었다.
한 마디로 넌 죽어도 싼 놈이다.”
유범석은 어깨뼈와 다리뼈가 부서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아운을 노려보고 말했다.
“나는 점창…….”
“점창, 좋지. 네 말대로 점창이 나를 적으로 돌리면 점창을 강호 무림에서 아주 지워주마.”
아운의 태연한 말에 금룡대원들이 표정이 질리고 말았다.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거란 말인가? 이 세상에 저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처음 알았다. 물론 그들은 아운이 정말 점창파와 정면충돌하거나 멸문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운의 정체를 아는 열세 명이나 그들보다 더욱 아운을 잘 아는 흑칠랑과 야한, 우칠 등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단지 그들도 아운이 유범석을 죽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유범석의 협박을 무시할 거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만큼 어떤 식으로 아운이 유범석을 다룰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운의 무자비한 기세에 땅바닥에 대자로 누웠던 세 명이 불안한 표정으로 상체를 들어 올릴 때였다. 아운은 어깨벼와 정강이뼈가 부서진 고통으로 덜덜 떨고 있는 유범석의 턱을 올려 차 버렸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일장이나 솟구쳤던 유범석이 대자로 누워있는 세 명의 옆에 털썩하고 떨어졌다. 입에서 거품을 물고 유범석의 눈동자가 돌아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세 명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어디 그들뿐인가? 서있던 열세 명이나 우칠, 그리고 왕구의 표정마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운이 다시 유범석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사람들은 정말 아운이 유범석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때 이심방은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지금 권왕은 유범석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렇지만 점창의 힘을 감안하고 앞으로 무림맹에서의 입지를 생각한다면 죽이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나서야 한다. 나서서 권왕에게 물러설 수 있는 명분을 준다면 내게 고마워할 것이다.’
빠르게 머리를 돌린 이심방이 재빨리 나서며 권왕에게 말했다.
“대주님께 아룁니다.”
“말해라!”
“지금 이들을 죽이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차라리 잘 다스려서 쓴다면
상당히 재질을 가진 자들입니다. 대주님께서 마음을 크게 가지시고 목숨만을
살려 주십시오.”
이심방의 말에 아운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주제 넘는 놈이군. 역시 잔머리가 잘 돌아간다. 하지만 그건 네 놈도 명문의 제자이기 때문에 하는 개소리다. 나는 이 자식을 죽일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한 대가를 받으며 아주 고통스럽게 죽일 것이다. 인재라고 죽일 짓을 한 놈을 살려주고 명문의 자제라고 여자를 강간해도 벌을 주지 않는다면 세상의 법은 있으나 마나다. 이 개자식들은 모두 죽을 죄를 수십 번 이상 저지르고도 제 입으로 자랑하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금룡대를 모욕하는 것이고 무림맹이 어떤 곳인지 인증하는 것이다. 당연히 죽어 마땅하다. 네 놈이 다시 한 번 주둥이를 놀리면 너도 죽이겠다. 빨리 꺼져.”
이심방은 아운의 살기 앞에 기가 죽어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각에 걸쳐 아운은 유범석의 뼈를 하나씩 분질러버렸다. 아주 천천히, 모두 입이 얼어붙어 말을 하지 못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세 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덜덜 떨고 있었다. 이미 무공이 전폐되고 척추가 부러진 유범석은 사실상 살아도 산게 아닐 것이다.
“이제 지옥으로 가라!”
아운의 주먹이 그대로 유범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유범석의 머리가 박살 난 채로 죽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심방이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정말 죽였다.”
몽진은 침착하려고 바둥거리며 말했다.
“죽을 짓을 수없이 한 자니 죽어서 마땅하지만, 정말 죽이다니 아미타불. 마…만약 내가 권왕에게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자네들이 먼저 죽여주시게.”
몽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마음이 그랬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직된 표정으로 아운을 볼 때 아운은 더 없이 개운한 표정이었다.
정말 사람을 죽인 것 맞나 싶은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강한 공포심을 심어 주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해서는 지옥의 악마가 있다면 바로 아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때도 있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젠 새로 온 단주가 설마 이것은 못하겠지 하는 생각은 전부 지웠다. 이제 단주가 무림맹에 불을 지르겠다고 하면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고도 많이 남을 인간이란 것을 깨우친 것이다.
“네 놈은 언제고 만나면 반드시 죽이고 싶었던 쓰레기 중 한 명이었다.
아주 시원하네.”
아운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오승을 비롯한 세 명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이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객기를 부렸는지 알았던 것이다. 그들이 엉거주춤 서 있을 때 아운이 다가왔다. 상체만 일으킨 채 앉은 자세로 있던 알몸의 세 금룡단원들은 기겁을 해서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아운의 신형이 흐릿해 지면서 이미 그들 앞에 다가와 있었다.
칠보둔형의 보법이 펼쳐진 것이다. 아운은 나타나자마자, 사정없이 오승의 사타구니를 발로 밟아 버렸다. 추호도 망설임이 없는 동작이었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꺼억’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면서 오승의 눈이 돌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심방이 목소리까지 떨며 몽진을 보았다.
“서…설마?”
몽진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이미 이심바이 물으려 하는 말을 짐작하고 있었던 몽진이었다. 역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미타불, 터진 것 같습니다.”
서 있던 열세 명의 금룡대와 우칠 그리고 왕구는 숨소리마저 멈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한은 아운의 행동을 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권왕 아운님은 멋지지 않습니까? 선배님. 흐흐, 저 박력이며 베짱하고 역시 남자는 저래야지. 암 그렇고 말고…….”
물론 흑칠랑에게 물으면서 한 말이었다. 흑칠랑은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가 야한이 묻다 당황했다.
“그…그게 그렇지만, 뭐 저 정도의 베짱은 나도 있지. 아암.
그렇고 말고…….”
흑칠랑의 말에 야한의 표정이 아주 묘하게 변했다.
“선배님, 나중에 조심하십시오. 자칫하다가는 죽는 것은 둘째 치고…….”
야한의 시선이 흑칠랑의 거시기를 내려다본다. 흑칠랑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곳을 감싸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야한은 아주 안 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쯧, 그러게 그냥 제자리에서 만족하지. 무슨 제일씩이나……. 에휴,
불쌍해라!”
흑칠랑의 안색이 검게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흑칠랑이 누구인가? 절대 기죽지 않는다. 그는 야한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역시 권왕을 꺾을 자는 나 밖에 없을 것 같군. 이건 운명이다.”
흑칠랑의 말에 야한은 정말 찬탄한 표정으로 흑칠랑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흑칠랑은 어깨를 쭉 폈다. 아주 늠름하게…….
“근데 선배 목소리는 왜 떨고 그러슈.”
흑칠랑의 펴진 어깨가 좁아지면서 표정이 구겨진다. 그리고 야한의 이어지는 말.
“그러고 보니 선배, 거기 터져도 별 상관 없지 않나? 어차피 쓸 데도 없는데……. 흠, 그래서 당당했나?”
흑칠랑의 코 구멍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야한이 슬그머니 도망간다. 아운은 느긋하게 우칠을 보며 말했다.
“우칠, 왕구와 함께 금룡각의 대문을 지켜라.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기 말라!”
“옙!”
우칠과 왕구가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리고 어떤 여자가 물건을 전해 주면 지체 없이 가져와라! 이제 올 때가 되어 가는군.”
아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칠과 왕구는 금룡각의 대문을 향해 뛰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운이 돌아서서 남아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제 남은 두 사람은 다급했다. 여기서 더 이상 태연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미친놈뿐일 것이다. 모든 금룡대원들의 자세가 반듯해졌고, 알몸의 두 청년은 기겁을 해서 일어서려 했다. 둘의 얼굴은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다. 죽여보라고 베짱을 부릴 담력이 더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아운은 정말 죽일 것이다. 이젠 그들도 그것을 알았다. 자신들이 자신 있게 내세웠던 가문이나 문파에 대한 믿음감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점창파 장문인의 제자를 죽인 인간이다. 그들의 배경이 구대문파의 하나인 점창보다 뛰어날 순 없었던 것이다. 아운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는 오승을 발로 차서 밀어 놓고 두 사라에게 다가서자, 손장순과 강환은 그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고 말았다.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그렇다고 덤비자니 그런 너무 무모한 것이란 것이 증명되고 난 다음이었다. 하지만 둘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운이 허리에 찔러 차고 있던 도끼 자루를 빼어 들은 것이다.
두 사람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젠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둘은 빠르게 바닥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빌 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엎드리자 참으로 때리기 좋은 자세가 되었다.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말보다 아운의 도끼자루가 먼저 모산파 손장순의 머리에 작렬했다. 이어서 아운의 발이 황룡표국의 둘째인 강황의 갈비뼈 두 개를 분질러 놓았다.
‘으허헉’, ‘꾸에엑’하는 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둘의 신형이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일각동안 그들은 다시 한 번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해야 했다. 말을 할 틈도 없었고, 용서를 빌고 싶어도 받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제야 아예 작정을 했다는 것을 깨우치고 공포에 오줌까지 지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저 자신들이 아니란 사실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운은 그들의 팔다리를 분질러 놓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다음 오승에게 다가섰다. 이미 깨고 일어나서 인고의 고통을 참으며 공포에 질려 있던 오승은 아운이 다가오자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했다.
“자꾸 움직이면 허리뼈를 분질러 놓겠다.”
아운의 말 한 마디에 신기하게도 오승이 동작을 딱 멈췄다.
“자, 이제 지금부터 네 놈들이 호연란의 명령으로 한 짓거리를 하나도 빼지 말고 다 말해라. 혹시 말을 빼 먹거나, 허튼 짓을 하고 싶으면 해 봐라.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말을 하면 아주 깨끗하게 끝내 주마.”
아운의 말을 들은 오승의 얼굴이 참혹하게 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쪽에 몰려있던 사자명의 수하들 얼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도 입에 돌멩이를 물고 있는 사자명은 바둥거리며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운이 웃으며 야한과 흑칠랑을 복 말했다.
“아직도 팔팔하군.”
흑칠랑과 야한은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이 불게 윤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개종자들이 자꾸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흑칠랑과 야한이 그들의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들리는 가운데 아운이 다시 한 번 오승을 내려다보았다.
“나…난 잘 모릅니다.”
“그렇군. 그럼 할 수 없지.”
아운의 발이 오승의 턱을 걷어찼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오승의 턱이 부서져 날아갔다. 그 충격에 뒤로 삼장이나 날아간 오승은 그 자리에 눈을 뒤집고 숨을 거둔다. 죽었다. 정말 죽은 것이다. 턱이 깨져서 날아간 시체가 거짓말 일리는 없었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운은 미련없이 돌아서서 나머지 두 사람을 보고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 안 해도 된다. 네 놈들 말고도 죽일 놈은 많으니까…….”
절대 안 된다. 반드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이미 깨우치고 있었다.
그것도 아운이 행동하기 저에 서둘러서 말을 해야만 했다. 이젠 아운이 무섭다 못해,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둘은 급했다. 조금만 늦으면 죽을 것이다. 자신들이 호연란의 명령으로 중소문파들을 멸문시킬 때,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것처럼 아운은 자신들에게 사정을 두지 않았다. 물론 자신들은 그래도 된다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림맹의 당당한 금룡단이고, 그들은 버러지 같은 삼류무사들이나 정말 그저 그런 가문과 문파들일 뿐이었다. 헌데 지금은 반대가 되고 나자 새삼 자신이 잔인하게 죽였던 사람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벌레처럼 죽어 감녀서 두려움에 떨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자신이 그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들의 심성을 파괴해 갔다. 손장순과 강황은 정말 그렇게 죽기 싫었다.
“우리는 호연란 령주의 명령으로 호연세가에 반하는 문파들을 제거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린 것은 북궁연 총사가 한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다른 금룡대원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어었던 듯 모두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그래, 그럼 거기에 가세했던 놈들이 누구누구냐? 지금 저기 네 놈들 패거리들 말고 또 누가 가세했었느냐?”
아운의 물음에 손장순과 강황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없습니다. 그건 사자명 부단주가 책임을 지고 우리들이 한 짓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사…살려주십시오.”
아운은 잠시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손장순과 강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호연란의 밀령을 이행하면서 살려달라는 사람들을 살려준 적이 있나?”
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손장순은 마음이 다급했다. 자칫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인해 정신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와는 신분이 다른 천한 것들이라 죽어도 세상에 티가 안 나는 것들입니다. 만약 우리를 살려 주신다면 충성을 다할…….”
“닥쳐.”
아운의 한 마디에 손장순은 입을 다물고 아운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별 볼 일 없는 파락호 출신이다. 하지만 세상에 함부로 죽어도 되는 자가 있단 소리는 못 들었다. 진짜 죽어야 한다면 바로 네 놈들이다.”
아운은 그 자리에서 도끼 자루를 휘둘러 손장순의 머리통을 쳐 버렸다.
‘퍽’하는 소리가 들리며 머리가 터져 나간다. 이어서 아운은 강황의 배를 걷어찼다. 강환이 뒤로 자빠지자, 다시 한 번 발로 차서 굴려 놓고 허리뼈를 바로 밟아 버렸다. ‘빠직’하는 소리가 들리며 허리가 꺾어진다.
아운은 손을 탁탁 털면서 이심방과 열세 명의 금룡대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모두 숨이 빳빳하게 굳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별로 크지도 않은 아운의 모습이 금룡각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아운이 걸음을 멈추고 열세 명의 인물들을 죽 훑어본 다음에 북궁명을 보며 말했다.
“인원이 좀 적군. 혹시 추천할 만한 인재들이 있나?”
아운의 물음에 북궁명은 힘차게 대답을 했다.
“있습니다. 모두 두 명이고 여자도 한 명이 있긴 합니다.”
“여자라고 안 되는 법은 없겠지. 상관없다.”
“그럼 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도면 되었다. 그 세 사람에 저기 우칠과 부호법을 합하면 열여덟이군. 그 외에 몇 명 더 보충하면 되겠군. 그들을 오늘 중으로 내 앞에 데려오도록…….”
“충.”
“좋아. 그럼 그 정도로 인원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명이는 부단주, 그 외에 너희들이 앞으로 금룡단이다. 그리고 저들 중에서 쓸 만한 인간들만 골라서 금룡단을 축소 개편할 것이다. 부단주는 다서 추천한 자들을 데려오도록…….”
“충.”
북궁명은 구호를 외친 후 뛰어 나갔다. 그가 나가자 아운은 이심방을 보면서 말했다.
“거지.”
“옙.”
“넌 다른 사람과 함께 이 자식들 두 명을 담벼락에 걸어 놓아라! 천천히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갈 것이다. 그냥 죽이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이들의 죄 값이 너무 헐하다 안 그런가?”
“단주님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십니다.”
“흠, 맘에 드는군. 그리고 도사.”
“옙.”
운현검 우영이 능라자락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날아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어 사방에 전해라. 이들이 죽어야 할 타당성을 제대로 적어놓도록……. 단, 사자명을 비롯한 그들이 한 일은 적지 마라.
대신 그 부분은 따로 적어서 나에게 주도록…….”
“옙, 명대로 하겠습니다.”
“서두르도록…….”
“옙.”
우영은 고함을 치듯이 대답을 하고 서둘러 글 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심방을 비롯하여 십여 명의 금룡단원들은 아운이 시킨 일을 빠르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왕구가 종이 뭉치를 들고 뛰어왔다. 아운은 왕구가 전해 준 종이 뭉치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금룡단 단원들의 신상명세서가 적혀 있었고, 그 동안 소홀이 조사를 해둔 그들에 대한 많은 정보가 적혀 있었다. 북궁가의 정보력은 어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금룡단 단원들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운은 종이에 적힌 글을 읽으면서 종이를 두 개로 나누었다. 이윽고 그 안의 내용을 전부 훑어 본 아운은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는 금룡단 칠십이 명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자들은 모두 일어서도록…….”
아운은 종이 뭉치를 넘기면서 이십팔 명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된 인물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아운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운이 그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참으로 재수가 좋다. 원래 금룡단의 하인으로나 쓸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아주 나쁜 놈들은 아니라기에 봐준다. 너희들은 금룡단으로 남는다. 저쪽에 가서 서도록…….”
새롭게 호명된 이십팔 명의 인물들이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짓고 한 쪽으로 우루루 몰려가자 아운은 나머지 인물들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너희들은 저것들과 함께 서라!”
호명 되지 못한 금룡단의 인물들은 얼굴이 굳어진 채 한쪽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아운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원래부터 있던 사십사 명과 사자명, 그리고 그의 수하들 34명을 합해 총 칠십팔 명이었다. 그때까지도 사자명은 입안에서 돌멩이를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네 놈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금룡단의 하인이다. 하인으로서 본분을 잃지 말도록……. 만약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는 자가 있다면 모두 팔다리를 분질러 놓겠다. 혹여라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네 놈들에게 지금부터 특수한 제재를 가해놓을 것이다.”
아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여 칠십팔 명의 형을 점해 버렸다. 그들은 모두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네 놈들의 무공을 전부 막아놓았다. 하인들한테 내공이 필요 없을 테니까.
혹여 불만이 있는 놈은 앞으로 나와라. 아주 죽여 줄 테니까…….”
아무도 없었다. 모두 얼굴이 검게 변한 채 공포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지금 아운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그들이 감히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뜻을 이루는 데 거리낄 것이 없지만, 나를 기다리는 부모님과 나의 아내 될 여자가 못내 걱정되어 미리 소식을 전하오.
염치 없지만 내가 제 자리에 돌아올 동안 조금만 더 기다려 주길 바라오.
많이 어렵다고 들었소.
하지만 내가 제 자리에 섰을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오.
그때까지 지지말고 서 있길 바라오.
그리고 함께 보낸 책자는 내가 주는 선물이오.
그 책자엔 백 년이 지나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적혀 있을 것이오.
혹여 주름살 때문에 초조해 하지 말고 기다려 주기를 바라오.
연 소저도 내가 중간에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얼간이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오.
반드시 일을 마치고 돌아가리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내 아내가 될 여자가 항상 보고 싶었소.
소식이 너무 늦어 미안하오. >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투였다.
결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투가 아니었다.
무태의 오만한 말에 묵소정은 당황했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말투는 영 아니군.”
잠시 아운을 바라보던 우칠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그렇지. 어차피 내가 고금천추제일인이 못될 바에야 저 분의 신하가 되자.
어차피 의인에게는 그에 버금가는 충복이 있어야 한다. 비록 내가 고금천추 제일인 자리는 포기했지만, 고금천추제일충복의 자리만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내가 충복이 되어 저분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하겠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윤정을 보는 아운의 시선이 점점 냉정해졌다.
“정파의 신성이란 놈도 알고 보니 별거 아니군.”
윤정의 얼굴에 무서운 살기가 어렸다. 그러나 아운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선과 악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모르겠지만, 소문대로의 탕마검이라면 저 계집과 저 멍청한 자식의 잘못을 능히 알고 있을 터인데, 그땐 어째서 나서지 않았는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명서이 모자라거나 가문이 부족하면 당해도 싸다 이건가? 결국 강호 무림답게 힘이 곧 정의란 말이지. 이거 재미있군.”
울며 바람 새는 소리로 말하는 유대석의 모습은 이미 이전의 모습을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다. 오로지 살고 싶은 불쌍한 인간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오줌까지 지린 그의 모습은 보기에도 처참했다. 아운은 유대석을 들어 올린 다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따위가 감히 내 여자를 무시해? 잘 들어둬라. 넌 앞으로 나와 연 누이가 지나갈 땐 대가리까지 땅에 쳐 박고 있지 않으면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거란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라.”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흑흑.”
북궁연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교연이 무안한 표정을 지을 때 매화각 안에서 한 명의 청년이 걸어 나오며 명정과 교연 일행을 바라보고 말했다.
“나를 찾아왔다고 들었소.”
모든 시선이 매화각의 정문을 향했다. 거기엔 평범해 보이는 중키의 청년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 있었다.
교연은 지금 나타난 청년이 바로 문제의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무공을 익힌 무사 같진 않았다. 그가 아는 무인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고 그의 전신에서 어떤 기세가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교연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얕보는 마음이 생겼다. 명정 역시 청년의 어디에서도 크게 무공을 익힌 흔적을 찾을 수 없자, 유대석이 북궁연에게 당하고 그녀의 약혼자 핑계를 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명정이 앞으로 나서며 아운을 보고 말했다.
“그대가 어제 저지른 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물론 기억하고 있지. 어떤 멍청한 자식이 내 여자를 무시하길래 제대로 버릇을 가르쳐 주었지. 그런데 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가?”
아운의 말투가 바뀌었다. 명정과 또 한 명의 노인은 아운의 말투가 하대로 바뀌자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로서는 아직까지 나이어린 청년에게 그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명정과 또 한 명의 노인 노숙은 우선 숨을 고르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명정이 누구인가? 절강 무림의 패자인 명왕성의 전재 성주로서 그의 무공은 이미 무림맹 내에서도 알아주는 실력과 덕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노숙은 바로 호연세가의 가신 중 한 명으로 그의 무공은 세상이 다 아는 전대의 고수였다. 이런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 단 한 명의 무명 청년에게 완전히 무시를 당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하랴. 교연이 교활한 눈으로 아운을 보면서 나무랐다.
“아무리 북궁 총사를 믿는다고 하지만, 어른에게 대한 말 버릇이 고약하군.”
아운이 교연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명정과 노숙을 보면서 말했다.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할 줄 알아야지. 아무리 나이차가 난다고 해도 기본 나이가 있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하대를 하면 되겠는가? 더군다나 그 사람의 위치란 것이 있는데…….”
아운의 말에 명정이나 노숙은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정이 잘못한 바가 있었다. 더군다나, 아운의 위치는 총사의 부군될 사람이었다. 함부로 말을 낮추어 가볍게 부를 상대는 아니었다.
이들이 직권을 남용하고 금룡단이란 이름 아래 지은 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숨겨진 죄를 찾아내고 그들을 사주한 자들을 찾기 위해 그동한 이들에 대한 처벌을 미루어 왔었다.
이제 이들의 죄를 세상에 알리고 금룡단의 단주로서 이들에게 타당한 벌을 내린 후 금룡단에서 추방한다.
죄질로 보아서는 일검에 목을 쳐도 타당한 자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죄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들에게 너무 편한 벌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으며, 죄인들 중 상당수는 명문 정파의 후예나 제자들로, 사문과 가문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기에 이들이 속한 사문이나 가문에서 따로 그 여죄를 물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일일이 열거하여 공고하였으니 각자 죄인들의 사문이나 가문에서는 이를 참조하여 조사한 후 이들에게 남은 여죄를 묻기 바란다.
아울러 벌을 받은 금룡단원들의 사문과 그 가문에 고한다.
죄인들이 저지른 죄가 어찌 이들만의 잘못일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 사문이나 가문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며, 당연히 거기에 대한 책임도 따라야 할 것이다.
그 책임에 대한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피해 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피해를 당한 문파나 피해자를 찾아 그에 대한 보상도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내가 단주로서 죄인들을 벌한 부분을 떠나서 이들에게 가혹한 벌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사문이나 가문 출신의 제자나 수하들의 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누구든지 내게 와서 따져라!
그것이 자신의 제자나 자식에 대한 명목이든 복수이든, 아니면 이들의 죄를 들추어 낸 나에 대한 분노이든, 정말 자신의 사문 출신이나 가문 출신의 죄인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믿든, 그것은 따지지 않고 나는 이들 죄인들의 사문이나 가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여기는 무인의 땅.
무인답게 그 기회를 주껬다.
앞으로 이 개월 후, 무림맹의 연무장에서 여섯 시진의 시간을 주겠다. 그날 나에게 이들의 일로 불만이 있는 자들은 누구든지 내게 도전을 하라.
일대 일이든 아니면 일 대 다수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단 한 번에 한 문파씩 도전해 와라. 그러면 상대가 누구든 받아 줄 것이다.
하지만, 도전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를 빌어 이들 죄인을 그대로 방치한 이들의 사문과 가문에 그 책임을 물을 것이며, 반대로 나에게 도전하는 자들은 당당하게 힘으로 자신의 제자나 자식의 무죄를 증명해 보여라!
나는 여선 시진 동안 홀로 연무장에 있을 것이고, 그동안 내게 도전하면 된다.
단 이것은 알아야 할 것이다.
무인의 혼은 유정할 수 있지만 진정한 결투에서 주먹은 무정하다는 사실이다.
권왕 아운.
흑칠랑의 말에 마음이 조금 진정된 것이다.
“전 아무래도 누님에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총사님이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일세. 이런 일은 말을 전하는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전하는가에 따라서도 많이 좌우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 자네가 그 정도는 별거 아니고, 매형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한다면, 총사님도 그렇게 생각할 것일세.”
흑칠랑의 심오한 말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확실히 흑칠랑의 말에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자식들에게 불만이 많겠지. 그럼 시간을 줄 테니 우선 가슴에 맺힌 한을 푸십시오."
아운의 말이 떨어지자, 사문을 비롯하여 다섯 명의 낭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호연상과 범여창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고 세 명의 선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운으로 바라본다. 특히 조금 전 아은에게 무시를 당했던 유청 신니는 아운을 보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미타불, 시주, 저 두 사람은 이미 저항력을 상실한 자들입니다. 지나친 폭력은 ----"
"다시 말하지만 저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이것도 후한 것입니다. 그 자비로움을 두었다가 민생들을 위해서나 쓰십시오. 그리고 지금 보여 준 정의감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 정의감이 사람을 가려 가며 발휘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운의 냉랭한 말에 유청 신니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뭐 나도 아운이란 인간을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인간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인간이 맞다.
그래서 가끔 무모하기도 하지 , 그런데 그 무모함에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그 행동의 결과가 이상하게도 저 인간에게 유리한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가 스스로 의도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 것 같다. "
"권왕님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의 결과가 그가 유리한 쪽이나 그가 원하는 쪽으로 흐른다는 것이오. 그건 하늘이 돕고 있다는 것인가?"
"으음 . "
흑칠랑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하였다.
"확실히 그렇다. 그렇다고 하늘이 권왕만 편애하는 것은 아닐 테고, 그래서 내가 판단한 것인데,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는 자에게 행운도 따르고 좋은 운명도 그와 친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권왕이 그런 인간인 것 같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행동을 한 것과 안한 것의 차이 는 아주 크지 . "
"어떤 차이 말이오?"
"어떤 어려움 속에서 정말 과감하게 행동을 하게 되면 불리한 조건이 유리해지게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만, 어렵다고 움츠리면 그에게 기회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것이지. 흐흐 그건 권왕을 보면 알 수 있다 "
흑칠랑이 조리 있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야한은 나름대로 수긍을 하였다.
"한쪽이 강하게 밀고 나가면 한 쪽은 수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니면 같이 죽던지, 그럴 배짱이 없으면 먼저 강하게 나온 사람이 유리해집니다. 결국 상대는 질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리고 머리는 있고, 경험이 없으면 소심해지게 마련입니다. 서문정은 그런 점에서 아직 어린 편이죠,"
똑똑할지는 모르지만 순진한 여자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감은 용기로 다가왔고, 용기는 서문진을 대범하게 만들었다.
"훗, 공석에서는 총사라고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굳이 총사라는 호칭을 쓰기가 어색합니다. 다른 호칭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하영영은 서문진을 바라보았다
서문진이 말한 의도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뭐라 부르고 싶으신 것인가요?"
"내가 나이가 꽤 많은 편이니 하매라 부르면 어떻소."
하영영이 놀란 시선으로 서문진을 바라보았다.
서문진은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사실 무림맹에 젊은 수뇌부는 몇 명 되지 않으니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겠소, 내가 하매를 맹주 대신 친동생처럼 돌보리다."
하영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쩌죠?"
"뭐가 말이오?"
"나는 지금 있는 오라버니 하나로도 족해요. 그 한 명만으로도 감당하기가 벅차답니다. 그래서 서소협의 과분한 친절은 받기가 어려워요, 그냥 총사라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사석에서야......"
"제가 사석에서 서소협을 볼 일이 있나요?"
서문진의 안색이 약간 굳어졌다.
이제야 하영영이 확실하게 거절한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싫어서는 아닐 것이다.
'흥, 자존심인가? 하긴 이 정도의 자존심은 있어야겠지 . 그래도 제법이네.'
더욱 승부욕이 자극되었다.
서문진의 굳어졌던 표정이 펴지면서 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그거야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이거 볼수록 하소저는 매력이 있는 여자요."
"그거 저를 희롱하는 말인가요?"
"칭찬을 하는 소리요."
하영영의 표정이 새침해졌다.
그 모습도 귀엽다.
마치 어린 소녀가 골이 난 모습이 저럴까?
"서 소협."
서문진은 마치 귀여운 여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하영영을 보면서 대답하였다.
"말하시오."
"전 맹주대행인 총사고, 여긴 맹주실입니다. 예의를 지켜 주세요."
"알겠소, 그럼 사석에서는 이제 하매라고 부르겠소."
"전 허락한 적 없습니다."
서문진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얼굴을 하영영 가까이 들이대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알고 지내면 되었지, 서로 무슨 허락이 필요 하겠소, 괜히 어색하게 굴지 말고 서로 편하게 지냅시다."
하영영 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서 소협."
"말하시오, 하매, 아니 총사님."
서문진의 표정은 아직도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재미 있나요?"
"물론 나는 재미 있소."
"그럼 더 재미있게 해 드리지요."
하영영의 말에 서문진은 하영영을 빤히 바라본다.
"우칠 아저씨."
나직하게 하영영이 부르자, 그녀의 뒤쪽에 있는 문이 열리며 우칠과 소홀이 안으로 들어왔다.
우칠을 본 서문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탕룡광마(蕩龍狂魔) 우칠.
현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젊은 고수 중 한 명일 것이다.
제 아무리 서문진이라 해도 말로만 듣던 우칠을 보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기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름대로 무공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서문진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키와 덩치 앞에 기가 죽지 않을 수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저를 아주 우습게 아는 분이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맹주 대행이신 아가씨를 우습게 아는 자는 주군을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영영은 서문진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는 군요."
서문진은 움찔 했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언제 총사님을 우습게 알았단 말입니까? 전 다만......"
"제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만든 것은 그쪽의 실수지요."
"저는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럴 마음이 있었던 아니던 그건 저와 상관없습니다. 댁이 조금 전 저한데 들이대던 그때 역시 제 감정에 관심이 없었던 것과 같죠."
서문진은 하영영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총사 나는 정말 호의로 한 말이오."
"우칠 아저씨."
"예 아가씨."
"저 자는 맹주 대행인 저를 모욕한 것은 물론이고, 나를 희롱하였어요, 그에 해당하는 엄벌을 부탁드립니다."
서문진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하매 나는......"
하영영이 서문진에게 다가섰다.
서문진의 코앞까지 다가선 하영영이 말했다.
"난 너처럼 멍청하고 느끼한 자식을 오라비로 둔 적이 없다. 구역질나니까 하매란 말 함부로 쓰지 마!"
하영영의 갑작스런 욕설에 서문진은 머리가 거꾸로 도는 느낌을 받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익!"
"감히!"
우칠이 고함을 지르며 주먹으로 서문진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퍽! "
소리와 참께 서문진의 몸이 뒤로 오장이나 날아가 벽모서리에 쳐 박히고 말았다. 강하다면 제법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서문진이었지만, 우칠의 무식함을 상대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으윽, 네 놈들이 내가 누가라고‥‥‥"
우칠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한 달음에 달려와 서문진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인다."
서문진은 입을 다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칠의 무감정한 말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의 말이 얼마나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문진은 자신이 입을 열면 정말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입을 다문 것이다.
하영영이 서문진에게 다가왔다.
우칠은 서문진을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우칠이 뒤로 물러서고 하영영이 다가오자, 겁을 먹었던 서문진은 다시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좋아했던 하영영에게 당한 모욕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내가 누군데, 어떻게 이렇게 다룰수 있단 말인가?'
너무 화가 나고 분했다.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고 어쩔 것이오, 후환이 두렵지 않소?!"
하영영이 얼굴을 찡그렸다.
"후환이라! 우칠 아저씨."
"말씀하십시오, 아가씨."
"이 자식 죽여서 묻어 버리세요, 그게 후환이 없을 것 같아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칠이 철봉을 들고 다가오자 서문정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
이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 이상 대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인과응보란 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었다.
"흐흐, 그런가? 과연 내가 인과응보를 받아 한쪽 눈이 멀었군.
하지만 모든 죄를 네가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라!
너는 평생 동안 산속에 갇혀 무공만 수련해 본 적이 있는가? 그건 또 다른 지옥이다.
나는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흐흐, 나는 지금도 장문인 의 유혹에 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너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 일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날 일이지. 그걸 핑계로 향락을 얻으면서 생사람을 죽였다면 그건 죄악이야. 개소리 집어치고 내려가라!"
더 이상 존중어린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운의 거친 말에 이연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 권왕무적 아운과 형산삼연과의 대화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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